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필자는 1년여를 끌고 오는 세월호에 관한 문제를 보면서 그 정수는 외면한 채, 그리고 문제의 핵심은 접어둔 채 세론(世論,여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자들이 있다고 감히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이를 통해 사회불안을 조장하는 집회를 유도하고 있다. 최근의 ‘세월호 참사 범국민대회’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국제적 상식이 통하는 세론 조성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먼저다. 여론을 악용하는 것에 회의를 느끼기에 필자는 이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음을 느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빈번하게 법과 원칙 그리고 상식이 무시돼 왔다. 나아가 우리 사회가 걸핏하면 데모로 가는 세태에 대해 환멸을 느낀다. 우리나라는 6법 외에 ‘탈법과 ‘떼 법’이 있다는 말이 있는데, 이제 이런 구태는 일소돼야 한다.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지 않는 사회는 희망이 없는 사회나 마찬가지다. ‘세월호 참사 범국민대회’를 보면 세론을 호도하고 추태를 자아내는 우리 사회상의 일면을 느끼게 한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무엇 때문에 세론몰이를 하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문득 ‘선의 방관은 악의 승리를 꽃피운다’는 에드먼드 버크의 말이 떠오른다.
‘세월 호 참사 범국민대회’는 세론을 형성하려고 한 것 같은데, 세론 형성을 위해서는 21세기 지식기반 사회에 맞게 합리적 측면과 바른 형성을 위한 조건 등이 따라주어야 한다. 세계인들의 상식이 통하는 납득할 수 있는 세론형성을 해야 한다. 상식이 통하는 세론형성을 위해서는 문제를 이론적 관점에서 다루어야 하는데, ‘세월호 참사 범국민대회’를 둘러 싼 상황은 이와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지금 요란스럽게 논의되는 세월호 추모집회를 보면 그 목적이 세론조성을 위한 것으로 추측이 될 뿐이다. 그러나 세론은 일반 사회가 해결을 필요로 하는 문제에 관해서 의견교환을 거쳐 어느 정도 일치한 공중(公衆)의 의견으로 나와야 맞다. 지금 세월호 문제는 본질을 이탈하고 공권력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작금의 세월호에 대한 대처는 비전이 없는 정부의 법과 원칙을 벗어난 정책으로 인해 희생자 가족에게 국가유공자 이상의 배려를 했음에도 그 상한은 끝이 없이 난무하고 있는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잘못되고 있는 것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잘못 조성된 여론은 시정돼야 한다. 이번 칼럼은 역사칼럼을 잠시 뒤로 하고 ‘세월호 참사 범국민대회’를 둘러싸고 야기되는 세론(世論)에 대해 긴급제언 형식으로 다뤄보고자 한다.
우리 스스로 먼저 되돌아 볼 때…애국적 견지에서 국민 모두의 냉정한 판단 요구돼
‘추모’ 행사는 조용히 하는 것이 상식이지 집회를 요란하게 해 공권력과 충돌을 하며 하는 것은 그 성격상 맞지 않고 상식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추모집회가 세론을 의식해서라면 세론이 어떤 방법, 절차에 의해서 성립하는가도 제대로 알고 누구나 모두 납득이 가게 해야 한다.
올바른 세론형성을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의 네 가지에 유의해서 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첫째, 문제의 정확한 파악과 해결의 주체자라는 것의 책임과 자각이 필요하다. 둘째, 문제의 검토 및 토론을 위해서 자료나 정보가 자유 또는 공평히 제출돼 전문가 의견 존중과 정당한 판단이 되게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구체적인 해결방법의 제시와 토론 및 객관적인 타당성이 있는 것인가 등 다대수 사람의 의견 동향도 제대로 봐야 한다. 넷째, 형성된 의견의 실현을 위해 적극적인 태도와 행동이 필요하나 이런 과정은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교양과 다수자에 의한 폭력적 행동 배제의 전제 등이 있어야 한다. 사상, 표현, 언론, 결사의 자유가 남용돼서는 안 된다.
세론 형성의 시기도 가치판단의 체계는 이데올로기나 세계관이 다른 때는 그 세론이 생산적 세론이 되지 못하고 장벽에 부딪치기만 한다. 현대사회에서의 세론이 정치적, 경제적 지배자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 지는 점을 우리가 눈여겨봐야 한다. 특히 오늘날 세론형성에 일어나는 선전이나 매스컴의 역할은 매우 크다. 세론의 형성과정에서 정치적·경제적 지배자나 주최 측의 형편이 좋은 일방적 해석이나 허위의 정보가 인위적으로 신문, 라디오, TV등 매스미디아(mass media)를 통해 흘려보내면 바른 세론이 형성되기 어렵고 중대한 문제를 낳는다.
