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이데올리기 유령에 잡혀 사는 그들은

입력 2012-06-23 2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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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필자가 일본 유학을 가서 바둑계의 신으로 까지 존경받으며 신문에 자주 나오는 임해봉(林海峰九단-대만계)의 기사를 보며 ‘참으로 훌륭한 기성(棋聖)’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는 기성전(棋聖戰) 9연패(連覇)를 하고 남은 단 한 번만 이기면 10연승을 하는 순간이었다. 그 때 대국자가 바둑계의 원로 다카가와 히로시(高川碩) 9단이었다. 초반에 다카가와 9단이 우세하다가 체력소모로 인해 쓰러지고 또 쓰러진다. 임 9단은 후반에 유리한 상황에서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돌을 주섬주섬 자기가 불리한데까지 줍고 계수(計數)를 하는 자들에게 ‘계보(計譜)는 여기까지만 내라’ 하고 일어서서 다카가와 9단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제가 벌써 던졌어야 할 돌을 지금까지 두어 죄송합니다. 제가 졌습니다’고 말했다. 그는 이기고도 다카가와 9단에게 졌다고 했다. 이 기사는 신문에 대서특필 되고, 그는 일본에서 신격화된 기성에 앞서 인간 승리의 우승자가 됐다. 그는 이긴 것 보다 더 존경받고 예우를 받는 인물이 됐다.

오늘날 우리 신문들을 보면 이 같이 존경받을 만한 기사는 없고 ‘OECD 국가 중, 국회개원 협상하는 나라는 한국뿐’, ‘출근 않고 월급 탄 전 국회의원의 딸’ 기사 등 보고 싶지 않은 정치인들의 이전투구하는 얼굴들이 지면을 메우고 있다. 인간 승리의 아름다운 기사들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다. 믿을 수 있는 지도자는 없고, 우리사회에 피해만 주는 정치인들만이 득실거리는 것이 느껴져 마음이 편하지 않다. 21세기를 선도해 갈 책임 있는 지도자가 없어 씁쓸하다. 언젠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자가 나와 식자들의 관심을 모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정치인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말할 정도의 세론이 높다. 작금의 정치인들은 대개 국가와 민족, 역사로부터 버림받게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함량미달의 국회의원들이 있는가 하면 거기에 더해 ‘애국가가 국가가 아니다’라고 하는 어이없는 의원도 있다. 한심한 우리 국회의 위상이 창피할 정도다. 국민 다대수가 원하는 것은 하지 않고 몇 권의 책도 안 읽은 사람같이 유령화 된 이데올로기의 노예에서 못 벗어난 정치인이 난무하는 듯 하다. 언론도 더 이상 이런 자들의 행태를 그만 실었으면 한다. 신물이 난다. 21세기 사회가 원하는 것은 진리와 새로운 가치관인데,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인생관과 가치관이 빛을 잃고 국가관이나 민족관, 세계관, 우주관의 확립이 덜된 자들의 몰지각한 추태가 잊을 만하면 나온다. 이들의 생각과 행동이 우리 역사의 창조에 조금도 보탬이 안 되니 염려스럽다. 지금 한국 정치는 이처럼 큰 위기에 당면해 있다. 참된 일꾼은 찾기 힘들고 사이비 인간으로 너무 떠들썩하다. 아직도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된 사람들이 국민의 선량(국회의원)으로 행세하는 것이 혼란스럽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최상의 진리를 신봉한다는 북한은 그 허구성이 증명된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철부지 나이가 아님에도 민망스럽기 조차 한 말들만 골라 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지금 북한 동포들이 원하는 3가지가 무엇인지 아는가. 첫째가 배부름이고, 둘째가 자유다. 그리고 셋째는 일이다. 굶주리지 않고 밥을 마음껏 먹어 봤으면 하는 것은 고사하고 자유는 꿈도 못 꿔 본 세계가 북한 아닌가. 또 개인의 꿈과 열정을 성취하는 것은 누구나 희망하는 사회인데, 마음껏 먹고 자유를 만끽하며 꿈을 성취하는 사회에 살면서 고통 속의 동족을 생각지 않은 그대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어느 민족의 사람인가. 몇 십만 명이 중국서 방황하는 가운데 붙잡히면 어린아이도 맞아 죽는 처절한 생사가 넘나드는 곳이 어디인가. 같은 민족이라고 하면서 6.25를 일으킨 범죄자가 누구인가. 몇 백만 명이나 되는 소중한 생명을 사상이 다르다고 학살한 악마가 누구인가. 김일성도 7.4 남북공동성명 때 다시는 남침을 안 하겠다고 말했다. 그것을 모르고 남한에서 북침했다고 하는 것이 정상인가.

무지한 자가 대한민국 국민을 우습게 보고 말 같지 않은 말을 하는 것은 이제 그만 두고 세상을 바로 보았으면 싶다. 모든 언사는 합당하게 그리고 정제된 말로 거짓 없이 정의롭게 해야 한다. 종북을 하는 일단의 그들은 북한을 ‘지상 낙원’이라고 생각하는 망상에서 사로잡혀 있는 듯 보인다. 이데올로기의 그 노예들은 사회주의가 망한 3무(無)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것은 초등학생도 즐겨 영어로 말하는 ‘l am sorry-죄송합니다. thank you-감사합니다. I love you-사랑합니다’ 이다. 이 3무(無)가 3유(有)로 바뀔 때 아름답고 정상적인 삶과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아울러 폐쇄된 세계에서 넓은 새 세계로 나와 공명정대한 창조적 인간으로 산다. 우리 국민들은 더 이상 사회주의자들의 편협 된 지식에 현혹되지 않는다. 북한이 왜 그렇게 가난하게 됐는가를 생각해보면, 그리고 법사회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 원인이 명백해 진다.

지금은 세계의 변화를 눈여겨 볼 때다. 하루의 변화가 과거의 10년보다 더 빨리 변화하는 시대다. 사람도 빠르게 변해야 산다는 것은 흔한 말이 됐다. 또 거짓이 통하지 않는 사회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경쟁에서 사회주의가 패배한지 오래됐다. 억지가 통하지 않은 사회에 지식공동화(知識空洞化)된 사람들의 말이 통하지 않는 사회다. 이를 바로 보고 말을 하며, 타인의 말을 듣고 존중할 줄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선진화가 늦어진 배경에는 독선적이고, 독단적이며, 폐쇄적인 사고 등이 원인이었다. 이제는 좀 더 높게, 좀 더 넓게, 좀 더 깊이 있게 마음의 문을 열어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들이 돼야 한다.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해묵은 지식으로 색안경을 쓴 채 세상을 평하면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아직도 이데올로기의 유령을 부여잡고 19세기의 사고방식으로 살면 시대의 낙오자밖에 되지 못한다. 낙후한 사고를 갖고 사는 자는 인간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의 냉엄한 국제사회다. 우리는 다 같이 낙오자 없이 인간 승리의 우승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혁명에는 책임이 없다’고 하면서 감사도, 고마움도, 성실성도 없는 체제의 무리의 추종은 어리석고 우매한자가 하는 짓이다. 세상을 바로보고 바로 읽고 바른 언행을 공명정대하게 의롭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국민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 임해봉(林海峰) 기성(棋聖) 같이 이기고도 져주는 아름다운 미덕의 인간 승리자가 이 사회에 가득 넘쳐나기를 기대해 본다.
이을형 필진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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