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올해는 광복 제 71주년을 맞는 해다. 기념식은 성대히 거행할지라도 광복의 의미를 망각한 일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1919년 일어난 3·1 운동이 우리의 자주독립 그리고 국가와 민족의 자손만대의 번영을 위해 일제에 맞선 운동이었다.
당시 2만3000여명의 우리 선열들은 말할 수 없는 수난을 당했다. 8000여명이 죽임을 당하고 1만5000여명이 감옥에 갇히고 고문을 당하며 온 국민의 수난의 연속이었다. 광복이후 3·1절 71년이 되는 지금 우리는 그 때의 애국심을 찾아 볼 수 없다.
정치권은 집단이기주의가 판치고 언론과 학계, 재벌들도 애국심은 변질되고 있는 것이 슬프다. 왜곡된 역사 하나 제대로 바로 세우지 못하고 학교는 일제가 왜곡한 역사를 가르치어 그 피해가 온 국민의 가치관을 변질시켜 사회가 말이 아니다.
우리도 이제는 한민족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국가였으며 얼마나 자랑스러운 민족이었음을 제대로 가르치고 조선(祖先)의 애국애족의 가치관을 회복해 나라를 제대로 본 위치에 올려놓아야 한다.
잘못된 관행과 역사는 식민사관의 잘못에서 기인하고 있다. 지금도 일본과 부화뇌동하는 학노(學奴)들의 조작된 역사는 국가와 민족을 좀먹게 한다. 잘못된 교육 역사 가치관을 바로 잡고 정리해 다가올 광복절의 71주년을 의의 깊게 맞았으면 하는 소망을 담아본다.
지금 우리는 공동체 의식과 연대의식이 희박하고 종적인 생활을 있다. 횡적인 삶이 없는 개인이기주의, 집단이기주의, 한탕주의가 판을 치는 사회가 되고 있다.
대일관계도 독도문제를 비롯해서 역사왜곡은 끝없이 도전해오는데 우리는 이에 법적으로나 국가적으로 고통을 준 일본에 제대로 대처를 못하고 있다.
일본은 우리 유민이 가서 나라를 세우고 미개한 왜를 깨우쳐 나라를 세우고 도와 줬지만 그들은 이를 숨기기 위해 허황되고 터무니없는 역사왜곡을 주저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친일식민사관자들은 조작되고 왜곡된 서물을 내세우며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
상고시대 53대 3306년 지속된 자랑스러운 환국(桓國)도 없었던 양, 몇 번이고 변질된 서책을 내세워 신문에까지 조작된 허구의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이 한반도 있었던 것 같이 떠드는 반국가적, 반민족적이고 한심한 행태는 오늘날도 지속 되고 있다. 학계는 달라져야 한다. 오늘은 고구려가 일본을 정복하고 지배한 사실을 역사적 사실을 들어 살펴보고 져 한다.
일본을 제압하고 지배한 고구려, 일본을 후국으로 뒀다
고대 고구려가 일본을 제압하고 지배했다. 그런데 일본은 자기들이 지배했다고 여전히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고대부터 일본이 국가체제가 바로 서는 중세까지 일본을 지배하고 지도했다는 것은 역사가 말해 준다.
백제가 태양의 나라로 일본을 지배하고 신라, 고구려가 일본을 정복하고 그들을 지배했음에도 이를 숨기고 마치 일본이 신라 백제 고구려도 지배한 양 위장하고 있는 것은 가관이다. 고구려에 대하여서도 똑같이 일본은 역사를 거꾸로 위장하고 있다.
고구려가 서기 297년 가을 9월에 일본에 보내는 국서(國書)에 일본 왕을 교(敎)한다했다. 이 교(敎)는 종주국 제왕이 식민지 군주를 명(命)하는 문장이 아니던가!
신라에 항복한 당시 일본이, 동양의 대국이며 수나라를 격파한 고구려를 종주국으로 받들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일본은 이러한 사실을 숨기고 일본이 마치 고구려까지도 정복하고 지배하며 지도한 양, 역사를 왜곡하며 무례를 범하고 있다.
당시 고구려는 일본을 예속국(隸屬國)으로 간주해 일본 왕에게 교한다는 국서를 보낸다. 7세기 소아(蘇我)씨가 스슝덴노(崇峻天皇. 588~591) 암살로 대혼란에 빠졌을 때도 고구려가 혜자법사(惠慈法師)를 보내 혼란을 수습하고 문화정책을 쓴 것도 이를 입증한다.
이 당시 야마토정부(大和政府)를 세우고 통치권을 장악한 것도 한민족이었고 가야 신라계와 백제계의 주도권 싸움에서 그 중심에 있었던 소아(蘇我)씨 역시 한국계의 인물이다. 이는 고대 한민족이 일본을 지배 통치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역사 왜곡을 많이 하는 나라로, 중국과 쌍벽을 이루고 있는 나라다. 일본과 중국의 공통점은 상고사가 없고 고대사 역시 부실해 그로 인한 열등감에서 역사를 왜곡한다는 것이다. 일본이 고구려에 대한 역사 왜곡을 아래의 예를 봐도 확실히 확인할 수 있다.
