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실존했던 단군은 우리의 위대한 조상이며, 우리 한민족은 그 조상을 존경한다. 그러나 일제가 단군을 말살 한 이후 우리 학계에서는 역사를 회복하지 못한 채 일본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참으로 비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민간 역사학자와 단체들이 영렬(英烈)한 단군을 숭배한다고 단군을 살릴 수 없다. 이는 정부가 앞장서 나서야 한다. 단군은 엄연한 우리의 선조인데도 왜 우리 선조가 아니라고 하는 자가 있을 수 있는가. 한민족이라면 우리 민족이 수천 년간 단군을 국조로 모셔 왔음을 인정해야 하고, 역사가라면 일제강점 후 일본에 의해 단군이 부정되는 사태가 어떻게 일어난 것인지를 설명해야 한다.
지금처럼 단군을 신화화하며 뚜렷한 해명 없이 단군을 말살하는 것은 일본의 주장을 쫓는 것과 진배없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 수없이 벌어졌던 역사적 인물암살의 작태에 다름 아니다. 북애자(北崖子)는 <규원사화>에서 고조선의 옛 영토가 압록강 건너편 대륙의 넓은 땅이었다는 것과 요동이 그 활동지역의 중심이었다는 것을 밝혔다. 북애자는 역사가 흩어져 없어진 것을 안타까워하고 우리의 어리석음을 한탄해 하며 이(夷)의 의미를 해설했다. 옛날 강성했던 시절의 영토와 크고 작은 많은 제후국들을 실증적으로 열거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북애자(北崖子)처럼 주체의식이 강하고 확고한 역사관을 가진 선각자가 그리 많지 않다는데 슬픔을 감출 수 없다.
필자는 단군을 무조건 높이자는 것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은 우리 역사 말살을 기도해 귀중한 우리의 찬란한 역사기록인 고서(古書)들을 모두 불태워 없앴다. 그 때문에 한정된 자료에 의해 역사를 기록 할 수밖에 없음이 비극이다. 여기에 더해 사대주의자와 식민사관의 학노(學奴)마저 역사를 더 그르치고 있으니 우리의 자화상은 너무 서글픈 현실이다. 이번 칼럼은 고조선의 ‘중앙정부조직과 행정체계’ 등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사료 빈약함 속 단군47대 임금 기록한 ‘규원사화’(揆園史話)와 ‘단군세기’(檀君世紀)
현재 남아 있는 고조선에 대한 사료들은 사실 빈약하다. 중·일의 분서(焚書)와 수십만 권의 고서를 가져가서 멋대로 고대사를 왜곡했기에 우리의 ‘상고사’나 ‘고대사’는 그야말로 엉망이다. 그러나 <규원사화(揆園史話)>와 <단군세기(檀君世紀)>는 똑 같이 고조선 47대 단군임금의 치세와 업적을 기록하고 있다. 다만 그 연대와 내용에 조금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는 두 역사서가 다른 자료를 바탕으로 참고했기 때문이겠지만 워낙 오래된 일이라 전체가 일치하기는 어려우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두 역사서가 모두 고조선(단군조선)에 관한 귀중한 자료다.
먼저 단군에 관해 기록한 책의 면모를 보면 <단군세기>는 고려 말 학자 이암(李巖)이 1410년 저술했다. 이 책은 조선조시대 때 고서를 좋아 했던 평안북도의 선비 백관묵(白寬默), 이형식(李亨拭) 진사의 소장도서로 전해졌다고 한다. 또 규원사화는 1795년 조선조 숙종 원년에 북애(北崖)가 저술했다. 북애는 1천년 동안 대륙에서 중국에 군림했던 예맥이 한반도로 밀려온 가평에서 진역유기(震域遺記)라는 책을 얻고 중국역사 등 40여종의 서적에서 취해 쓴 것임을 밝히고 있다. 진역유기(震域遺記)는 이명(李茗)이 발해인들이 고려 때 전한 역사서 조대기(朝代記)를 참조해 저술한 것이다. 이 책은 조선조 세조임금이 대궐의 장서(藏書)로 구해들일 것을 명령한 책이기도 하다.
단군의 치적은 이 <규원사화>와 <조대기>에서 잘 말해주고 있다. 예컨대 고조선 제2대 단군 부루(夫婁)에 대한 것을 든다면 지금도 한국인에게 친숙히 깃들여 있다. 해마다 10월에 집집마다 새 곡식을 단지에 갈아 넣고 기리는 ‘부루단지’라는 것이 지금까지 전해지는데, 이는 물과 물을 정리한 ‘부루단지’를 기리는 것이다. 중국의 하우가 대 홍수를 만났을 때 천하제국이 모두 도산에서 만났는데, 이 때 태자 부루(夫婁)가 하우에게 치산치수법(治山治水法)을 전해주었다고 북애(北崖)는 기록하고 있다. 단군세기(檀君世紀)에도 개조67년에 그 같은 일이 있었음을 전하고 있다. 누가 뭐래도 중국과 일본을 깨우친 것은 우리의 선조들이다.
