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 강국 한민족 예맥(銳麥), 중국 대륙 뒤흔들었다

입력 2015-10-04 12:56:59

원문 링크

 ▲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들어가며-한민족(韓民族)이 지배한 한(漢)과 위만조선(衛滿朝鮮)
 
우리나라 교과서에는 아직도 중국사의 위조된 역사를 그대로 번역해 한무제(漢武帝)가 우리민족을 정복하고 사군(四郡)을 설치해 우리 한민족을 지배했다는 조작된 내용이 사실인양 수록돼 있다. 당시 중국을 호령하던 한민족(韓民族)의 예맥조선(銳麥朝鮮)은 한(漢)나라는 물론 그 어느 나라도 넘볼 수 없는 강한 국가였다. 중국은 이런 예맥과의 역사적 사실을 고스란히 빼고 지웠다.
 
예맥은 당시 중국 대륙에서 1천 년 간 군림한 강대한 국가였다. 예맥(銳麥=濊貊)은 한나라는 물론 어느 나라도 두려워하는 강성한 나라였다. 그러나 우리는 예맥을 너무 소홀히 다루고 있다. 이것은 중국과 일본의 위조역사를 따르는 역사자해 행위다.
 
그 당시 한무제(漢武帝)가 우리민족을 정복하고 지배했다는 한(漢)나라는 우리를 지배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 정 반대다. 이는 중국역사에도 분명히 명기(明記)돼 있다.(三國志, 第三十, 東夷傳) 이번 칼럼도 전편에 이어 허구의 위만조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무적의 강대한 한민족 예맥(銳麥)은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나라, 한사군을 지배했다
 
중국역사를 세밀히 검토해 보면 화하족(華夏族))이 우리 한민족을 지배치 못한 것이 확실히 드러난다. 한고조(漢高祖)를 도와 준 강대한 예맥(銳麥)은 위만이 한고조(漢高祖)에서 떨어져 나가게 하고, 이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위만(衛滿)이 의존하자 은전을 베풀었다. 중국은 이런 진실을 말살한 채 예맥(銳麥)의 역사를 지웠을 뿐만 아니라 한고조(漢高祖) 자신이 예맥(銳麥)의 원조를 받은 사실을 숨기고 한고조(漢高祖)에게 쫓겨난 미약한 위만(衛滿)을 기점(起點)으로 한국사를 엮어 놓는 기만행위를 했다.
 
다시 말해 한 때 예맥(銳麥)의 지원(支援) 하에 반란을 일으킨 미약한 이민족(異民族)인 위만(衛滿)이었을 뿐만 아니라 예맥(銳麥)의 보호 하에 겨우 생명을 보존 할 수 있었던 위만(衛滿)이었다. 이런 위만을 기점(起點)으로 우리 역사서를 엮어 놓은 것은 앞뒤가 안 맞는 가증스러운 일이다. 이것을 우리 역사에 옮겨놓은 우리나라 사학자들이 사실 더 문제다. 이는 범죄행위보다 더 나쁘다.
 
우리 역사의 체계는 환국(환·桓國)-배달국(倍達國)-고조선(단군조선·檀君朝鮮)-예맥조선(銳麥朝鮮)-부여(夫餘)-고구려(高句麗)-백제(百濟)-신라(新羅)-가야(伽倻)-발해(渤海)-고려(高麗)-조선(朝鮮)-대한민국(大韓民國)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싶은 것도 이 때문이다. 예맥조선은 바로 우리 선조들의 위대한 피를 잇는 핵심 가교였고, 중국은 이런 한민족의 혈통역사 다리를 끊고 지워버린 채 기자와 위만까지 집어넣는 일종의 확인사살까지 했다.
 
기자조선(箕子朝鮮)은 그 주체가 우리민족과 아무런 상관이 없을 뿐만 아니라 기자조선을 계승한 위만조선(衛滿朝鮮)도 한인(漢人)의 일개 집단(集團)일 뿐이다. 따라서 한무제(漢武帝)의 사군(四郡)도 한인(漢人)의 집단(集團)으로 우리민족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분명한 것은 기자조선(箕子朝鮮), 위만조선(衛滿朝鮮)은 물론 한무제(漢武帝)가 세웠다는 사군(四郡)이 세워진 당시에는 우리민족 중에 천하를 호령하는 강대한 예맥(銳麥=濊貊)이 엄연(奄然)히 존재했었다는 사실이다. 예맥이 중국 중원을 호령한 사실을 고찰하면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나라, 한사군 등이 오히려 우리민족에게 지배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예맥(銳麥)은 한무제(漢武帝)가 세운 사군(四郡) 중 진번(眞番), 임둔(臨屯)을 설치한지26년 만에 탈취(奪取)하고 현토이군(玄菟二郡)까지 삼켰음에도 한(漢)나라는 예맥에 아무런 대항을 못했다. 예맥(銳麥)은 그 당시 무적(無敵)이었다.
 
주무왕(周武王) 사서에 ‘화하 예맥’(華夏 濊貊)…한민족, 모든 민족을 대표한 상징적 기록
 
예맥(銳麥)은 동주시대(東周時代)부터 한 무제시대(漢 武帝時代)까지 중국에 남출(南出)해 한족(漢族)을 정벌하고 정복(征服)했다. 이는 예맥조선이 한(漢),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漢四郡) 등 한인(漢人)이 세웠다는 나라보다 강대함을 방증하는 것이다. 여기서 기자(箕子)가 동래(東來)한 조선도, 위만이 망명(亡命)한 조선도 광의적으로는 단군조선이요 협의적으로는 예맥조선(銳麥朝鮮)이기도 하다.
 