왜왕 무가 송 순제에게 보낸 표문도 위서였다
서기 478년 왜왕 유우라쿠 덴노(雄略天皇. 395~427)가 송나라 순제에게 보내는 표문(表文)에 “왜(倭), 백제, 신라, 임나(任那), 가라(加羅), 진한(秦韓), 모한(慕韓), 칠국제군사(七國諸軍事), 안동장군(安東將軍) 왜국왕(倭國王)”이라 칭했다.
이 표문(表文)에 대하여 일본사가(史家)들은 왜한연합(倭韓聯合)을 형성하고 왜가 고구려를 지배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임나, 가라, 백제가 일본을 지배했다. 따라서 일본사가의 주장은 그릇된 것이다.
왜냐하면 진한, 모한은 왜왕 무 이전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이 건국 될 때에 흡수돼 이미 멸망돼 지구상에서 살아졌다. 즉 왜왕 무 이전에 대륙에서 멸망한 진한, 모한을 왜왕 무가 지배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북한의 사학자 김석형(金(錫亨)은 왜왕 무가 열거한 국명은 우리 민족이 북구주(北九州)에 건설한 분국(分國)이라 해석하고 있는데 이것도 그릇된 해석이다. 진한, 모한은 3국 이전의 소 부족으로서 극히 미약한 부족이다.
이와 같은 부족이 고대전투 형 시대에 처해 자체의 생존을 위한 투쟁여력이 없었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러한 소 부족이 바다 건너 멀리 해외에 진출해 분국을 설치하고 통치할 수 있을까.
만약 일본에 건너간 이주민들이 분국을 설치했다고 한다면 이는 부족시대의 원리를 모르는 견해다. 부족시대는 소국가 분립시대이다. 그럼으로 동일한 부족이 딴 지역에 이주하면 독립된 국가를 세우고 다른 국명을 붙이고 대립 투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시 대륙과 반도 안에도 수많은 소국가가 성립해 서로 대립 투쟁했다. 그런데 멀리 해외에 진출한 이주민이 본국에 예속되는 분국을 건설하고 본국의 통치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가야가 일본에 분국을 경영한 것과도 다른 양상이었다.
그 당시 일본에 건너간 유민들은 대부분 본국의 정부에 불평을 품고 정치적으로 망명, 피난한 자들이다. 이들은 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본국에 반역하는 것이요, 본국에 예속되는 분국을 건설하고 본국의 통치를 받을 수 없음이 일반적이다.
일본은 우리 왕족에게 왜 봉작(封爵)을 줬나
일본은 고려시대에 왕의 내외 친척에게 조선공(朝鮮公), 부여공(夫餘公), 낙랑공(樂浪公), 진한후(辰韓侯), 신라공(新羅公), 백제공(百濟公)이라는 명예의 봉작(封爵)을 준일이 있는데 이것을 활용도 했다. 이 제도는 조선초기에도 상존(尙存)했다.
즉, 우리민족 중 명예의 봉작을 받은 왕족이 일본에 진출하니 일본은 그들을 우대해 왜왕과 병칭(竝稱)한 것이다. 일본의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에 의하면 일본에 백제왕, 백제공이 있는데, 백제왕은 백제 의자왕의 후손이요, 백제공은 백제 주왕(酒王)의 후손이라 했다.
이 기록을 보면 왜왕 무가 우리 민족의 왕손을 왜왕과 병칭한 것은 그 왕손을 왜왕과 같이 우대하고 경외한 것이다. 그 왕손을 크게 우대하고 경외한 원인이 무엇인가? 이는 우리 민족의 국력이 극히 강력한 까닭이라 볼 수 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일본은 7세기까지는 정치·군사·사회·문화·농사·문물 등 다방면에서 우리 한민족의 지도와 도움 속에 성장해 갔다. 그리고 우리는 일본을 정벌해 지배하고 지도했다. 그러나 일본은 이런 역사를 다 지운다.
송 순제에 보낸 표문, 고구려가 일본정복 입증한 것
왜왕 무가 송 순제에게 보낸 위의 표문은 고구려가 일본을 정복한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 표문에는 “고구려가 국경지대에 침입해 혼란을 일으켜서 송나라에 조공(朝貢)하는 것을 막음으로 뜻대로 조공을 못합니다”라고 돼있다.
또 표문에는 “신의 선친이 고구려가 송에 조공하는 것을 막는 것을 통분해 100만 대병을 일으켜서 고구려에 대항하고 져 하다가 사망했습니다. 송제(宋帝)께옵서 강대한 고구려를 격퇴해 방란(方難)을 평정(平定)해 주심을 바랍니다”고 했다.
이 표문은 “고구려가 국경지대에 침입해 국경의 난을 일으켰다하고 또한 고구려가 방란(方難)을 일으켰다”고 했다. 여기서 방란은 전국적인 난을 말한 것이다.
