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神을 자기神으로 믿는 일본…외손자가 만든 왕조

입력 2015-12-06 12:3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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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들어가며-사상과 철학이 없는 일본의 모습
 
일본은 우리역사에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열등한 역사이기에 자존적(自尊的) 역사를 위조하기 위하여 우리들에게 대하는 원칙이 있다.
 
그것은 첫째, 우리에게 유리한 사료(史料)에 대한 부정(否定)과 부인(否認)이고, 둘째는 사료(史料)에 대한 지나친 자의적(恣意的) 해석이며, 셋째 의도적(意圖的)인 사료(史料)에 대한 은폐(隱蔽)이다. 이 원칙은 일본사 전체 저류에 그 원칙이 흐르고 있다. 때문에 그들의 역사는 허구가 많고 왜곡 조작되어 있어서 믿을 수 없는 역사임을 알 수 있다.
 
일본역사에 있어서 한국의 역사를 왜곡하지 않으면 그들은 일본의 오늘을 기약할 수 없기 때문에 무리하게나마 계속 일본사를 조작하여 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일본이다. 그들은 우리선조들의 은혜를 베풀어준 역사를 지우고 우리의 역사를 자기들의 것인 양 조작한다.
 
그 무엇인가 우리도 한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일본에 건너간 후 석기시대의 삶을 하며 철학이 없고 사상이 없는 삶에서 주체성 확립을 위한 차원에서도 이는 필수라 생각해서 역사왜곡 변조를 예사로 하고 있는 것 같다.
 
필자는 메이지대학 대학원에 면접 때 일본에 온 감상을 말하라 했을 때 거침없이 일본은 경제대국이 되고 근대화가 되고 있으나 사상과 철학이 없는 나라 같다고 말했다. 질문을 한 시마다(島田正郞)교수는 왜 그리 생각하는가! 묻기에 현대문명시대에 일본에 800만의 신이 있다는 것은 사상과 철학이 없음으로 골목마다 많은 신을 모시고 있는 것이 아닌가! 본다고 말한 일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왜냐하면 고대 일본은 철학이 없음으로 갈 바를 모르고 사상이 없음으로 주체성을 상실하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의 선각자들에 의하여 깨달은 것은 주체성이 없으면 갈 바를 모르고 갈 바를 모르는 민족이 전진 할 수 없고 주체성이 없는 민족이 외세에 저항 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민족이나 철학과 사상이 없으면 전진치 못하고 정체(停滯)하며 타락하고 외세에 저항치 못하여 예속(隸屬), 패배(敗北)된다는 데서 그들은 쉬지 않고 더욱 왜곡을 자행하고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일본은 소박(素朴)한 사념(思念)이 있고 체계화한 사상이 없다. 그러기에 우리가 전해준 유교, 불교 등 외래사상을 신앙하였다. 아울러 우리의 천민사상(天民思想), 황제제도를 다 받아들이고 성장함으로 자존(自尊)과 오만한습성이 육성되어 외래사상을 신앙하면서 신도(神道)라는 자연종교를 더 존중하였다. 그리하여, 자주자존의 민족의식을 토대로 외래사상을 신앙함으로 근대화에 성공하고 오늘의 번영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고유한 철학사상이 없음으로 오늘의 정신적 병폐를 일으키고 지도이념에 고민하고 있다. 그 고민이 아베신죠(安倍晋三) 정권에서 보듯 힘의 원리에 따라 무력에 비중(比重)을 두고 있는 양상이다. 그러나 민족의 흥망을 결정짓는 것은 무력이 아니고 사상과 철학이 정상궤도에 오를 때 빛을 보는 것이다.
 
사상과 철학은 그 민족의 생명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도 일본을 부흥시킨 가야유민에 대한 사실관계를 규명하기 위하여 가야성(伽倻姓)과 지명 등 그 숨겨진 것에 관해서 살펴보고 져 한다.
 
