명나라 태조 주원장 “한국은 하늘이 만든 나라다”

입력 2015-02-28 23:37:49

원문 링크

 ▲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들어가며 -한국역사의 진실과 황제제도
 
어느 민족이나 문화가 있고 문화가 있으면 역사가 있다. 역사의식이 없는 민족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우리는 투철한 역사의식이 있는 민족이다. 근래 우리나라 전 지역에서 우리나라 대한(大桓, 大韓)의 문화와 역사 기원이 구석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됐다. 전곡리 유적은 70만 년 전부터 그 상한이 구석기 초인 270만 년 전 으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역사는 구석기시대로부터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의 문화단계를 거치면서 면면히 발전해 왔음이 고증되고 있다. 각 시대 연모(年貌)의 발달과 더불어 점차 새롭고 복잡한 문화와 사회조직을 갖게 됐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구석기시대에는 수렵과 식물채집을 주로 하면서 무리생활을 했고, 신석기시대에는 토기 제작과 아울러 농경을 시작하면서 부족단위의 정착생활을 했다. 이때에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환국이 서기전 7199년 전 원시국가 형태인 환인(桓仁, 桓因), 안파견安巴堅) 천왕(天王)에 의해 파내류산(波奈留山) 아래에서 건국해 3301년간을 이었다. 삼성기(三聖記)의 기록에 따르면 상고시대 우리나라의 강역은 바이칼호수를 중심으로 시배리아대륙, 만주, 중국, 한반도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서가 2만 리요 남북이 5만 리이며, 인구는 1억8000만명인 때도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이후 서기전 3898년에 거발환(居發桓) 환웅천왕(桓雄天王)이 신시(神市)에다 배달국(倍達國)을 세우고 1565년간 대대로 내려오다 서기 전 2333년에 아사달(阿斯達)에서 구환족(九桓族)인 배달동이(倍達東夷) 겨레, 즉 구려(九黎) 국인(國人=국민)들이 모여 추대한 천제자(天帝子) 환검홍성제(桓儉弘聖帝)가 초 단군이 되면서 단군조선은 47세(대) 2096년간을 전승(傳承)했다. 이 당시 우리 선조들은 천자·천황 제도를 확립했다. 이번 칼럼은 지난 회에 이어 황제제도가 우리 한민족의 시원인 것을 배달국 치우천황의 역사를 통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러시아 역사학자 “고조선, 60만년전 유라시아대륙 동방문화권 만들었다” 고증
 
사마천은 ‘사기’에서 치우는 구려(九黎)의 임금(天子)이라고 했다. 이외에도 국내외의 역사문헌들이 배달국은 아세아를 통치한 강대한 대국이었음을 논증해 주고 있다. 임혜상(林惠祥)은 ‘중국민족사’에서 이르기를 “주(周)나라 성왕(成王)때 서기전 12세기에도 중국의 영토가 가장 좁았다고 하고 있다. 실제로 중원 전체의 5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나머지 5분의4가 배달 조선의 동이가 다스린 것이다. 러시아 역사학자인 유.엠. 부틴은 그의 저서 ‘고조선’에서 “고조선 민족은 아주 오랜 옛날 60만 년 전 구석기시대부터 만주와 한반도는 물론 중국의 북부, 중부, 남부에 걸친 넓은 대륙에 분포해 정착하고 살아오면서 일정한 공통점을 지닌 문화를 이루면서 동부 아세아 전 지역에 걸쳐서 동방문화권을 형성, 중국문화와는 전혀 다른 독창적이고 독특하며 독자적인 문화를 수천 여 년 동안 계승·발전시켜 온 민족이다”고 소명자료를 일일이 열거하며 체계적으로 고증·기술하고 있다.
 
또 중국의 25사(二十五史)와 국내외 여러 옛날의 역사문헌을 두루 참고해 보면 배달국시대에만 보더라도 우리 한민족인 구려(九黎)가 현 중국 땅을 합친 동부 아세아 전 지역을 개척하고 차지했다. 아울러 중국 ‘고사변’(古史辯) 제7권 중편 삼황오제고(三皇五帝考)에 고대제왕(古代帝王)의 종적(蹤迹)을 살펴보면 “대다수의 제왕이 동방에서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사기(史記卷一) 오제본기(五帝本紀)와 서량지(徐亮之)의 ‘중국민족사’에도 “전욱(顓頊)은 동이에서 태어났다. ~제(帝) 전욱고양(顓頊高陽)은 황제의 손자이며 창의(昌意)의 아들이다”고 했다. 또 ‘산해경 해외서경’(山海經 海外書經)]에서도 “8대제왕 숙신(肅愼):朝鮮)나라에서 취해온 것이다”고 했다.
 
