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학자 “중국, 단군조선 대륙지배 사실 뒤집었다”

입력 2015-05-16 21: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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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들어가며 - 7천년 제국정신과 1만년 역사
 
우리의 역사는 인류사상 가장 격렬한 민족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인류사상 가장 강대하고 오래된 국가를 무려 7천여년간 이뤘을 뿐만 아니라 이후 2천여년의 역사에서도 남방 한족(漢族)과 호전적인 왜족(倭族)에 포위돼 침략을 받았지만 1만년 불멸의 역사를 지속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기력 이후 약해진 역사 동안 수많은 외침을 받고도 강인한 민족투쟁을 수행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에게 위대하고 유구한 역사와 독창적인 문화, 사상, 철학 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것은 한국의 고유한 독창적인 철학사상, 즉 ‘인간을 사랑하는 ’인간주의‘ 사상이다. 우리 한민족 정신은 전쟁을 해도 적을 사랑하기 위해 싸우고 적을 사랑하기 위해 피를 흘렸다. 인간 안에 내재된 선과 악의 공존드라마에서 악과의 싸움이었던 철학이 바로 우리 한민족의 인간주의 사상이다.
 
이 같은 ‘인간주의’는 그 인간이 언제든 악마의 탈을 쓰고 인류를 위협하는 악마적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해냈다. 다시 말해 인간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도록 지켜주는 역할을 한 것이 우리 선조들의 인간주의 철학이었다. 그 철학이 제국의 역사기간인 수천년간 면면히 이어져 내려 왔다. 이는 인류평화를 위하는 세계개조(世界改造)에도 크게 기여해 왔고 앞으로도 우리의 고유한 ‘인간주의’는 인류문화에 크게 기여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 사상과 철학을 발굴해 일제에 의해 굴절된 모든 것을 바로 세우는 것이 먼저다. 이는 인류평화를 위하는 세계개조에 공헌 하는 길기에 우리에게 짊어진 숙명적 숙제다.
 
지금 우리사회는 대중화사대주의(大中華事大主義)와 일제에 의한 식민사관의 부식(扶植)으로 가치관이 변질됐음은 누차 언급해 온 바와 같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에서는 국가 공동체 의식과 연대의식이 사라졌고 사상과 철학도 없는 시궁창에 빠져있는 상황이다. 온 국민이 잃어버린 역사, 한민족의 문화사상과 민족혼을 되찾아 자주(自主), 자존(自尊)의 정신을 북 돋우고 재건해 1만년 역사상 이룩해낸 우리 선조들의 신기원을 재창조 해가야 한다. 이번 칼럼은 고조선의 지방통치체제와 그 배경 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고조선 지방통치, 소왕·부왕 등 수많은 제후국 통해 아시아 대륙 지배한 제국통치
 
고조선의 국가체계와 조직은 단군조선을 중심 주류로 하고 단군왕검을 최고의 대 제왕(帝王)으로 삼았다. 건국 직후부터 단군조선의 단군왕검(제왕) 밑에서 다수의 소왕(小王), 부왕(副王) 등 제후(諸侯)들이 대소 분봉(分封) 제후국(諸侯國)을 이뤄 통치하는 연합체였다. 초기부터 단군이 직접 통치하는 직령지(直領地)와 후국(侯國)들이 간접 통치하는 이원적 통치체제였다.
 
고조선의 지방통치체제에 대해서는 여러 고기(古記)에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과 최근의 윤내현 교수 및 신용하 교수도 이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고조선은 신시시대부터 한민족(韓民族)들이 여러 부족국가로 나뉘어 설립되어 있었다. 그 중에는 주종(主從)관계를 갖고 있는 자들이 많았다. ‘신시본기’에 기록돼 있는 것으로 보아서 상당한 수준에 달한 강대국인 고조선에 이르러 주류인 단군 국(檀君 國)과 여러 제후국이 연합체를 이루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고조선은 한(韓), 숙신(肅愼), 맥(貊), 예(濊) 등이 결합해 강대한 고대제국을 건설했다.
 