가야유민의 가야 성(姓)은 말한다
 
이미 기술한 바와 같이 일본이 말하는 미나마부(任那府)는 가야가 일본을 통치한 정부기관임에도 그들은 거꾸로 자기들이 우리를 지배했다고 하나 이것은 모두 허구이다. 지금도 일본에는 가야를 상징하는 성(姓)이 많이 있음을 볼 수 있다. 815년 일본에서 당시 높은 벼슬아치들의 명단을 적은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을 보면 1/3이 외래자인 이주인(移住人)이다.
 
최태영(崔泰永) 선생은 생전에 가야의 후손인 다카모토 마사토시(高本政俊) 사학자를 만나서 교분을 나눈 이야기를 <단군을 찾아서>에서 기술하고 있다.(251이하) 즉 다카모토 마사토시(高本政俊)씨가 1993년 4월 서울, 인천, 부산에서 강연차 내한했는데 그는 한국에 왔어도 관광은 하지 않고 자기고향이라며 함안(咸安)을 조사하고 갔을 정도로 일본 내의 가야지명과 고목신(高木神) 즉 고마노카미(高麗神)를 찾아낸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다카모토 마사토시(高本政俊)가 쓴 책은 “선조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디서 왔을까 하는 의문을 전제로 출발하여 자기의 부계성(父系姓)은 다카모토(高本)이고, 모계성(母系姓)은 아나우(穴生), 처가의 성은 아라카와(荒川)라 했음을 찾아내고 다카모토(高本)는 자신들의 성씨(姓氏)가 고대 한반도에서 온 이주선인(移住先人)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아내고 있다.
 
그가 수십 년 전 고마신사(高麗神社)를 방문해서 나카야마시로(中山四郞)박사가 쓴 서문에서 고마신사(高麗神社)의 고려인들이 지녀온 고마(高麗) 성(姓)은 1250년 이미 19개나 되는 성씨(姓氏)로 나뉘었다고 한다.
 
그의 조상은 도쿄(東京) 변두리 무사시노(武藏野)에 이주(移住)한 고려씨(高麗氏)와는 별파(別派)인데 조선조(朝鮮朝)왕의 서족(庶族)으로서 일본에 귀화한 근세 구마모토(熊本)의 명유(名儒)였으며 고구려의 고(高)와 일본의 본(本)을 취하여 다카모토(高本)라는 성을 만들어 그리 칭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때 나카야마시로(中山四郞)박사로 부터 이 사실을 안 다카모토 마사토시(高本政俊)는 “내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고 서술했고 하고 있다. 어머니 성(姓) 아나우(穴生)도 진성(珍姓)이고 외가(外家)의 성(姓)은 아라가야(安羅伽倻)를 말하는 아노우(穴生)씨임을 알았다. 처가의 성은 아라카와(荒川)이다. 즉 안나(安那), 안량(安良), 황자(荒字)가 들어가는 성씨(姓氏)는 모두 가야(伽倻)의 동족이다. 그렇게 해서 가야혈통을 보존해 왔던 것이다.
 
“일본 내에 아직도 가야(伽倻)를 뜻하는 말과 가야의 혈통을 지닌 후손이 무수히 있으며 그들의 조상인 고대 이주선인(移住先人)의 흔적이 그토록 많은데 다카모토 마사토시(高本政俊)는 놀라고 있다 그래서. 가야를 말하는 안나(安那)는 한일고대사의 타임캡슐이다.”고 말한다. 오카야마현(岡山縣)의 옛 이름이 가야(伽倻)인 것처럼 그는 일본 내에 있는 가야 관계 지명을 수백 개나 찾아내었다. 그 명칭들은 각양각색이나 출발은 가야라는 명칭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알았다.
 