당시 다른 민족은 동이족을 지도자로 모셔다가 왕을 삼는 것을 빈번하게 했다. ‘제격사기’(帝擊史記)에도 이르기를 “황제는 백민(白民, 배달국)에서 태어났음으로 스스로 동이인”이라고 했다.(원문-皇帝生白民...自屬東夷). 임혜상(林惠祥)은 ‘중국민족사’ 제5장 구여삼묘(九黎三苗) 편에서 이르기를 “유복림(繆鳳林)이 말하기를 염제(炎帝)와 황제(黃帝)시대에 남쪽에 여와 묘(苗)가 살았는데 묘가 대대로 살던 곳이었다. 전욱(顓頊)왕 이전에는 구여(九黎)라 칭했고 전욱(顓頊)왕 이후에는 삼묘(三苗)라 칭했다. 삼묘는 구여의 후손들이다”고 했다. 이 같이 상고시대에 강한(江漢)의 지역이 구여(九黎)의 영토였던 것이다.
 
사마천 사기(史記) “큰 화살 병기로 사용해 그 위세가 천하를 진동시켰다” 기록
 
당시 대 조선국의 영토는 단군세기(檀君世紀)에도 이르기를 삼한오만리(三韓五萬里) 강토로서 구한(九桓), 구황(九皇) 즉 환국이라고 했다. 그 자손들이 세운 구려(九黎), 배달, 조선, 구이(九夷, 東夷), 예, 맥, 학(狢), 묘(苗) 등이 구주(九州) 즉, 구역(九域)에 분포해 살았다. 환국시대는 고고학적 문화단계로 나누면 신석기시대에 해당한다. 배달국시대는 신석기 말기에서 청동기 시대의 초기단계로 보아야 한다.
 
서기전 27세기에 배달국 14대 천황(慈烏支天黃)은 일명 치우천황(蚩尤天黃)이라고도 호칭했는데, 갈노산(曷盧山)에서 구리와 철을 캐서 칼과 창과 투구, 갑옷 등 병기를 제작하여 무장을 하고 중원에 있는 구려(九黎)를 평정했다고 삼성기(三聖記), 신시본기(神市本記), 삼성비기(三韓秘記), 규원사화(閨怨史話), 태백일사(太白逸史) 등 국내 사료에 기록돼 있다. 또한 중국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도 이르기를 “제후가 모두 와서 따랐으나 치우가 가장 강폭하여 천하가 능히 정벌하지 못했다. 헌원(軒轅)이 섭정함에 치우의 형제 81명이 있었는데, 그 모두 짐승 같은데 사람의 말을 하며 구리머리에 쇠 이마(獸身人語銅頭鐵額)를 하고 모래를 먹으며 오구장(五丘杖)의 칼과 창을 차고 큰 화살을 병기로 사용하여 그 위세가 천하를 진동시켰다”고 했다. 치우천황(蚩尤天黃)은 사마천의 사기에도 옛날 천자(天子)의 이름이었다. 그 원문은 ‘司馬遷史記曰諸侯咸來賓從而蚩尤最爲暴天下莫能伐軒轅攝政蚩尤有兄弟八十一人並獸身人語銅頭鐵額食沙造五丘杖刀戟太弩威振天下蚩尤古天子之號’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같이 구리(銅)와 쇠(鐵)로 병기를 제작 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알 수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우리나라 청동기 문화개시 연대는 서기전 27세기로 올려야 한다. 이 병기를 사용해 “전쟁이 시작한지 1년 만에 아홉 제후(諸侯)를 평정하고 다시 공상(空桑)을 점령함으로 헌원(軒轅), 창힐, 대요 등 이해에만 12제후(諸侯)국을 평정했다고 한 것이다. 왜 이 제후국들을 평정 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는 위의 사료에 의거 하건대 배달국 21제후국들이 서로 반목하여 불복함으로 배달국 제14대 자오지천황(慈烏支天黃)이며 일명 치우천황(蚩尤天黃)은 마침내 21제후국을 평정하니 그 영토가 오늘의 산동성, 하북성, 발해연안, 하남성의 동남, 강소성 서북, 안휘성 중북, 호북성, 호남성, 강서성, 및 요동반도, 만주일대, 연해주, 내몽골, 조선반도 등 실로 광대한 지역이었다.
 