‘군장(君長)국가’ 방증…신시배달국 환웅 3상(相)5부(部)제 계승·발전시킨 단군 고조선
이제 고조선의 중앙정부 조직체계에 대해 살펴보자. 이에 대해서는 신용하 교수가 그의 논문 ‘고조선의 통치체제’에서 정리하고 있다. 논문에서는 고조선의 개국 시기, 중앙정부의 기구와 조직을 다루고 있다. 고조선 이전의 ‘신시배달국’의 환웅은 3상(相) 5부(部)제를 실시했다. 3상은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로 구성됐다. 이 3상(相)은 최고의 관직명으로 이중에도 풍백(風伯)이 제1재상(宰相)격이다. 첫째를 가리키는 ‘백(伯)’자에서 이를 알 수 있고, 그 다음부터는 ‘사(師)’로 구분돼 있다.
3상(相) 밑에 행정체계의 구분은 5부(部)로 나눠져 있다. 단군설화에서 ‘主穀主命主病主刑主善惡 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 在世理化’라고 했다. 이는 “곡(穀), 명(命), 병(病), 형(刑), 선악(善惡) 등 무릇 인간의 360여 사를 맡아서 인세(人世)를 다스리고 교화했다”는 의미다. ‘주(主)’를 한번만 사용해 “主穀, 命, 病, 刑, 善惡 凡人間三百六十餘事”라고 하지 않고 주곡(主穀), 주명(主命), 주병(主病), 주형(主刑), 주선악(主善惡) 사이에 칸막이를 분명히 해 통치 행정업무의 구분, 즉 행정조직의 분립을 동시에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석했다.
다시 말해 △곡(穀-농업 식량, 목축 등)을 주로 다루는 부서 △명(命-天命), 운명, 제천, 제신(祭神)을 주로 하는 부서 △병(病- 질병, 의약, 치료, 악귀, 퇴치 등)을 주로 다루는 부서 △형(刑- 죄, 형벌, 재판 등)을 주로 다루는 부서 △선악(善惡-윤리, 교육, 교화 등)을 주로 다루는 부서 등으로 나뉘었다. 여기서 인간의 모든(1년 365일에 비유하여 360여 가지)일을 아래 도표와 같이 분담·관장케 다스리도록 했다. 배달 환웅 행정조직의 분립형태’로 한 것을 단군은 아래의 3상 5부제를 계승하고 발전시켰다. 환웅의 통치행정조직의 체계는 일정한 정도의 위계체제와 역할 분할이 진전된 것으로서 우리 한민족이 군장(君長)국가를 영위하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단군은 바로 배달국 환웅의 아들로서 3상5부(3相5部)제도를 계승하고 이를 더 발전시켰음을 알 수 있다.
단군에 관해 비교적 상세한 기록을 한 규원사화와 단군기세기에는 단군 팔가제도(檀君 八加制度)라는 중앙관직제도(中央官職制度)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것도 본래 배달국 시대부터 이어져 온 것을 더 발전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단군시대의 팔가(八加)는 호가(虎加), 마가(馬加), 우가(牛加), 웅가(熊加) 응가(鷹加), 노가(鷺加), 학가(鶴加), 구가(狗加)이다.
▲ 자료=필자제공 ⓒ스카이데일리
3상5부제 발전 고조선, 단군 아래 지위 강화시킨 총리와 그 아래 7개 부서 ‘8가제’
여기서 호가(虎加)는 모든 가(加))들을 총괄했는데, 이 책임자로 장자인 부루(夫婁)를 임명했다. 마가(馬加)는 주명(主命)담당으로 옛 신지씨(神誌氏)를 임명했다. 우가(牛加)는 주곡(主穀)을 담당하게 하고 고시씨(高矢氏)를, 웅가(熊加)는 주병(주(主兵)을 담당하게 하여 치우(蚩尤)를 각각 임명했다. 응가(鷹加)는 주형(主刑)을 담당하고 둘째 아들 부소(夫蘇)를 임명했으며, 노가(鷺加)는 주병(主病) 담당으로 셋째 왕자 부우(夫虞)를 임명했다. 학가(鶴加)는 주선악(主善惡) 담당으로 주인(朱因)을 임명하고, 구가(狗加)는 분관제주(分管諸州)로 여수기(余守己)를 임명해 다스렸다.
