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들이 위서 낙인 신황기…백제인 선조, 우리학계 외면

입력 2016-01-03 11:3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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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들어가며 - 고사기·일본서기 날조된 것
 
일본이 심어놓은 식민사관은 우리국민의 가치관을 변질시키고 그 결과 내외동포를 포함한 8000만명이 하나의 민족적 목표로 결속을 못하고 있다. 광복 70년이 되어서도 뚜렷한 민족적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 우리의 주변상황을 보면 너무 실망스러운 일도 하나둘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우리가 고대부터 선진민족으로 인류를 지도하고 선도한 위대한 민족임을 자각하고 거창한 민족적 숙제와 인류적 난제를 타파하여 옛날의 영광을 재현 시켜야 함을 통감한다.
 
우리는 삼국시대부터 외침을 당할 때 마다 중요한 사료(史料)가 소각되고 유실되어 오늘에는 고대의 빛나는 우리 선조의 역사를 다 잃어 바린 결과 지난 역사의 영광을 제대로 후손들에게 전수시키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5대 문명을 일으키고 한민족의 고유한 정신문화의 시원(始原)이 우리 한민족(韓民族)에 의해 일으킨 위대한 역사와 문명을 망각하고 있는 것은 비극이다.
 
오늘은 일본의 <고사기>나 <일본서기>보다 100년 전에 쓰여 진 <일본 천황가(天皇家)> 7000년의 역사 <신황기(神皇紀)>를 살펴봄으로 일본의 <고사기>나 <일본서기>가 삼류소설만도 못하는 왜곡된 역사라는 것을 살펴보고 져 한다.
 
1200년 땅속에 고문서 신황기 나와 일본의 허구역사 입증
 
일본역사를 연구하는 자라면 일본역사의 상반(上半)은 바로 한국역사임을 잘 알 것이다. 최근에 일본에서도 알려지지 않았던 비장(秘藏)되었던 비서(秘書)들이 나오고 있는데 우리한국의 학자들도 이를 알 필요가 있다. 그 중에도 한일(韓日)의 고대역사를 알 수 있는 <일본 천황가(天皇家)> 7000년의 역사 <신황기(神皇紀)>는 그 비중(比重)이 매우 큰 비서(秘書)이다.
 
1890년경 1200년간 후지산(富士山) 지하서고(地下書庫)에 있던 미하시다 분쇼(宮下文書(神皇紀)는 미와요시히로(三輪義熙)에 의해 세상에 나왔다. 이 미하시다 분쇼(宮下文書(神皇紀)는 미하시다(宮下家)의 보물이다. 이 문서는 일본의 고대사가 다 거짓이라는 사실을 잘 밝혀준다. 최태영 선생은 직접 미하시다가(宮下家)를 방문하여 대밭 지하건물속의 금고 안에 있는 미하시다 분쇼(宮下文書(神皇紀)의 두루마리를 직접보고 온 소감을 들을 수 있었다.
 
‘나무상자에 보관된 두루마리는 첫머리가 없었다.’고 말하시며 전에 선생이 고마지자(高麗神社)를 답사했을 때 본 약광(若光)의 59대 족보와 역사도 나무상자였는데 첫머리가 없었는데 미하시다 분쇼(宮下文書(神皇紀)에도 좀이 먹었는지 알 수가 없지만 아마도 그 첫머리는 언젠가 일부러 없앤 것 같았다고 술회하고 있었다. (‘최태영 인간단군을 찾아서’ 260면 참조 인용.)
 
이 미하시다 분쇼(宮下文書(神皇紀)는 미하시다가(宮下家)에 전래하였다는 고문서의 총칭이다. 그런데 일본학자는 이 문서도 태고(太古) 인류발상(人類發祥)의 성지(聖地), 일본야마도(大和朝廷)에 선행하는 후지왕조(富士王朝)의 중심으로서 장엄(莊嚴)한 신대종묘(神代宗廟), 아조산대신궁(阿祖山大神宮)이 진좌(鎭座)하고 있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미하시다 분쇼(宮下文書(神皇紀)는 가야계(伽倻系) 한국인으로 일본의 실제통치권자였던 소가(蘇我)가 썼는데 일본은 이것도 한국에서 간 사실을 숨기려고 표면적으로 진시황(秦始皇)의 명을 받아서 동해의 선경(仙境)을 찾아 불로초(不老草)를 구하러 다닌 서복(徐福)이 쓴 것같이 위조해서 알렸다. 이는 역사날조이다. 서복(徐福)이 쓴 것이 아니고 가야 계후손이 쓴 것이다.
 
서복(徐福)에 대해서는 중국의 정사(正史)인 <사기(史記)>, <후한서(後漢書)>등에 나온다. 그러나 그는 중국 강소성(江蘇省) 출신으로 어떻게 우리 한국역사를 안다는 것인지 앞뒤가 안 맞는다. 웃기는 일이다. 여기서 소가(蘇我) 가문(家門)이 마지막 주자(走者) 소가 우마코(蘇我馬子)와 소가 이루카(蘇我入鹿)가 백제계 정적들에게 어떻게 살해됐고 그의 시대가 막을 내렸는가를 생각하면 이런 위장(僞裝)도 이해가 가는 면이 있다.
 
