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상 모방, 위작 일본사…아베 극우정책 이용

입력 2015-11-02 20: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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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일본 총리 아베신조(安部晋三)는 지난 원전사고로 인한 일본의 혼란을 막고 정권유지를 위해 극우(極右)정책을 펼쳤다. 그 중 하나는 우리나라를 비하(卑下)하면서 일본 학계조차도 지금은 인정하지 않은 미나마 일본부설(任那府日本說)을 들고 나오는 것이다.
 
독도(獨島)도 일본의 것이라 망언을 함부로 하고 있음에서 이미 일본역사가 터무니없이 왜곡되고 변조한 것인데 다시 그들의 역사왜곡이 어떻게 하여 왔으며 왜 다시 일본이 왜곡한 역사를 말하고 있는가!
 
일본사의 3대 위조사를 더듬어 올라가 보면 그 배경은 첫째, 일본역사는 성덕태자(聖德太子)시대부터 수집해 둔 역사초안이 소아씨(蘇我氏)의 난(亂)때에 전부 분실(紛失)되고 지금 일본사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그 정체를 모르는 패전아례(稗田阿禮)라는 한 개인의 구전(口傳)에 의해 일본 역사를 엮어놓은 것이다.
 
이것이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는 일본사가 참으로 부끄러운 위조사(僞造史)임을 밝히려 한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역사는 한 개인의 구전(口傳)은 한 개의 전설(傳說)이지 역사(歷史)가 아니다.
 
둘째는 일본은 바다 한가운데 동떨어져서 대륙문화와 접촉치 못함으로 문화가 발달치 못해 신화(神話)를 믿는 신국(神國)에 타락됐다. 타민족의 침략을 받지 않고 성장함으로 자존(自尊), 오만(傲慢)한 속성이 육성됐다. 즉 신화(神話)와 오만한 속성(俗性)이 육성(育成)됐다. 그래서 신화와 오만한 속성이 합작하여 일본을 중심으로 한 신화적(神話的)역사(歷史)를 위조하게 되고,
 
셋째는 명치유신 시대에 독일이 역사를 위대하게 위조해 국민의 용기를 북돋는 것을 흉내 내어 의식적으로 위대한 역사를 위조하였는데 이를 모방한 역사사기임을 그 역사위조의 실증(實證)을 들어 일본사의 위조사를 다시 밝히려 하는 것이다.
 
일본 역사 위조의 실증(實證)
 
일본역사의 위조사는 가관이다. 일본은 역사위조의 중심에 우리나라 백제역사를 근원으로 인용하고 있다. 즉, 일본서기(日本書紀) 주(註)에 백제기(百濟記)를 인용하고 있는데 백제기(百濟記)는 백제인이 저술한 역사요 당(唐)의 침략으로 후대에 보존치 못했다.
 
그러나 유민으로 가면서 가져간 백제기(百濟記)를 인용하면서 본래 내용의 백제기(百濟記)를 말살하고 ‘백제가 일본에 예속돼 일본을 종주국으로 받들었다고 왜곡(歪曲)했다. 참으로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백제는 중국인들조차도 동방강국(東方强國)이라는 백제가 동방소국인 일본에 예속됐다 함은 가소로운 일이다.
 
당시 일본에 건너간 우리 유민(流民)의 수는 한 때 전체 95%가 우리 유민인데 말도 아니 되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역사 무지의 아베신조(安部晋三)가 말하는 미나마(任那)는 당시 일본이 우리 식민지였는데 일본역사는 거꾸로 역사를 엮어놓았다.
 
왕인박사(王仁博士)가 일본에 12가지 선진 예물을 갖고 간 때는 일본은 석기시대를 살고 있었다. 이런 일본을 개명(開明)하게 한 것은 우리나라인데 감히 일본이 대륙을 누빈 강국 백제를 일본에 예속됐다는 것은 말도 아니 되는 명백한 위조이다.
 
이를 보다 못한 일본학자인 이노우에(井上光貞)교수는 그의 저서(日本國家起原, 96面)에서 ‘일본서기의 편자(編者)가 백제기(百濟記)의 원형을 왜곡해 기록하고 있는 것’같다고 말했을 정도다. 일본인 자신이 그 일본서기를 불신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일본의 역사 왜곡은 중국과 다를 것이 없다. 일본은 동양의 강국이라는 수양제(隋煬帝)의 강대한 국가를 고구려가 격파한 사실을 말하면서 이 고구려도 일본에 조공(朝貢)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일본서기(日本書紀)에 고구려가 ‘공방물(貢方物)했다고 한 것이다(推古天皇 26年 秋8月條). 여기서 공방물(貢方物)이라는 것은 하국(下(國)이 상국(上國)에 토산물(土産物)을 헌납하고 조공(朝貢)한다는 뜻이다.
 
