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들어가며-광개토태왕비 왜곡이후의 일본인의 의식
필자가 유학 중 교토대학의 교수이자 국제사법재판소 판사인 다오카 료이치(田岡良一) 교수와 1973년 만난 적 있다. 1978년 우에다 교수 등과 한일 간의 법적 시각과 역사문제(七支刀)로 대화를 나눈 것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다오카 교수는 타계한지 오래이나 우에다 교수는 지난 13일 타계했다는 신문기사를 접하며 아쉬움을 금할 수 없었다. 우에다 교수는 일본에서도 학문적으로나 인격적으로 존경받는 학자이다. 필자 역시 존경하는 교수다.
다오카 교수는 국제법 대가이고, 우에다 교수는 역사대가로 두 교수의 학문적 업적은 대단히 크고 이들은 솔직하고 양심적인 학자들이다.
일본의 많은 학자들이 ‘황국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 있었으나 우에다 교수는 그렇지 않았다. 한일사학계에서 왜곡이 없고 진실만을 추구해 역사적 사실을 밝힌 일본의 대표적 양심의 학자로 정평이 나있다.
특히 교수는 일본의 ‘개국신화’가 한국의 ‘단군신화’에서 영향을 받았고 ‘일본 천황이 백제의 후손’이며 일본인들이 일본에 건너간 한민족을 ‘귀화인’이라 할 때, 귀화인이 아니라 ‘도래인(渡來人)’이라는 용어를 써서 일본학계에 정착시켰다.
필자는 38년 전 선생과의 ‘칠지도’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칠지도가 백제왕이 하사한 것’이라는 양심적인 발표는 학자로서 존경을 받기에 충분했다. 선생과의 대화는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선생은 명치헌법체제에서 일본헌법체제하에 와서도 일본이 재일한국인을 차별할 때, 재일한국인 차별철폐를 주장했다. 한국정부로부터 이를 인정받아 2009년 수교훈장 ‘숭례장’을 받았다. 장한 분이다.
이번 글은 일본의 ‘황국사관’에 입각해 광개토태왕 비문에 대한 왜곡을 앞세워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고 이는 사상누각에 불과 하다는 것을 앞으로 수차례에 나눠 살펴보고 져한다.
광개토태왕 비문 왜곡은 일본역사 왜곡의 전주곡
일본에는 ‘수수께끼의 4세기’라는 말이 있다. “신공황후(神功皇后)가 신라를 치니 백제, 고구려가 와서 항복 했다느니”라는 식의 허황되고 예를 찾아 볼 수 없는 망령된 일들은 일본의 역사왜곡에서 기인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수수께끼의 4세기’라는 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출판된 교과서나 역사서 등을 보면 당시의 야마토조정(大和朝廷)은 조선에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를 둬서 이를 식민지로 하고 있었다고 역사를 거꾸로 엮고 있다.
가야(伽倻)는 당시 쇠와 농산물이 풍부해 교역을 하던 왜국에 진출해 그곳에 미나마(任那)라는 작은 분국(分國)을 만들고 연맹해 신라와 백제에 대항했다. 그런데 일본은 거꾸로 미나마(任那日本府)를 세웠다고 역사를 왜곡해서 말하고 있다.
이런 왜곡된 역사를 배웠기 때문에 일본인은 오랜 기간에 걸쳐서 조선에 대한 왜곡된 의식을 갖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우리도 일본에 대한 의식도 이에 비례해서 잘못되게 서로 대치하는 상황에 있다. 왜 일본은 이러는가.
그 근거가 되고 있는 기반이 된 것은 바로 광개토태왕 비문의 왜곡이 중심에 있었다. 일본은 광개토태왕 비의 변조위에 구축된 역사를 사실인양 제멋대로 조작해서 세상에 내놓아 외형상 훌륭하게 역사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일본이 ‘독도를 한국이 무단 점거 했다’는 식이기 때문에 감정적으로도 평안한 날이 없다. 그러나 이 무모한 왜곡 조작은 오래가지 못한다. 역사는 사실과 진실이 말해 주기 때문이다. 거짓된 왜곡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일본을 중심으로 한 신화적 역사를 조작위조하고 이를 믿는 신국(神國), 타락한 나라가 일본이다. 이들은 명치유신 시대에 독일이 역사를 위조해 위대한 국민을 육성하고 국민의 용기를 북돋는 것을 흉내 내어 의식적으로 위대한 역사위조를 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의 역사는 터무니없는 위조사로 세상에 나온다. 그 실증을 한다면 먼저 그들이 내세우는 ‘일본서기(日本書紀)’ 주(註)에 ‘백제기’를 인용한 것이었다.
‘백제기’는 백제인이 저술한 역사서인데 후대까지 보존되지 못했다. ‘일본서기’가 ‘백제기’를 인용하는데 ‘백제기’가 왜곡을 저해하기 때문에 이를 말살했다. 백제가 일본에 예속돼 일본을 종주국(宗主國)으로 받들었다고 조작했다.