사찰명(寺刹名), 인명, 지명에도 가야 숨겨져 있다
 
일본에 모기장이란 뜻의 가야(蚊屋)라는 동내가 있다. 가(蚊)는 모기, 야(屋)는 집이라는 뜻이다. 가야후손이 가야라는 이름을 자기네만 알 수 있도록 감추어 지내온 것이다. 신명(神名), 신사(神社)와 절, 인명, 지명, 생활용어 가운데 아라(安羅), 가라(加羅), 아나(安那), 다라(多羅)등등에 깃들여 있는 가야(伽倻)의 존재를 다카모토(高本)씨는 400개나 밝혀내고 있다. 가야만 보더라도 가야(可也), 가야(蚊屋), 가야(加夜)로 변형되어 쓰이고 있음을 본다.
 
임나(任那-ミマナ)가 일본 내에 있었던 지명이란 것도 다카모토(高本)씨가 쓴 <가락국과 임나국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행-고대의 수수께끼 아노우(穴生)성씨(姓氏)>라는 책에는 수없이 밝혀진다. 다카모토(高本)씨는 임나(任那=ミマナ)란 한국인들이 일본에 와서 일본을 지배하기위해 만든 것이며 임나(任那=ミマナ)라고 하는 지명은 일본 내에서 얼마든지 찾아 낼 수 있다고 쓰고 있다.
 
그는 미마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이 일본의 망상(妄想)이라는 확신을 제시한다. 서기369년 혹은 391년에 시작되어 568년에 멸망했다는 약 198년 간 이라는 시기는 백제세력이 매우강한 때여서 한반도에 왜(倭)의 식민지 같은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역(逆)으로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우수한 고대문화가 우수한 인재와 함께 유입되었음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요 그 증거가 무수하게 많다는 것을 그는 발견한다.
 
과연 “일본을 건국한 고대왕조의 주역은 누구냐”는 것이 사학자 다카모토(高本)씨가 두 번째로 던지는 질문이다. 이 과정에서 찾아낸 것 중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御大神)의 사돈이름도 있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일본왕가계보의 첫 조상인 니니기노미코토(瓊瓊靈神)가 170만 년 전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쓰여 있다. 허구도 이쯤 되면 가관(可觀)이다.
 
일본신화에 등장하는 신(神)들의 계보(系譜)는 이사나기(伊邪那岐)와 이사나미(伊邪那美)에서 시작하며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御大神)와 다카미무쓰비노미코토(高皇産靈神) 혹은 고목신(高木神)의 손(孫)인 니니기노미코토(瓊瓊靈神)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御大神)의 아들과 다카미무쓰비노미코토(高皇産靈神)의 딸이 결합하여 그로부터 출생했다는 것이다.
 
니니기노미코토는 거울 곡옥(曲玉), 검의, 삼종, 신기(神器) 등을 가지고 다카마가하라(高天原)로부터 하므가(日向)의 다카치호(高千穗)봉에 내려 왔다는 강림신화를 지니고 있다. 전쟁 전의 일본인들은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를 태양신화(太陽神話)의 최고신으로 우러르고 일본은 만세일계(萬歲一系)자손이 통치해오는 신국(神國)이라고 믿었다.
 
전후 70년이 지나는 오늘에도 아직 다수의 일본인은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나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를 잘 보면 니니기노미코토(瓊瓊靈神)에게 일본 땅으로 갈 것을 명(命)한 것은 그의 외조부인 다카미무쓰비노미코토(高皇産靈神)임을 알 수 있다. 이들 모든 신들은 일본신이 아니고 <가야(伽倻)의 신(神)>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윤내현, 박선희, 하문식 공저 ‘고조선강역을 밝힌다,’.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백원, 김백룡 원저 유우찬 ‘마두부활과 되마사상’.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高橋徹 古代の遠近法,. 猪俣幸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黃斌 ‘箕氏朝鮮史話’. 黃斌, 劉厚生 共著 ‘夫餘國’. 黃斌, ‘大遼國史話’. 사회과학원 조선고고학 총서 52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과 북방주민들’.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외 다수서책을 참조하고 본문을 그대로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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