치우천황(蚩尤天黃)은 서기전 27세기에 도읍을 신시에서 청구(靑丘)로 옮겼는데, 그 청구는 지금의 산동성 동평현(東平縣)이다. 치우천황(蚩尤天黃)의 능도 이곳에 있다. 중국사학가들도 중국의 중부와 남부는 본래부터 배달 동이겨레인 구려가 차지하고 그 군주가 치우천황(蚩尤天黃)이라고 했다. 중국 사학자 임혜상(林惠祥)은 ‘중국민족사’ 상권 제5장을 통해 “왕동령(王桐齡)이 중국통사(中國通史) 4면에서 치우는 구려의 군주라고 했다. 또한 상서(尙書)에서도 “구려(九藜)는 곧 치우의 무리다”고 했다. 서량지(徐亮之)도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에 이르기를 은나라, 주나라 이전은 물론이고 은주(殷周)시대까지도 배달민족의 활동분포라고 하고 있다.
 
일본 작가 “명나라 태조 주원장도 한국은 하늘(天)이 만든 나라다” 주장
 
사서(史書)인 고기(古記)에 천신환웅(天神桓雄)이 단군을 낳았다고 했다. 즉, 단군은 천신(天神)의 피를 받았는데, 성신역문(聖神譯文)에 독(毒)은 육이라고 해석했다. 천독(天毒)은 천신이 양육하는 자식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일본서기(日本書紀) 대화 원년(大化 元年)에 보면 일본 22대왕 코우도쿠 덴노(孝德天皇)는 고려왕을 신(神)의 자(子)라고 했다. 일본의 작가 시바요타로(司馬遼太郞)는 “인류의 대표라는 천자(天子)를 자칭하고 타민족을 무시하는 명 태조 주원장(明太祖朱元璋)까지도 한국은 천(天)이 만든 나라라고 말했다”(高麗史節要禑王11년9월)고 했다. 이는 타민족이 한민족의 천민사상(天民思想)을 입증하는 것이다. 한민족(韓民族)은 인류사상 타민족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신화(神話), 독특한 백의(白衣), 독특한 산명(山名), 독특한 국서(國書)를 갖고 있으며 천민(天民)으로 자처한 것을 분명히 입증한다.
 
고기(古記)에 천신환인(天神桓因)이 한국의 땅을 중심으로 인류를 지도한다고 하고, 단군이 천신(天神)의 피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재래사가들은 이 신화를 무시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 문헌에 인류의 대표라 칭하는 천자(天子)의 문물제도(文物制度)가 한국에서 창조됐다는 증언들이 나온다. 천신(天神)의 피를 받았다고 칭하는 천자(天子)의 문물제도가 한국에서 창조됐다고 증언되고 있는 것은 고대 우리의 신화가 위조없는 정확한 기록이라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이어 후대에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고려에 이르는 우리의 왕을 황제라 칭한 것을 누가 부인하겠는가.
 
우리나라 외에 황제제도를 거론하는 곳은 후에 나오고 있으나 천황이라고 하는 나라는 우리와 관계가 깊은 거란, 일본 등이었다. 이는 중국의 천자(天子)를 흉내 낸 것이요, 그 본원(本源)을 따지면 한국사상을 모방 한 것이다. 특히 일본 에가미나미오(江上波夫) 교수가 미나마(任那)가 일본민족의 발상지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미나마(任那)는 가야가 일본에 세운 분국으로 가야의 식민지였다. 한국 역사상 가야(任那)가 독특히 천황사상(天皇思想)을 제창했다. 삼국유사(卷二, 駕洛國記)에 황천(皇天), 상제(上帝), 황후(皇后), 삼성(三皇) 등의 문구(文句)가 많다. 최근 일본에서 1200년간 지하서고에 있다가 미와요시히로(三輪義熙)에 의해 세상에 나온 ‘궁하문서(宮下文書, 神皇紀-天皇家 7000年의の歷史)’를 비롯해 ‘수진전’(秀眞傳), ‘상기’(上記)(高千위 高天原朝史), ‘죽내문서’(竹內文書, 北陸飛彈朝史), ‘구귀문서’(九鬼文書, 出雲高天原朝史)는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日本書紀)와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일본 역사의 상반은 한국역사라는 것과 일본 역사는 서기전 660년이 아니라 369년이 통설이 옳음을 입증하고 있다. 신황기(神皇紀-天皇家 7000年의の歷史)에는 일본의 천왕과 황후의 이름까지 상세히 나와 있다. 중국이 우리의 조상과 문물제도를 자기 것으로 둔갑시키고 있으나 진실은 숨길 수 없다.
 