동양의 대국인 수(隋)나라를 격파한 고구려가 바다 가운데 소국인 일본을 상국(上國)으로 받들고 조공했다 함은 백수(百獸)의 왕인 사자(獅子)가 여우를 두려워서 상전(上典)으로 받들었다는 것과 같은 참으로 못 말리는 한심한 인간들이다.
 
이미 다 아는 사실이지만 일본의 역사왜곡은 상상을 초월한다. 사실이 아닌 것을 ‘큰 거짓은 통한다는 그들의 방식대로 밀고가는 것이 일본의 역사왜곡의 방향이다. 일본은 어찌해서 이런 짓을 하는 것인가!
 
원래 일본은 본국인 우리에게 유민(流民)의 한(恨)을 갖고 있는 민족이다. 그리해 우리가 겪은 931회의 외침 중 거의 왜구(倭寇)가 4세기 40년간 591회나 우리를 괴롭힌 족속이다. 그래서 일본은 우리가 베풀어준 것은 잊고 망나니 같이 우리를 대해 온 존재로 역사에 남아 있다. 931회의 외침 중에 거의 일본이 우리를 침략하며 괴롭힌 것은 그들의 속성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 마쓰시다(松下見林)가 저술한 이칭일본전(異稱日本傳)에 ‘일본은 본래 왜노국(倭奴國)이다. 함형중(咸亨中)에 왜(倭)라는 악명(惡名)을 꺼리어 비로소 일본(日本)이라 칭했다. 일본인은 흉악하여 살생을 좋아한다’고 했다.(異稱日本傳 卷中二, 1面. 卷中三, 三十五面).
 
조일전쟁(壬辰倭亂)때 극악무도(極惡無道)한 만행(蠻行)은 계사정월(癸巳正月)이십사일(二十四日)에 피난민을 유혹해 서울 성중(城中)에 가두고 모조리 학살해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 했는데 일제(日帝)가 한국을 침략할 때도 거짓말로 수없는 한국인을 살해했다.
 
수원(水原) 제암리 교회(提岩里敎會) 학살사건과 관동대지진 때 2만5000명(외국통계)을 살해하고서도 6000명이라고 하는 일본이다. 중국에서는 남경학살(南京虐殺)은 30만~40만명 학살하고서도 아니라고 우기는 일본이다. 일본역사는 고대사 근대사 다 같이 파렴치(破廉恥)한 위조를 감행했고 지금 일본의 국민도 다대수가 이런 위조를 답습하고 있는 것을 오히려 반기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의 문물제도와 천황도 우리 것을 모방한 것
 
원래 일본은 우리 유민이 세운 나라이다. 돗토리대학의 이노우에 다카오(井上貴央) 교수와 동경대학(東京大學)의 도쿠나가 가쓰시(德永勝士) 교수가 인간유전자를 비교 연구한 결과 일본민족은 DNA가 말해주듯 우리와 같은 한민족(韓民族)피를 나눈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베푼 은혜는 잊고 유민의 한(恨)을 품고 우리를 괴롭히는 족속으로 변질돼 있다. 일본역사만 하더라도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그들은 우리 역사를 상상을 초월하는 변조(變造), 조작(造作) 왜곡(歪曲)을 눈 하나 깜작 하지 않고 하고 있는 자들이다. 그들의 명백한 위조(僞造), 변조(變造), 한심하고 파렴치 한 조작(造作)과 위작(僞作)은 지금도 계속하여 자행(恣行)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사는 믿을 수 없는 위사(僞史)요 위작(僞作) 그 자체이다. 일본고대사를 보면, 임나(任那)를 비롯해 백제 신라를 예속시키고 동양의 패자(覇者) 고구려까지 일본이 지배했다는 언어도단의 대담한 위조를 감행하였음을 이를 잘 말해 준다.
 
일본역사를 살펴보면 그들의 주장들은 하나같이 자기들이 우리 역사를 우리나라를 고대부터 지배한양 중국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은 모두 거짓의 전부 위작(僞作)의 왜곡 역사이다. 중국은 중국의 주자(朱子)가 소위 대중화사상(大中華思想)에 편향(偏向)해 중국을 높이고 한국을 하시(下視)하고 고문(古文)을 해석하는데 한국을 말살하기 위해 무리한 해석을 하는 악습이 있다.
 
