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년전 BC 2096년 동이족 1년…365일 5시간48분46초

입력 2015-03-07 21:40:16

원문 링크

 ▲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들어가며 - 인문과 과학 섭렵한 문명 동이족
 
우리 한민족이 남긴 역사와 문화 및 제도는 참으로 훌륭했다. 양심적인 중국과 일본의 학자들도 중국과 일본의 사서(史書)들이 거짓임을 잘 말해주고 있다. 예컨대 이들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대해 “고대 한국인들의 일본 열도 진출을 숨기기 위해 악랄하게 변조·왜곡한 황당무계(荒唐無稽)한 조작된 거짓역사(僞史)의 표본이다. 이는 역사서가 아니라 삼류소설로, 이를 읽고 있노라면 착각에 빠질 정도다”고 혹평한다. 한국은 역사와 문화에서 중국과 일본의 뿌리이자 선조임이 확고부동한 진실임을 세계의 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과 일본은 온갖 역사왜곡과 조작, 망언으로 자신들의 열등의식을 묻으려고 한다. 죤 케인즈(Jhon Keinz)는 “자기나라의 문화를 발전시킬 수 없는 나라는 발전을 기대 할 수 없다”고 했다.
 
중국의 사학자 임혜상(林惠祥)은 그의 저서 ‘중국민족사 동이계(中國民族史 東夷系)’에서 “학(貉)과 맥(貊)은 공통되는 말이며 예(濊), 맥(貊), 학(貉) 등은 고려인의 조상이다”고 했다. 또한 그는 “구려(九藜), 구이(九夷), 숙신(肅愼) 등은 본래 동이(東夷)다. 이는 중니(仲尼), 즉 공자가 먼저 말했다”고 논증하고 있다. 정인보(鄭寅普) 선생도 우리 민족의 호칭은 무려 194종이 된다고 했다. 이 194종의 한민족은 환국시대부터 배달국에 이어 단군시대에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1만년이란 유구한 역사가 이를 대변해주고 있다. 그리고 고대로부터 인도주의적 인간중심사상이 일찍부터 있었다. 그것은 우주자연의 생성원리와 인간과 조화를 이루는 사상, 즉 삼신사상(三神思想)을 비롯해 선철학(仙哲學), 태극(太極), 음양오행설, 홍익인간 등 동양문명의 원류사상으로 동방문화권을 형성했다. 이를 통해 중국대륙의 5분의 4에 해당하는 80%의 영토와 동북아시아 전역에 걸쳐 중국문화와는 전혀 다른 독자적인 문화를 창조하고 발전시켰음이 학자들의 고증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러시아의 역사학자 유엠 부틴의 저서 ‘고조선’과 한민족의 활동 중심지였던 산동성용산진(山東省龍山鎭)과 양성진(兩城鎭)을 중심으로 한 요동반도 하남동부(河南東部) 일대에 퍼진 흑도문화(黑陶文化) 유적 등을 보면 요하문명을 비롯한 세계 5대문명이 동이문화였음이 밝혀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상고시대부터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가진 전 세계에 볼 수 없는 위대한 국가이고 위대한 민족임을 알 수 있다. 환국시대와 배달국시대, 단군 고조선시대를 보면 우리가 지금의 중국 중원(中原)의 주인으로 전 국토의 80%를 차지했다. 서기전 27세기경에는 이미 청동기시대의 문화, 사상, 예술, 종교와 예술은 물론 타민족이 추종을 불허하는 금자탑을 쌓은 국가를 이어온 민족이었다. 초정밀 역법(曆法), 역학(易學), 문자의 발명을 위시해 단군조선 중 말기에는 금속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하기도 했다. 그리고 정치제도도 다른 민족이 상상할 수 없는 제도를 발전시켜 국가를 안정시키고 발전시켜 왔다.
 
