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들어가며- 왜곡(歪曲)된 위사(僞史)판치는 중국과 일본
고대사를 연구하며 중국과 일본의 역사를 추적해 보면 그 역사가 시작부터가 다 위조(僞造)된 위작(僞作)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얼굴하나 붉히는 일 없이 하나같이 거짓의 역사를 처음과 마지막까지 조작하고 왜곡(歪曲)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중국은 자기들이 스스로 ‘천자(天子)라는 칭호(稱號)가 이적(夷狄)이 창조한 것이요, 이적(夷狄)은 천신(天神), 지신(地神)의 피를 받은 민족으로 자처함으로 천자(天子)라고 하는 칭호를 창조했다’고 분명히 채옹(蔡邕)이 저술한 독단(獨斷)권상(卷上)에 [天子夷狄之所稱 父天母地故 稱天子]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새 중국 Ching 채널에서 ‘진시황(秦始皇)의 강의’를 하는 중국 허난대(河南大) 왕리춴(王立群)교수가 황제라고 처음 쓴 자는 진(秦)나라의 영정(贏政=진시황)이 당시중국의 6국을 통일한 후 통치체계를 새로 정하면서 처음으로 썼다고 강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참으로 역사무지도 이쯤 되면 챔피언 깜이다. 왕리춴(王立群)교수의 강의는 잘못 아는데서 기인하고 있다. 황제제도는 우리가 처음으로 사용했고 부여, 고구려, 중국, 일본, 등이 우리의 황제제도를 수입해 가서 사용한 것인데, 중국역사를 강의하고 있는 학자가 이런 무지한 강의를 한다는 것은 의도적인지도 모르나 제정신으로 말하였다면 이것은 역사무지이다. 왜냐하면 중국의 황제제도는 우리의 황제제도를 차용(借用)한 것이기 때문이다.
왕리춴(王立群)교수가 중국역사서를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중국을 내세우려고 거짓 중국사서(中國史書)의 위서(僞書)만 봐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무지한 역사 강의를 하는 것은 잘못되고 수치임을 알아야 한다.
진시황(秦始皇)이 처음 황제라 한 것은 제멋대로 나온 말이다. 6국을 통일한 영정(贏政=진시황)이 시황제(始皇帝)라 했다고 하더라도 황제제도는 우리의 것을 진시황(秦始皇)도 모르는 데서 진시황(秦始皇)이라 한 것에 불과하다.
또한 진시황(秦始皇)이라 했다고 해서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학자가 제대로 고증(考證)도 하지 않고 위서(僞書)천국인 중국의 사서(史書)만을 참고하여 그런 말을 했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나 역사는 진실을 밝혀야 제대로 된 역사이다.
이에 대한 연구나 고증(考證)이 없는 연구부족에서 나온 것이라면 제대로 연구해서 올바른 강의를 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역사왜곡(歷史歪曲)을 자행하는 중국의 정책에 맞추어서 강의를 하였다면 학자의 양심을 팔고 있는 것이다. 잘못된 내용을 가지고 역사 강의를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무지도 이쯤 되면 가관이다. 황제제도는 우리나라 상고시대(上古時代)부터 황제제도가 있었음은 이미 기술했기에 여기서는 재론을 않겠다. 그러나 중국 진(秦)나라 영정(贏政-진시황)이 처음 썼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오늘은 일본에 처음으로 나라를 세운 것은 백제계가 아니라 가야계가 제일먼저 나라를 세운 것에 대하여 지면이 허락하는 데로 살펴보고 져 한다.
일본은 우리 선조가 세운 나라…백제계 이전에 가야(伽倻)가 있었다
우리나라 사학자 중에는 일본의 나라는 백제계가 처음 세웠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는데 백제계 이전에 가야(伽倻)의 유민(流民)이 세운 이도국(伊都國)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일본에서는 이 이도국(伊都國)을 야마다이국(邪馬台國)이라고 부른다.
그 옛날 가야인(伽倻人)들이 배를 타고 일본에 가서 건설한 것으로 한국 무녀(巫女) 히미코(卑彌呼)가 여왕(女王)이 되어 구주(九州)의 30에 달하는 부족을 통일해서 세운 일본의 최초의 나라로 보고 있다. 히미코(卑彌呼)여왕은 가야(伽倻)에서 건너가서 종내 일본말을 모르고 그 동생이 통치를 대리했다고 한다.
히미코(卑彌呼) 다음의 종녀(宗女)도 여왕이었다. 2대가 통치한 뒤 이 이도국(伊都國)이라는 야마다이국(邪馬台國)은 없어졌다. 한편 이 구주(九州)의 여왕을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御神)로 생각한다. 최태영 선생은 이도국(伊都國)의 흔적을 찾아 후쿠오카(福岡)지방을 찾아갔으나 지금은 이도국(伊都國)을 아는 사람이 현지에는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도(伊都)라는 한문은 달라도 발음이 같은 이도(糸)지명이 있었는데 그곳은 지형적으로 바닷가에 면(面)하고 높은 산을 지고 큰 벌판이 펼쳐진 곳이었는데 거기에 고소진자(高祖神社)라는 오래된 한국신사(韓國神社)가 있었다.
