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인간이 사회적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사회적 평가는 필수적이다. 일반적으로 생명, 재산, 행복, 존경, 지식, 위신, 명성, 우월, 세력, 권력 등의 획득·유지·증대를 놓고 대립하고 있으며 때로는 이것들이 평가의 지표가 된다.
정치란 이런 대립을 조정하고 분쟁을 해결해 사회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한 장치다. 때로는 특정 목적을 위해 강제(통제)하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오늘날 우리나라 정치현실은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다.
정치권을 향한 사회적 평가는 점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다. 근대국가는 ‘국민주권’의 형태를 취하고 ‘법치의 원칙’을 취해 정치권력의 합법성과 정당성을 얻으려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이와 거리가 있다.
근래 여·야3당대표의 연설은 그 나름대로 준비와 내용적인 측면에서 평가받을 만하다. 하지만 당면한 사회문제인 노사문제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 이는 우리들의 무지와 의식과도 연관돼 있다.
초기 자본주의 시대의 정치는 개인의 자유나 경제활동에 불간섭의 입장을 취한다. 이 시기 정치의 기능은 생명, 자유, 재산의 안전, 질서유지, 국방 등에 국한됐다. 사회적으로 소극적인 정부를 바란 것이다.
현대자본주의 시대에는 국가·경제와의 결부가 강해진다. 정치의 기능은 앞서 언급한 것 외에도 재정자금에 의한 경기변동의 조정, 기업통제, 불황과 실업대책, 공공사업, 사회보장 등으로 확장된다. 복지국가 건설을 지향하는 등 적극적인 자세를 취한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적상황은 정상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3당대표는 이구동성으로 청년실업문제와 분배문제의 해결방법으로 정규직노조와 비정규직의 임금격차해소를 운운한다.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ILO 100호 ‘동일가치의 근로에 대한 남녀동일 보수에 관한 협약’도 이미 비준하고 있다. 문제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명칭여하를 물론하고 조약(협약)이 비준되면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는 것은 세계상식이다. 노사정위원회는 정보교환 등 노사안정을 위한 대화 창구다. 하지만 이곳에서 법과 원칙 그리고 상식이 통하지 않고 있다. 이는 우리의 후진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예시다.
외국에 나가면 한국 사람을 평가하는 소리를 많이 들을 수 있다. ‘한국 사람은 다 그렇다고 할 수 없으나 거의가 오만하고, 예의가 없고, 남을 배려하지 않으며, 남의 말을 들으려고도 않고, 고집이 세고, 큰소리를 지르고, 지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노사문제만 해도 노사정이 ‘노동법의 꿈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데서 문제는 더욱 꼬인다. 노동법의 꿈을 거론조차 않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국제노동법을 무시한다면 노사문제 해결은 불가하다. 양측이 서로 평행선을 달릴 뿐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노동문제는 국가의 장래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문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같은 노동자이면서 비정규직을 차별함도 참으로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이런 노동문화가 어떻게 된 것인가.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다. 정규직 노조의 이기주의도 비난 받을 만하며 사용자의 저임금도 문제다.
이탈리아 격언 중 ‘직공을 부양하지 않은 것은 서투른 기술이다’는 말이 있다. 조지 허버트는 “보수 없는 봉사는 형벌이다”고도 말한 바 있다. 사용자들이 새겨들을 부분이다.
조선조의 박제가(朴齊家)는 “종을 굶겨놓고 날마다 부리기만 한다면, 주인의 재물을 도둑질 하지 않는 자가 거의 없을 것이다”며 ‘적정임금’의 지급을 말하고 있다. 지금 까지 우리나라 노동부는 비정규직문제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독일, 프랑스, 스위스, 스웨덴, 이탈리아, 벨기에 등과 같은 나라들이 시간단축과 적정임금을 지급하고 선진국이 된 것을 알았으면 한다. 알고도 실천 않은 것은 죄악이다. 서구는 1970년대 고임금·인력부족을 장기간 겪으면서도 번영을 구가했다.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노동자와 상생했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예에서 배울 것은 배웠으면 한다.