아울러 고조선의 정치제도는 민주주의 제도를 일찍부터 실시하고 있었다. 그 증거로 ‘홍익인간’의 사상과 ‘화백제도(和白制度)’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이 같은 정치제도는 고대 한민족의 맥을 이은 부여시대에는 ‘제가평의제도(諸加評議制度)’로 이어졌고, 고구려 시대는 ‘군공회의(群公會議)’가 있었으며, 백제에는 ‘정사암제도(政事岩制度)’, 신라에는 ‘화백제도(和白制度)’가 있었다. 이들 제도는 모두 고조선시대의 화백제도(和白制度)를 계승·발전시켜 온 총의다수(總意多數) 원칙의 민본주의 즉, 민주제도였다. 우리는 신라에만 화백제도(和白制度)가 있는 것으로 배워왔다. 환국시대부터 우리는 대륙을 주름잡았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가. 이 같은 문물제도를 발전시킨 장본인이 중국인이 말하는 동이(東夷)인데 이번 칼럼은 한민족(韓民族)의 선조인 동이족이 일군 경이롭고 위대한 정치, 문화, 문물제도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한민족 동이(東夷)의 이(夷)는 오랑캐 아닌 ‘큰 활로 사냥하다’에서 유래
 
중국 학자들이 우리 한민족에 대한 언급한 것을 보면 중국은 진(秦)나라 전의 역사와 그 주인공이 우리의 동이족임이 고증되고 있다. 중국 사학자 임혜상(林惠祥)은 그의 저서 ‘중국민족사’ 제1장 제3절 각계족(各系族) 약설에서 “동이(東夷)는 환국, 신시배달국, 단군의 고조선 이후 삼대(三代)로부터 춘추시대(春秋時代)에 이르러 비로소 화하계(華夏系))와 접촉이 빈번하게 되면서 동화(同化)하는 연유가 되었다. 고서(古書)에 이르기를 순임금은 동이의 사람이고 또한 제환공(齊桓公)을 도와서 이적(夷狄)을 물리친 관중(管仲)이란 사람도 래이(萊吏) 즉, 동이의 사람이다. 지금에 이르러 고증한 바로는 은(殷國)나라와 상(商國)나라는 동이계통에 예속된 제후나라들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임혜상(林惠祥)은 또 “진시황(秦始皇) 이전의 역사는 금인(今人)이 취득(推得)한 바로는 순은 은인으로서 즉, 은나라 사람의 조상이 된다. 은인(殷人)은 동방에서 흥기(興起)하였음으로 동이다”고 했다. 또한 강량부(姜亮夫))는 하은민족고(夏殷民族考)에서 “은(殷)은 본래 옛날 동방민족의 족명(族名)이다”고 했다. 어찌해서 우리 한민족을 동이(東夷)라 하는가. 이에 대한 것은 이미 아는 일이지만 본자(本字)를 이자(夷字)로 한 까닭은 이 이자(夷字)는 사자(射字)의 분화(分化)된 글자로 큰 대자(大字)와 활궁(弓)자를 합친 것이다. 은나라에서는 큰활로 사렵(射獵) 즉, 사냥하는 관습이 대단히 성행했다고 한다. 중국 학자 허신(許愼)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이자(夷字)는 과자(夸字)의 본시(本是) 글자이며 이자(夷字), 과자(夸字)의 고자(古字)인 것이다”고 했다. 종대(從大), 종궁(從弓)은 동방사람 즉, 배달조선족을 이르는 말이다. 예기(禮記)에도 “동방왈(東方曰) 이(夷)다. 이자(夷字) 과자(夸字)는 대자(大字)와 인(仁)자와 평자(平字)등과 같은 동일한 뜻을 갖고 있다”고 했다.
 
