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들어가며 - 민족생존보장은 주체성을 존중에서 출발
이스라엘 민족은 600년간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제국의 식민지로서 노예생활을 하고 400년간 선지자(先知者)가 없이 2000년간 유랑생활을 했다. 그 속에서도 그들은 사상을 견지함으로 오늘날 172명(2014년 기준)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민족이 되고 있다.
세계사를 보면 인류 역사상 가장 강대한 민족은 북방유목민족이었다. 그러나 그 민족은 문화 사상이 부족해 타민족에게 흡수돼 국가 형태가 사라지는 운명을 맞았다. 그러나 북방유목민족 중 불멸하고 오늘까지 생존한 민족이 있다. 바로 한민족(韓民族)이다. 문화사상이 있는 한민족은 다른 민족과 달리 전멸되지 않았다.
우리 한민족은 ‘인간사상(人間思想)’, ‘천민사상(天民思想)’, ‘중물사상(重物思想)’ 등 3대 사상을 갖고 있다. ‘인간사상’은 인화단결을 이룩하여 거국일치(擧國一致)로 외적에 대항하고, ‘천민사상’은 민족적 자존심을 북돋아 불굴의 투쟁을 전개하고, ‘중물사상’은 경이적인 무기를 발명하여 외적을 제압하였다.
우리는 931회의 외침에 저항하고 불멸의 역사를 창조하였다. 그러나 조선조에 이르러 고유한 우리 문화사상을 배제하고 외래사상인 유교를 맹신하였다. 유교는 원래 배타적으로 인화단결을 이룩치 못한다. 유교는 ‘소(小)가 대(大)를 섬기는 천(天)의 도(道)’라 주장하여 사대사상(事大思想)을 조장하였다.
또한 유교는 공허(空虛)한 성리설(性理說)에 편향하여 물질을 무시한다. 고유한 인간사상을 배제하고 배타적인 유교를 신앙함으로 사색당쟁(四色黨爭)에 열중하고 고유한 ‘천민사상’을 배제하고 사대적인 유교를 신앙함으로서 중국을 대국(大國), 또는 본국(本國)·상국(上國)으로 받들고, 우리는 하국(下國) 또는 가지국(枝國)이라 칭하였다.
그리고 ‘중물사상’을 배제하고 경물적(輕物的)인 유교를 신앙함으로 서구의 물질문명을 거부하였다. 그 결과 일제에 의해 한일합병이라는 천고(千古)의 치욕을 자초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우리고유의 사상과 역사를 잊고 식민사관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오늘은 계속해서 일본이 왜곡한 고대역사의 실체를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학자들도 한국 상고사 인정하고 있다
지금 일본의 양심적인 학자들이 변하고 있다. 필자가 일본의 학자들의 연구모습을 보면 일본의 고대사가 우리역사로 대치되고 우리 상고사를 사실로 인정한 사실을 일본학자들에 의해서 밝혀지고 있음을 본다. 그리고 일본사가 왜곡돼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일본은 진무덴노(神武天皇)가 서기전 660년에 세웠다고 말하고 있으나 역사연구를 제대로 한 학자는 이를 부인한다. 현재 일본사는 일본고대사를 제대로 연구하지 않는 교직(敎職) 내지 신직(神職)자들만이 믿을 뿐이다.
한국의 상고사와 고대사의 단군1대의 시조신으로 단군조선도 ‘환단고기’ 등에서는 수십 대(代)의 왕조로서 그 역대의 왕의 이름까지 기록되어 있다. 즉 47대 2096년의 왕조를 기록하고 있는데 일본은 상고사가 없는 나라이기에 신화(神話)의 세계로 몰고 간 것을 본다.
그러나 일본의 교과서는 자기 조상의 역사를 다 외면 할 구 없음에서 상고시대, 고대사의 주역을 모두 신화로 가장(假裝)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도 기(記), 기(紀)의 시원신적신격(始源神的神格)인 환국을 기록하는 경향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일본 학자들도 지금은 환국시대와 배달국시대에 실재천황(實在天皇)이 있었다는 경향으로 방향을 잡고 기록하고 있음도 본다. 그들은 상고시대와 일본 진무덴노(神武天皇)이전을 신대(神代) 신화(神話)의 세계로 보다가 그리 할 수 없음을 밝히고 있다.
그들의 기록은 우리와 다소 다를지라도 승문초창기(繩文 草創期)인 서기전7500년 전 아메노미나가누시조(アメミナカヌシ(朝)가 129대 초대(初代)즉위(卽位)를 하였다고 밝히고 신화에서 역사(歷史)에로 전환(轉換)하였음을 말하고 있다.
특히 다케우치문서(竹內文書), 후지고문서(富士古文書)에서 그런 경향이 현저하며 이해할 수 없는 아메노미나가누시조(アメミナカヌシ(朝)이전의 천황사적(事績)까지도 1980년대에 와서는 상고사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그 후속연구를 기대하고 있다.
일본은 해방 후 우리와는 달리 아고 기요히코(吾鄕淸彦) 하라다 미노루(원전(原田實)등 많은 고대사 연구가들은 상고사와 고대사의 분기점을 구체적으로 찾으려고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우리와는 너무 대조적아라 우리의 사학계가 초라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국의학자들은 식민사관에 안주하고 있어 문제다. 특히 강단파 사람들은 환단고기(桓檀古記)도 제대로 연구도 하지 않으면서 무턱대고 위서(僞書)라고 비하(卑下)한다.
