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일본사(日本史)를 논한다면 먼저 일본사의 단계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일본열도에 석기시대 어느 시대부터 인간이 거주하였다고 추정한다. 한서지리지(漢書地理志)에 의하면 왜인(倭人)은 100여국으로 나뉘어 있었다고 하는데 일본은 1~2세기에 많은 소국가가 성립하였던 것 같다. 이 때에 가야(伽倻)에서 일본에 진출하여 임나(任那)라는 분국을 세우고 일본을 통치하였다. 3~4세기에 그 중에 강대한 자가 부근의 소국가를 통일 하였으나 전국통일을 이룩치 못하였다.
그 강대한 자의 하나가 사마대국(邪馬臺國)인데 북 구주(北九州)에 있었다. 이후 부족투쟁으로 그 국가가 혼란에 빠지고 신라(新羅)가 웅습(熊)襲)을 앞잡이로 일본을 정복하고 소위 신공후(神功后)의 신화가 나왔다. 그리고 후에 온 한국유민이 남구주(南九州)의 구노국(狗奴國)을 대부분 정복하였다. 5세기에 고구려가 일본을 정복하니 일본이 저항치 못하여 송나라에 구원을 청하였다.
5세기 말, 6세기초에 야마토(大和)를 중심으로 부족 연합이 형성되고 6세기말 7세기초에 호족(豪族)이 분립(分立)하여 자기세력을 부식(扶植)하였다. 호족(豪族)중 대표는 우리민족인 소아씨(蘇我氏) 이다. 소아씨(蘇我氏)가 스슝천황(崇峻天皇)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스이코천황(推古天皇)이 등극하고 성덕태자(聖德太子)가 혼란을 수습키 위하여 정치를 대행하고 대화개신(大化改新)을 시도하였다.
이 때에 고구려가 혜자법사(惠慈法師)를 일본에 보내어 대화개신(大化改新)을 지도하였다. 이때까지 천황의 권위가 서지 못하고 7세기 후반기에 이르러 비로소 천황의 권위가 확립하였다. 7세기 이전은 대왕(大王)을 칭하고 7세기부터 천황을 칭하였다. 이 이전의 천황이라는 칭호는 쓰지 않았다. 일본천황의 역사는 허구가 너무 많기 때문에 그 진위를 제대로 알고 말을 해야 한다. 오늘은 고대 가야국과 일본의 관계를 살펴보고 져한다.
고대 일본은 미나마(任那)가 일본을 통치했다
일본서기(日本書紀) 흠명기(欽明紀) 23년조(條) 주(註)에 임나(任那)는 가라국(加羅國), 안라국(安羅國), 사이기국(斯二岐國), 다라국(多羅國), 졸마국(卒麻國), 고차국(古嗟國), 자타국(子他國), 산반하국(散半下國), 걸손국(乞飡國), 임례국(稔(禮國)등 10여국의 총칭이라고 하고 해동역사(海東繹史)에 [임나(任那)의 본명(本名)이 가라(加羅)이요 김수로왕이 건설한 나라라]고 하였다.(海東繹史 卷 第四十一 通日本始末 參照).
이상의 내외기록을 고찰하면 임나(任那)는 가라(加羅) 대가락국(大駕洛國)을 중심으로 구성된 나라이다. 이 가야가 백제 신라 고구려 보다 먼저 일본에 건너가서 일본을 지배한 것은 사실이다. 이 낙동강유역의 나라들에서 일본에 건너간 가야족(伽倻族)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일본역사의 재검증을 해보면, 일본은 우리나라에 미나마(任那)라는 식민지를 두었다고 조작하였는데 가야(伽倻)가 일본에 식민지를 둔 것이었다. 잠시 일본에서의 고대 미마나(任那)로 되돌아가 당시를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미마나(任那)의 의미를 보면 미마나(任那-ミナマ)는 MI+MA+NA의 합성어인데 MI는 [신성(神聖)한 자(者), 천황(天皇)]을 의미하고, MA는 [진실(眞實)]의 뜻이다. NA는 [나(那), 국(國)]의 뜻이라고 기초단위언어(基礎單位言語)로 그 의미를 말하고 있다. 즉 [천황의 참다운 나라]라는 것이다. 이것이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등장하는 임나의 뜻이다. 그리고 임나(任那)의 음독(音讀)은 [イムナ]로 [대군(大君의 나라)]의 의미이다.