우리 선조들 국명이었던 중국, 한화족(漢華族)은 한민족에 비해 10분의 1 강역
 
중국 시조 삼황오제(三皇五帝)는 도둑질당한 우리 한민족 선조다. 중국과 일본은 상고사가 없는 나라이고 조작된 역사로 조잡한 역사왜곡의 만행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에 제대로 연구하고 맞서서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 우리 한민족은 요하문명을 일으키고 숫자를 발명했으며, 청동기와 철기시대를 주도해 강대국의 위상을 떨쳤다. 고대 우리 선조들은 지금의 중국 평야지대에 살며 농업을 일으켰고 번창했다. 중국 한화족(漢華族)은 산악에 거주했다. 중국은 지명과 지도를 바꾸고 국명을 도적질하나 중국 한족(漢族)이 주도한 중국역사는 1000년 밖에 되지 않는다. 원, 요, 거란, 청나라의 주역은 모두 북방 유목민족들이었다. 한족(漢族)이 간도에 온 역사도 130년 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가 중국대륙과 아세아와 세계문명을 주도한 위대한 민족인 것을 재확인하고 가야 한다. 동북공정은 사상누각(砂上樓閣)으로 무너질 날이 온다. 고대중국은 그 명칭자체가 중국이 아니다. 근대에 와서 손문(孫文)이 중화민국을 세우며 나온 것이 중국이나 본래 우리 국명인 고대의 중국을 도용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우리가 중국이었다. 김수로왕(金首露王)도 가락을 중국이라고 했다.
 
북사(北史 卷 九十四 末尾)에 보면 동이(東夷)에게서 수입한 것은 궁시(弓矢)뿐만 아니라 기타문화도 수입한다고 했다. 또한 주역(周易, 卷之 二十四)에는 중국문화의 중핵인 황제제도가 동방 한국에서 창조됐다고 기록했다. 만(萬)가지 문물제도가 모두 동방한국에서 창조됐다고 한 것이다. 중국은 우리의 문화사상 및 물질문명 양면에서 한국을 배웠다고 고백하고 있다. 동양문화를 개척한 자는 유 불 선(儒, 佛, 仙,) 삼교(三敎)라고도 하는데 이들 유, 불, 선, 삼교(三敎)가 한국사상을 계승한 것이다. 중국대륙에서 한화족(漢華族)이 지배한 영역(領域)은 우리의 10분의 1에 불과했다. 한민족 본거지 중국에 많은 한반도 지명들은 한국이 동양문화의 개척자였을 뿐 아니라 정신문화는 서양보다 동양인 우리 한민족에 의해서 먼저 발전시켰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사실을 고찰하면 한민족은 인류사상 최초에 등장한 문화민족으로 5대문명을 일으킨 방증까지 드러나게 된다. 무려 6000년 전 숫자를 발명했고 천문과 주역(周易) 등에 능해 세계문명사를 장식한 위대한 민족이었다는 점이다. 조선조에 와서 한국을 천(天)으로 받드는 천민사상을 말살하고 도리어 중국을 천(天)으로 받드는 사대노예사상(事大奴隸思想)에 빠졌다. 이 같은 타락은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著·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이강민 ‘대한국고대사’, 윤내현 ‘한국열국사연구’, 윤내현·박선희·하문식 공저 ‘고조선의 강역을 말한다’, 백원·김백룡 원저·단동 김정일 편저 ‘天符經’, 고조선학회 ‘고조선연구’ 제1호, 카터 코벨 지음·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임길채 ‘일본 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하’,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강동민 ‘불쌍한 대한민국’, 박찬희 ‘지구촌 인류를 구제할 법칙’, 송부웅 ‘한민족의 대륙역사’ ‘삼성(三聖)의 역사’, 우창수 ‘아사달, 상·하’, 김부식 ‘삼국사기’, 임승국 번역·주해 ‘환단고기’, 한창건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南帝 ‘命理속의 哲學’, 김진경 ‘만천년 역사의 비밀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林承國 ‘韓國正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洪以燮 ‘朝鮮民族史觀と日本帝國主義の植民政策’, 吉川幸次郞 ‘漢の武帝’,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秋山謙藏 ‘日本の歷史’ 외 다수서책을 참조·인용을 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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