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의 법과 정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조선시대에 들어 위대한 역사를 창조한 우리 선조들의 3대사상인 인간사상(人間思想), 천민사상(天民思想), 중물사상(重物思想)이 사실상 말살됐다. 그 결과 인화단결(人和團結)을 이룩하지 못하고 도리어 사색당쟁(四色黨爭)에 빠져 분열과 반목을 지속했다. 이 같은 분열증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치, 사회 곳곳에서 그 작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우리는 하늘의 소명을 받은 ‘천민사상’을 스스로 말살하는 최대의 우를 범했다. 그로인해 자주독립 정신이 소침(消沈)돼 중국을 대국 내지 조국으로 받들기까지 했다. 오랫동안 지속된 대중화사상(大中華思想)은 우리의 자주(自主)와 자존(自尊)의 사상을 좀 먹어 있어 망국적 고질병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조선조에 와서 ‘중물사상’을 말살해 서구의 물질문명을 반대하고 생산성이 없는 붕당을 지으며 싸움을 일삼았다. 이런 타락은 결국 국권찬탈이라는 민족 최대의 비극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우리가 희망을 갖고 살 수 있는 길은 우리의 고유한 문화사상을 중흥시켜야 하는 일에 있지만 지금의 우리는 이와 거리가 멀다. 참으로 비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사를 발견하는 새로운 방향은 중국이 위중국휘치(爲中國諱恥)의 수법으로 역사를 위조한 것을 제대로 알고 대처해야 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위중국휘치 수법의 창안자는 공자(孔子)로 거슬려 올라간다. 공자는 춘추(春秋)를 저술할 때 위중국휘치 수법을 바탕으로 했다. 중국이 타민족에 패배한 사실을 삭제하고 이를 승리로 위조한 것이 대표적이다. 후대 중국의 사가들은 공자의 수법을 본 받아 수많은 역사를 중국인 중심의 역사로 왜곡하고 뒤바꿔 놨다.
우리나라에는 불행하게도 인류역사에서 상식을 벗어난 이물(異物)들이 많다. 우리 역사를 망가뜨린 김부식(金富軾)이 그 이물의 시조로 꼽힐만 하다. 이후 조선조 시대의 사대사가(事大史家)와 일제에 세뇌된 식민사관의 학노(學奴)들이 바로 그 이물들이다. 이들은 ‘우리 한민족이 중국의 후손(後孫)이요 단군시대부터 중국을 섬기었다’는 이단적 역사(異端的歷史)를 받들고 기록하면서 나아가 국민들에게 가르쳤다. 그 역사들이 국민의 열등의식과 패배의식을 조장, 영혼을 분열시키고 모든 것을 타락시켰다. 역사를 자존적으로 위조한 민족은 되레 흥하고 자비적(自卑的) 역사에 빠진 한민족(民族)은 구렁텅이에 빠졌다. 결단코 중국 한(漢)나라가 우리를 지배한 일이 없다. 우리는 찬란하고 위대한 역사를 갖고 있기에 그 단면의 하나인 단군조선에 대해 이번 칼럼도 기술해 보고자 한다.