반면 일본 학자들은 이 환단고기를 통하여 일본의 역사를 바로 잡아가고 있다. 우리와는 정 반대의 현상이다.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 일본에서는 고사(古史)·고전(古傳) 연구가 활발하다. 우리나라의 사서(史書)인 환단고기(桓檀古記)를 접하고 그 내용이 일본의 고대사가 말하는 상가야왕조사(上伽倻王朝史)와 부합됨을 주목하고 깊이 연구하고 있다.
고대사의 연구를 많이 하고 저서를 펴고 있는 아고기요히코(五鄕淸彦)는 환단고기의 고대사와 접속부분연구를 ‘아시아의 비사(秘史)-지보(至寶) ‘환단고기(桓檀古記)’라는 글로 발표하고 있다. (일본의 ‘‘역사와 현대’’ 1980년 여름호). 그는 “군부나 신직(神職)이 개입한 역사나 ‘일본서기’ ‘고사기’는 진정한 역사가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가시마 노부루(鹿島 昇)는 해방 전에는 나당연합군에게 패한 백제의 왕자 풍장(豊璋)이 일본 땅에 온 뒤 일본 역사를 편찬 할 때 ‘상가야 왕조사’를 말소하고 한반도에서 이도국(伊都國)에 침입한 사실을 숨기고 일본왕가가 일본열도에서 자생한 것처럼 역사를 조작한 자였다. 그러나 ‘환단고기’를 보고 난 후 180도 바꿔서 말을 하고 있다.
실크로드사 연구가로도 유명한 가시마(鹿島 昇)는 ‘환단고기’를 일본어로 번역 출판하였다. 그는 다수의 고대사 전문가들이 “일본의 고사(古史), 고전(古傳)은 ‘환단고기(桓檀古記)’와 그 내용이 합치되며 ‘환단고기(桓檀古記)’와 비교·대조해야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 식민사관자들이 부끄러워할 일이다.
일본에 고대사연구가는 1978년 최영희(崔永禧-당시 국사편찬위원장)이 일본에 오셨을 때 필자와 같이 일본 헌정회관(憲政會館)에서 한일 학자세미나에 참석하고 말씀하시기를 일본에는 고대사 연구하는 자가 2만 명이 되고, 관심을 가진 일본국민은 32만 명이 된다고 하셨다.
부끄러운 우리 학계 이대로 좋은가!
일본은 우리 고대사를 자기나라 역사가 아님에도 이렇게 연구하고 있다. 여기서 상가야왕조사(上伽倻王朝史)는 서기전 3890년경에 상고시대 신시배달국시대 환웅18대 1565년과 서기전 2333년에 창건한 고조선의 단군47대 2096년간 실재한 서력기원 이후 실크로드를 지배한 부여,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로 이어지는 위대한 혈맥이다.
상가야왕조사(上伽倻王朝史)는 일본 열도에 존재했던 왕조는 아니다. 일본민족의 뿌리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조선과 실크로드, 중동에 걸쳐 있는 역사일 뿐이다. 그 왕조의 사람들이 일본으로 옮겨오면서 역사의 텍스트도 가지고 왔고 지명도 그대로 옮겼다.
그런데서 상가야왕조(上伽倻王朝)를 부인하는 것은 일본 국민으로서도 사실은 일본왕가(日本王家)가 왜의 섬나라에 자생한 미개한 민족의 자손이라는 식으로 계도위조(系圖僞造)를 하는 것밖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가시마 노부루(鹿島 昇)의 비판이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상가야 왕조를 부인하면서 상가야의 위대한 혈맥이 일본에서 자생한 것이었다고 하는 거짓역사에 의하여 일본 왕가가 메이지 이후, 일본은 외압에 대한 공포심을 완화해서 일본민족의 단결을 유지하고 고도의 자본주의 국가를 형성한 것은 무리이긴 했어도 역사의 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의 허구는 이상한 정황(情況)을 만들어 냄으로써 많은 희생자를 내게 되었다. 일제는 일본왕가(日本王家)가 자생왕조(自生王朝)라는 역사왜곡을 하며 그들의 왜곡한 허구(虛構)에 대하여 가장 위협이 되는 것은 한국의 사서(史書)들이었다.
이에 조선총독부는 한국의 모든 역사서와 자료를 약탈하게 된다. 교토대학의 이마니슈 류(금(今西 龍)를 내세워 이를 중심으로 22만수천 권의 사서(史書)와 대마도종가(宗家)에 전래하는 사서도 몰수하여 일본 궁내성문고(宮內省文庫)안에 감추어 버렸다.
또한 조선총독부직속기구로 ‘조선사편수회’를 설치하여 일본인 점무총감(政務摠監)이 회장이 되고 이완용(李完用)이 고문의 두목이 되어 장기간에 걸쳐 왜곡된 한국사35권을 완성하여 이35권을 한국사로 둔갑시킨다. 그러나 이35권은 왜곡된 위사(僞史)이다.
이 왜곡된 식민사관의 역사를 그대로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은 국가장래를 위해서도 바로 하여할 시급한 과제이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윤내현, 박선희, 하문식 공저 ‘고조선강역을 밝힌다,’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유우찬 ‘마두부활과 되마사상’.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高橋徹 古代の遠近法,. 猪俣幸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사회과학원 조선고고학 총서 52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과 북방주민들’.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외 다수 서책을 참조하고 본문을 그대로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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