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일본인들은 오래전부터 한국을 침략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어용학자들로 하여금 거짓역사를 만들기 위한 비뚤어진 학설을 주장했다. 즉 환국과 배달국의 상고사는 아예 없는 것으로 하고, 단군과 고조선의 역사를 신화라고 꾸미며 옛날 일본이 한국을 지배 했다고 사실과는 전혀 다른 180도의 거짓역사를 강요했다.
그것은 한국침략을 위한 서곡이 역사왜곡부터 시작 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총독부는 이마니슈 류(금(今西 龍)밑에 이병도(李丙燾), 신석호(申奭鎬)를 두어서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옛날에 환국이 있었다.”라는 문장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 “옛날에 환인(桓因)이 있었다.”로 고쳐져 있었다.
조선사편수회는 환국과 배달국은 물론 단군조선조차 신화와 전설로 돌려서 위조하려 했다. 조선사편수회가 만든 35권은 휴지나 마찬 가지이다. 그러나 이것밖에 모르는 자들은 이를 고수하려고 하나 이는 조상에 죄를 짓는 일이다. 선조들이 하늘나라에서 통곡을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것을 간파한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하여 고구려도 <지방정권>이라는 허무 명랑한 소리를 하고 있는가 하면, 일본은 <고사기>와 <일본서기>등의 고대 문헌에서는 7세기 일본에 관해서 확실한 것은 거의 없음에도 4~5세기 에 올라가서 왕의 즉위나 죽음도 분명치 않고 모르는 것을 조작해서 교재에 싣고 있다.
일본은 상투적으로 우리에게 대하는 원칙이 철저하다. 그것은 첫째, 우리나라의 유리한 사료에 대한 부정, 부인이고, 둘째가 사료에 대한 지나친 자의적인 해석이다. 셋째가 의도적인 사료의 은폐이다. 이것은 일본역사 전체에 이어지고 있다. 오늘은 일본의 역사왜곡과정과 그 실태의 일부를 살펴보고져 한다.
일본 역사 왜곡의 과정은 가설로 포장해 왜곡한다
일본은 야마토 정권(大和政權)의 성립과 그 발전, 아스카문화(飛鳥文化)의 성격 등 일본 고대사의 골격을 이루는 문제는 물론 여러 가지 사건이나 인물상까지 연구에 메스를 넣어 가설(假說)을 내세워 여러 가지 그럴 듯하게 포장한 것이 일본 역사다.
일본의 고대사 역사조작과정을 보면 너무나 간교한 수법을 쓰고 있음을 숨길 수 없다. 내세울 것이 없는 일본의 고대사는 거의가 어디까지나 가설이 아니면 억지로 조작한 역사이지 역사적 사실(史實)이 아니다. 가설은 가설일 뿐이다.
예컨대 4세기에 야마토 정권(大和政權)의 세력은 조선반도에 진출하여 미나마 일본부(任那日本府)를 두어 391년에는 백제 신라를 복속시켰다고 허무맹랑한 일본이 조선을 지배했다고 교과서에 싣고 가르쳤다. 그러니 이는 사실무근이다. 그런 적이 없다.
태평양전쟁 전에는 이런 식으로 ‘야마토 조정(大和朝廷)이 조선에 출병해 조선 남부의 경영(經營說)’에 따라서 기재하고 있었다. 이는 새파란 거짓 허구다. 이런 식의 서술이 안 통하면 가설(假說)을 내세워 사실인양 묘사하는 것이다.
이런 가설의 거듭하면서 학계의 통설이 되고 사실(史實)로서 중학교, 고등학교 교재에 등장하고 있는 것이 많았다. 위의 ‘야마토 정권(大和政權)이 조선에 출병해서 조선남부를 경영했다’든가, 소위‘[미나마 일본부(任那日本府)] 설(說)’도 그 중 하나이다.
