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초고대사 왜곡 이론(異論)…우리 학계 일각 모른 척

입력 2016-01-17 11:54:08

원문 링크

 ▲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들어가며 - 한일역사 잘못은 우리학계 연구태만에 기인
 
일본은 정사(正史)에 없는 왕조의 역사를 전하는 나라다. 예컨대 기(記) 기(紀)에서는 진무덴노(神武天皇)의 부(父)로서 1대만을 신(神)으로 하고 있으나 이미 밝힌 대로 상기(上記-うえつふみ), 다케우치문서(竹內文書), 후지고문서(富士古文書), 구가미문서(九鬼文書) 등에서 단군의 73대의 손이 일본왕조를 이룬 것을 말하고 있다.
 
일본 학자들도 진무덴노(神武天皇)에 해당하는 인물이 실재 했는가에 대해서 그 연대가 조문(繩文) 야요이(彌生)의 교체기에 해당한다고 역사를 제대로 연구한 학자들은 생각하지 않는다. 한편 일제에 의해 환국과 배달국은 아예 거론조차 않았고 단군조선도 신화로 돌리며 단군조선을 절반이하로 절단하고 끊어 놓은 것을 그대로 하려는 대다수의 왜곡역사도 그대로 수정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일본학자들은 우리역사를 왜곡한 것을 다 알고 일본의 고대역사는 조작된 역사로 그 연대나 지역과 소재가 정확 하지 못하고 그 사실들이 다 왜곡 조작 된 것임을 말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일부 학자들은 아직도 일제의 역사왜곡을 그대로 견지하려고 하는 것은 연구부족에서 그 모습은 개탄을 금치 못한다.
 
일본에도 상기(上記)에서는 풍후(豊後), 아소(阿蘇), 다케우치문서(竹內文書)에서는 월중(越中), 후지고문서(富士古文書)에서는 후지(富士), 수진전(秀眞傳)에서는 근강(近江), 구가미문서(九鬼文書)에서는 이즈모(出雲), 동일류외삼도지(東日流外三郡誌)에서는 진경(津輕)으로 그 어느 것도 신화(神話)에 등장하지 않은 지역이 고천(高天原勢力)과 적대관계에 있었던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것인 양 을 말하고 있음도 본다.
 
그러나 이것은 대륙의 지배를 은폐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요시다 다케히코(吉田武彦)는 고대인에 있어서 중요한 성역이었던 비아호(琵琶湖), 아소산(阿蘇山) 등이 그 어느 것도 기기신화(記紀 神話)에 등장하지 않은 것에 착목(着目)하여 이러한 지역이 기기 신화(記紀 神話)의 신화권(神話圈)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를 제기 하고 있는데 너무 황당한 내용들은 냉소를 자아내게 한다.
 
일본고대사의 특징의 하나는 기기(記紀)에 있어서 [신대(神代)]라고 하는 시대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대(神代)] 그것은 신화(神話)의 세계이다. 분명한 것은 일본왕조역사의 연대는 신화의 시대가 아니다. 그런데 지금의 ‘일본사’는 기기신화(記紀 神話)를 주로해서 구성 하고 있다. 오늘은 계속해서 일본이 왜곡한 역사의 실체를 살펴보고 져 한다.
 
일본고대사 신화는 광범위에 걸쳐 있다
 
기기신화(記紀 神話)이외에도 일본 고대사의 기술(記述)은 야마도 야마토 조정(大和 朝廷)이외의 신화를 전하고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일본학자도 지적하고 있는데 일본의 [신대(神代)]라고 하는 일본의 건국시대는 신화의 시대가 아니다. 일본역사가 짧은 것을 신화로 포장하며 역사를 조작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죄악이다.
 
여기서 요시다 다케히코(吉田武彦)는 종래의 역사학(歷史學), 신화학(神話學)을 지배하고 있었던 근기천황가(近畿天皇家=大和朝廷) 일원사관(一元史觀)으로부터 일본열도내의 복수왕조(複數王朝)의 병립(竝立)을 인정하는 다원사관(多元史觀)에의 전환을 제창하고 있다.(多元的古代史の成立 上, 下). 또한 초고대사의 전승도 금후 이러한 입장으로부터 다시 한번 바로 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역사는 사실에 바탕을 둬야 한다.
 
일본고대사에 있어서 신대(神代)의 신(神)들은 세계 중에 광역에 걸쳐서 활략하고 있다. 일본의 기(記), 기(紀)에 있어서는 겨우 ‘스사노오노미코도(素盞鳴尊)가 신라와 일본을 왕래했다.’ 또는 진무의 형 이나이(イナイ)가 소재불명인 상세국(常世國)-남방의 섬인 듯)에 향했다는 기록정도로는 신의 활약의 무대가 일본열도를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런데 일본초고대사의 신(神)들의 활약무대는 국외 해외에 웅비(雄飛)하는 일이 많아 그 지명들도 매우 구체적이다. 이 기록들은 한국의 웅비(雄飛)를 말하는 것이고 일본역사가 아니다. 일본 <상기(上記)>에서 국가 건국신화 등에서 기(記) 기(紀)에 볼 수 없는 많은 국명이 등장한다. 당시 부족 수준의 집단이 많았음을 말해준다.
 
일본의 역사서를 보노라면 에미노시마(エミノ島)는 북해도를 포함한 북방의 하이지(蝦夷地)라는 섬들과, 오키나와(琉球)로 보고 있는 다른 국명에 관해서는 판연(判然)하지 않다. 그리고 상기(上記)에는 고대 의 신들 밑에 국교를 구하는 북방의 민족이 일본열도를 침공해서 신(神)들과 싸웠다는 기술(記述)이 있다. 여기서 신(神)이라는 것은 왕 또는 추장 우두머리를 의미한다고 사료 된다.
 