그리고 좀 더 산속으로 들어가서 귤 밭 숲속에 한국과 관련이 깊은 이도(伊都)라는 조그마한 안내판이 있어 들어가 보니 성(城)도 있었다고 한다. 이도(伊都)라는 이름은 이도(糸)라는 동음(同音)의 뜻에 감춰져 있었던 것이다. 일본이 한국에서 와서 나라 세운 것을 감춘 것이다.
일본은 이도국(伊都國)인 야마다이국(邪馬台國)의 위치를 북 구주설(北九州說)과 기내설(畿內說-야마토설(大和說)로 나눠서 말하나 최태영 선생은 북구주설(北九州說)이 옳음을 답사를 통하여 말하고 있다. 후에 이들 중 일부는 동쪽인 기내(畿內)로 이동하여 야마도(大和)정부를 세우게 되고 오래 동안 소아(蘇我)라는 가야(伽倻系)가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제가 한국에서 유민이 일본에 와서 나라를 세운 것을 숨기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야마다이국(邪馬台國)은 30정도의 소국을 거느리고 있었다고 하는데, 계급의 차가 있었고 조세(租稅)도 있었으며, 법과 형벌도 있었다고 일본 역사서는 말하며, 여왕의 관리가 통제하는 등 국가형성 초기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여왕 히미코(卑彌呼)는 주술(呪術)을 오래 동안 하고 있었던 무녀(巫女)로 귀도(鬼道)를 써서 민중을 지배하고 있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 시기의 히미코(卑彌呼)여왕의 권력은 종교적인 권위와 강하게 결부되어 있었다. 히미코(卑彌呼)는 239년 공물(貢物)을 가지고 사자(使者)를 위(魏)에 보내어 [친위왜왕(親魏倭王)]의 칭호와 직물(織物)과 동경(銅鏡)100장을 받았다고 위서(魏書)는 기록하고 있다.(魏書 卷30, 東夷傳 倭人=魏志倭人傳). 이 위서(魏書)는 중국의 위(魏), 촉(蜀), 오(吳) 3국으로 나누어 싸우던 시대에 쓰여 진 역사서로 서기 220~265년의 역사를 3세기말 진수(陳壽)가 편집한 것인데 240년 이후에 쓰여 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시기는 한국은 백제나 신라도 없는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 소위 삼국시대로 이 당시 고구려 백제 신라는 대륙에 있었고 한반도내에는 각 지방에 분포한 수십 개의 제 부족국가(諸 部族國家)가 있었던 것을 문헌기사에 의해서 확인 할 수 있다. 이 시기 위지왜인전(魏志倭人傳)에 가야인(伽倻人)이 일본에 세운 나라가 야마다이국(邪馬台國)이고 중국사서(中國史書)에 나온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가야(伽倻)의 역사와 야마다이국(邪馬台國)의 개국배경(開國背景)
중국의 사서(史書)를 보면 한서(漢書)는 전한(前漢) 서기전 202~서기 8년의 역사를 1세기 후반 반고(班固)가 편집하였고, 후한서(後漢書)는 후한(後漢) 서기 25~220년의 역사를 5세기 초에 범엽(范曄)이 쓴 것이라고 하는데 이도국(伊都國)인 야마다이국(邪馬台國)은 위(魏)가 망하고 진(晋)이 세워지자 이 진에게도 266년 입공(入貢)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고대의 가야국(伽倻國) 실정을 잘 모르고 있다. 고대사의 단편(斷片)만을 가지고 판단하기는 어려운 것이나 고대 낙동강유역(洛東江流域)에는 여러 부족들이 살고 있었고 거기에는 부여(夫餘)의 선비족(鮮卑族)이 부여(夫餘)에서 내려와 김해(金海)지방에 가야(伽倻)를 세웠는데, 이 가야(伽倻)에서 일본에 건너간 유민(流民)이 세운 것이 이도국(伊都國)이라는 야마다이국(邪馬台國)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야마다이국(邪馬台國)은 과연 어떠한 나라인가! 일본의 선조(先祖)를 모시고 있다는 이세신궁(伊勢神宮)과 일본 왕이 거주(居住)하는 일본궁궐의 36신위(神位)가운데 가야와 신라계의 소노가미(園神1座)와 백제계의 가라가미(韓神2座)를 모시고 있다. 이것은 일본의 가야 계 조상(伽倻系 祖上)과 백제계 조상(百濟系 祖上)이 일본에 나라를 세우고 있음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이는 제사(祭祀)를 지내는 곳까지 역사왜곡(歷史歪曲)을 하지 못하고 제사(祭祀)에 관한 방대(尨大)한 엔기시키(延喜式)에 관한 일본의 [국사대계(國事大系)13권 282면<엔기시키(延喜式)>권(卷)9, 神祗9 神名 上]에는 가야의 선조(先祖)가 일본까지 진출한 것을 말해주는 위의 책은 일본 전역(全域)의 신사(神社), 사당(祠堂)에 모셔진 조상 위패(位牌)를 조사해 계통(系統)대로 기록해 놓은 것이다. 이 책에서 가야의 후손이 일본에 나라를 세운 것을 확인 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은 역사위조를 그렇게 열심히 했음에도 엔기시키(延喜式)만큼은 순수일본인 역사기록이라고 생각해 손대지 않았던 듯한데, 국내사학계도 이에 대한 연구가 없어 어떤 언급도 없는데 이들 사당은 이미 2백 년 전 헐리고 제사도 지금은 없어졌다.
