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이러한 현상은 총선에서 야당 대표를 위시해 정치인 일부가 조약의 명칭여하에 따라서도 효력은 같으며 국제적 책임이 있음에도, FTA에 대해 무지한 말 들을 하고 있음에서도 볼 수 있다. 비준되고 발효된 FTA는 국제적 책임이 있는데, 이 책임에 관해서는 무지해서 제멋대로 말을 하는 정치인들이 있는 것도 법의 수준과 무관치 않다. 우리의 법학에 대한 수준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인들은 법을 공부하고 정치를 논한다. 미대통령 43명중 34명은 법을 공부한 사람인데 반해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법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비교적 많다. 때문에 이 같은 법의 무지는 말을 바꾸는 죄악을 낳고 있다. 법을 한 분도 현대 법에 이행이 안 된, 일제 명치헌법시대의 이론을 그대로 답습하고 법원에서나 법조인들도 법조문 위주의 해석에만 매달려 있는 면이 많다. 이런 현상은 바꿔져야 한다.
필자는 1995년 3월 23일 헌법재판소가 내린 당시 구노조법46조에 대한 위헌판결을 기억하고 있다. 전후 세계의 법 동향과 재판을 법사회학적으로 비교하며 연구해온 필자로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시민법의 수정원리로 나온 노동법에 대한 시민법적 판결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시민법이라 함은 노동법에 대한 헌법을 비롯해서 모든 법을 총칭하는 말이다. 시민법은 ①계약자유의 원칙 ②소유권 존중의 원칙 ③자기책임의 원칙 등 3대 지주(支柱)에 의해서 운용되고 있다. 이에 반해서 노동법은 이 시민법의 수정원리로 나온 특별법인데 헌재는 이것 자체를 무시하고 있다. 세계가 다 인지하고 있는 단체협약은 시민법의 수정원리와 세계노동운동의 결과로 낳은 세계의 상식인데, 이 상식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근로자의 임금은 시민법에서는 고용계약에 의하나 노동법은 근로계약으로 그 근본이 다르다. 예를 들면, 고용계약에서 임금이 100만원 결정되면 그만이나 노동법에서는 근로계약시 100만원이 ‘취업규칙’에서 150만원으로 하면 이것이 근로계약 내용이 되며, 또 ‘단체협약’에서 300만원으로 협약이 체결되면 단체협약의 내용이 근로계약의 임금이 되는 것이다. 이같이 단체협약은 회사 내의 ‘최고 법규성’을 띄며, ‘이행강제사항’으로 ‘대체집행이 불가’하다. 그 효력은 ‘일반적 효력’으로 회사 전체에 미치는 것이다. 또 단체협약이 종료돼도 협약내용은 ‘여후 효(余後效)’로서 근로계약으로 남는 원리인 것이다. 이것은 미국Wagner법의 원리에 비추어 제정된 노조법의 부당노동행위 이론과 그 벌칙 규정(구노조법46조)도 잘못된 것이 아님에도 헌재는 “단체협약은 국회에서 제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위헌이다”고 하는 전근대적 판결을 내리고 있다.
제2차 대전 후 세계는 놀랄 만큼 법학 분야에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 왔으나 우리는 아직도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ILO의 협약을 비준한 것도, OECD국 중 최하위로 얼마 안 되는데 그나마 노동 재판에 인용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어느 나라나 조약은 비준이 되면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이 미치는 데 우리는 너무 소홀하게 다뤄지고 있다. 이는 바로 잡아야 한다.
예컨대, ILO 제100호 협약은 ‘동일노동 동일가치의 보수’를 보장하고 있으나 외면되고 있다. 이에 기업들이 이를 악용하면서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있다. 이것은 법의 무지가 낳은 결과다. 이 무지가 낳은 법 혼란은 이 나라의 법제를 19세기에 머물게 하고 있다. 이러한 법 무지는 국민을 피폐하게 하고 나아가 노동법의 인간다운 삶의 꿈마저 빼앗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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