즉 [천황(天皇)의 진(眞)의 나라(國)]로 표현하지 않고 [대군(大君의 나라(國)]라는 한자를 썼다는 것이다. 명백한 것은 천황(天皇)의 진정한 나라는 가야(伽倻)였다는 것이다.
그 어원(語源)설명에서 임나(任那)를 일본의 식민지였다고 하는 이는 없다. 어떤 이는 임나를 대마도라 하는 자가 있으나 결코 임나는 대마도가 아니다. 일본의 사학자 이노우에 히데오(井上秀雄)씨는 그의 저서 [조선사입문(朝鮮史入門)]에서 “일본부(日本府)의 명칭이 신라 백제계의 사료에만 있고 일본 측 사료(史料)에는 없다.”고 하였다.
또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는 본래 임나에 토착한 이들의 정치연합이요 일본정부와 관계없다.”고 하였다. [(井上秀雄 朝鮮史入門) 92面]. 여기서 몇 개의 지명(地名)을 살펴보면, 가야인(伽倻人)이 구주(九州)에 간 것은 서기전 500년경부터 시대는 훨씬 내려와서 [위지왜인전(魏志倭人傳)]에 등장하는 사마대국(邪馬臺國)과 여왕 히미고(卑彌呼)이다. 거기에는 여국(女國)인 사마대국(邪馬臺國)에 대해서 남국(男國)인 구노국(狗奴國)이 있고 양자(兩者)는 대립하고 있다고도 기록되어 있다.
사마대국(邪馬臺國)은 어떤 나라였나
사마대국(邪馬臺國)은 오랜 기간, 동란(動亂)시대를 거친 후, 히미고(卑彌呼)를 여왕에 세워서 [귀도(鬼道)]-원시종교 샤머니즘의 일종으로서 신(神)의 의지를 전하는 무녀여왕으로서 신(神)에 의한 지도에 의해서 겨우 유지되었다고 하고 있다.
당시 낙동강 유역의 나라들을 보면 지금의 고령(高靈)지방에 미오사마국(彌烏邪馬國)이 가야족의 최초의 맹주(盟主)가 되고, 하류(下流)의 하구(河口)지역 지금의 김해지방에 위치한 것이 구노국(狗奴國)이며 후에 맹주가 되었다.
일본에서 미오사마국(彌烏邪馬國)은 미오야마고구(ミオヤマコク)로 읽으며 구노국(狗奴國)은 구나고구(クナコク)라고 한다. 여기서 미오야마고구(ミオヤマコク)라는 첫 글자의 미(ミ)는 “천황” 혹은 “신성하다”는 의미이다. 또 오(オ)는 “크다(大)”이다. 즉 미오사마국(彌烏邪馬國)이란 신성한 큰 야마(邪馬)-ヤマ)나라라는 것이다.
사마국(邪馬國)과 사마대국(邪馬臺國)의 차이는 대자(臺字) 한 자가 수수께끼이다. 이들이 일본에 건너가서 세운 나라가 사마대국(邪馬臺國)이다. 또 구나고구(クナコク)는 구노국(狗奴國)인 것이 명백하다. 여기서 노(奴)와 사(邪)는 대응 음(對應音) 으로 한국고대(韓國古代)를 나타내는 한자(漢字)는 여러 가지로 쓰여 지고 있기 때문에 구노국(狗奴國)의 노(奴)와 사마국(邪馬國)의 사(邪)는 동음이사(同音異寫)에 불과 하다.
하카다(博多)축제의 야마가사(山笠)와 야마보고준고(山鉾巡行)의 의미
일본에 제일 먼저 상륙한 한민족은 백제가 아니라 가야족(伽倻族)이었다. 서기전 500년경 고령(高靈)지방에 있던 미오사마국(彌烏邪馬國)이었고 이 미오사마국(彌烏邪馬國)이 당시 구주(九州)지방의 맹주로 구주일원은 당연히 그 지배하에 있었다고 보고 있다. 구주북부에는 지금도 야마(邪馬)라는 지명이 많다. 사마국(邪馬國)은 구주(九州)에 있었다. 일본은 지금도 구주설이니 기내설(畿內說)이니 하나 구주설이 옳은 것이다.