우리나라는 거대자본의 눈치만 보는 당국이나 이의 개선을 외쳐야 할 언론도 침묵만 하는 현상은 국가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이만큼 성장할 수 있던 배경은 자본뿐만이 아니라 근로자의 공적도 분명함을 알아야 한다.
국제 기준과 반대로 가는 대한민국 노동법…무관심한 언론도 ‘문제’
우리 언론도 재벌 개혁에 앞장서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노사문제를 다른 기사를 매일 볼 수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노사문제는 다루지 않은 것은 잘못된 일이다. 우리나라같이 해고를 쉽게 하는 나라가 세계에 어디에도 없다.
해고를 하려면 그 나라 실업자의 사회보장상황도 같이 말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대륙법 계통인데 OECD국 중 정리해고를 법제화 한 나라가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필자는 1982년 일본노동법을 기초한 마쓰오카 사브로(松岡三郞) 선생과 대화를 나눈 바 있다. 당시 “한국과 대만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 때문에 일본의 앞으로 어려워지겠다”는 취지의 말을 건넸는데 선생은 “왜 한국이 법수준이 그러느냐”고 반문했다.
한국이 노동법의 꿈을 무시한 자본본능에만 내 달리는데서 일본도 한국과 대만의 예를 들고 악법을 구상하는데서 나온 말이다. 그 후 3년 후인 1985년 일본은 ‘근로자파견법’을 만들어 일본의 경제를 더 악화 시키며 ‘잃어버린 20년’을 맞이하게 됐다.
우리나라는 일본 ‘근로자파견법’ 같은 악법만 골라서 수입하는 듯하다. 눈앞의 이익에만 눈이 어두운 자본의 본능충족결과 노동악화는 더욱 심해졌다. 이제 우리나라 재벌도 값싼 노동력에만 의존하는 노동집약적 집착은 버려야 한다. 그리고 재벌도 개혁 돼야 한다.
우리나라 언론도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정론을 기피해선 안 된다. 재벌의 광고를 의식해 그런 경향이 있다. 지금 조(朝), 중(中), 동(東) 신문에 노사문제를 다루는 기사는 전부가 노동집약적 논리뿐이다.
우리는 OECD국가다. 하지만 이에 걸맞은 노동법 국제기준을 얼마나 따르고 있는지, ILO 협약 및 권고 비준수가 전 세계 몇 위쯤인지 제대로 말을 해야 한다. 언론은 이에 대해 접근하지 않는 모습이다. 게으른 탓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헨리 포드(Henry Ford, 1863~1947)가 사업할 당시 미국에는 동유럽에서 끊임없이 유입되는 이민자들로 인해 노동공급이 많았다. 하지만 그의 경영철학은 다른 경영자들과 달랐다. 그는 1914년 하루 임금을 당시평균 수준이었던 2.34$의 2배가 넘는 5$로 정했다. 결국 그는 이를 바탕으로 미국 굴지의 재벌로 성장했다.
그는 실용적인 기업가의 창조적 경영철학으로 무장했다. 영국이 산업혁명으로 19세기의 패자(覇者)로 부상(浮上)했는데 반해 미국은 대량생산이라는 ‘생산혁명’을 통해 20~21세기 패자(覇者)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우리나라와 같이 값싼 노동력으로 근로자를 장시간 혹사(酷使)하며 국가의 장래를 망치는 비애국적인 노동을 요구하지 않았다. 헨리 포드(Henry Ford)는 1913년에 이런 경영철학을 가졌다. 우리의 노사문화도 이제는 21세기 4차 산업혁명시대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
우리 재벌도 21세기의 재벌로 거듭나야 한다. 개혁이 필수다. 영국은 1909년 최저임금법을 제정했다. 미국도 1912년에 제정했다. 심지어 미국은 대공황이 들이닥친 1930년대에도 근로자가 살 수 있는 임금을 지급했다.