단군조선 왜곡·변조한 중국, 일부 사서에 제후국 소도별읍(蘇塗別邑) 통치기록 남아
환웅(桓雄天王)의 태자로 천손(天孫)이신 단군왕검은 흥국애민(興國愛民)으로 고조선을 세우고 그 성덕(聖德)을 온 천하에 전했다. 이를 통해 아시아의 온 부족이 추대해 대국 조선제국이 건국됐다. 아시아의 로마제국 같았던 조선제국은 단군 47대를 세습하며 2천년 이상 강대국으로 위세를 떨친 맹주였다. 학설 상으로는 2107년, 2096년 등 그 역년(歷年)이 나뉘고 정치형세(政治形勢) 상의 구분으로는 학자에 따라서 전기, 후기로 나뉜다. 이 같이 오랜 기간 중 대제국으로 수많은 후국(侯國)들을 다스린 단군조선에 관해 인색하기 그지없었던 중국도 이를 모두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중국의 고문헌에 보면 고조선의 지방통치제도와 관련된 기록들을 엿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료들을 보면 고조선은 천신(天神)에 제사를 주관하게 하는 나라마다 각각 한 사람을 세워 천신에게 제사를 하게했는데, 이를 천군(天君)이라고 불렀다. 또 여러 후국(侯國)에는 각각 별읍(別邑)이 있었는데, 이를 소도(蘇塗)라고 했다. 소도(蘇塗)의 뜻은 서역(西域)의 부도(浮屠)와 흡사하지만 행하는 바의 좋고 나쁜 점은 차이가 있다. 귀신을 섬기는 고대에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귀신을 섬겼다고 삼국지(三國志 卷30)나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 후한서(後漢書 卷85), 진서(晋書 卷97), 동이열전(東夷列傳 마한조·馬韓條) 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고조선의 후국(侯國)인 마한 54개국, 진한 12개국, 변한 12개국의 각 소국에 별읍(別邑)을 두어 소도(蘇塗)라고 불렀는데, 그 특징은 큰 나무를 세우고 천신에 제사를 전담하는 특별한 별읍을 설치한 것이었다.
제후국들 소왕(小王) 아래 천신(天神=단군신)에 제사 주재 ‘천군(天君)’ 제사장
고조선은 개국시조 단군이 붕어(崩御)하자 승천해 천신이 됐다고 생각하고 단군신(檀君神)을 천신이요 조상신으로 숭배했다. 이 때의 천신은 ‘단군신(檀君神)’이었고 고조선 문명권에서 공동으로 숭배한 단군이었다고 보고 있다. 그들의 종교는 신교(神敎)였다.(박은식·朴殷植 대동고대사론·大東古代史論) 고조선 후국(侯國) 진(辰), 한(韓)지역 국읍(國邑)에서는 후국(侯國) 소왕(小王) 아래에 천신(天神=단군신)에 제사를 주제하는 ‘천군(天君)’이라는 제사장을 두었다. 여러 소국들에는 ‘솟대를 세운 별읍’을 두어 천신(天神=단군신)에 제사함과 동시에 천신의 가호(加護)를 기원하는 의식을 담당하게 했다. 또한 이 ‘소도별읍(蘇塗別邑)’은 신성시 돼 도망자가 이 별읍에 들어가면 다른 소읍들에서는 추적할 수 없도록 존중돼 도피성(逃避城)의 역할을 했다. 이것은 다른 읍 권력이 미치지 못하도록 고대사회에서 자주 보이는 신앙적 신성성을 존중받았다는 증거다.
▲ 솟대는 지금도 전국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수 있다. 사진은 국립현충원 뒷편 서달산 자락에 있는 솟대의 모습 ⓒ스카이데일리
중국은 이 ‘소도별읍(蘇塗別邑)’이 도둑을 조장했다는 류의 기록을 했는데, 잘못된 추측에 불과하다. 솟대에 매단 ‘북’과 ‘방울’은 부여의 ‘영고(迎鼓)’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북’은 신의 내리심을 기원해 맞이하는 알림이며, ‘방울’은 신의 도착을 알리는 소리도구임으로 ‘소도별읍(蘇塗別邑)’은 지방 ‘종교성역’과 연관됐다고 볼 수 있다. 솟대 위 끝에는 나무로 만든‘새’를 부착해 놓은 것이 보통이다. 이 새는 영매조(靈媒鳥)로서 천신과 인간의 뜻을 전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내용은 노래 세년가에도 있다.