이에 고조선은 건국 이전 상고시대부터 대륙에 분산·거주하고 있던 요동지방과 요서지방 즉 요하(遼河), 대릉하(大陵河), 난하(灤河)는 물론 요하, 요동을 발판으로 송화강과 한반도는 물론 지금의 난하(灤河) 만리장성 넘어 일대에 이르는 대 강역을 영유하며 군림했다. 그것은 이 지역에 널리 체계적으로 발견되는 고조선의 고인돌 무덤 및 석관(石棺)무덤과 비파(琵琶)형 청동단검(靑銅短劍)의 체계적 분포가 이를 단적으로 입증해 준다. 우리 말의 주요 어원들이 아직도 중국 내륙 곳곳과 중앙아시아 및 인도까지 비슷하게 남아 사용되고 있다는 것도 대단히 유의미한 실증적 사실이다.
 
제후국들의 회합과 동맹, 연합에 대한 역사가 ‘제왕운기’, ‘규원사화’, ‘단군세기’, ‘번한세기’에 기록돼 있다. 이들 기록을 통해 고조선 역사의 기록이 그나마 상세히 설명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종합하면 고조선 활약의 중심은 한반도가 아닌 대륙에 근거를 두었다는 것이 명확해진다. 그 수도 평양이라는 것도 지금의 대동강을 끼고 있는 한반도 평양이 아닌 중국 대륙이 본거지였다.
 
평양이란 것은 도읍, 즉 서울을 의미하는 것으로 평양의 지명만 해도 한두 곳이 아닌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중국은 역사를 변조하면서 지도와 지명도 여러 번 바꿔 놓았다. 지금의 북한 평양만을 말하는 것은 사대주의자와 일제식민사관의 조작이 낳은 결과로 일고의 가치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고조선이 활약한 지역의 중심은 현재 중국대륙의 요녕(遼寧) 등 중국 대륙이었지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고조선 대동강 유역설은 중국의 조작품…일본·러시아 학자 “역사 뒤집었다” 비판
 
반도 내의 대동강 유역으로 평양이 옮겨지고 그 곳이 중심이 된 것은 고조선 시대가 지나고 삼국정립시대의 고구려, 그것도 고구려 후기에 이르러서야 된 일이다. 이는 중국의 역사책들과 한국의 여러 역사책들이 뒷받침해 주고 있다. 평양에 대한 대동강 유역설은 ‘삼국유사’에서만 볼 수 있는데, ‘삼국유사’의 기록도 자세히 읽고 살펴보면 지금의 평양지역이 마한(馬韓)에 속해 있다고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삼국유사도 고조선의 중심지를 대동강 유역으로 보지 않았다.
 
지금 우리나라 사학계는 극소수의 정예학자를 제외하고는 우리의 상고시대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그 사실을 모른다. 중국과 일본이 우리의 역사자료를 거의 모두 없앴기에 왜곡된 위서(僞書)들을 보고 인용해 검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일본은 상고사가 없는 나라이기에 그 열등감들은 우리 상고사 말살에 골몰하고 있기도 하다.
 
중국이 내세우는 사서(史書25권)는 일본의 학자 아고 기요히코(吾鄕淸彦)의 언급에서 중요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그는 “단군조선이 중원대륙을 지배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거꾸로 뒤집어 마치 중국이 단군고조선을 지배한 것처럼 힘겹게 변조한 작업을 해놓은 책이다”고 일갈했다. 이런 사서(史書)는 물론 삼국지(三國志)와 위서(魏書) 등의 허구도 엄청난데도 이를 액면그대로 믿고 참고하는 것은 도무지 상상을 불허하는 일이다. 이 서책들이 허구의 사실을 퍼트린 것을 우리 학자들이 액면그대로 믿고 인용하는 것을 볼 때면 분노가 치민다.
 
지금도 서기전 4500~3000년에 세계 최초의 요하문명-홍산문화(紅山文化)을 이룬 선진민족이 우리 한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자신들의 것이라며 왜곡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그 자랑스러운 문명이고 문화라면 수시로 발굴도 중단하고 문물공개나 공동연구를 기피(忌避)하고 있는가. 그것은 발굴하고 드러내면 드러낼 수록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문명과 문화가 증명되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금도 시설물을 변조하고 숨기며 역사변조, 왜곡을 일삼고 있는 중이다.
 
