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법 무지해 망국…낡은 노동법에 추락하는 한국

입력 2015-08-22 22:3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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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들어가며 - 법 모르면 나라를 잃는다
 
한국은 일본의 암울한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것을 두고 광복이라고 하지만 진정한 광복은 되고 있지 않다. 이는 우리의 정신이 아직도 일본이 심어놓은 식민사관(植民史觀)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총독부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安倍信(行)는 “실로 조선은 위대하고 찬란했지만 머지않아 결국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것은 일본이 조선인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사관(植民史觀)을 심어 놓았다. 너희들은 결국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인 삶을 살 것이다”고 저주했는데, 우리가 부지불식 중 이를 추종하고 있는 끔찍한 자화상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 아직도 일본이 레일을 깐 그대로, 일본이 심어놓은 역사를 우리는 답습하고 있다.
 
광복70주년을 맞아 정부차원의 철저한 역사 바로세우기운동이 요구되고 있다. 일찍이 최태영(崔泰永) 선생과, 정인보(鄭寅普) 선생, 신채호(申采浩) 선생, 최인(崔仁) 선생 등은 잃어버린 우리역사 바로세우기 운동을 역설하고 실천했다. 또 역사연구가인 김세환(金世煥) 선생은 “안보교육은 제대로 된 역사교육만이 유일한 길임을 명심하고 호시탐탐 우리의 빈틈을 노리는 일본과 중국의 역사만행에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김 선생은 중국을 30회나 답사하면서 동북공정의 잘못된 것을 사진으로 일일이 기록에 남겼다. 7300여점에 달하는 그 사진들은 김 선생의 답사기에 고스란히 실려 있다.
 
정부차원의 철저한 역사바로세우기를 더 이상 절대 미룰 수 없다.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아이들이 식민사관에 물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칼럼은 우리가 국제법에 무지하고, 그것으로 인해 많은 것을 잃고 있는 사안과 오늘의 가장 큰 문제점인 노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동법의 쟁점을 집고 넘어가고자 한다.
 
일본, 정한론(征韓論) 미루다가 우리의 국제법 무지 약점에 자신감 갖고 침략 강행
 
전후 국제법과 노동법은 엄청난 변화를 하고 국제법 질서가 바뀌었는데도 우리는 여러모로 이에 못 미치고 있다. 필자가 70년대 일본유학시절 ‘한국이 국제법 하는 사람을 구한다고 해서 한국에서 일본에 사람을 찾으러 온 일이 있었는데, 최근 신문에 다시 국제법 전문가가 없어서 인사를 미루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참으로 필자를 슬프게 하는 일이다. 일본의 경우는 외교관의 국제법 실력이 우리나라 대학교수보다 더 깊을 뿐만 아니라 늘 연구도 하고 있다. 필자는 그들과 직접 국제법을 같이 연구한 경험이 있어 그 실력을 직접 목도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1951년 일본 외무성 조약국의 니시무라 구마오(西村熊雄) 국장은 국제사법재판소 판사까지 지냈다.
 
지금 일본은 한국을 어린애같이 보는 시각이 있다. 이는 국제법에 무지한 탓이 크다. 결국 독도를 자기들 땅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도 한국이 국제법에서 무지한데 기인한 배경이 적지 않다. 일본은 정한론(征韓論)을 펴면서도 한국침략을 본래 미루었었다. 그 정한론을 행동으로 옮긴 동기는 우리가 국제법에 대해 무지함을 확인한 후였다. 실제로 우리의 그런 무지가 일본의 한반도 침략을 실행하는 빌미가 됐다.
 
쇄국(鎖國)에서 개국(開國)한 일본은 지난 1873년 영국에서 구입한 상선을 군함으로 개조한 운양 호(雲揚號)를 1875년 강화도에 보냈다. 일본은 당시 측량 등 국제법을 어기는 불법행위를 먼저하고도 조선이 국제법을 어겼다고 억지를 부리며 덮어 씌웠다. 결국 이는 1876년 일본과 ‘수호조규’라는 대단히 불평등한 ‘강화도 조약’ 체결로 이어지게 된다. 이 때 조선은 유학(儒學)은 잘하면서도 세계정세와 국제법은 철부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기안일과 자파이익에 매몰된 정치꾼들…국제법 무지 계속되는 현상 ‘구한말과 유사’
 
