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미국의 고고학자인 죤. D. 클라크 박사는 “1981년에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全谷里)의 유적지에서 출토된 유물에 대한 방사선 탄소측정 결과 그 상한선을 구석기초인 270만년~70만년 전 문화로 인증(認證)된다”고 학계에 보고했다. 한국에 이토록 일찍부터 농경사회가 정착한 부(富)를 기반으로 ‘구석기문화’가 꽃피웠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클라크 박사는 더불어 밝혔다. 이는 우리 인류의 시원(始源)이 한국임을 말하는 방증 중의 하나다. 또 유물 중에는 돌을 굵게 또는 작게 깨트리고 남은 석핵(石核)이 많은 것이 특색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양면핵석기(兩面核石器)의 전기라 할 수 있는 돌도끼 등 동아시아의 구석기 연구에 결정적 자료가 되는 귀중한 유물이라는 것을 적시했다. 우리의 뿌리이자 숨겨진 역사가 외국 학자들에 의하여 밝혀진 놀라운 사실이었다.
하지만 대다수 식민사관의 강단파 사람들은 아직도 중국과 일본의 변조된 역사를 그대로 받아들여 정신을 못 차리고 고조선은 한(漢)나라에 의해 멸망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역사변조를 그대로 인정하고 있다. 이 허구의 역사를 후손들은 진실인 것인 냥 그대로 배우고 있으니 암울하기 그지없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러시아 역사학자인 앰 붸. 워롭비에프도 “중국이 말하는 ‘기자조선’, ‘위만조선’, ‘창해군(蒼海郡)’, ‘한사군(漢四郡)’ 설치 설은 그 모두 한(漢)나라시대에 꾸며진 것이다. 사실과는 전혀 다른 위작(僞作)이다”고 분명히 못 박았다. 그는 또 “고조선은 군사민주주의 형 고대국가(軍事民主主義型 古代國家)다”고 했다. 한나라가 고조선을 지배했다는 허구의 역사는 이렇듯 연구에 매진하는 제3국의 역사사학자들에 의해 밝혀지고 있음에도 우리만 식민사관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또한 조선역사를 심층적으로 깊이 연구해온 러시아 학자 유엠 부틴은 그의 저서 고조선에서 “동부아시아 전 지역에 걸쳐 동방문화권을 형성해 독자적인 독특한 문화를 창조·발전시켜 왔는데, 그 역사는 1만 년 전의 구석기시대로부터 시작됐음을 고증(考證)한다”며 “중국과 일본은 없는 역사도 있다고 조작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엄연히 있는 역사도 없는 것 같이 가르친다”고 했다. 이어 그는 “한국은 이상한 나라다”고 까지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상고사’와 ‘고대사’는 해방 70년이 되는 오늘에도 제자리를 못 찾고 방황하고 있다. 이번 칼럼은 고조선 지방통치체제와 관련해 후국(侯國)들의 상황과 단군고조선의 국가에 대해 개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고조선의 지방통치체제의 특징은 실생활 기반 신화와 후국(侯國)사에서도 나타난다
고대 부족시대에 동이족은 여러 부족으로 분립했음을 알 수 있다. 단군조선 시기에 중앙정부와 가까운 맥(貊), 예(濊), 부여(夫餘), 고죽(孤竹), 불리지(弗離支), 옥저(沃沮), 숙신(肅愼), 읍루(挹婁) 등이 후국(侯國)들이다. 진서각주(晋書斠注(卷三 帝紀 第三)에 보면 동이(東夷)가 백여 제후국으로 분립됐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중국 고사에 읍루(挹婁), 물(勿)길(吉), 말갈(靺鞨), 여진(女眞), 실(室韋)도 동이족이라고 기록됐다. 이는 동이족이 여러 부족으로 분립·통치된 것을 가리킨 것이다. 그러나 고조선 문헌에서는 가장 큰 부족만을 들어 전통적으로 고조선이 구족(九族)을 지배했다고 표현했다. 중국문헌에서는 이를 동이(東夷) 구족(九族), 또는 구이(九夷)라고 했다.