그러면 고구려가 국경의 난을 일으켰는가? 전국의 난을 일으킨 것인가? 이 표문은 송의 구원을 받기 위해 애써서 송에 조공치 못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고구려가 국경에 침입해 국경통행을 막은 것을 말한 것이다.
즉, 고구려가 국경에 침입해 국경통행을 막았다는 문구는 송에 조공하는 것을 막은 것을 설명한 문법이요, 이 표문의 내용은 방란 두 자에 있다. 즉 고구려가 일본 전국을 정벌해 전국에 난을 일으킨 것이다.
일본은 전국의 난으로 백만 대군을 일으켜서 저항하고, 송에 구원을 요청한 것이다. 그럼으로 왜왕 무가 송 나라 순제에게 보낸 표문은 고구려가 일본을 정복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고구려가 서기 297년 오진덴노 28년 9월에 일본에 보내는 국서에 일본 왕을 교(敎)한다고 했다. 이는 종주국의 제왕이 식민지 군주에게 명하는 문구로 고구려가 일본을 예속국으로 간주해 국서를 보낸 것을 말하는 것이다.
신사 앞 수호신 박견과 박검도 이를 입증한다
일본의 큰 신사(神社)에 가보면 어김없이 신사 앞에 수호신인 박견(狛犬)이 세워져 있다. 이것은 일본이 고구려의 예속국(隸屬國)임을 입증한다.
이 박견은 고구려의 개다. 일본에도 아끼다견(秋田犬) 등 명견(名犬)이 없는 바 아니다. 일본인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신사, 궁전 앞에 일본의 개가 아닌 이민족(異民族)인 고구려의 개를 수호신으로 세울 수 있겠는가!
특히 혈연을 존중해 이민족을 배제 배타하는 일본 고대사회에서 그 조선(祖先)의 영(靈)을 받들어 모시는 신사 앞에 이민족의 개를 받들어 세울 수 없고 국가를 통치하는 기관인 궁전 앞에 이민족, 고구려의 개를 세울 수 없다.
일본은 고대 일본이 백제와 동맹해 고구려와 싸웠다고 주장한다.(北九州 古代,12, 朝鮮出兵に苦しむ民衆). 고대일본은 고구려와 불화(不和)해 투쟁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적대투쟁 하는 고구려의 박견을 가장 신성시 하는 신사나 궁전 앞에 세울 수 없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박견을 수호신으로 세워져 있다. 그 신사의 주신은 고구려의 신이요, 그 궁전의 주인은 고구려인이라 추정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추정이 아니라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고대에 고구려가 일본을 정복하고 통치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현재 600여 일본 대 신사의 신주, 주신이 다 한민족이다.
한편 교토 도다이지(東大寺) 대불전 서북에 있는 정창원(正倉院)에는 1만개 이상의 수장(收藏) 중, 환두대도(環頭大刀)는 도다이지 헌물장(獻物帳)에 “고려대도(高麗樣大刀)”라 했다. 여기서 정창원은 중요한 창고를 말한다.
그전에는 각 성, 각 사에 있었으나 지금은 교토 도다이지의 것만 남아서 유명하다. 필자도 이 곳에 두 번이나 관광을 하며 이 절을 가 봤는데 대단히 큰 절이다. 이 절 역시 우리나라 사람이 건조했다고 일본 친구가 말해 줬다.
그런데 752년에 나온 만엽집(萬葉集)에 이 신사에 소장된 환두대도는 박검(狛劍)이라 기록했다. 박검은 고구려의 검이다. 이것은 고구려의 세력이 일본에 크게 작용한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위에서 본 사실들을 고찰하면 고대 고구려가 일본을 정복 지배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1972년에 발견된 다카마쓰 스카(高松塚)의 피장자(被葬者)도 일본학자는 의도적으로 기피하려고 하나 그 복장 등을 볼 때 고구려인 중, 일본을 정복하고 통치한 자라고 추정된다.
지난날 일본사가라는 자들이 고대일본이 한국을 지배했고 주장하는데 다 거짓이다. 우리가 고대로부터 중세까지 일본을 지도지배하고 근세까지도 한국을 존중한 사실은 숨길 수 없다. 일본은 고대부터 중세까지 한민족의 지도지배를 받아 발전했다.
고대로부터 중세까지 한국의 지도, 지배를 받는 일본이 신라, 백제, 고구려 그 어느 나라도 격파 할 수 없다. 그런데 일거에 백제, 신라, 고구려를 격파하고 고대부터 한민족을 지배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의 새빨간 거짓말, 허구이다.
일본은 역사를 왜곡해 자기들의 구미에 맞게 역사를 조작해 일본이 우리를 지배한 것 같이 말하나 우리가 일본을 정복하고 지배했다. 이것이 일본의 정사(正史)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윤내현, 박선희, 하문식 공저 ‘고조선강역을 밝힌다,’.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홍윤기,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유우찬 ‘마두부활과 되마사상’.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黃聖圭, 韓泰鎬 共著 ’近代日本政治文化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高橋徹 古代の遠近法,. 猪俣幸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사회과학원 조선고고학 총서 52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과 북방주민들’.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외 다수서책을 참조하고 본문을 그대로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