중국인까지도 ‘동방강국’이라 칭한 백제가 동방소국인 일본에 예속됐다 함은 명백한 위조다. 오죽했으면 이노우에 미쓰사다(井上光貞) 교수까지도 그의 저서에서 “‘일본서기’의 편자가 ‘백제기’ 원형을 왜곡해 기록 한 것도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세계사적으로 한민족은 인류 역사상 최초 강대국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위대하고 강대한 한민족은 천신의 피를 받은 천민(天民)이라 자처했고 타국은 한국을 천(天)으로 받들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천(天)으로 받드는 천민사상(天民思想)을 말살해 식민사관의 사대(事大)노예사상으로 타락했다. 이 타락이 어디에서 기인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것은 참으로 비극이다. 이렇게 된 것은 국가와 민족의식도 없는 역사왜곡에서 나왔다.
때문에 일본은 ‘일본서기’를 불신하고 부인하는 역사 즉 광개토대왕 비를 조작 위조해 일본사를 대대적으로 위조했다. 일본의 고대사, 근대사가 다 같이 파렴치한 위조를 날강도 같이 감행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본 역사가의 주장은 양심적인 학자가 주장하는 것 외에는 무시해도 된다. 왜냐하면, 일본이 임나를 근거로 신라, 백제, 고구려 등 우리 한민족을 정벌하고 지배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조작된 왜곡이기 때문에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임나·신라·백제·고구려가 일본을 정벌·지도·지배했다
임나를 근거로 신라, 백제, 고구려 등 우리 민족이 도리어 문화로서 일본을 지도하고 무력으로 일본을 지배한 것은 변할 수 없는 진실이다. 이는 얼마든지 입증된다.
이미 살펴본 것을 정리하면 1~2세기에 임나가 기마민족으로 일본에 진출해 많은 부족들의 분립한 때에 일본을 정벌하고 통치하며 3~4세기에 부근의 소국가를 통일했다. 그러나 전국통일을 이룩하지 못했다.
이 때 일본이 한국에 진출해 백제 신라를 예속시키고 고구려까지 지배했다는 터무니없는 일본의 왜곡역사를 우리사학계는 언제까지 추종해야 하는지!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이다.
신라는 고대 일본의 부족투쟁으로 혼란에 빠지자 웅습(熊襲)을 앞잡이로 일본을 정복하고, 소위 신공후의 신화가 나왔다. 그리고 한국이주민, 도래인이 남구주의 구노국(狗奴國)을 대부분 정복 지배했다.
그리고 5세기에 고구려가 일본을 정벌했다. 5세기 말~6세기말에서 7세기 초에 호족(豪族)이 분립하려 자기세력을 부식하고 7세기부터 배달국 시대부터 불러온 천황 제도를 일본이 받아서 천황이라 칭한 것은 이미 다 기술했다.
광개토태왕의 비문을 왜곡해 왜가 백제, 신라를 격파했다고 해석하고 한국사가도 일본사가와 같이 해석하니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고대에 신라가 일본을 정복하고 백제의 세력이 일본에 확대된 것은 사이비 학자가 아닌 자 외에는 다 인정하고 있다.
이미 지적한 대로 한민족이 고대로부터 중세까지 계속해 일본을 지도하고 지배하였음은 세계학자가 다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이를 숨길 수도 왜곡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일본은 신공후 신화를 왜 조작했나
군국주의 시대 일본이 “신공후가 신라를 정복하고 통치했다”고 일본역사 교재에 화려하게 장식하는데 이것은 이미 밝힌바 대로 군국주의의 침략적 사기를 북돋기 위해 조작한 것이다. 신공황후가 신라를 정복했다는 것은 모두 허구이다.
그런데 광개토태왕의 비문을 왜곡한 일본은 4~5세기의 일본고대사와 조일관계사를 연구하는데 빠질 수 없는 금석(金石)자료로 이 비문을 인용했다. 여기서 ‘일본서기’의 전반 기사를 개관(槪觀)해 보면 아래와 같다.
“신공후가 웅습을 치기 위해 쑤구시의 가시희노 미야에 갔을 때 ‘신라는 금은 채색의 아름다운 보물의 나라로서, 만약 나를 받들면 반드시 따라야 하게 돼 웅습도 또 스스로 귀복(歸伏)할 것이다’라는 주길대신(住吉大神)의 신탁(神託)을 받았다”라고 하는데 웃기는 이야기다.
계속 인용해 보자. “그러나 부(夫)인 츄우아이 덴노(仲哀天皇. 356~362)가 신탁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신벌(神罰)을 받아서 사망해 버렸다. 거기서 신공황후는 머리를 위로 올려서 남장(男裝)을 하고 군선(軍船)에 올라타니 크고 작은 고기가 파도를 일으켜 배가 바로 신라의 해안에 다다랐다고 했다”라고 했다.
또 “그 공격이 너무나 급했기 때문에 신라왕이 혼비백산해 지금부터 영구히 천황의 사(飼部)가 돼 춘추에는 말(馬)의 소(梳)와 가죽 편(鞭)을 세워서 매년 남녀를 보낼 것을 맹세하였다”라든지 “황후는 신라왕을 용서하고 의기양양하게 되돌아 왔다”라고 돼 있다.