우리가 국제법을 접한 것은 1878년 ‘병자수호조약’ 이후 ‘외교사절의 거주지가 제물포에 한정되자’ 초대 일본공사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가 헨리 휘트의 만국공법(萬國公法)을 조선 예조판서(禮曹判書)에게 제시하며 ‘외국사절은 왕궁가까이에 주재(駐在)해야 한다’고 한 것이 처음이다. 이를 시작으로 1910년 8월22일 한·일 합방늑약이 체결되기 이전에 5개의 유사조약도 조약이라는 이름을 빌어 늑약이 체결되는데, 이는 결국 나라를 잃는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국제법을 등한시 하는 정치인이나 지식인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국제법에 관심을 갖지 않고 독도문제만 나오면 무턱대고 감성적으로 나오고 있다. 나아가 이들은 무지하게도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것이 낳지 않느냐”면서 무지한 말을 하는데, 이는 어불성설이다.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를 하는 것은 일본의 마수에 말려드는 일이고, 우리영토를 뭣 때문에 국제사법재판소에 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문제는 아직도 우물안 개구리가 되어 있는 정치구도가 문제이고, 학계도 언론도 달라진 것이 잘 안 보인다. 우리나라가 여전히 애국심이 없는 위정자들로 인해 국력을 제대로 키우지 못하고 있다. 문약하고 부패한 정치꾼들은 자신의 안일과 자파의 이득만을 위한 일에 매몰돼 있을 뿐이다. 이들은 진정으로 세계의 흐름을 모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설사 안다고 해도 진실을 외면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굴종의 식민사관, 역사가 아직도 아이들에게 교육되고 있는 것을 눈감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명분만 앞세워 갑론을박만을 하며 나라를 돌보지 않는 정치꾼들 때문에 국가가 이미 병들었다. 국제법 무지 또한 이런 와중에서 지속될 수밖에 없다. 지금도 과거 국제법에 무지했던 구한말의 재판(再版)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참으로 경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 노동법, 日 명치법 못벗어나…옥스퍼드연구소 “세계에서 제일 먼저 사라질 한국”
 
우리나라의 노동정책은 일제가 상투적으로 써온 ‘특수사정’만을 강조하며 국제기준 미달의 법제로 일관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우리는 과거 명치헌법체제의 법사상과 행정마저도 탈피를 못한 채 앵무새같이 같은 말만을 되풀이 하고 있다. 오늘의 노사문제도 결국 이 같은 전근대적인 사고의 틀과 법제 안에서 양산되고 있다. 해고를 쉽게 하고 비정규직만 양산하는 문제들이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청년실업자 문제를 비롯해 결혼문제, 육아문제 등의 정책도 실효성 있는 접근을 못하고 있다. 이는 노동법 역사를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노동법의 꿈’의 실현이 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 동안 해고를 하지 않았고, 독일은 70년대 노사가 어려웠을 때도 고통을 분담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ILO ‘국제기준’과 ‘선진국 기준’을 외면한 채 구태의연한 논리 아닌 논리만을 갖고 있다는 데 있다. 우리 기업인들도 달라져야 한다. 노사관계가 좋다는 National사의 창시자 마쓰시다 고노스케(松下行之助)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노조로부터 생전에 동상을 헌정(獻呈)받았다. 그는 “노사는 대결을 전제로 한 조화로 또한 조화를 전제로 한 대결로 유지돼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미국의 뉴딜정책의 법제는 최저임금법을 비롯해 주40시간제, 부당노동행위의 ‘와그너 법(Wagner Act)’ 등 15개의 법을 제정하였다. 세계 최초의 ‘사회보장법’은 그 당시 1300만명의 실업자를 구제하고 미국의 오늘을 있게 한 초석이 됐다. 이 때 노동운동도 활발했다. 지금 한국의 노동정책은 일제의 명치헌법체제와 같은 수준에 있으니 그런 점에서 너무나 뒤쳐져 있음을 거듭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옥스퍼드연구소는 “세계에서 제일 먼저 사라질 나라가 있다면 한국이다”고 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책을 제대로 강구하지 않으면 국가에 닥쳐 올 재앙을 막지 못한다.
 
고용 유연성 빌미 정리해고에 노사대결 격화…엄격한 잣대 기준 성숙하면 노사 상생
 
지금 청년실업자문제는 선진국과 같이 교대제를 4조2교대로 하면 해소된다. 세계 제일의 ‘과로사’ 국가가 ‘특수사정’만을 내세우며 ‘저임금’ ‘장시간노동’ 등의 구태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대한민국은 ILO의 협약도 외면하고 우리가 비준한 ‘동일노동 동일가치’의 ILO협약 제100호도 무시하며 자본주의 국가가 ‘최저기준+α(알파)로 사회주의 표준법 체제를 이겼는데, 우리나라 최저기준법인 근로기준법은 자본주의 국가에 패한 알파가 없는 표준법 같은 ‘최저기준+α(알파)’가 없다.
 