그들의 지난날 교재를 보면, 중국대륙에 먼저 선주해 고대국가를 세우고 중국을 정복하고 지배한 우리를 ‘4세기에 고구려가 세력을 펼쳤고 남쪽에서는 백제, 신라의 두 나라가 세워졌다’고 유사 이래 중국의 지배하에 있던 조선이 중국의 내란상태를 이용해서 겨우 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는 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우리는 일본을 정복하고 지배한 나라이다
더구나 더 가관인 것은 ‘백제를 굴복시키고 고구려와 싸웠다’ 또는 ‘5세기가 되어서 고구려의 남쪽에 대한 압력이 강해지자 일본은 중국의 남조(南朝)에 사신을 보내어 일본이 조선반도의 남부를 지배하는 것을 중국에 인정시키려 했다’는 식이다.
이러면서 일본은 조선에 미나마 일본부(任那日本府)를 두어 이를 중심으로 대륙에 진출 했다는 것이다. 오로지 조선은 ‘역사적으로 자주성을 잃은 나라’로 밖에 묘사하고 있지 않았다. 역사왜곡도 이쯤 되면 가관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를 믿는 학자는 한국과 일본에도 지금은 거의 없다. 고대 일본은 우리가 가서 나라를 세우고 선진문물을 일본에 전한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이로서 일본조정의 힘이 강화되게 됐다. 이런 사실은 다 빼어버리고 허구의 역사를 조작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분명한 사실은 한국에서 많은 철재를 가져가서 목재를 대신한 철재의 농기구를 사용하면서 호족(豪族)의 생활이 풍요롭게 됐고, 양잠 면직(綿織), 도예(陶藝), 조선(造船), 토목 등이 전해졌다. 가야가 처음으로 말을 일본에 가져가서 춘추전국시대 일본전사(日本戰士)의 말을 사용한 전법(戰法)도 전달됐다.
우리는 미개한 일본을 개화시키고 일본의 발전에 고대부터 이들을 문명에로 인도했다. 그것은 나당연합군에 패망한 덴지천황(天智天皇. 662~671) 이후 한국과 일본이 상당수 같은 조상을 둔 가까운 종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본체(本體)이고 일본은 갈라져 나간 종족이기는 하나 우리는 어미가 젖을 먹이듯 일본을 돌보았다.
일본조상의 주 발상지는 바로 한국이고 국가성립과 문물제도에 있어서 세계역사에 유례가 없을 만큼 우리의 도움을 받아 점차 발전 한 것이 일본이고 우리는 수천 년 동안 일본은 은혜와 위엄으로 대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은 달랐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습성은 아직도 변치 않고 있다.
일본의 역사는 4세기 이전은 말할 것도 없고 4세기는 국가형태도 제대로 되지 않음에도 마치 일본 교과서를 보면 야마토 조정(大和朝廷)은 조선에 미나마 본부(任那日本府)를 둬서 조선을 식민지로 하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가야가 일본에 식민지를 둔 것을 거꾸로 꾸민 것이라는 것을 이미 밝힌 그대로이다.
있지도 않은 ‘고대에 조선출병과 조선남부의 경영설’은 일본 학계의 정설이 되어 중, 고 교과서까지 등장하고 있었으나 전후 한일양국의 학계는 그 누구하나도 이설을 믿는 자는 없다. 그러나 지금도 일본 근대사학의 체질은 바꿔지고 있지 않고 있다.
우리는 상고시대부터 중국과 일본을 정복 지배한 민족이다. 삼성기(三聖記)에 보면 “상고시대 우리나라의 강역(疆域)은 바이칼(Baikal)호(湖)를 중심으로 시베리아 대륙, 만주, 중국, 한반도, 일본열도에 이른다”고 하였다.
우리 역사는 변함없는 세계석학들이 말하듯 1만년이상의 역사를 가진 나라로 세계명문대인 하바드 대학, 예일 대 스텐포드 대학 프린스턴 대학, 펜실베니아 대학, 프린스턴 대학, 스탠포드 대학 그리고 캐나다의 맥길대학, 이태리국립대학 등, 에서 우리상고사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고구려만 해도 중국이 감히 ‘지방정권’이라 하는 데 그 고구려는 황제국가였다. 그 실체를 아래 보여줌으로 오늘의 글을 맺으려 한다.