일본 역시 중국과 똑 같은 전철(前轍)을 밟으며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변조하며 마치 자기들이 천손(天孫)이라 말하나 천손(天孫), 천자(天子)라는 칭호도, 문물제도(文物制度)도 우리한민족(韓民族)이 창조한 것을 우리가 중국과 일본에 전해준 것이다. 역사는 제대로 진실을 말해야 한다.
 
우리가 전해줬다는 것은 중국문헌에도 분명히 말하고 있다. 한(漢)나라 채옹(蔡邕)이 저술한 독단(獨斷) 권상(卷上)에 ‘天子夷狄之所稱 父天母地故 稱天子’라 하였다. 즉 천자(天子)라는 칭호는 이적(夷狄)이 창조한 것이요, 이적(夷狄)은 천신(天神) 지신(地神)의 피를 받은 민족으로 자처함으로 천자(天子)라고 하는 칭호를 창조하였다고 한 것이다.
 
이 채옹(蔡邕)의 글은 한민족(韓民族)이 최초에 천자(天子)의 문물제도를 창조하고 중국은 한민족(韓民族)이 창조한 그 문물제도를 수입하였다고 고백한 것이다. 여기서 이적(夷狄)은 어느 민족을 가리킨 것인가.
 
고대 중국인이 남방민족을 만(蠻)이라 칭하고 서방(西方)민족을 융(戎)이라 칭하며 동방민족을 이(夷)라 칭하고 북방민족을 고대 이적(夷狄)이라 칭했다. 고대 한민족의 동에 반도와 북이 만주에 거주해 동북방에 처했다. 그럼으로 한민족을 이적(夷狄)이라 말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일본이 천자(天子)제도를 창조한 적이 없다. 고기(古記)에 ‘천신환인(天神桓因)이 한국 땅을 중심으로 인류를 지도 한다고 하고, 단군(檀君)이 천신(天神)의 피를 받았다’고 하였음에도 사대사가(事大史家)가 이를 무시했다.
 
중국문헌에 인류의 대표라 칭하는 천자(天子)의 문물제도가 한국에서 창조됐다고 증언하고 천신(天神)의 피를 받았다고 칭하는 천자(天子)의 문물제도(文物制度)가 한국에서 창조됐다고 증언했다. 이것은 단군신화(檀君神話)가 위조 없는 정확한 기록임을 입증한다.
 
에가미나미오(江上波夫) 교수도 일본에 말을 처음으로 갖고 간 가야국의 전사들이 일본에 들어간 역사를 보며 ‘기마민족설(騎馬民族說)’을 말하고, 임나(任那)는 일본민족의 발상지(發祥地)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역사상 임나(任那)가 독특히 천황사상(天皇思想)을 일본에서도 제창하였는데 이 사상을 일본에 심어준 나라가 바로 가야(伽倻)이기 때문이다. 이 천황사상(天皇思想)은 후대(後代), 거란(契丹)과 일본(日本)이 답습하게 되었는데 그 본원(本源)은 따지고 보면 한국사상(韓國思想)을 모방하고 있음이 명백해진다.
 
그럼에도 일본은 중국에서 이 사상을 받아들인 양 말하고 있으나 중국은 이 사상이 한국에서 받아들인 것을 시인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 한민족에 의해 사상(思想)과 천자(天子), 천황(天皇), 황제(黃帝)등 문물제도(文物制度)가 한국에서 나온 것을 수입한 것임을 시인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모든 사상과 문물제도(文物制度)가 중국에서 받았다는 것은 다 거짓임에도 일본은 의도적으로 우리를 피해 가고 있는 것이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국가형성의 사회사’ ‘고조선의 통치체제’, 고조선학회 ‘고조선 연구 제1호 소수(所收)’, 윤내현· 박선희·하문식 공저 ‘고조선강역을 밝힌다’,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 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카터 코벨 지음·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송부웅 ‘한민족의 대륙역사’ ‘삼성(三聖)의 역사’,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백원 김백룡 원저 ·단동 김정일 편저 ‘天符經’,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강동민 ‘불쌍한 대한민국’, 우창수 ‘아사달, 상·하’, 김부식 ‘삼국사기’, 南帝 ‘命理속의 哲學’, 이강민 ‘대한국고대사’, 박찬희 ‘지구촌 인류를 구제할 법칙’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高橋徹 ‘古代の遠近法’, 猪俣幸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洪以燮 ‘朝鮮民族史觀と日本帝國主義の植民政策’, 吉川幸次郞 ‘漢の武帝’,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외 다수서책을 참조·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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