필자는 80년대 초 일본노동법을 기초한 마쓰오카 사브로(松岡三郞) 선생과 한·일 노동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다. 선생은 장차 다가올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예고하듯 필자와의 대화에서 “한국과 대만의 노동법이 낮은 수준인 상황은 일본에도 도움이 안 된다”며 한국도 “노동법의 수준을 최소한 ILO의 협약과 권고 수준인 국제수준을 지향해야 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군(필자)이 한국에 있는데 무엇을 하느냐”고 까지 했다. 이에 필자는 “한국의 사정은 정부나 기업이나 언론도 일본과 달라서 신문에 게재자체를 하지 않은 사례들이 있다”며 한국의 전근대적 상황에 대해 답해 드렸다.
 
우리 노동법은 해고를 쉽게 하는 정리해고에 문제가 있다. 그래서 기업주와 근로자가 상생할 수 있는 문화가 성숙하지 못했다. 조화와 대결, 대결과 조화의 균형감각이 성숙되지 못해 대결들이 만연해 있다. 이는 국가발전에 하등 도움이 안 되고 미래도 담보할 수 없게 하는 일이다. 또 근로자의 경우는 정리해고로 인해 스트레스 우울증인 ‘외상 후 울분장애자’가 크게 늘었다.
 
법을 50여년간 연구해온 필자도 정리해고제가 국가발전에 이바지 한다면 왜 반대 하겠는가. 원래 정리해고는 근로자에 책임이 없고 영업상의 이유로서 행해지는 것이다. 때문에 정리해고를 하는 경우에도 그 요건과 방법에 엄격한 조건을 붙이도록 했으나 우리나라는 법 논리를 외면하고 ‘고용의 유연성’이라는 낡은 논리로 포장하고 비정규직을 고정화하고 있어 지금도 이를 악용한 사례들이 노동문제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
 
노사분쟁, ‘노동운동사’와 ‘노동법 꿈’ 외면한데서 촉발…새 노동가치 결단 필요한 때
 
정리해고와 관련해 외국의 예를 보면 선진국인 미국이나 이탈리아 등에서는 단체협약에서 규제하고, 독일, 프랑스에서는 입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우리와 법제내용이 가장 유사한 일본도 위의 단체협약이나 입법도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기에 법원판례의 역할에 기대하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나라는 이처럼 선진국들이 기피하고 법으로 규정하지 않은 정리해고제를 굳이 선진국에 진입하려는 상황에서 법제화 해 시행한 결과 무엇을 얻었는가. 노사의 안정을 해치고 국가 경쟁력 제고보다 그 역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일부 악덕사용자는 이 제도를 악용, 법 논리가 아닌 궤변을 내놓으며 존속돼야 한다고 하지만 정리해고제는 노사의 안정과 국가경쟁력 제고보다 역현상(逆現像)이 더 심화되기 쉬운 사각지대(死角地帶)가 있다. ‘노동법의 꿈’과 근로자의 행복을 앗아가는 것은 물론 기업과 기업주도 불운하게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정리해고는 그 필요성이 있을 때도 그 요건이 엄격히 검토되지 않으면 안 되는데도 이윤추구만을 생각하는 기업들이 오판을 할 상황을 만드는 촉매가 되고 있다. 정리해고를 하는 경우는 기업존속 등 긴급피난의 경우에 한정해야 하는데, 현재 위기가 일어나지 않은 기업의 체질개선을 위한 예방적 조치는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외국의 판례도 ‘경영부진의 명목으로 사회일반의 불황에 편승한 인원정리(해고)는 권리남용으로 무효인 것은 당연하다’고 판시하고 있다. 정리해고를 허용한다고 해도 기업의 유지존속이 위태로울 정도로 절박한 경우, 기업이 객관적으로 고도의 경영위기에 있어 해고에 의한 인원삭감이 부득이한 경우 등에 한정한다. 이처럼 신중하고 과학적이고 성의 있는 검토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우리는 악용하는 사례들이 있다. 따라서 해당 법은 폐기돼야 노사가 안정된다. 국제기준 미달의 법제는 모두 폐기하고 선진국 형으로 바꿔야 우리가 선진국이 될 수 있다. 국제기준미달의 노동법 나라가 선진국이 된 예는 없다.
 
선진국은 국제기준 노동법과 실제를 개선해 비로소 선진국이 됐다. 이런 노동법의 역사를 우리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물론 기업의 이윤추구가 나쁜 것은 아니고 대단히 정당하다. 하지만 잘못된 이윤추구는 되레 화를 부른다. 그것도 기업주와 노동자 모두에 닥쳐오는 불운이다. 이는 국가와 국민의 미래도 어둡게 하는 일이다. 지금 OECD국의 ILO협약 비준수와 그 실태를 보면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지금의 노사정은 좀 더 국제적 시각과 국가민족의 장래, 근로자의 실정을 바로보고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노동정책으로는 실업자구제가 어렵다. 작금의 노사정 상황은 총체적으로 ‘노동운동의 역사’와 ‘노동법의 꿈’을 외면한 구태에서 비롯됐음을 노사정 모두 곱씹어 봐야 한다.
이을형 필진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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