인류사상 우리 한민족은 상고부족시대부터 단군신화에서 보듯 큰 특징은 ‘평화세계’다. 반면 그에 앞선 고조선의 상고부족시대는 불 평화시대였다. 많은 부족이 사방에 분립하고 불합리한 감정으로 상대함으로 부족투쟁이 격렬하였던 시대였던 것이다. 또 당시에는 맹수(猛獸), 독사(毒蛇) 등을 방위할 기술이 발달하지 못하여 맹수 독사의 화(禍)가 많았다. 상고시대는 기후도 안정되지 못하고 장마가 장기간 계속돼 홍수가 산야를 자주 휩쓸었다. 홍수의 해가 매우 심했으나 홍수를 방위할 기술이 발달되지 못해 그 해가 심했다.
대부분 타 민족의 신화는 이런 자연환경 속에서 부족투쟁, 독사의 화, 홍수의 해(害) 등으로 장식한 불평화의 세계다. 그런데 단군신화에는 불 평화세계에 관한 문구(文句)가 없다. 도리어 신(神)이 인간되기를 원해 신인(神人)이 화합하는 것이었다. 곰과 범이 싸우지 않고 한 굴에 동거해 짐승끼리 화합하고 곰이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내용이 그것이다. 다시 말해 곰과 사람이 화합하고 ‘홍익인간’을 제창해 세계를 침략하지 않으며 교화(敎化)한다고 했다. 그리고 홍수시대에 홍수의 해가 없었다. 이는 인류사상 인간존중의 독특한 신화이며 발전된 치산치수 문명을 가졌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역사적 신화가 실생활 배경에서 나왔다는 점도 그렇다. 그런데 불 평화가 아닌 평화적 실생활을 가진 자는 당시 오직 한민족(韓民族)의 역사에서 만 볼 수 있다. 이는 인류역사상 독특한 신화의 중요한 원천이 됐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그 원인이 어디에 있었던가. 당시 후국(侯國)들 상황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다. 먼저 4300여 년 전 고조선시대 후국(侯國)의 하나인 숙신씨(肅愼氏)의 역사를 보자. 중국고서(中國古書) 중 화족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꼽히는 사서는 나관중(羅貫中)이 쓴 삼국지(三國志)와 사서(史書)를 그대로 베낀 후한서(後漢書)다. 그리고 한민족(韓民族)에 대해 가장 자세히 기록한 것 또한 바로 삼국지와 후한서이다. 그런데 삼국지에 ‘동이유숙신’(東夷有肅愼)이라고 기록했다.(三國志, 魏志 卷30 東夷) 즉, 숙신씨(肅愼氏)를 동이족이라고 기록했다. 진서(晋書)에도 동이족이라고 했다.(晋書 卷九十七, 列傳 第六十七 四夷) 고조선의 후국(侯國)인 숙신씨(肅愼氏)는 중국의 하(夏), 은(殷), 주(周) 3대 이전에 중국과 동 떨어진 동북지대에 대국(大國)을 건설했다. 지금의 길림성 동쪽 모든 지방을 차지한 대국이면서 동시에 단군고조선의 후국(侯國)이었다. 숙신씨(肅愼氏)는 4300년 전 죽서기년(竹書紀年)에 궁시(弓矢)를 중국에 수출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기에 고대 우리 한민족은 평화주의의 사상이 나오게 된 배경을 엿 볼 수 있다.
제후국 숙신씨 까지도 강력한 무기(고시·석족)와 산삼 등 수출로 대국 반열 올라섰다
고대 한민족은 지구상 타 민족에 없었던 특수한 경제적·사회적 조건 하에 있었다. 그 배경의 첫번째 경제적 조건은 고시(楛矢), 석족(石鏃), 산삼(山蔘)의 생산이었다. 이를 중국에 2000년 동안 수출하고 당시 중국인들은 이 고시(楛矢), 석족(石鏃)을 보물이라고 칭했다. 또한 산삼(山蔘)은 불로장생의 신비성이 있고, 이 같은 산삼은 한국(고조선)에서만 생산됨으로 고대 중국인과 일본인은 진물(珍物)이라고 칭하면서 앞을 다투어 수입했다. 이 같은 특수한 경제적 조건에서 특수한 문화사상이 창조됐음을 알 수 있다.
4300년 전은 석기시대다. 이 때 타민족에 없는 돌과 철을 파괴하는 고시(楛矢), 석족(石鏃)과 대궁(大弓)을 발견한 것과 산삼의 생산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 시대는 씨족시대, 부족시대인데 우리 한민족은 만여 리 나 떨어진 중국에 궁시(弓矢)를 수출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대민족으로 등장했다. 굳이 전쟁을 일으킬 이유도 없었고 침략을 받을 이유도 전혀 없는 경제·사회·정치적 조건이었다. 제국의 평화시대였던 것이다.
