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백제에 따온 일본 국호, 거짓 역사 만들어 뒤통수

입력 2016-02-28 11:30:02

원문 링크

 ▲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들어가며 - 백제는 일본의 어버이 같은 큰 나라였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일제에 의해 왜곡된 역사가 판을 치고 있다. 고대사를 연구한 학자와 수능고사를 가르치는 강사들도 고조선이 마치 한(漢)나라에 의해 멸망한 양, 중국과 일본의 왜곡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가르치고 있음을 본다. 한심한 일이다.
 
고조선은 이미 살펴 본대로 한나라에 의해 멸망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저명한 칼럼니스트이며 많은 논평의 글을 쓰는 어느 언론인도 고조선이 마치 한나라에 망하고 한사군이 우리 한반도에 있었다는 양, 말하고 있는데 참으로 실망스러운 일이다.
 
이런 기사를 보노라면 일제가 왜곡한 역사가 얼마나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가를 실감하게 한다. 기자조선도, 위만조선도, 한사군도 없었고, 우리 역사와는 관계가 없는 것을 아직도 모르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왜곡된 역사만을 사실인양 알고 있다.
 
필자는 이미 고조선이 한나라에 의해 망한 적이 없고, 한사군 역시 한반도에 설치된 적이 없으며, 기자조선이나 위만조선이 우리와 관계가 없고, 예맥이 중국대륙에서 1000여 년간 중국을 지배하며 한나라가 한사군을 설치하자 26년 후 낙랑을 제외한 3군을 접수하고 지배한 것을 이미 다 말했다. 왜곡된 역사만을 믿는 것은 안타깝다.
 
이제는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았으면 한다. 사실이 아닌 것을 역사라 볼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오늘 말하려는 백제도 일본을 지배하고 일본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을 필두로 일본은 우리 한민족이 세우고 지배하며 일본문화 발전에 크게 영향을 줬다.
 
외국 학자들도 일본의 역사 왜곡이 열등의식에서 저질러지고 있음을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오늘은 일본을 지배하고 문화와 기술 등 일본에 많은 제도와 문물, 산성의 축조까지도 전수한 백제에 대하여 살펴보고져 한다.
 
백제는 태양과 같은 나라, 일본 국호도 백제에서 기인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멸망한 후 일본에 건너간 유민들은 일본문화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필자가 일본유학 시절 본 것은 일본인들은 이치에 맞지 않은 말을 하면 “구다라(百濟)가 없다(クタラナイ)”라고 했다. 왜 일본은 백제를 ‘구다라’라고 하는가!
 
일본에 있어서 ‘구다라’는 어떠한 나라였고 그 뜻은 무엇인가. ‘구다라(百濟)’는 ‘완벽하다’는 것을 말하고 또한 ‘구다라(百濟)’는 ‘큰 나라’라는 뜻인데 일본인에 있어서 백제는 완벽하고 완전하며, 큰 나라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일본역사를 보면 나당 연합군이 백제에 쳐들어 왔을 때 사이메이 여왕(齊明女王. 서기665~661년)이 백제로부터 원군지원을 요청 받았으나 죽고, 백제가 멸망한 후 의자왕의 아들 부여풍장(夫餘豊璋)이 사이메이(齊明)의 뒤를 이어 텐지왕(天智王)이 됐다.
 
이 백제의 후손인 텐지왕(天智王. 서기 662~671)때 당(唐)나라의 승인을 얻어 일본(日本)이라는 국호(國號)를 갖게 됐다. 그런데 여기서 일본이라는 것은 ‘구다라(百濟)’를 번역 한 것이라는 것이다.
 
‘구’는 태(太), ‘다라’는 태양이다. 즉, 백제는 일본에 있어서 ‘큰 태양’과 같은 나라였다. 일본의 국기(國旗)도 태양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왜 일본은 백제를 ‘구다라’라고 하는가! 그 뜻은 지금은 고인이 되신 영문학자이신 김주현 박사와 역사에 관한 대화 중 ‘구다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김주현 박사도 백제는 일본에 있어서 ‘큰 나라’라는 데서 나왔다고 했다. 고대 일본에 있어서 백제는 ‘큰 나라’인데 이 큰 나라를 거듭하다보면 큰 나라가 ‘구다라(百濟)’로 됐다고 했다. 그 진위는 학자에 의해서도 밝혀지리라 본다. 일본의 국호가 태양을 상징한 것이다. 이것도 태양과 같은 백제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제왕국 백제는 일본을 후국으로 대했다
 
고대 일본에서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일본을 지배했다. 그런데 ‘구당서(舊唐書)’ 백제에는 “백제의 세력이 남으로 바다를 건너서 왜(倭)에 이르렀다”고 쓰였다. “바다를 건너서”라 함은 백제가 일본의 해상권을 장악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바다 한가운데 있는 나라 일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해권이다. 그런데 일본해를 지배한 자는 일본이 아니고 백제였다. 그리고 “백제의 세력이 왜에 이르렀다”함은 백제가 일본의 바다를 장악하고 그 세력을 일본에 확대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백제가 왕인(王仁)박사, 아직기(阿直岐), 오경(五經)박사를 일본에 보내 일본문화를 개척하고 꽃피운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8세기 초에 나온 고사기(古事記)에 나타난 것을 봐도 백제가 일본에 준 혜택을 알 수 있다.
 