북방민족인 고대한국이 일본을 정복하고 지배하며 식민화 한 것을 알 수 있다. 단군역사를 기록한 <단군세기(檀君世紀)>는 47대 단군의 세세한 업적을 전한다. <환단고기(桓檀古記)>에 편입된 이 기록은 신라 때의 역사서이다. 우리가 허망하게만 취급해온 단군대의 이야기가 일본 고대4서 4종을 맞춰보면 중복되면서 확실하게 드러난다.
 
단군조선과 일본의 상고사가 그렇게 접점을 이루는 것 중 하나는 섬승노(陝野奴) 즉 배폐명(裵幣命)과 장수언(長髓彦=ナガスネヒコ)의 내란 부분이다. 배폐명(裵幣命)이야기는 <환단고기> 중 <단군세기>에 나와 있는 기록이고 장수언(長髓彦=ナガスネヒコ)의 내란은 상기(上記)에 나와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단군조선이 왜를 쳤는데 일본은 진무덴노(神武天皇)가 동으로 동침(東侵)하니 장수언(長髓彦=ナガスネヒコ)이 기내(畿內)로 쫒기었다고, 왜곡하고 있다. 이 시대에 진무덴노(神武天皇)는 없었다. 우리가 왜(倭)를 친 기록들은 아래와 같다.
 
고대사에서 보는 우리가 왜(倭)를 친 기록들
 
단군시대 왜를 친 역사는 3대 단군 가륵(嘉勒) 때인 서기전 2173년 “반란을 일으킨 예읍의 추장 소시모리를 참하였는데 그 후손에 섬승노(陝野奴)라는 자가 있어 해상으로 도망하여 3섬에 의거하여 왕이라 칭하였다.”는 기록을 위시하여 35대 단군 사벌조(沙伐朝)(朝)에는 서기전 723년 “장수 언파불합(彦波弗哈)을 보내어 규슈(九州)의 구마소(熊襲)를 평정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36대 단군 매륵조(買勒朝에는 서기전 667년 섬승후(陝野侯) 배폐명(裵幣命)이 병선을 몰고 가서 왜인(倭人)의 반란을 진압하고 왜의 3섬에 왕을 칭 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이와 상당하는 일본상고사<상기(上記)>의 기록은 “조선인 선단 70척에 군대1000명을 싣고 규슈(九州)로 쳐들어와 장수언(長髓彦=ナガスネヒコ)으로 하여금 내란을 일으키게 하고 임금으로 내세웠다가 수십 년 후 평정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우리가 직접 와서 싸운 것이 아니고 규슈(九州)에서 장수언(長髓彦)이라는 유력한 세력가를 일으켜 왜왕으로 삼고 수십 년간 다른 대치세력과 전쟁을 벌인 것이라는 것이다. 이 때의 왜는 규슈(九州)에 활동하는 집단이었으며 지금의 일본 본토로 진출 한 것은 이로부터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라고 하고 있다.
 
이미 우리 한민족은 후일 일본에서 진무(神武)일왕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 왜의 지도자가 장수언(長髓彦)의 대치세력이었는데 진무(神武)일왕의 아버지 대에 일어난 이 전쟁에 진무(神武)집안 3대가 나서서 싸우다 두 형이 죽고 진무(神武)대에 가서 가까스로 수습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후일 스진(崇神)왜왕 대에 있었던 업적까지 덧붙여져 신격화 되는데 일본사의 믿을 수 없는 부분이다.
 
지금까지의 일본이 말하는 기록은 서기전의 일인데 연대와 임금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은 일본의 가공(架空)의 역사를 말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와세다 대학의 미쓰노유(水野 祐)교수도 서기전 660년에 진무(神武)가 일본을 세웠다는 것은 조작이라고 일본역사는 978년이 조작이라고 밝히고 있을 정도다. 일본의 첫째 왕은 응신(應神)이다. 응신應神)은 서기363년에 나라를 세웠다.
 
여기서 배폐명(裵幣命) 혹은 섬승노(陝野奴)라고 불린 존재의 왜 정벌은 매우 복잡한 역사로 일률적으로 논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가서 왜를 정복한 것은 사실이다. 선단 규모가 70척~500척인 것으로 보아 국가적으로 왜를 치러간 기록은 부여 때도 나온다. 일본 상고사 연구자들도 이 사실을 주목한다.
 
여기서 분명히 밝히는 것은 일본의 첫째 천황이라는 진무(神武)의 가계는 상기(上記)에 의하면 일본에 온 단군의 손의 73대가 됨으로 종래는 왜 땅의 통치권을 두고 우리나라 종족끼리 전쟁을 벌인 것이다. 일본 학자들은 이를 두고 ‘대리전’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상기(上記)와 천황가(天皇家) 7000년의 역사인 신황기(神皇紀) 등의 고서를 통해 분명해 졌다. 단군조선시대부터 일본은 완전히 우리한민족이 가서 건설 한 것이다. 그 어느 누구도 이를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윤내현, 박선희, 하문식 공저 ‘고조선강역을 밝힌다,’.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유우찬 ‘마두부활과 되마사상’.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高橋徹 古代の遠近法,. 猪俣幸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사회과학원 조선고고학 총서 52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과 북방주민들’.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외 다수서책을 참조하고 본문을 그대로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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