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필자가 선생을 만나게 된 것은 1970년 4월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대학원 세미나 강좌에서였다. 당시 학문의 엄격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분이었다. 매주 5개의 과제를 주고 현직교수들도 토론에 참가토록 해 학문성과를 점검했다. 이는 학회의 발표 보다 차원이 다른 트레이닝이었다. 이를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누구를 막론하고 발표나 과제가 미흡하면 추상같은 날벼락의 질타가 날아들었다. 그래서 모든 학생이나 학자가 다 어려워 한 선생이었다. 마스오카 교수의 이 강좌는 일본에서 ‘교수 양성소’라고 소문이 날 정도로 평판이 대단했다. 필자가 이런 선생을 만나게 된 것이다. 학문연구와 일본의 우수한 학자들을 만난 행운이었던 셈이다. 지금도 하나님께 감사를 한다. 일본의 내세우는 학자들의 연구과정을 함께 체험하고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엄격하고 고결한 분이 방학만 되면 세계여행을 떠나곤 했다. 그 여행은 관광이 아니라 세계 저명대학의 학자들을 만나고 대학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여행에서 돌아와 세계명문대학 학문의 동향과 학술 추이를 강의했다. 필자는 매학기 새롭게 이들 지식을 접했다. 그것이 얼마나 유익한 것인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감회가 새롭다. 간접체험이지만 세계를 무대로 활동 할 수 있다는 것이 필자로서는 무척 자랑스럽고 즐거웠다. 학문과 숭고한 인격을 겸비한 선생을 대하며 나도 한국에 돌아가면 선생과 똑같이 하리라고 다짐하곤 했다. 제자가 어려울 때는 어떤 수고도 아끼지 않는 분이기도 했다. 필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원에 다녔었다. 당시 일본은 ‘연구자는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다’는 출입국관리법을 내세워 필자에게 어려움을 주었다. 그 때 선생은 손수 출입국관리사무소까지 가서 필자를 옹호했다. 그 따스한 온정을 보며 감격했다.
78년 마스오카 강좌가 세계정상이라고 선언한 해에 필자도 학위를 취득하고 그 이듬해에 귀국, 서울에 법과 자리가 없어서 전주대학 법학과 교수로 재직하게 됐다. 제3공화국 말기인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는 사태가 발생하고, 그 이듬해에 5.18사태가 광주에서 일어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스오카 사부로 선생은 일본에서 필자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한 것을 알게 됐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5.18광주 발 뉴스는 일본 TV에서 그대로 방영됐다. 필자의 당시 대학이 광주 가까운 곳에 있어 혹시 그 위해가 전주에까지 미치지 않나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선생이 명치대학 120주년 기념사업으로 ‘아시아 법 연구회’ 회장으로 방한했을 때 신라호텔에서 필자를 보자마자 “이군을 보니 안심이 된다”는 말을 했었다. 선생이 얼마나 제자들을 사랑하는지 알 수가 있었다.
더 놀랐던 것은 5.18이후 82년에 참고도서와 자료수집 을 위해 일본에 가 선생을 만났을 때 선생은 필자에게 시간을 낼 수 있느냐고 하기에 ‘책 주문하고 책이 도착 하려면 일주일은 시간이 있다’고 하자 다음날 점심이나 같이하자는 것이었다. 이튼 날 필자가 일본에 있을 때 가보지 못한 고급 일본식당에서 점심을 같이하며 하는 선생의 말은 놀라운 것이었다. 선생은 “한국에 있는 자네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고위직과 교분이 있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선생은 참의원 기무라 무수오(木村睦雄) 의장과 셋이 식사하기로 이야기가 됐으니 식사시간을 내라는 것이었다. 선생의 뜻밖의 제안에 말문이 막혔다. 제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이렇게 까지 신경을 쓰는 스승의 마음을 본 필자는 이 세상에 이 같은 스승이 또 어디 있겠는가를 생각했다. 필자는 너무나 따스했던 선생의 마음을 잊지 못한다. 필자는 고마움을 마음깊이 새기며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고 정중히 사양했지만 마음속에는 필자도 교수가 되면 선생과 같이 제자들을 애정을 갖고 사랑하리라고 다지게 됐다.
지금은 고인이 된 마스오카 사부 선생을 생각하면 마음이 슬프고 제자로서 도리를 다하지 못한데 대해 송구스러움과 아쉬운 마음 그지없다. 제자사랑의 그 마음과 정신은 필자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 엄격한 가르침과 고매한 인격은 지금도 필자에게 새롭게 다가온다. 필자는 오늘 선생의 명복을 머리 숙여 기원한다. 참으로 고마운 은사. 오늘도 선생의 은혜를 잊지 못한다. 한 없이 떠오르는 스승의 가르침과 은혜를 잊지 못한다.
“고마운 은사님. 스승의 큰 은혜를 영원히 잊지 못합니다. 하늘나라에서 고이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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