712년 왕인박사는 도일하면서 12가지 문물을 전했다. 천자문과 논어 5권, 차, 생화, 제주도의 벚꽃, 바둑, 칼, 검술, 예술, 공예, 가구, 옷, 종(鐘) 등이다.
 
일본의 문자도 백제인이 만들어 줬다. 한자를 간략한 가나(假名-カナ)문자로 백제인이 만들어 준 것이다. 가나문자가 일본의 헤이안(平安)시대에 완성됐는데 백제 신라의 토(吐)에서 유래했다. 특히 가다가나(片假名)의 다(タ), 야(ヤ)는 백제의 토(吐)와 동일하다고 하고 있다. (日本と朝鮮の2千年/신화(神話時代~近世 90面)
 
또한 희세의 걸작이라는 법륭사(法隆寺) 백제관음상(百濟觀音像)도 백제인이 만들어 준 것이다. 필자는 1980년대에 일본으로 학회에 참석했다가 법륭사에 들려 백제관음상을 직접 관람하면서 “이 불상이 왜 구다라의 불상이라고 하느냐”고 일본인에게 물어 봤다.
 
“그야 물론 백제 사람이 만들었으니까 백제관음상이라 한다”라는 것을 일본인의 입을 통해 직접 들을 수 있었다. 또한 대불주조(大佛鑄造)의 기술지도자인 국중공마려(國中公磨呂)의 조부도 백제인이었다. (日本と中國の2千年, 110面)
 
그렇다면 대불주조도 백제인의 기술과 관계있다고 볼 수 있다. 구한말 광무시대(光武時代)에 김기수(金綺秀)가 조선 통신사로서 일본을 보고 기록한 해사록(海槎錄)은 “백제가 문화 기술로서 일본을 가르쳤다”고 했다. 이는 사실이다.
 
백제는 일본에 있어서 문화 기술을 가장 많이 가르친 어버이 같은 나라이다. 일본은 고대부터 가야며 백제의 문물은 물론 병법, 산성기술을 배웠다고 했다. 이러한 일본이 적반하장 격으로 역사를 뒤엎어 말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열등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칠지도에서 보는 일본의 역사왜곡
 
필자는 1978년 12월 도쿄조선장학회 강당에서 교토대학 에가미 마사기(江上)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그는 학자의 양심의 따라 “칠지도(七支刀)는 백제가 일본 왕에게 하사한 것이다”라고 강연했다. 강연이 끝난 후 간친회(懇親會)에서 다과를 나누며 필자와도 대화를 나눴다.
 
그 때 에가미 교수는 강연을 하게 된 목적이 “한국 사학자에 의해 칠지도가 백제왕으로부터 하사받은 사실이 밝혀지는 것이 학자로서 부끄럽게 생각하기 때문이다”고 했다. 그런 강연을 하는 것을 보며 역시 에가미 교수는 양심적인 학자라고 필자는 생각했다.
 
이 칠지도는 1874년 일본 나라겡(奈良縣) 이시가미징구(石上神宮)에서 공개됐다. 그 명문(銘文) 표면(表面)에 “泰口四年口月十六日 丙午正陽 造百鍊口七支刀口辟百兵 宜共侯王”이라 했다.
 
즉, “泰口四年口月十六日”에 불상(不詳) 간흉(姦凶)을 제거하는 “百鍊口 七支刀”를 만들어 후왕(侯王)에게 줬다고 한 것이다. 이 명문 해석에 대해 일본학계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것이 후쿠야마 도시오(福山敏男)씨의 견해이다.
 
그는 “泰口四年”은 동진(東晋)의 대화(大和) 4년이라 해석해 일본서기 신공후(神功后) 52년에 백제가 칠지도를 헌납했다고 주장했다는 기록에 결부시키고 신공후(神功后)가 백제를 지배했다는 기록이 김석물(金石物)에 의해 실증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터무니없는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칠지도의 해석에 있어서 관건은 후왕(侯王)이란 두 글자다. 후왕은 제왕(帝王)의 지배를 받는 속국의 왕을 가리킨 것이다. 백제왕이 일본 왕을 후왕이라 칭한 것은, 백제왕이 제왕으로서 일본 왕을 지배한 것을 실증하는 것이다.
 