역사 기록과 일치하는 노래 세년가(世年歌)에 단군조선의 역사 및 도읍지 등 있다
고조선의 단군 이래 우리 한민족은 삼한과 삼국시대까지 매년 음력 10월 상달 무천(舞天), 영고(迎鼓), 동맹(東盟)같은 국가 규모의 큰 축제행사를 가졌다. 이 때 신지(神誌)라는 제관(祭官)이 건국 이래 역사와 조상들의 공적, 교훈을 노래로 불렀다. 중국의 역사서와 최치원(崔致遠)이 새긴 비문 등에서 이런 사실이 증명된다. 위지고구려 전(魏志 高句麗 傳)과 삼한 전(三韓 傳)에 “여러 나라에 각각 별읍(別邑)이 있어 소도목(蘇塗木)이라고 하는 나무를 세우고 제사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 기록은 환단고기, 신시본기(神)市本紀) 제3에 “신시를 세운 환웅천왕의 공덕은 소도(蘇塗) 제천의식을 통해 전송됐다”는 내용이 있다. 마한세가(馬韓世家) 상편에는 “이로부터 소도제단이 도처에 세워 졌다”고 했다. 최치원이 쓴 난랑비서(난(鸞)郞碑序)에는 “백제에도 그런 행사가 있었다”고 쓰여져 있다. 경북 문경에 있는 신라 봉암사 지중대사 적조탑비(寂照塔碑)에는 “동국이 정립(鼎立)했을 때 백제에 소도라는 민족축제 의식이 있었다”고 새겨져 있다. 고조선의 소도교 (蘇塗敎)가 요(遼), 금(金), 지나(支那-중국) 등 중국 각지에 널리 분포된 사실도 역사에 기록돼 있다.
이런 기록 말고도 광대들의 긴 가극(歌劇)이 ‘판소리’로 전해 내려왔다. 일본에서 역사가 문자로 기록되기 전에 지난 왕조 수백년 간의 사적을 외우는 인간사서(人間史書) 가타리베(語部)가 있었다. 단군 이래 불려 온 세년가(世年歌)라는 노래도 문자와는 별도 역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910년대 구월산 단군사당인 삼성사에서 멀지 않은 장련읍 서탑 거리에 ‘솟대백이’라는 지명이 있었다. 최태영 선생은 “세년가는 이곳에서도 불렀을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1970년대 조선왕조실록 영인본이 발행됐다. 그 중 세종실록 제40권, 세종10년 6월 유관이 올린 상서와 세종18년 12월 유관의 조카 유사눌의 상서에서 단군의 사적과 단군능(檀君陵)에 관한 사실이 세년가로 전해 내려온 것을 알 수 있다. 세종대왕이 단군사당(檀君祠堂)을 다시 세우려고 세종이 이를 재가(裁可)하고 예조에 명을 내린 기록들을 확인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년가에는 단군이 조선의 시조이며 그 나라가 누린 역사는 매우 길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아울러 단군이 도읍을 평양, 백악 등으로 옮기고 은나라 무정 8년에 아사달에 들어가 신이 됐다는 내용도 있다. 단군이 실존 인물이라는 것은 고구려가 구월산 밑에 사당을 세웠는데, 그 집과 위판이 지금도 있어서 세년가와 서로 합치한다는데서 확인할 수 있다. 이병도 박사도 ‘우리나라에서 예부터 단군을 국조로 사당을 세우고 최고의 조상으로 제사를 받들어 왔는데, 그것이 끊어진 것은 일제 강점 때부터였다’ 고 실존인물임을 밝히고 있다. 해방 후 단군제사는 이어지고 있으며, 단군의 통치에서 중앙과 ‘소도별읍(蘇塗別邑)의 정치역시 훌륭했음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의 통치체제’, 고조선학회 ‘고조선 연구 제1호 소수(所收)’, 윤내현 ‘한국열국사연구’, 윤내현·박선희·하문식 공저 ‘고조선의 강역을 말한다’,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이강민 ‘대한국고대사’, 카터 코벨 지음·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임길채 ‘일본 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하’,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강동민 ‘불쌍한 대한민국’, 박찬희 ‘지구촌 인류를 구제할 법칙’, 송부웅 ‘한민족의 대륙역사’ ‘삼성(三聖)의 역사’, 우창수 ‘아사달 상·하’, 김부식 ‘삼국사기’, 임승국 번역·주해 ‘환단고기’, 백원 김백룡 원저·단동 김정일 편저 ‘天符經’,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南帝 ‘命理속의 哲學’, 김진경 ‘만천년 역사의 비밀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 - 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林承國 ‘韓國正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洪以燮 ‘朝鮮民族史觀と日本帝國主義の植民政策’, 吉川幸次郞 ‘漢の武帝’,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秋山謙藏 ‘日本の歷史’ 외 다수서책을 참조하고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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