고조선의 중앙관제는 배달국 환웅의 중앙관제에 비해 다음의 특징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첫째, 호가(虎加) 총리의 지위가 단독으로 되어 강화되고 환웅의 우사(雨師), 운사(雲師)의 지위 등이 가(加)로 변환됐다. 둘째, 환웅의 우사(雨師) 위치에 들어가는 웅가(熊加)는 주병(主兵)의 부서로서 군사와 국방 부서다. 배달국에서는 없었던 군사 국방의 부서가 신설돼 당시 매우 중시됐음을 알 수 있다. 셋째, 환웅의 운사(雲師)에 들어가는 구가(狗加)는 지방을 나누어관리하는 부서다. 지방 분관(分管)부서가 신설되어 매우 중시됐다. 넷째, 군사 국방의 부서 웅가(熊加)와 지방 분관(分管) 구가(狗加)의 부서가 신설돼 매우 중시된 것은 고조선 개국 후 그 영역을 확대해 감에 따라 군사 활동과 새 지방 영역의 행정 및 관리가 새롭게 중요하게 되었음을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섯째, 총리 및 (그 보좌 직) 직책을 제외한 전문부서가 환웅의 5개 부서에서 단군조선에 와서는 7개의 부서로 변경된 것은 전문직 부서의 분화와 진전을 나타낸 것으로 환웅의 중앙조직보다 단군의 중앙조직이 더욱 발전 된 것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여섯째, 단군 중앙부서 조직의 발전은 고조선 영역의 확대와 가장 크게 직결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도표화 하면 아래와 같다.
신채호 선생은 고조선의 중앙관직은 단군 아래 5부(部)를 두고 5가(加)가 관장하는 5부제도였다고 말하고 있다. 신채호 선생은 고조선 중앙관제 각부대신의 호칭인 가(加)를 동물이름 끝에 취해 단군 아래 ‘돗가, 개가, 소가, 말가, 신가’의 ‘5가’를 두고 동, 남, 서, 북, 중의 5부에 ‘5가’가 중앙 5개의 지방 장관이 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신채호(申采浩) 개정판(改訂版) 단재(丹齋) 신채호 전집(全集) 상권 80면의 내용이다.
▲ 자료=필자제공 ⓒ스카이데일리
위대한 역사의 화석…“자기조국을 모르는 것보다 더한 수치는 없다” 환기해야
이 같이 고조선은 배달국환웅의 3상 5부제를 더 발전시켜 단군 아래 총리와 7개의 부서를 두는 8가제를 실시했다. 이런 사실에도 해방 후 사대주의와, 일본제국주의, 식민주의, 황통주의 역사관에 의해 왜곡 조작된 것을 우리는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아직도 우리 0사가 한국사 왜곡의 핵심인물이었던 ‘조선사편수회’의 이마니시 류(今西 龍)가 조종한대로 흘러가고 있고, 해방 70년이 된 오늘에도 답습하고 있다. 일본인이 고쳐놓은 왜곡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우리 교육행정이 죽어있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이를 해결해 줄 정치는 4류로 전락한지 오랜 상태다. 우리 정치인의 신뢰도는 한국의 WEF(국가경쟁력평가) 순위에서 ‘우간다’ 보다 낮은 97위에 머물고 있다는 것에서 드러난다. “인류의 기원이 아프리카가 아닌 우리 한국이다”고 외국의 역사학자는 말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오불관’이다. “자기조국을 모르는 것보다 더한 수치는 없다”는 가브리엘 하비의 말과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하는 20세기의 역사가 E. H. Carr의 말이 기억에 새롭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의 통치체제’, 고조선학회 ‘고조선 연구 제1호’, 소수(所收) 윤내현 ‘한국열국사연구’, 윤내현·박선희·하문식 공저 ‘고조선의 강역을 말한다’,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이강민 ‘대한국고대사’, 백원·김백룡 원저 단동 김정일 편저 ‘天符經’, 카터 코벨 지음·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임길채 ‘일본 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하’,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강동민 ‘불쌍한 대한민국’, 박찬희 ‘지구촌 인류를 구제할 법칙’, 송부웅 ‘한민족의 대륙역사’ ‘삼성(三聖)의 역사’, 우창수 ‘아사달 상·하’, 김부식 ‘삼국사기’,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南帝 ‘命理속의 哲學’, 김진경 ‘만천년 역사의 비밀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 - 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林承國 ‘韓國正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洪以燮 ‘朝鮮民族史觀と日本帝國主義の植民政策’, 吉川幸次郞 ‘漢の武帝’,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秋山謙藏 ‘日本の歷史’ 외 다수서책을 참조·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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