고대 중국의 왕과 학자는 모두 동이족…이들이 중국(=한국) 역사와 동양문화 창조
 
고대사를 고찰해 보면 고대 중국의 왕과 학자들은 모두 동이족이었다. 공자의 10대손인 공빈(孔斌)이 그의 저서 동이열전(東夷列傳)에 “순(舜)은 동이에서 태어나서 중국으로 들어와 천자(天子)가 되어 백왕(百王)의 탁월한 으뜸가는 선정을 베풀었다. 또한 자부선인(紫府仙人)은 문학에 달통하여 보통사람의 지혜를 초월한 성인(聖人)이었다. 황제는 그 제자가 되어 내황문(內皇文)을 전수 받았다. 그리하여 염제(炎帝)를 정벌하고 제왕(帝王)이 되었다. 유위자성인(有爲子聖人)으로서 나면서부터 신통하고 훌륭하여 그 영명(英名)이 사해(四海)에 즉, 온 세상을 덮었으며 중국에 까지 그 명성을 떨치어서 이윤(伊尹)이 그 문하에서 수업하여 은탕(殷湯)시대의 어진 재상이 됐다. 그리하여 나라가 강대하지만 긍지가 있어 오만하지 않았으며 군사가 강력하나 함부로 이웃나라를 침략하지 않았다. 또한 나라의 풍속이 온순하고 후덕하여서 길가는 사람은 서로서로 길을 양보하고 식사할 때에는 서로서로 먼저 권하고 사양하였으며 남녀가 함부로 동석하지 않고 처소를 달리했다. 동방의 예의를 숭상하는 군자의 나라다”고 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고대의 우리나라 문화가 중국에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고, 동양문화의 창조자는 우리 선조들임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 난랑비문(鸞郞碑文)에는 “옛날 우리나라에는 현묘(玄妙)한 도(道)가 있으니 이를 이르기를 풍류도(風流道)라 한다”는 기록이 있다. 이 도(道)에서 유교, 도교, 불교 등 삼교(三敎)가 모두 이 속에 포함되어 있어 이에서 파생돼 나갔음을 알 수 있다. 이 풍류도(風流道)로 모든 중생을 교화 하였던 것이다. 집에 들어 와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아가서는 나라에 충성함은 노사구(魯司寇, 노나라의 사법대신), 즉 공자의 유교였다. 또 허무, 자연, 염담(恬談), 무위(無爲)의 도덕으로서 소위 무위자연설(無爲自然說)을 주창하는 불로장생을 종지(宗旨)로 하는 노자는 도교였다. 모든 악함을 짓지 말고 오직 착함(善)을 받들어 행하는 것은 즉, 측건태자(竺乾太子) 석가모니가 주창한 불교였다. 유교, 도교, 불교가 풍류도(風流道)에 함축돼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문자 개창한 동이족…배달국 녹서(鹿書), 단군조선 가림토(加臨土), 부여 전서(篆書)
 
삼성기(三聖記), 태백일사소도경전 본훈(太白逸史蘇塗經典 本訓)에 “신시배달국시대에 이미 녹서(鹿書) 또는 녹도문(鹿圖文)이 있었으며 복희(伏羲)의 용서(龍書)와 치우(蚩尤)의 화서(花書), 자부선생(紫府先生)의 화서(花書)라고 하는 문자가 있었다. 단군고조선시대에는 전서(篆書) 또는 진서(眞書)라는 문자가 있었다. 서기전 2181년에 을보륵(乙普勒)이 지은 고대 한글이라고 하는 38자 정음이 있었는데, 이를 가림토(加臨土) 문자라고 했다. 이후 부여(夫餘)시대에는 왕문(王文)이라는 사람이 전서(篆書)를 발전시켜 부예(符隸)를 달았다. 왕문(王文)의 자손(玄孫)이 되는 왕차중(王次仲)은 해서(楷書)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모든 문자의 원류(原流)는 그 모두가 신시배달국시대로부터 전래된 문체인 것이다. 위의 문자와 글들은 태백산 흑룡강 청구(靑丘) 등 구려(九藜)지역에 널리 사용됐다.
 
또한 태백일사소도경전 본훈(太白逸史蘇塗經典 本訓)에는 “천부경(天符經)은 환국시대에는 구전(口傳)으로 전하여 왔던 것을, 그리고 환웅천황의 배달국시대에 신지혁덕(神誌赫德)이가 녹도문(鹿圖文)으로 기록한 것을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이 다시 이두문(吏讀文)으로 기록하여 세상에 전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또한 서기전 15세기의 갑골문자(甲骨文字)와 환역(桓易)도 배달국 5대 환웅천왕(桓雄天王)의 열두째 아들인 복희(伏羲)씨가 우사(雨師)관리로 있을 때 천부경(天符經)의 원리에 따라 환역(桓易)과 팔괘(八卦)를 창작했다. 환역(桓易)이 그 후에 서쪽으로 전하여 주(周)나라 이후에 주역(周易)이라 개칭된 것이다.
 
