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비슷한 한일…왕조발상지 한국인데 허구역사 믿어

입력 2015-12-27 22: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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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들어가며 - 허구의 일본고대사 새로 써야 한다
 
일본고대사는 새로 써야한다. 일본은 일본민족이 한국에서 건너갔음에도 마치 대륙에서 이동해온 것 같이 말한다. 또한 일본민족의 기원도 주류가 ‘북방기원설’이 주류를 이루고 있음에도 한국에서 건너간 것을 희석시키기 위하여 마치 ‘남방 설’을 끼어 넣고, 일본어의 기원도 북방에 있음이 정설(定說)임에도 ‘북방민족의 전매특허로 단정 할 수 없다’며 억지주장을 하는 자도 있음을 본다.
 
한편 성서에 나오는 ‘노아홍수를 피해서 사방에 분산한 노아의 일족(一族)이 홍수에서 살아남아서 신석기시대의 한 무리임이 틀림없고 이러한 사람에 의해 인류최초의 문명이 형성되었다.’고 말하나 인류최초의 문명이 <요하문명>임을 모르고 있다. 이들의 역사는 처음부터 허구의 역사로 꾸며지고 있다.
 
또한 웃기는 것은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御大神)는 노아홍수에 나오는 노아의 자손이라며 노아를 시조(始祖)로 하는 야벳의 일족(一族)이 인도에 이주(移住)해서 대일여래(大日如來)로서 숭배되어 그것이 일본에 있어서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御大神)로 숭배되었다’고 가설(假說)이라며 겻 들이는 것을 보며 냉소를 금치 못한다.
 
이같이 일본의 고대사는 일본이 주장하는 대로가면 완전히 그 역사가 전도(顚倒)되고 만다. ‘일본역사의 상반(上半)은 바로 한국역사’라는 것을 이미 기술했지만 오늘에는 삼류소설 만도 못한 <고사기(古事記)나 일본서기(日本書紀)와는 다른 ‘천황가(天皇家) 7천년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수록한 [신황기(神皇紀)]를 비롯해서 널리 공개되지 않은 비서(秘書)들이 나와서 일본역사의 잘못을 바로 해 주고 있다.
 
그러나 이 비서(秘書)들도 훼손되어 흠결된 부분이 있는 것도 있기에 여러 책을 종합해서 읽어야 대체를 알 수 있는 것도 있다. 일본학자들도 <고사기(古事記)나 일본서기(日本書紀)가 허구가 많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일부는 허구가 아니라 역사의 비유(比喩)라고 하며, 다가마가하라(高天け原)에 내려온 일신족(日神族)을 이루는 중핵(中核)의 대규모 유민군(流民群)이 야마도왕조(大和王朝)를 창건했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기마민족설(騎馬民族說)을 주장한 동경대학의 에가미나미오(江上波夫)교수는 다가마가하라(高天け原)에 온 유민군(流民群)이 미나마(任那)며 일본민족의 발상지라 주장한다. 이후 대규모의 집단은 백제의 유민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오늘은 일본왕조의 발상지가 과연 어디였나에 대하여 일본조상의 제사 등을 계속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조상의 신위서열(神位序列)에서 본 가야
 
필자는 이미 ‘가야시대는 미나마(任那)가 가야의 분국(分國)이며 일본에 가야의 식민지인 임나(任那)를 세우고 백제 고구려가 도리어 미개(未開)한 일본(日本)을 문화(文化)로서 지도하고 무력(武力)으로 일본을 지배(支配)하였음을 말한 것은 우리 역사를 연구하는 모두의 연구결과이며 이는 진실이다.’고 했다.
 
가야가 일본에 처음으로 간 사실은 일본의 조상을 궁내(宮內)와 이세신궁(伊勢神宮)에서 제사지내는 제상(祭床)위의 신위서열(神位序列)을 봐도 알 수 있다. 일본의 조상에게 제사지내는 엔키식(延喜式)에 나오는 신위서열(神位序列)을 보면, 맨 먼저 나오는 신위(神位)가, 소노카미(園神-가야 신라 신)이고, 다음이 백제신(百濟神)인 가라카미(韓神)이다. (日本國史大系 卷十三 282面. 延喜式 卷九 神祇 九 神名 上 參照)
 
엔키식(延喜式)은 분량이 방대하다. 또한 일본대궐 제례(祭禮)의 모든 내용과 절차가 소상히 적혀 있다. 제문(祭文)도 “유세차 모년모월로 시작하는 것도 우리와 똑같은 형식이고 과일, 생선 등 제물(祭物)도 비슷하다. 일본은 역사위조를 그렇게 열심히 했음에도 제례(祭禮)에 관한 엔키식(延喜式)만큼은 손대지 않았기 때문에 이로 인하여 일본인의 조상이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유민인 사실이 여실히 다 들어 났다.
 
그러나 이들의 사당(祠堂)은 황궁(皇宮)과 이세신궁(伊勢神宮)같은 데는 그대로 있고 이미 200년 전에 거의 다 헐리고 이들에 대한 제사(祭祀)도 거의 없어졌다. 계속 제사를 지냈다가는 한국에서 온 조상이 없는 척 하는 일본인에게 이들의 존재는 거북한 것으로 여겨질 터이니까 없앴던 것이다. 712년에 편찬된 고사기(古事記)에도 원신(園神)과 한신(韓神)으로 추정되는 신이 나온다.
 