세월호는 사태는 한 개인회사의 잘못에서 일어난 사고환경을 두루 따지는 것이 우선임에도 무조건 현 정부에 모든 책임을 묻는 식이다. 이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더구나 국가원수에게 욕설을 하고 죽이겠다면서 저주를 퍼붓는 등의 막말을 하는 것은 도가 지나치다. 이는 모든 국민들이 애국적 견지에서 냉정한 판단이 요구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겠다.
또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세론도 달라지고 있음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국가 유공자보다도 더 많은 보상은 세계 어느 나라 정부에도 없는 일이다. 이것은 상식 밖이다.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의아하게 여기고 있다. 정치권도 냉정히 판단하고 법을 제정해야 하는데, 우리 국회는 법의 원칙과 상식을 벗어난 법을 남발하고 있다. 이런 행태는 용납되지 않는다. 우리도 이제는 20세기 대중민주정치 수준에서 탈피해야 한다. 20세기는 세론이 지배하는 정치였다.
세론이란 사회나 정치의 중요한 문제에 관해서 사회구성원이 의식적, 합리적인 의견의 교환, 토론 등을 거쳐 해결을 필요로 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공중의 일치를 이룬 사회적인 판단이나 의견을 말한다. 현대의 민주정치는 대의정치의 형태를 취해 국민의 대표가 정치를 하게 돼 있다. 거기서 국민의 대표는 국민의 대다수의 의견인 세론을 정치의 원동력으로 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지난 1년 동안 정치인이나 온 국민이 세월호 문제로 온통 정신 나간 사람들처럼 살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자신들을 되돌아봐야 한다. 국민 다대수의 세론은 최근의 세월호 사태가 이해가 되지 않고 납득이 가지 않는다. 지난 18일 집회의 성격과는 정 반대의 세론이 광범위하다는 점이다.
필자 역시 세월호 참사에 그 슬픔과 아픔이 있기에 희생자의 명복을 빌며 지내왔으나 지금의 상황으로 인해 솔직히 동정이 가지 않는다. 사회를 더 이상 혼란을 야기시키는 행위는 용납이 안 된다. 그럴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도 이런 점을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누구나 책임을 자각하며 시작하고 책임을 완수하며 끝을 맺는 것인데, 상식 이하다. 더 이상의 이탈은 안 된다.
일제 마지막 총독 예언과 같은 상황…식민사관 망령 난무하는 분열의 공포 느껴져
이제 법과 원칙과 상식에 어긋나는 일은 접어야 한다. 세론형성은 기존의 관습, 도덕적 신념, 법 등이 불안정이 되어 동요할 때나 논쟁이 되는 문제가 제기됐을 때다. 대립의견이 없는 세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사람들 공통의 관심사, 공통의 문제에 관련된 문제가 있을 때와 일반적으로는 정치적, 사회경제적인 문제에 관해서와 그 이외에도 도덕·예술상에도 성립한다. 그러나 세월호 문제에 관한 한 데모를 할 이유가 해당하지 않으며 적절치도 않고 거리가 멀다. 이런 집회를 보는 세계 사람들이 웃고 있다.
필자가 최근 한 모임이 있어 외국인과 대화하는데, 그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을 때 얼굴이 뜨거웠다. 이제 떼만 쓰면 된다는 사고는 달라져야 한다. 여기서 무엇보다도 매스컴에 의한 사실의 정확한 전달과 공정하고 신중한 비판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냉정히 판단해 ‘보도로 부터의 자유’를 갖는 것이 바른 세론 형성을 위해서 중요하다. 세월호 문제가 더 이상 정치적으로나 이데올로기적으로도 어떤 형태로든 이용돼서는 안 된다.
이제는 세론을 형성하는 때에도 가치판단의 체계가 바로서야 한다. 일방적인 해석이나 허위정보에 의한 선동은 금물이다. 객관적으로 공평한 사실, 자료, 정보제출의 필요성을 세월호의 사태를 보며 실감하고 있다. 침묵하는 국민 대다수가 최근의 세월호 집회 사태에 대해 식상해 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상식을 벗어난 무질서와 무책임 그 자체의 행태인 탓이다. 억울하게 희생된 학생들을 위한 추모라고 해도 그 유가족에 짐을 더 던져주는 무절제, 그 자체로 나타나고 있음에서다.
이런 사태를 볼 때마다 우리의 무지함을 통감하게 된다. 이는 마치 일제의 마지막 조선총독 아베노부유기(安倍信行)가 1945년 9월 9일까지 총독부 업무를 하고 3일 후인 12일 총독부 문을 닫고 한국을 떠나며 남긴 연설을 우리 국민이 아직도 통감하지 못하고 있는 결과라고까지 생각된다. 그가 무어라 했는가. 한국을 경멸하며 한 말은 무엇이었는가.