이는 고조전 제후국에 불과한 숙신씨(肅愼氏) 역사에서도 명기돼 있다는 점에서 고조선의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후국(侯國)인 숙신씨(肅愼氏)가 이렇다면 대제국(大帝國) 단군고조선의 위상은 재론할 필요가 없었던 셈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볼 때 우리한민족은 최초에 인간을 발견한 문화민족이었고 최초에 경이적인 무기를 발견해 최초에 무력이 만방에 떨친 강대국이었음을 족히 말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후국 통치는 ‘가’(장관) 또는 ‘두만’(군사령관) 파견…후국 족장에 직위 하사해 통치도
한민족(韓民族)은 고대부터 치산치수에 능했음은 물론 정치와 통치체제도 또한 당시로는 가장 최적의 상태를 갖추고 있었다. 지구상 없었던 특수한 경제적·사회적 조건하에서 강력한 부를 쌓았고, 그를 기반으로 감히 넘볼 수 없는 대제국을 이뤄 평화롭게 제후국들과 어울리며 나아갈 수 있었다. 고조선의 정치체제는 이를 기반으로 안정된 세습군주제를 갖췄다. 중앙정부조직은 제왕(帝王) 단군아래 총리와 7개 부서를 두는 ‘8가제’를 실시했다. 각 부서의 장관은 ‘가’라고 불렀다. 또한 고조선의 지방통치제도는 직령지(直領地)와 후국(侯國)으로 분류됐다. 직령지(直領地)는 중앙정부에서 ‘가’를 파견해 통치했다. 후국(侯國)은 중앙정부에서 ‘가’또는 군사령관인 ‘두만’을 파견하거나 또는 후국 족장에게 ‘가’ 또는 ‘두만’의 지위를 하사(下賜)해 통치했다.
필자는 상고사와 고대사를 고찰하면서 인류발달사에 편향(偏向)하여 한민족의 특수성을 무시하는 방법으로는 한국사를 제대로 발견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시 말해 한국사를 발견하는 방법은 진서(眞書)에서 취재하고 다시 인류발달사를 원칙으로 하면서 한민족의 특수성을 토대로 다루어야 한다. 그러면 한민족의 특수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고조선시대에도 볼 수 있었던 특수한 경제적 조건에서 창조된 특수한 문화사상이다. 문화사상은 경제적 사회적 조건에서 발생한다. 특수한 경제적·사회적 조건이 있으면 반드시 특수한 문화사상이 창조되는 것이다.
한국사는 자주독립의 민족사를 찾아내는 방향으로 연구하고 문화사상을 중심으로 다뤄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지금 우리의 실정은 위서(僞書)들을 갖고 검증(檢證)한다고 하면서 일제 조선사편수회 이마니시 류(今西 龍)의 이론을 금과옥조로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는 고증(考證)에 의해서 다뤄져야 한다. 인류발달사는 보편적 역사다. 보편적 역사를 고찰하면서 한민족의 특수성을 발견해야 한다. 진서(眞書)에도 오류(誤謬)가 있음으로 역사는 인류발달사를 기준으로 해야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의 통치체제’ 고조선학회 ‘고조선 연구 제1호 소수(所收)’, 윤내현 ‘한국열국사연구’, 윤내현·박선희·하문식 공저 ‘고조선의 강역을 말한다’,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이강민 ‘대한국고대사’, 백원 김백룡 원저·단동 김정일 편저 ‘天符經’, 카터 코벨 지음·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임길채 ‘일본 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하’,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송부웅 ‘한민족의 대륙역사’ ‘삼성(三聖)의 역사’, 우창수 ‘아사달, 상·하’, 김부식 ‘삼국사기’, 임승국 번역·주해 ‘환단고기’, 김세환 ‘고조선역사답사기’ ‘동남아유적지를 찾아서’ ‘노을속의 메아리’,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南帝 ‘命理속의 哲學’, 김진경 ‘만천년 역사의 비밀’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Joseph Eidelberg 著·中川一夫 譯 ‘大和民族は ユダヤ人だった’, 林承國 ‘韓國正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洪以燮 ‘朝鮮民族史觀と日本帝國主義の植民政策’ 외 다수서책을 참조하고 본문을 인용을 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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