712년 편찬된 <고사기(古事記)>에도 원신(園神), 한신(韓神)으로 추정되는 신(神)이 나오고 있으며, 859년 일본의 가요를 선집(選集)한 <고전(古傳) 신악가(神樂歌)=제사를 지내며 부르는 노래>에도 원신(園神)과, 한신(韓神)을 왕실(王室)에서 제사(祭祀)지내며 부르는 축가(祝歌)가 실려 있다. 여기서도 가야(伽倻)가 일본에 진출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위에 기술한 역사를 알기 위하여 가야(伽倻)에 대한 역사를 좀 더 살필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일본을 말할 때 주로 왜(倭)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왜(倭)라는 나라는 우리나라 지도상(地圖上)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 삼한(三韓)의 정세를 정확히 파악한 후한서(後漢書)의 동이전(東夷傳)에 있지도 않은 왜(倭)의 존재를 낳게 한 것은 마한(馬韓)과 변한(弁韓)사이에 좁고 길게 끼어 있는 12개국(個國) 중 위치한 낙동강 좌우 연안에 위치한 한국 고대사에 나타나는 6가야연맹(六伽倻聯盟)인 땅인 가야(伽倻)가 있다.
이 가야(伽倻)는 가야(伽倻), 가야(加倻), 가라(加羅)라고도 쓰여 지고 있다. 가야(伽倻)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는데 낙동강은 경상북도 태백산 황지(黃地)에 그 시원(始源)을 발하고, 도중 안동(安東) 상주(尙州)로부터 남하하면서 몇 개의 하천을 합류시키면서 김해(金海)동쪽에 이르러 삼각주(三角洲)를 형성한 후에 동해에 유입(流入)한다. 전장(全長) 530km에 달하는 대하(大河)가 낙동강(洛東江)이다.
이 낙동강유역에 고대 변진족(弁辰族)이 주체인 가야문명(伽倻文明)이 흥(興)한 곳이다. 우리나라는 4세기에 들어 와서 고구려 백제 신라 삼 고대국가(三 古代國家)에 들어가기 까지 부족국가(部族國家)의 활거(割)據)시대가 계속됐다.
전술(前述)의 삼한(三韓=마한, 진한, 변한)중 진(辰), 마(馬) 양한(兩韓)은 원래 부여계(夫餘系)의 동조(同祖)의 조상을 가져, 풍속, 관습, 언어도 유사(類似)한데 반하여, 변한(弁韓)은 전혀 다른 관습을 갖고 있으며 외국의 영향을 받는 시대가 되어도 고유의 문화전통을 가지고 계속됐다. 보수적인 체질의 종족인 것이다.
비옥한 토지와 관개(灌漑)의 이로움, 거기에 호적(好適)한 기후가 겻 들여져서 이 지역은 일찍부터 농경문화(農耕文化)가 발달하고 이 지역에서 산출되는 양질(良質)의 철(鐵)은 이 지역일대 뿐만 아니라 타 지역(他地域)의 나라들 보다 일층 흥융(興隆)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당시 일본에서는 많은 은(銀)을 가지고 와서 칼을 수입해 갔던 것이다. 가야는 600년의 왕조를 이룬 나라였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국가형성의 사회사’ ‘고조선의 통치체제’, 고조선학회 ‘고조선 연구 제1호 소수(所收)’, 윤내현· 박선희·하문식 공저 ‘고조선강역을 밝힌다’,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 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카터 코벨 지음·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송부웅 ‘한민족의 대륙역사’ ‘삼성(三聖)의 역사’,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백원 김백룡 원저 ·단동 김정일 편저 ‘天符經’,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강동민 ‘불쌍한 대한민국’, 우창수 ‘아사달, 상·하’, 김부식 ‘삼국사기’, 南帝 ‘命理속의 哲學’, 이강민 ‘대한국고대사’, 박찬희 ‘지구촌 인류를 구제할 법칙’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高橋徹 ‘古代の遠近法’, 猪俣幸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洪以燮 ‘朝鮮民族史觀と日本帝國主義の植民政策’, 吉川幸次郞 ‘漢の武帝’,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외 다수서책을 참조·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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