역사에 나타난 황제국가 고구려의 위상(位相)
고구려는 ‘가장 밝고 높은 나라라는 뜻’이다. 이상국 전집(李相國全集)에 세인(世人)이 동명왕(東明王)을 천왕(天王)이라 칭했다. 동국(東國李相國全集 第三東明王) (註). 그리고 평남 순천군(順川郡)에서 고구려 천왕도(天王圖)가 발견됐다. 이것은 고구려의 천왕사상(天王思想)을 분명히 표시한 것이다.
그리고 동명왕(東明王)을 항상 천제(天帝)라 칭했다. 또한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동명왕이 천자의 자(子)로서 일광(日光)을 받아 출생했다고 해 본성(本姓)인 해(解)를 고(高)라는 성(姓)으로 갈았다고 했다. (三國遺事,卷一, 高句麗 註).
고(高)는 하늘 같이 높다는 천왕사사(天王思想)을 표시한 것이요 국명(國名)에 고(高)를 더하여 고구려라 칭한 것은 천왕(天王)의 국가(國家)를 표시한 것이다. 고구려(高句麗)의 천왕사상은 후대에 영원히 계승됐다.
19대 영락호태왕(永樂好太王)이라고도 부르는 광개토태왕(廣開土太王)이 천왕사상을 계승하여 황제국가를 건설한 것은 광개토태왕 비문(廣開土太王 碑文)에서도 볼 수 있다. 비문(碑文) 첫머리에 천왕(天王)의 자(子)라 명기(銘記)했다.
광개토태왕 즉위를 등조(登祚)라 기록했다. 등조(登祚)는 천자(天子)의 즉위에 쓰는 문구(文句)이다. 또한 영락(永樂)이라는 연호(年號)가 있다. 천자 황제가 연호를 칭하고 후왕(侯王)은 연호를 칭하지 못한다. 그리고 대왕(大王)과 태왕(太王)은 다르다.
대왕(大王)은 후왕(侯王)의 칭호에도 사용하고 태왕(太王)은 천자황제의 칭호에 사용하는 문구이다. 또한 [恩澤皇天, 威武柳彼四海]라 기록했다. 즉 은혜덕택이 천하만물을 사랑하는 천신(天神)에 비하고 위풍(威風)무력(武力)이 사해를 버드나무 다루듯이 쉽게 정복했다고 한 것이다.
이는 천자 황제의 모습을 표현하는데 사용하는 문장이다. 또한 왕토(往討)라 했다. 천자의 출전을 왕토(往討)로 하고 후왕(侯王)의 출전은 왕토(往討)라 칭하지 못한다.
그런데 세자(世子)라는 문구가 있다. 천자 황제의 자(子)를 태자(太子)라 칭하고 후왕(侯王)의 자(子)를 세자(世子)라 칭한다. 그러나 광개토태왕(廣開土太王) 당시에는 태자와 세자를 통용했다. 실 예를 들면 2000년 전에 저술한 태문공(태文公)을 세자라 칭하고 그 주(註)에 세자는 태자라 해석했다.
옛날부터 서민층에 전래하는 오랜 기간 전해온 세년가(世年歌)에 나오는 가사노래와 고시조(古時調)에는 위조가 없다. 특히 시조는 위조되어 서민층에 오래 동안 유행 될 수 없다. 동국(東國) 이상국집(李相國集)에 세인(世人)이 동명왕을 천왕(天王)이라 칭했다. (東國 李相國 全集 第三, 東明王 註)`
이상에서 보듯 고구려(高句麗)는 당당한 천자국(天子國)이요 황제국가(皇帝國家)로 발전해 세계를 지배하려는 이상(理想)이었던 것을 가리킨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윤내현, 박선희, 하문식 공저 ‘고조선강역을 밝힌다,’.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유우찬 ‘마두부활과 되마사상’.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高橋徹 古代の遠近法,. 猪俣幸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사회과학원 조선고고학 총서 52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과 북방주민들’.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외 다수서책을 참조하고 본문을 그대로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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