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우리는 일본의 고대사를 우리의 고대사 같이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일본고대사의 특징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일본 고대사의 특징은 무엇인가? 일본학자 중에는 일본 고대사를 초고대사(超 古代史)라고 하는 학자도 있다.
그것은 일본은 상고사가 없고 고대사 역시 우리의 한민족이 건너가서 일본을 정복 지배한 역사이기에 구별하기 위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일본 고대사는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서 보듯 신화(神話)로서 다루고 있다. 즉 신대(神代)에 관한 전승(傳承)이 일본 고대사에서는 다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의 고대사(古代史)라고 말해지는 문헌 중에는 중세나 근세에 관한 기록도 포함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새로운 시대에 관한 기록은 어디까지나 그 문헌을 전하는 세력이 신대이래(神代以來)의 전통을 어떻게 후세까지 계승해 갔는가를 나타내는 것이며 테마가 되는 것은 <신대(神代>에 관한 전승(傳承)인 것이다.
여기서 초고대사(超 古代史)란 바로 신대사(神代史)라고 말할 수 있다. 원래 신대(神代)라는 것은 본래는 역사이전에 속하는 계념을 근대적으로 말을 바꾼 것을 초 고대(超 古代)라 밖에 할 수 없기에서다.
한편 일본의 초고대사(超 古代史)가 역사 이전을 대상(對象)으로 하는 이상 거기에는 일본역사와 다른 시간 개념이 적용할 수밖에 없다. 초고대사(超 古代史)는 어느 것도 고대 중세에 몰락한 씨족(氏族)간에 전해진 문헌이다.
예컨대 <상기(上記)>는 구주(九州)의 쟁탈전에 있어서 도진(島津)씨에게 패한 대우(大友)씨의 전승역사(傳承歷史)이고, 후지고문헌(富士古文獻)은 원래 진토크덴노(仁德天皇)와의 황위(皇位)싸움에 패한 오야마(大山守) 일족(一族)의 전승역사(傳承歷史)이다.
야마토(大和時代)의 역사서인 대성경(大成經)은 대화개신전야(大化改新前夜)에 멸족된 소아(蘇我)씨와 성덕태자(聖德太子) 일족(一族)의 전승역사(傳承)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한다면 일본의 초고대사는 패자(敗者)에서 본 또 하나의 역사이다. 오늘은 일본고대사의 고대문헌과 일본학자의 객관적인 견해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고서(古書) 다케우치문서(竹內文書)에서 보는 일본고대사
먼저 상기(上記)와 다케우치문서(竹內文書)는 똑같은 내용의 표리(表裏)와도 같다. 다케우치문서(竹內文書)는 다케우치고마로(竹內巨磨) 개인소장 문서로 전해져 왔다. 상기(上記)는 고사기(古事記)가 압축한 것을 여로대로 펼쳐서 설명한 것으로 고사기(古事記) 계통에 속한다고 말 할 수 있다. 즉 단군의 손이 일본에 건너와 그 73대손이 진무천황(神武天皇)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요시다 하치로(吉田八郞)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즉, “상기(上記)에 의하여 계산하면 일본의 진무덴노(神武天皇)는 니니기노미코토(瓊瓊靈神)이래 상가야앙조사(上伽倻王朝史)의 73대손이다. 진무의 조부(祖父)가 제70대, 진무의 부(父)가 71대, 72대는 진무의 형으로 갇힌 몸으로 즉위하여 전사하였고 73대진무가 일본 제1대왕이 된 것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진무천황(神武天皇)이 왜(倭)를 개국하여 일본 제1대 왕이 된 것이란 설명이다.
이에 대하여 가시마 노브루(鹿島 昇)가 말하는 다케우치문서(竹內文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실크로드 역사에 대하여 말하자면 그것은 일본국내의 역사는 아니다. 다케우치문서(竹內文書)는 단군(檀君)국가를 기술(記述)하고 있다. 그것이 일본 열도의 역사로 기록한 것으로 보는 것은 무리다. 단지 거기서 왔다거나 그곳을 통과해서 왔다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다. 민족이동의 결과 이곳은 망명지이자 이동한 것이 된다.”
단군조선에서 일본으로 간 사람들이 단군조선의 역사와 그 이전의 실크로드역사를 일본의 일로 기술(記述)하였다는 것이다. 미야시다문서(宮下文書)의 경우는 대륙시대(大陸時代)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일본열도의 역사가 아니라 일본민족의 역사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다케우치문서(竹內文書)도 일제(日帝)는 위서(僞書)라고 해서 탄압함은 물론이다.