그 일본 왕이 신공후라면 신공후가 도리어 백제왕에 예속된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일본은 후쿠야마 도시오씨가 주장하는 것 같은 거짓을 좋아한다. 그러나 거짓 역사를 역사라 할 수 없다. 역사는 진실을 말하여야 역사이다.
 
칠지도를 통해 백제왕이 후왕이 아니고 제왕이라는 사실이 판명됐다. 또한 후왕은 연호(年號)를 사용치 못하고 제왕은 연호를 쓴다. 그러면 제왕인 백제왕은 반드시 연호를 말했을 것이다. 이에 “泰口”는 백제왕의 연호라 해석해야 한다.
 
후한시대 위 무제(魏 武帝) 조조(曹操)가 천하를 호령할 때에 역사상 대제왕인 주문왕(周(文王)에 자비(自比)해 천하를 호령하는 뜻으로 백연철(百鍊鐵) 칠지도를 만들어 일본 왕에게 준 것을 흉내 내어 일본이 제왕국인 양 한 것이다.
 
백제는 대제왕국, 일본은 산성축조도 백제에게서 배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일본은 제왕국이 아니었다. 제왕의 나라는 백제였다. 대제왕(大帝王)으로 자처하는 백제왕은 더욱 태화(泰和)라는 연호를 칭했다. 참고 할 것은 해방 후 발견된 백제무령왕(武寧王) 지석(誌石)에 붕(崩)이라 각명(刻銘)했다.
 
제왕의 죽음을 붕(崩)이라 하고 후왕의 죽음을 훙(薨)이라 하는데 백제 무령왕이 붕했다함은 제왕으로 등극한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대주의로 중국에 잘 보이려 요공(要功)하려는 위선자이며 역적과 다름없는 김부식(金富軾)은 단군조선을 없애고 고구려 백제의 역사도 폄하하며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무령왕이 죽음을 훙했다고 기록하여 후왕으로 비하했다.
 
또한 서거정(徐居正)은 ‘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 서문에서 “신라왕이 연호를 칭한 것은 참담한 일임으로 이를 삭제했다”고 했다. 이와 같이 중국에 잘 보이려고 장난하는 사대주의 역사가가 백제왕의 연호 태화(泰和)를 “泰口”로 하며 문서 역사에 기입하지 아니한 것이다.
 
칠지도는 백제가 일본을 지배한 제왕의 나라로 일본이 백제에 예속된 후왕의 나라라는 사실을 실증하는 것이다. 이 엄연한 사실을 왜곡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구주(九州) 지방의 조선산성(朝鮮山城)을 일본인들은 신용석(神龍石) 또는 신호석(神護石)이라 부른다. 이는 신비한 산성으로 신같이 신앙하는 것이다. (日本と朝鮮の2千年/(神話時代~近世 114~115面).
 
그런데 이 산성은 백제인의 지도(指導)에 의하여 축조됐다고 전하고 있다. 이와 같이 백제는 무력, 학문, 기술로서 일본을 지배하고 지도하며, 일본을 개화시킨 것이 백제였다.
 
위에서 본바와 같이 백제가 문화, 무력, 양면으로 일본을 지도하고 가르치며 지배했다. 이는 백제가 완전히 일본을 지도, 지배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때문에 ‘구당서(舊唐書)’에 “백제의 세력이 왜(倭)에 이르렀다”고 한 것이다.
 
‘북사(北史)’의 백제전(百濟傳)에는 백제를 동방강국(東方强國)이라 칭했다. 백제는 진세(晉世)에 북부중국에 진출해 요서(遼西), 진평(晉平)을 점유하고 남부중국에 진출하여 월주(越州)까지 이르렀다. 이와 같은 동방강국이 동방소국인 일본을 지배했다.
 
해양강국이며 동방강국인 백제가 태화(泰和)라는 연호를 칭하고 당당한 제왕의 국가로서 후왕의 소국인 일본을 지배하며 칠지도를 하사한 것을 일본은 왜곡했다. 그러나 이는 참으로 어리석은 수치스러운 것을 모르는 일본의 모습이다.
 
백제는 대륙에 있어서도, 일본에 있어서도 천하를 호령한 큰 나라였다. 그런데 일본의 역사왜곡은 지금도 계속하며 끊이지 않고 있음은 참으로 못 말리는 한심한 작태이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윤내현, 박선희, 하문식 공저 ‘고조선강역을 밝힌다,’.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유우찬 ‘마두부활과 되마사상’.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黃聖圭, 韓泰鎬 共著 ’近代日本政治文化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高橋徹 古代の遠近法,. 猪俣幸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사회과학원 조선고고학 총서 52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과 북방주민들’.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외 다수서책을 참조하고 본문을 그대로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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