초정밀 역법 만든 경이로운 동이족…BC 2096년에 1년 ‘365일 5시간48분46초’ 정해
 
우리는 고대로부터 ‘홍익인간’의 이념에서 보듯 인도주의적 인간중심사상인 인간본위의 사상을 갖고 오늘의 인권사상에 선구자였던 것을 입증할 수 있다. 고대부터 인권과 평등, 화평과 도리를 알고 인간 자아의 완성을 통하여 국가사회를 완성하자는데 그 특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성기(成己), 자유, 평등, 중물(重物), 화합, 분역(分役)의 요지(要旨)가 단군의 조서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다. 삼신사상(三神思想), 태극사상(太極思想), 선교(仙敎), 음양오행이치(陰陽五行理致)도 마찬가지다. 칠성역(七星曆) 즉, 칠회제신역(七回祭神歷)은 7일 동안 천신(天神), 일신(日神), 수신(水神), 화신(火神), 목신(木神), 금신(金神), 토신(土神)에게 7일간 차례로 제사를 드리는데서 유래됐다. 이를 통해 동이족은 수리(數理), 칠정운천도(七政運天圖), 삼황내문경(三皇內文經), 역법(曆法)등을 창작했다. 배달시대는 그 세수(歲首)를 계해(癸亥)로 하였으나 오대단군시대(五代檀君時代)에 와서는 그 세수(歲首)를 갑자(甲子)로 개정하고 1년을 ‘365일 5시간 48분46초’로 정했다. 이는 서기전 2096년에 있었던 그야말로 놀라운 일이었다. 이와 같은 세밀하고 정확한 역법을 창작하였음을 볼 때 우리 선조인 동이족이 고도의 문화수준을 이루었다는 것에 경탄을 금할 수가 없다.
 
또한 3세 단군가륵(檀君嘉勒) 제 신축3년에 고글(高契)에게 명하여 ‘배달유기(倍達留記)’를 편찬했다. 이는 동양사학의 원조일 뿐만 아니라 세계인류사학(世界人類史學)의 시초(始初)로 평가되고 있다. 이 또한 참으로 위대한 민족의 긍지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중국의 저명한 사학자 서량지(徐亮之)가 저술한 중국25사(中國二十五史)에 의하면 중국 사전사화(史前史話), 죽서기년, 감강금단 등에 “중국 역법은 동이에서 비롯됐다. 역법을 지은 사람은 희화자(羲和子), 즉 자부선인(紫府仙人)이다. 이 자부선인은 동이의 은(殷), 상(商)시대 이전의 배달시대의 사람이다. 동이가 역법을 창조하였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원문은(中國曆法始終於東夷造曆法羲和子也系出東夷之殷商先公...東夷造歷實務疑問矣...) 논어 권14 위령공편(衛靈公編)에 이르기를 언충신행독경(言忠信行篤敬)은 비록 만백지방의 행도야(蠻貊支邦의 行道也)라고 했다. 즉, 동이족의 걸어온 행적을 말하고 있다. 맹자는 맹자 권십이고자장구하(孟子 卷十二告子章句下)에 이르기를 “공자의 도는 학도(貉道)다”고 했다. 학(狢=貉)은 북방 이적(夷狄)의 국명이다. 동이를 가리킨 말이다. 중국에 문물의 물꼬를 튼 민족은 바로 우리 한민족임을 숨길 수 없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이강민 ‘대한국고대사’, 윤내현 ‘한국열국사연구’, 윤내현·박선희·하문식 공저 ‘고조선의 강역을 말한다’, 백원·김백룡 원저·단동 김정일 편저 ‘天符經’, 고조선학회 ‘고조선연구’ 제1호,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임길채 ‘일본 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하’,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강동민 ‘불쌍한 대한민국’, 박찬희 ‘지구촌 인류를 구제할 법칙’, 송부웅 ‘한민족의 대륙역사’ ‘삼성(三聖)의 역사’, 우창수 ‘아사달 상·하’, 김부식 ‘삼국사기’, 임승국 번역·주해 ‘환단고기’,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南帝 ‘命理속의 哲學’, 김진경 ‘만천년 역사의 비밀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林承國 ‘韓國正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洪以燮 ‘朝鮮民族史觀と日本帝國主義の植民政策’, 吉川幸次郞 ‘漢の武帝’,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秋山謙藏 ‘日本の歷史’ 외 다수서책을 참조·인용을 하였음을 밝힙니다>
이을형 필진페이지 +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0
좋아요
0
감동이에요
0
화나요
0
슬퍼요
0
댓글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