이런 어불성설, 말도 아니 되는 거짓말을 전전(戰前)의 교과서에는 이것을 그대로 게재하여 가르쳤다. 그러나 오늘날 이것을 사실이라고 하는 학자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신공황후기’의 후반의 기사는 ‘백제기’라는 조선 측의 자료에서 취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신용할 수 있다고 판단돼 있다. ‘삼국사기’도 신라 외에는 인색한 사서다.
‘삼국사기’와 일본 기록에서 보는 천황과 기년(紀年) 왜곡
예컨대, 신공황후기 59년(255년)조(條)를 보면, 이 해에 백제의 초고왕(肖古王)이 붕어(崩御)했다고 돼 있다. 63년 조에는 백제 귀수왕(貴須王)이 붕어했다고 쓰여 져 있다.
그런데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의 근초고왕은 을해년(乙亥年. 375년)에 붕어했고, 근구수왕(近仇首王)은 갑신년(甲申年. 384년)에 붕어 한 것으로 돼 있다.
여기서 초고왕은 근초고왕과 동일 인물이고, 귀수왕(貴須王)은 근구수왕(近仇首王)인 것으로 보고 있다.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와는 120년의 차가 있다. 즉, 간지(干支)로 2운(運)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신공 39년 조에는 그 분주(分註)에 239년(景初 3년)의 사마대국(邪馬臺國)의 히미코(卑彌呼)가 진(晋)에 사절을 파견한 기사를 기록한 3세기말 진수(陳壽)가 편집한 ‘위지’(魏志-220~265) 역사서의 기사가 인용되고 있다.
또한 40년 조와 43년 조에도 견사의 기사가 적혀져 있고, 66년 조에는 태시(泰始) 2년에 히미코가 진에 사신을 보냈다는 진기거주(晋起居注)에 기재돼 있다.
여기서 이러한 기사를 종합해서 보면 ‘일본서기’의 편자는 신공황후를 히미코와 동일인으로 생각해 그 간지를 2운이나 올렸기 때문에 그 120년을 내리면 한일 관계의 기사는 거의 사실을 전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일본은 인물과 기년이며 사실자체의 자료조작으로 돼 있다. 따라서 신공기의 후반의 기사가 조선 측의 확실한 자료에 의해서라는 것은 칠지의 명문(銘文)에 의해서도 입증된다. 일본학계도 이런 조작을 잘 알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일본서기’ 상의 기년은 제멋대로여서 일본연대를 기준하면 다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츄우아이 덴노(仲哀天皇. 356~362)의 경우도 서기 192~200년이라고 ‘일본서기’에는 돼 있다.
여기서도 200년이나 왜곡하고 있다. 일본은 기만민족이 일본에 가서 왜를 건국한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제1대 왕은 응신(應神)이다. 일본의 제1대 천황으로 봐야 한다.
일본역사책에는 진무덴노(神武天皇)가 서기전 660년~585년으로 되어 있으나 이는 가공의 천황이다. ‘일본서기’의 기년 1000년이나 앞서 기록하고 있어서 믿을 것이 못된다. 일본의 역사학자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와세다대학의 미스노 유(水野 祐) 교수는 “일본역사는 978년 조작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의 모든 천황의 기년의 연대도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다 제 멋대로 고무줄 같이 멋대로 늘리고 있다.
때문에 일본역사가 2600년이라고 하나, 아니다. 조작이다. 일본역사는 2600년에서 1000년을 뺀 1600여년으로 보는 것이 옳다. ‘일본서기’의 기년도 다 제멋대로 조작되고 있어서 그대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이 일본의 기년이고 역사이다.
일본의 천황의 연대도 1대에서 9대까지 가공의 천황으로 보고 있다. 미스노 교수도 이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는 일본의 천황은 1대~14대 츄우아이 덴노(仲哀天皇. 356~362)까지 천황으로 볼 수 없다.
일본은 이 시기에 통일된 나라다운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다. 일본은 이를 미사여구로 포장하고 실재 있었던 것 같이 말하며 왜곡된 역사를 일본의 역사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허구의 거짓된 역사일 뿐이다.
세계 어느 나라도 진실이 아닌 허구의 역사를 역사로 보는 나라는 없다. 허구의 역사를 역사라 하는 나라는 거짓 역사를 가진 나라만이 역사라 주장 할 것이다.
세계의 저명한 학자들까지도 일본이 중국과 더불어 처음부터 역사를 조작 변조하고 왜곡된 허구의 역사를 조작하고 있는 나라임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때문에 일본의 역사를 세계학자들은 역사라 하기에는 상식적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윤내현, 박선희, 하문식 공저 ‘고조선강역을 밝힌다,’.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홍윤기,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유우찬 ‘마두부활과 되마사상’.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黃聖圭,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石井進外,詳說日本史,‘ 猪俣幸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上井久義, ‘日本古代の親族と祭祀’. 사회과학원 조선고고학 총서 52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과 북방주민들’.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외 다수서책을 참조하고 본문을 그대로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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