수진전(秀眞傳)에 대한 학자들의 평가
수진전(秀眞傳)은 우수한 진짜 전기역사(傳記歷史)라는 뜻이다. 상가야앙조(上 伽倻王朝史)의 뿌리는 수진전(秀眞傳)에 근거한다. 일본서기(日本書紀)의 원전(原典)이라고도 한다. 마쓰모토 겐노스케(松本善之助)가 도쿄 골동상(骨董商)에서 수진전(秀眞傳) 원전(原典)의 일부를 발견해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소장자(所藏者)의 친척 한사람이 일부를 빼내어 골동상(骨董商)에 내놓은 것을 마쓰모토 겐노스케(松本善之助)의 눈에 띄어 세상에 나온 것이다. 그런데 역사학자가 그 책의 근본을 찾아 들어가니 소장자의 자손들은 이 문서를 잘 간수해 오다가 “조상들의 물려준 책 더럽히면 안 되니 불을 놓자”고 해서 태워버린 직후였다.
수진전(秀眞傳)은 천(天), 지(地), 인(人)의 권으로 되어 있다. 처음의 두 권은 오모노누시구시미카타마(大物主櫛甕玉命)가 역사적 문서부분은 오타 다네코(大田根子)가 편했다. 예부터 역사서를 만드는 것은 대체로 정권이나 왕조가 변한 때이다. 신의 체계와 왕의 체계를 하나로 짜낸 권리증서 같은 사서로서 오늘날의 사학이 상정하는 사서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일본역사에서는 계도(系圖) 위조가 주제가 된다. 오타 다네코(大田根子)는 왕조가 바뀌고 난이 일어나자 신구 양정권이 만족 하도록 만들어서 한 계통의 왕조가 존재한 것처럼 만들었다. 내란을 평화적으로 수습하기 위해 타협하여 역사를 위조한 것이다.
수진전(秀眞傳)의 형성연대는 오모노누시구시미카타마(大物主櫛甕玉命)가 야요이(彌生) 시대쯤 만든 것을 그 후 미와(三輪秀聰)가 적당히 선집(選集)해 인(人)의 권으로 만들었다고 보고 있다. 수진전(秀眞傳)의 주요주제 또한 “일본역사가 아닌 한반도와 실크로드의 역사이고 그 역사를 일본사로 차용했다”는 것이 가시마 노브루(鹿島 昇)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아고기요히코(五鄕淸彦)는 “모든 것은 이입(移入)된 것은 아니며 순수한 일본 것도 있었다.”면서 이는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원문을 정밀히 점검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수정된 부분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이르다는 것이다.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日本書紀)와의 관계
그렇다면 수진전(秀眞傳)은 일본서기(日本書紀)의 제기(帝紀), 구사(舊辭)와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마쓰모토 겐노스케(松本善之助)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수진전(秀眞傳)이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日本書紀)의 제기(帝紀), 구사(舊辭)는 아니다. 훨씬 전에 수진전(秀眞傳)은 한문으로 번역 되어 있었다. 이 시기는 한자가 일본에 들어온 오진덴노(應神天皇)때쯤일 것이다.”
“그때 활동하던 귀화인(바다 건너온 한국인)들은 일본 내의 여러 가지 옛것들을 바르게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또한 그 당시의 귀족자체가 귀화인들과 같은 사고(思考)를 하는 자들이었음으로 일본의 고대전통을 충실하게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수진전>이 한문 번역된 오진덴노(應神天皇)대 제1기에 벌써 그 내용이 10분의1쯤으로 삭제되었다고 본다.
그 삭제된 것을 본으로 삼아 이번에는 쇼토쿠(성덕태자(聖德太子)가 손댄 것이 <고사기> <일본서기>의 본이 되었으리라. 여기에 일본 내 호족들 역사가 합해져 <고사기>, <일본서기>가 되었다고 이해 할 수 있다.
여기에 가시마 노브루(鹿島 昇)가 말했다. “바다를 건너간 한인들은 귀화가 아니라 도리어 입본의 본체(本體)였다. 그러면 선주민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시점에서 선주민은 거의 다 피살 되었다고 밖에 생각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들의 수사(修史)에 영향을 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쓰여진 문자는 지금의 가나(カナ)가 아닌 고대문자이다. 일본의 고대문자 도요쿠니(豊國) 고자(古字)보다 새롭고 인간의 지식이 상당히 발달된 시기의 표음문자 중에서도 자음 모음으로 된 가장 발달된 구조의 문자이다.
우리 한인들은 단군시대에 이미 한글의 원형인 <가림토>를 사용 했다고 <환단고기(桓檀古記)>에 기록 되어 있다. 최후에 생긴 <가림토>가 모양만 변형 된 것이 <수진전(秀眞傳)>문자라고 이해하면 좋으리라 생각한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윤내현, 박선희, 하문식 공저 ‘고조선강역을 밝힌다,’.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유우찬 ‘마두부활과 되마사상’.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高橋徹 古代の遠近法,. 猪俣幸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鄭吉善, ‘鮮卑의 起原과 興亡에 대한 硏究,.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사회과학원 조선고고학 총서 52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과 북방주민들’.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외 다수서책을 참조하고 본문을 그대로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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