미하시다 분쇼(宮下文書, 神皇紀)의 주된 내용
 
이 문서는 일본궁궐에도 없고 알 수 없었던 문서이다. 미하시다 분쇼(宮下文書, 神皇紀)의 내용은 일본의 신격화하고 전설적인 것과는 달리 그 내용에 신적(神的)인 것은 없고 매우 합리적이며 대륙한국의 일과 일본열도의 일을 구분하여 서술하고 있다. 그 기록은 바로 ‘백제인이 일본에 와서 일본인을 깨우쳐 문화를 전하고 이어서 천황(天皇)이 되었다’는 내용을 쓰고 있다.
 
이 책에는 몇 대부터 몇 대까지가 백제인이 즉위한 왕인지 그 시대 가계(家系)가 자세히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 문서는 미와 요시히로(三輪義熙)가 1921년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로 출판하였다. 당시 일본 신문은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日本書紀)>를 뒤집는 진짜역사서가 나왔다고 대서특필하였다. 조선총독이었던 사이토(齊藤) 당시 내무대신이 이 책을 보고 감동하여 후지문고(富士文庫)의 수석고문이 될 정도였다.
 
이 책에는 한국인이 일본국토에 이주하기 이전의 통치자들 신황(神皇) 이름이 기재되어 있고 신황(神皇)이 일본 땅에 온 후의 역사는 신황(神皇)과 그 황후(皇后)며 자녀수와 친족의 이름까지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그때까지 신비적으로 전해진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의 가공(架空)의 신화(神話)에 역사적 근거를 제공하였다.
 
‘이것은 사학(史學)의 원년(元年)이요 빛나는 상가야 왕조사(上伽倻王朝史)의 정당한 복권(復權)이었다.’ 국사를 과학으로 배우고 일본민족으로서 자부심을 가지면 신황기(神皇紀)를 부인할 아무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신황기(神皇紀)의 발간은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를 바이블(Bible)로 맹신(盲信)하고 국민을 속이고 사학(史學)을 가장(假裝)하고 있던 학노(學奴)들을 극도로 자극한 것이 되었다.
 
그래서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日本書紀)에 기생(寄生)하는 교직(敎職)과 신직(神職)의 학노(學奴)들은 실직될까 봐 맹렬한 반론을 일으켜 <신황기(神皇紀)>는 일본 국사를 파괴하는 위서(僞書)로 몰아서 이를 말살(抹殺)하지 않고는 자기들이 살아남을 수 없고 죽는다는 각오로 임하였다.
 
당시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군부(軍部)는 허구의 신국사상(神國思想)을 만들어 무모한 침략전쟁으로 일본국민을 이끌어가고 있었다. 이 군부의 군인들은 일본왕가(日本王家)가 한국에서 이주했다는 사실을 좋아하지 않았다. 또한 인정하려들 능력도 없었다. 이 때문에 군부는 <신황기神皇紀>에 위서(僞書)라는 낙인을 찍었던 것이다.
 
신황기(神皇紀)는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日本書紀)보다 1백년이나 먼저 쓰여 졌다. 일본에서는 이도국(伊都國)을 야마다이국(邪馬臺國)이라 한다. 이 고문서는 야마다이국(邪馬臺國)논쟁을 일으킨 위지(魏志) 왜인전(倭人傳)보다 50년 일찍 쓰여 졌다. 그러나 일본국수주의자들의 반발과 일본 군부(軍部)에 의해 거짓위서(僞書)로 했다.
 
이것은 진리에 대한 테러며 죄악행위다. 당시 학노(學奴)와 군부는 그런 일을 눈 하나 깜짝 않고 실행했다. 그 결과 지금 일본의 역사는 허구에서 허구로 왜곡과 변조, 조작의 역사로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때문에 일본 역사는 믿을 것이 못되는 역사로 세상에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본은 여전히 지금도 역사왜곡은 계속하고 있다.
 
한편 신황기(神皇紀)의 저자 미와요시히로(三輪義熙)는 ‘여러 천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상가야 왕조(上伽倻王朝)의 존재를 알게 된데 경천동지(驚天動地)의 느낌을 받았다’고 술회 하리만큼,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는 허구가 많아 사서(史書)라고도 할 수 없는 왜곡된 ‘권력이동 사’에 불과 한 것이다. 일본 학자들도 이 신황기(神皇紀)를 본 학자들은 일본역사가 천년이나 왜곡된 것을 인정하고 고대사를 다시 연구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학자는 이 신황기(神皇紀)를 본 학자도 몇 되지 않은 손꼽을 정도다. 최태영 선생과 김정섭 선생을 비롯하여 정해성 선생, 류운상 선생, 이정덕 선생, 김의식 선생, 전홍섭 선생이 이 신황기(神皇紀)를 알고 있다. 그래서 ‘조선사편수회’의 조작 왜곡된 역사만을 역사로 아는 다대수 식민사관의 사람들은 일본이 왜곡하고 조작된 역사만을 금과옥조로 역사무지가 하늘에 닿아 있다.
 
그 결과 이 나라의 역사를 황폐화 시키고 있다. 이제 우리도 달라질 때가 되었다. 그런데 그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은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사는 사실 그대로 바로 써야 올바른 역사이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일본의 고대사는 우리한민족의 역사인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윤내현, 박선희, 하문식 공저 ‘고조선강역을 밝힌다,’.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유우찬 ‘마두부활과 되마사상’.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高橋徹 古代の遠近法,. 猪俣幸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사회과학원 조선고고학 총서 52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과 북방주민들’.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외 다수서책을 참조하고 본문을 그대로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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