지금 아베신조가 독도망발을 하며 다시 제국주의의 망령을 되살리며 혐한의 기치를 높이는 가운데 독도를 침탈하겠다고 다가온다. 이 같은 때에 지금 우리나라의 정신무장 상황이 이래서는 안 된다. 해방 70주년을 맞는 우리가 해방 후 달라진 것이 무엇이 있는가. 변화 하나 없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대한제국 말기의 정황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애국심은 정계나 언론, 재계나 학계 공직자 중에도 나라를 위해 진력 투구하는 자가 없는 바 아니다. 하지만 거의 대다수는 국가와 민족의 장래는 뒷전으로 여긴 채 이기적이고 무분별한 사고가 판치는 사회가 아닌가를 곱씹게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정상이 아닌 무질서와 혼란 바로 그 자체다. 대낮에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태극기를 불태우고, 경찰에 폭행하며 이 나라를 소란하게 하는 진위가 도대체 무엇인가.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 이런 추태를 보이는가.
상상하기도 싫은 아베노부유기(安倍信行)가 자신 있게 말한 “장담하건대 조선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단국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란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이 조선국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사관을 심어놓았다. 결국 조선인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의 조선은 결국 일본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에 미치게 한다. 다시 상상하기도 싫은 일제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상황이다.
누구를 위한 ‘세월호 참사 범국민대회’인가…법질서 무시 모두가 반성해야 할 일
양식 있는 대다수 국민들은 ‘세월호 참사 범국민대회’를 둘러싼 국론 분열을 더 이상 볼 수가 없는 상황이다. 누구를 위한 ‘세월호 참사 범국민대회’인가. 마치 일제식민사관의 망령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또다시 독도를 넘보며 다가오는데 언제까지 식민사관의 유령이 난무하는 사회로 끌고 가려는 것인가. 아니면 이미 빛이 바랜 이데올로기의 노예로 남으려는 것인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모든 지도자들에게 묻고 싶다. 선량한 국민을 더 이상 실망을 주는 일이 없기를 기대한다. ‘세월호 참사 범국민대회’로 인한 국론분열은 우리를 더 퇴보시키는 원흉임을 자각해 줬으면 한다. ‘세월호 참사 범국민대회’의 행태는 세계사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들다. 미국의 9·11사태를 보라. 그들은 3000여명이 희생됐으나 국가나 국가원수에게 아무런 원망이나 요구를 하지 않았다. 세월호 사태는 한 개인회사의 잘못에서 기인한 것이지 국가가 모든 책임을 떠맡은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우리도 성숙한 국민의 모습을 보여 줬으면 한다. 우리 민족의 위대한 옛 모습을 보여 줬으면 한다. 세계가 우리를 주시하고 있고, 우리 모든 국민도 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세월 호 희생자의 넋을 더 이상 욕되게 해서는 안 된다. 온 국민이 모두 슬퍼하고 명복을 비는 마음은 ‘세월호 참사 범국민대회’를 열지 않아도 모두 애도하며 그렇게 슬퍼하고 있다. 그리고 성원해 왔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범국민대회’를 둘러 싼 행태는 이해하기 어렵고 잘못된 것이다.
세월호 사태는 국민 모두가 슬퍼하고 그 대응도 분에 넘치게 정부가 배려한 측면이 있다. 그런 점에서 폭력시위로 까지 가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런 사태가 왜 나와야 하는가를 되묻고 싶다. 우리의 상황을 바로보고 판단해야 한다. 우리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세론몰이와는 너무 거리가 멀다. 해방 70년을 맞는 우리는 오늘의 무엇이 잘못 됐는지 스스로를 성찰하고 미래지향적으로 새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할 때다.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생산적인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누구의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자신들을 돌아보고 책임질 수 있는 자세로 변신해야 함이 과제임을 자각할 때라고 사료된다.
‘법의 무지는 누구에게도 변명되지 않는다’는 라틴 법언(法諺)이 우리의 뇌리를 내려치고 지나가는 느낌이다. 우리 사회는 법치주의 국가이고 그 법 속에서 국가의 안정과 국민의 생명이 지켜진다. 세월호 사태는 잘잘못을 폭력적으로 따지기에 앞서 우리 모두가 법을 지키지 못한 결과이기에 절치부심 우리 스스로 먼저 반성해야 할 일이라는 점이다. 정부와 위정자도 정치인도 비전이 있는 정치를 해 주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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