제왕운기(帝王韻紀)에 고시라(故尸羅), 고례(高禮), 남북옥저(南北沃沮), 동북부여(東北夫餘), 예맥(銳麥)이 단군(檀君)의 수(壽)하였는데, 모든 부족의 장을 모두 단군(檀君)이라 칭한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부족(部族) 중 주체(主體)는 예맥조선(銳麥朝鮮)이다.
 
주무왕(周武王)이 은(殷)을 정벌한 역사를 기록한 서전 무성편(書傳 武成篇)에 ‘화하 예맥’(華夏 濊貊)이라고 했다. 이는 예맥(銳麥=濊貊)이 극히 강대해 중국 이외의 모든 민족을 대표했다고 표시 한 것이다. 예맥(銳麥=濊貊)은 기자조선(箕子朝鮮), 위만조선(衛滿朝鮮)보다도 먼저 건설되고 기동성과 철기무기를 갖춘 기마족(騎馬族)으로 극히 강대했다.
 
40여대 계승했다는 기자조선, 단 한명의 군주 기록도 없어…예맥, 춘추전국시대도 지배
 
기자조선(箕子朝鮮)은 40여대 걸쳐 계승됐다고 하지만 이 기간동안 많은 군주의 이름이 역사에 기록된 자가 1인도 없다. 기자조선에 대한 역사적 기록(歷史的記錄)을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위만조선(衛滿朝鮮) 역시도 역사적 기록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는 한 개의 망명정권(亡命政權)으로서 유명무실(有名無實)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예맥조선(銳麥朝鮮)은 중국의 춘추시대와 노(魯), 연(燕)시대에도 이들을 정벌하고 지배했다. 춘추전국시대에 중국은 이민족(異民族)의 정벌(征伐)을 받아 거의 멸망의 위기에 직면했다가 제환공(齊桓公)의 신하 관중(管仲)에 의해 겨우 구출된 일이 있다. 그러므로 공자(孔子)가 ‘관중(管仲)이 없었다면 중국은 멸망되어 우리가 피발(被髮)하는 되놈이 되었으리라’고 말했다.(論語 卷十四, 憲文 第十四) 춘추전국시대에 중국을 정벌한 민족은 바로 예맥이다. 후한서(後漢書)가 이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중국학자 양계초(梁啓超)도 춘추시대(春秋時代)에 동이(東夷)가 중국을 정벌하다가 제환공(齊桓公)에게 패하였다고 했다.(梁啓超 著 國史硏究六篇, 歷史上 中國民族之觀察 32面)
 
아울러 공자(孔子)의 말에 의하면 ‘중국을 거의 멸망케 한 민족은 피발민족(被髮民族)이다’고 했다. 그런데 회남자(회·淮南子)에 예맥이 종발(縱髮)했다고 했다.(淮南子 卷十一) 즉, 흉노(匈奴)와 예맥(銳麥=濊貊)이 종발(縱髮) 즉, 피발(被髮)한다고 했다. 그런데 춘추시대에 중국을 정벌한 사실을 동이전(東夷傳)에 기입한 것을 보면 흉노가 아니고 바로 예맥(銳麥=濊貊)이다.
 
노(魯)·연(燕)도 휘하에 둔 예맥…중국 최강국 진(秦), 예맥 침공실패하고 41년만에 멸망
 
이상의 고찰에서 춘추시대에 중국을 정벌해 거의 멸망하게 한 민족은 예맥銳麥)이 분명하다. 시전 비국구장(詩傳閟宮九章 註)에 신안호씨(新安胡氏)가 예맥(銳麥=濊貊)이 노(魯)를 정복했다하고, 사기(史記)에 태사공(太史公)은 연(燕)이 북으로 예맥의 압박을 받아 거의 멸망에 직면 한 때가 수차(數次)라고 했다.
 
그리고 사기(史記) 삼십사(三十四, 燕召公 世家第四)에 연(燕)이 예맥銳麥)의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고 했다.(史記百二十九, 貨殖列傳, 第六十九, 烏氏과(倮) 이는 예맥(銳麥=濊貊)이 경제적으로 연(燕)의 상위(上位)에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진(秦)나라는 국경을 방위하고 넓은 영토를 얻으려는 탐욕에서 예맥과 남월(南越)을 침공했다가 성공치 못하고 천하가 혼란에 빠졌다. 이는 중국 역사상 최대 강국이라던 진(秦)나라가 건국한지 41년 만에 멸망하게 됐던 이유다. 진(秦)나라도 예맥(銳麥)을 이길 수 없었다. 이것을 봐도 예맥銳麥)이 얼마나 강대한 국가였음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국가형성의 사회사’ ‘고조선의 통치체제’, 고조선학회 ‘고조선 연구 제1호 소수(所收)’, 윤내현· 박선희·하문식 공저 ‘고조선강역을 밝힌다’,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카터 코벨 지음·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이강민 ‘대한국고대사’, 송부웅 ‘한민족의 대륙역사’ ‘삼성(三聖)의 역사’,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백원 김백룡 원저·단동 김정일 편저 ‘天符經’,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강동민 ‘불쌍한 대한민국’, 우창수 ‘아사달, 상·하’, 김부식 ‘삼국사기’, 南帝 ‘命理속의 哲學’, 박찬희 ‘지구촌 인류를 구제할 법칙’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 - 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高橋徹 古代の遠近法‘, 猪俣幸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洪以燮 ‘朝鮮民族史觀と日本帝國主義の植民政策’, 吉川幸次郞 ‘漢の武帝’,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외 다수서책을 참조·인용했음을 밝힙니다>
이을형 필진페이지 +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0
좋아요
0
감동이에요
0
화나요
0
슬퍼요
0
댓글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