859년 일본의 가요(歌謠)를 선집(選集)한 고전(古典) 신악가(神樂歌)에도 원신(園神)과 한신(韓神)을 왕실에서 제사지내며 부르는 축가(祝歌)가 실려 있다. 제례(祭禮)는 어떤 제도보다 보수적인 것인데 10세기 초의 법령집(法令集)에도 3좌(座)의 신라 백제조상신(祖上神)이 기록되어있다. 이것은 일본민족이 거의 우리의 유민임을 말하는 것이다.
 
한편 한국역사상 가야(伽倻) 의 분국(分國)인 미마나(任那)가 일본에 가서도 독특한 천황사상(天皇思想)을 제창하였는데 삼국유사(三國遺事 卷二, 駕洛國記)에 황천(皇天), 상제(上帝), 황후(皇后), 삼성(三皇)등의 문구가 많다. 미마나(任那)는 가야(伽倻)의 분국(分國)이고, 가야가 일본에 세운 식민지임을 여실히 말해 준다. 일본에 처음으로 건너간 한민족(韓民族)은 기마민족(騎馬民族)의 가야인(伽倻人)이었다. 이때 일본인은 말(馬)을 처음 봤다고 했다.
 
가야를 못 잊는 망향(望鄕)의 가야유민들
 
여기서 유의 할 점은 일본인들은 가야가 신라에 병합되었기 때문에 흔히 가야와 신라를 같은 나라 [(가야(伽倻)=신라(新羅)]로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가야(伽倻)를 미나마(任那)라고 부르며 옛적에 가야인이 규슈(九州)등에 만든 가야(伽倻)의 식민지(植民地) 미나마(任那)와 혼동하고 있어서 우리의 생각과는 180도 다르다.
 
그런 잘못된 생각으로 가야(伽倻)를 미나마(任那)로 잘못 부르는 것 때문에 일본 측에서는 그들이 떠난 고향이 미나마 일본부(任那日本府)란 게 설치되었던 곳이라 생각한 것이다. 미나마일본부(任那日本府)는 일본이 내세우는 허구의 기관이며 이런 기관은 없었고 일찍이 가야국(伽倻國)의 유력한 주력분자들이 왜의 땅으로 건너가서 일본국건설에 참여했다.
 
이들은 가야(伽倻)가 이미 망해 신라(新羅)에 병합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떠나온 고국(故國) 한반도(韓半島)안의 일을 잊지 못하고 과거에 살았던 구역을 엉뚱하게 다시 찾아야 한다는 꿈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옛 고국(故國)을 회복(回復)하는 일을 소위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의 지배(支配)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긴메이(欽命)일왕은 571년 대담하게 신라에 사신을 보내 가야(일본이 임나라고 부르는)를 멸한 이유를 묻고 “신라를 쳐부수고 임나를 다시 세우라”고 유언했다. 그리고 일본 사서에는 가야국이 완전히 멸망하여 신라에 병합 한 후에도 조공이니 공조니 하는 것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본인들이 임나지배의 꿈을 완전히 버리고 아주 단념한 것은 일본군이 나당연합군에게 패망한 덴지천황(天智天皇) 이후였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은 DNA적으로도 상당수 같은 조상을 둔 가까운 종족임에는 틀림이 없다. 톳도리 대학(島取學)의 이노우에 다카오(井上貴央)교수와 도쿄대학(東京大學)의 도쿠낭아 가쓰시(德永勝士)교수는 인간유전자를 조사한 결과 일본인은 한국인과 중국에 사는 조선족에 가장 가까운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일본인의 86%가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우리가 어디까지나 본체(本體)이며 일본은 한국에서 역사적 우연에 의해 떨어져 나간 종족으로 역사의 깊이가 다르고 정신도 완전히 우리와 다르다. 그들의 주발상지(主(發祥地)는 바로 우리나라이고 국가성립과 문화와 문물제도에 있어서나, 농경(農耕)등 세계에 유례가 없는 전적인 도움을 받아 점차 발전했음을 부인 할 수 없다.
 
한 예로 일본은 천황제를 하고 있는데 이 황제제도도 우리가창조한 것이다. 중국은 진시황(秦始皇)이 처음황제라 주장하나 이것도 역사 무지다. ‘천자(天子)라는 칭호(稱號)가 이적(夷狄)이 창조한 것이요, 이적(夷狄)은 천신(天神), 지신(地神)의 피를 받은 민족으로 자처함으로 천자(天子)라고 하는 칭호를 창조하였다’고 분명히 중국 채옹(蔡邕)이 저술한 독단 권상(獨斷 卷上)에 [天子夷狄之所稱 父天母地故 稱天子]라 하였다.
 
그러나 오늘의 일본이 한국이 아닌 것처럼 현재의 일본은 독자적인 문화를 가진 나라다. 우리는 과거 천수백년동안 일본을 은혜(恩惠)와 위엄(威嚴)으로 대해왔다. 그러함에도 일본은 과거 자신들이 유민(流民)의 된 원한(怨恨)을 골수(骨髓)에 품고 있는 민족이기에 우리에게 대하는 것은 어미의 젖을 먹고 자란 아들이 망나니같이 800백 수십 회가 넘는 왜구(倭寇)의 침입을 비롯해서 못된 일만을 많이 해온 것을 볼 수 있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윤내현, 박선희, 하문식 공저 ‘고조선강역을 밝힌다,’.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유우찬 ‘마두부활과 되마사상’.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高橋徹 古代の遠近法,. 猪俣幸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사회과학원 조선고고학 총서 52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과 북방주민들’.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외 다수서책을 참조하고 본문을 그대로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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