지금도 하카다(博多)에서 행해지는 축제에는 야마가자(山笠)라는 것이 있다. 돈다쿠(どんたく)와 나란히 매년7월에 구시다진자(櫛田神社)에서 개최된다. 여기서 돈다쿠(どんたく)라는 것은 네델란드어(語)의 ZONDAG(일요일)의 변형된 것이라고 말해지고 있다.
그러면 야마가자(ヤマカサ山笠)란 무엇인가. 야마가사(山笠)-ヤマカサ)라는 한자를 쓰고 있으나 어떠한 입(笠)인지 설명이 안 되나, 어원(語源)으로 본다면 야마가자(ヤマカサ山笠)라는 의미는 고향 야마(邪馬)국가를 그리워 어쩔 수 없는 인간심리를 반영하고 있는 말로 옛 유민(流民)들의 절실한 염원(念願)을 나타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의미는 축제에 나온 긴 깃발에는 [천리만리내도해(千里萬里來渡海)]의 문구에서도 엿볼 수 있다. 현해탄을 건너서 구주에 온 야마국의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움의 표현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경도(京都)에도 기온마쓰리(祗園祭-ぎおんまつり)라는 축제가 있다. 경도(京都)의 기온제(祗園祭-ぎおんまつり)에서 행해지는 행사로서 산모순행(山鉾巡行-(ヤマボコジュンコウ)라는 것이 그것이다.
야마보고(ヤマボコ)라는 것은 산모(山鉾)라는 한자를 쓰고 있는데 사전에 의하면 축제 때 쓰는 다시(だし)-장식한 수레의 일종으로서 대상(臺上)에 산의 형체를 한 것이 있고 그 위에 모(鉾)-긴 칼자루 끝에 위로 젖혀진 넓은 날을 붙인 옛날 무기를 세운 것으로 되어 있다.
산위에 이런 것을 세우기 때문에 산모(山鉾-ヤマボコ)라는 이상한 말이지만 왜 이런 것을 세우는 것 일가! 또 거기에 순행(巡行-ジュンコウ)이라는 문구가 이어져 있다. 이 산모순행(山鉾巡行(ヤマボコジュンコウ)이라는 것은 한국어의 [야마 보고 지고]로-‘고국이 그립다’는 의미이다. 즉 멀리 낙동강 중류로부터 일본에 온 사람들이 떠나버린 고향, 미오사마국(彌烏邪馬國)을 그리워 그 심정을 나타내는 말인 것이다.
이같이 구주(九州)에 상륙한 미오사마국(彌烏邪馬國)을 중심으로 한 세력은 서서히 긴 시간을 걸쳐서 육로 또는 세도나이가이(瀨戶內海)를 이동해서 근기(近畿)지방 기내(畿內)에로 진출해 갔다. 그리하여 지금일본 관서지방(關西地方)에는 야마(邪馬)의 땅 즉 야마토(大和=ヤマト)를 형성하여 기내(畿內) 맹주(盟主)의 나라가 되고 구주에는 구노국(狗奴國)을 맹주(盟主)로 하는 나라가 있었다. 이들 가야의 정복민(征服民)들은 원주민들에게 농경(農耕)과 금속문화를 가르쳐 주면서 국가형성에 노력해 갔던 것이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국가형성의 사회사’ ‘고조선의 통치체제’, 고조선학회 ‘고조선 연구 제1호 소수(所收)’, 윤내현· 박선희·하문식 공저 ‘고조선강역을 밝힌다’,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 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카터 코벨 지음·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송부웅 ‘한민족의 대륙역사’ ‘삼성(三聖)의 역사’,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백원 김백룡 원저 ·단동 김정일 편저 ‘天符經’,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강동민 ‘불쌍한 대한민국’, 우창수 ‘아사달, 상·하’, 김부식 ‘삼국사기’, 南帝 ‘命理속의 哲學’, 이강민 ‘대한국고대사’, 박찬희 ‘지구촌 인류를 구제할 법칙’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高橋徹 ‘古代の遠近法’, 猪俣幸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洪以燮 ‘朝鮮民族史觀と日本帝國主義の植民政策’, 吉川幸次郞 ‘漢の武帝’,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외 다수서책을 참조·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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