러시아 U.M 푸틴 “인류 시원문명 뿌리나라 한국 옆에 남의 땅 도둑질 나라 있다” 주장
 
우리는 배달국시대에 5대문명을 주도한 민족으로 일찍부터 철을 발견하고 이용했다. 고조선의 이 같은 금속문명을 비롯한 선진문명 때문에 타민족 부족이 우리 한민족에게 승복하고 복속된 것이었다. 한 예를 든다면 중국이 우리가 철을 발견한데서 중국인들은 철자(鐵字)를 쇠금(金)변에 이(夷)자를 붙여 철이라고 했다. 즉, 금+이(金+夷)=철(鐵)이다. 필자는 이 글자를 찾기 위해 한자사전을 몇 시간을 뒤졌으나 중국인이 쓰는 (金+夷)=철자는 찾지 못하는 글자였다. 자신들의 조상들이 쓴 글자조차 왜곡되고 변질된 것이다.
 
분명한 것은 중국은 우리가 발견한 석족(石鏃)과 궁시(弓矢)며 산삼(山蔘)을 고대부터 2천 년간 송(宋)나라 시대까지도 수입했다. 이는 우리가 정치·경제와 모든 면에서 이들보다 우위에 있었고 지배한 사실들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중국도 고대조선의 청동기문화 대부분이 4400년 전인 서기전 2400년까지라고 하고 있다. 이는 과학적 측정으로 확인한데서 학설로 인정받았다. 요하문명과 한민족이 주도한 황하문명유물들도 우리 한민족이 중국보다 선진문명을 가진 선진문화민족임을 입증해 주고 있다. 우리는 외부인의 영향을 받지 않고 배달국 말기 단군개국 초에 이미 농경사회로 발전했다. 또 청동기 문화기에 들어와서는 광대한 영역의 강대한 국가를 이루었다.
 
그럼에도 아무런 근거 없이 굳이 대동강 유역을 고집해 이를 부인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는 식민사관의 조작품일 뿐이다. 오죽했으면 이런 상황을 보는 러시아의 사학자 U.M 푸틴은 엄연히 있었던 고대사를 한국인 스스로 없다고 한다면서 한심하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
 
그는 우리 식민사관 학자들의 행태를 한탄하고 또 중국과 일본의 역사변조 왜곡에 대해 “지금 인류 시원문명의 뿌리나라인 한국 옆에는 나쁜 나라들(일본과 중국)이 많다. 그 중에는 남의 역사마저 송두리째 가로채 자기의 역사라고 하는 나라가 있으며 제 땅이 아니었는데도 제 땅이라고 우기고 잘못된 과거마저 전혀 반성할 줄 모르는 미친 나라(중국)가 있다”고 했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의 통치체제’, 고조선학회 ‘고조선 연구 제1호 소수(所收)’, 윤내현 ‘한국열국사연구’, 윤내현·박선희·하문식 공저 ‘고조선의 강역을 말한다’,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이강민 ‘대한국고대사’, 백원 김백룡 원저·단동 김정일 편저 ‘天符經’, 카터 코벨 지음·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임길채 ‘일본 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하’,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강동민 ‘불쌍한 대한민국’, 박찬희, ‘지구촌 인류를 구제할 법칙’, 송부웅 ‘한민족의 대륙역사’ ‘삼성(三聖)의 역사’, 우창수 ‘아사달 상·하’, 김부식 ‘삼국사기’,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南帝 ‘命理속의 哲學’, 김진경 ‘만천년 역사의 비밀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 - 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林承國 ‘韓國正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洪以燮 ‘朝鮮民族史觀と日本帝國主義の植民政策’, 吉川幸次郞 ‘漢の武帝’,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秋山謙藏 ‘日本の歷史’ 외 다수서책을 참조하고 본문을 인용을 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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