우리나라는 ‘저임금’에 ‘장시간노동’을 시키면서도 ‘적정임금’을 외면한다. 이 같은 경영논리는 우리나라를 세계제일의 노동시간 국가로, 세계제일의 ‘과로사’ 국가로 만들었고 국내 근로자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의 본능’에 빗대보면 노동력을 저렴하게 쓰는 것은 자본의 본능이다. 하지만 노동력의 혹사 내용은 나라별로 다르다. 우리나라와 같이 근로자를 혹사하고 정치, 언론까지 장악하며 비인도적 반노동법적인 비정규직 노동형태는 분명 문제다.
미국은 대공황 때도 우리와 달리 법제정을 통해 어려운 공황을 극복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1933년의 주 40시간제와 최저임금제를 적용했다. 더욱이 1935년에는 사회보장 법등 15개의 법을 제정했다.
그리고 1935년 와그너법(Wagner Act) 제정으로 ‘부당노동행위제도’를 마련, 노사안정을 기하고 있다. 그리고 1938년에는 ‘공정노동기준법’에 의해 이를 실시함으로 근로자의 삶의 질을 높였다.
미국은 노동자에 대해서 탄압→해방→적극적 원조와 같이 크게 보호정책을 했다. 프랑스도 1928년 ‘사회보험법’을 제정했다. 이어, 1936년 주40시간제 ‘최저임금 법’을 제정했다.
우리는 이와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그 결과 청년실업과 저출산으로 국가존망이 위태로울 지경이다. 이는 우리나라 재벌의 비애국적이고 비애족적인 기업운영이 문제가 있음을 방증한다. 이제는 이를 지양(止揚)해야 한다. 지금 재벌들의 경영철학으로는 근로자의 인간적인 생활보장은 요원하다. 국가의 장래도 기대 할 수 없다.
여기에 ‘재벌의 개혁을 통해 분배정의를 실현하자’는 취지의 국회정당대표의 말도 나오게 됐다. 우리나라 재벌은 반드시 개혁돼야 한다. 현재 행태로는 국가의 장래가 어렵다. 일본도 전후5대 개혁 중에 재벌개혁으로 일본의 부흥을 일궜다.
이에 대해 3당대표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여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싼 노동력에 의존하는 경제는 망하고 만다. 이제는 고임금지불과 더불어 경쟁할 수 있는 경제가 국가의 목표가 될 대다. 이래야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청년이 적령기에 결혼하고 출산과 육아를 제대로 할 수 있게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이에 대해서 필자도 1970년대부터 논문과 칼럼을 수 없이 썼다. 하지만 대형신문사 등은 게재조차 못하게 했다. 이런 곳에서 노동개혁이 되겠는가! 말하게 된다.
노동법의 꿈 실현으로 선진한국 앞당겨야
우리나라 노사안정과 국가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주저하지 말고 노동개혁이 ILO의 국제수준을 지향(指向)해야 한다. 국제노동법의 법 논리를 떠나 ‘경영논리’나 ‘경제논리’ 내지 ‘정치논리’의 판에 박은 논리로는 이 난국을 타개 할 수 없다.
모든 노동법은 악법 제정에 앞서 노동자도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해야한다. 노동법의 꿈이 실현 되도록 선진국의 전례와 같이 우리도 단행해야 할 때다.
노동법의 꿈은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 수 있게 시간법이나, 임금 법, 휴일, 휴가와, 레저도 즐길 수 있는 일반근로조건의 법을 국제기준인 ILO의 협약 권고의 수준을 견지 할 때 가능하다.
선진국 수준은 아닐 지라도 최소한 ILO의 협약과 권고의 국제기준을 지향 할 때 선진국도 앞당길 수 있다. 이는 우리가 해야 할 지상과제이다. 지금의 노동집약적이고 전근대적인 노동법수준으로는 제자리걸음을 피할 수 없다.
당국의 말하는 노동개혁도 현상유지가 아니라 미래지향적으로 적어도 ILO의 협약 권고기준을 지향하고 그 수준이상으로 조정 될 때 가능함을 자신을 갖고 나아가야 한다. 이때 우리도 선진국 한국의 새 장래가 있고, 희망의 새 나라를 기대를 이를 수 있다. 이것은 온 국민의 바람이다.
19세기적 논리로 21세기의 4차 산업시대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우리의 사고의 전환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고 있는 오늘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위정자의 과단성 있는 결단과 분발을 기대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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