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이나 법원까지 노동법에 무지하다

입력 2012-07-15 20:3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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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필자가 일본 유학중 들은 바에 의하면 일본에서 수상이 되면 제일 먼저 정치 현실에 대해 자문을 구하는 과정이 있다. 저명한 노동법 교수를 찾아가 일본의 노사문제 자문을 구하는 과정이 그것이다. 필자도 마스오카 사부로(松岡三郞) 교수의 세미나 시간에 직접 이런 말을 들었다. 정국이 안정을 기하려면 먼저 노사가 안정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노사안정의 바탕이 이뤄져야 안정된다는 것이었다. 자민당의 소수파로 수상에 선출된 미키다게오(三木武夫)수상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이런 일들은 찾아볼 수 없는 것 같다. 한국 정치인들은 말은 노사 안정이라고 하면서 실제는 19세기 논리의 노동법수준을 못 넘는다. 필자가 귀국 후 33년이 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진전이 없기는 매한가지이다. 이는 우리나라 정치수준을 말해 주는 것이다. 노동법을 제대로 알았으면 달라졌을 것임에도 그렇다.
 
요즈음도 종종 노사문제가 화두에 나오는데, 거의 모든 시민들도 노사문제는 부정적으로 말을 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또 어떤 이는 “노조는 없어야 한다”는 말까지 비약하는 경우도 있다. 필자가 60년대 말 유학 간 일본에서는 소위 춘투(春鬪)라 하며 국철(國鐵)이 총파업을 하고 시민에게 불편을 줘도 조용하기에 이런 스트라이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어 봤다. 대개 다음과 같은 답이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들은 가족도 있고 생활이 걸려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닙니까! 그러나 불편을 주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는 주문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근로자의 스트라이크에 대해 이해를 하면서도 철도 이용자에 대해서도 감안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쌍방에 대해 평등하게 이해와 동정을 나타내는 것이 페어플레이 정신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이런 불편을 주는 스트라이크 권을 인정한 것인가. 그 당시 이에 대해 답을 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러나 70년대에 와서는 노동법을 이해하는 층이 많아서인지 제대로 된 응답이 많아졌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언론이 제대로 된 노사문제에 대한 기사를 내보내지 않고, 경영자의 말만 전하는 편향보도를 일삼는다. 이 때문에 국민들은 대개 일본의 명치 헌법체제하의 시각으로 노조문제를 논하는 무지함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투쟁일변도의 강성노조의 잘못된 이념투쟁과 노·사·정의 노동법 무지가 낳은 것도 한몫을 하고 있다. 아울러 한국의 현 지배층이 국제노동법에 무지한 것과 페어플레이 정신의 결여도 그 원인의 일단이다. 노동법은 봉건사회가 붕괴하고 근대적 자본주의 사회의 탄생에서 시작된 것임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그것은 계약에 의거해 자본가에게 사용되는 노동자군(勞動者群)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오늘날에도 노동 없이 인간의 생존은 생각 할 수 없다. 따라서 노동법은 인간의 일반에 관한 법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 시민 사회에 있어서 특유의 역사적 의의를 갖는 임금노동관계를 법적으로, 그 구조·체계·이론 등을 고찰 대상으로 하고 있다.

노사는 대등하다고 하지만 절대 대등한 것이 아니다. 노사가 대등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노조를 결성하고 단체교섭에 들어갈 때 비로소 대등한 관계가 된다. ‘노사는 대등한 가운데 계약을 체결한다’고 하면 시민들은 수긍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사용자와 노동자가 대등 할 수가 없다. 직장을 구하려는 구직자가 사용자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지위로 보나 대등 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자칫하면 시민법에 대해 특별법인 노동법을 시민법과 같이 동률로 보면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을 많이 본다. 지금 우리나라 법원의 판결도 시민법적 판결로 세계의 놀림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 있다. 판결을 내린 법률가들도 이를 아직도 모르고 있다. 시민법의 허구성과 기만성에 대해서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노동법도 외국과 같이 상식적으로 제대로 알고 가는 것이 중요한데 말이다.

필자가 일본 재일 한국인이 경영하는 커피숍에서 직접 보고 들은 이야기가 있다. 아르바이트 학생이 재일동포 사장에게 인사 안했다고 사장이 건방지다고 느껴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하니 “예 알겠습니다. 좋습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뒷날 그 학생은 임금 1개월 분의 지급을 사장에게 정식으로 요구했다. 사장은 “네가 미쳤느냐. 일도 않고서 어찌 한달 치 월급을 달라하느냐.” 야단을 쳤다. 하지만 노동기준법상 1개월 전 해고 고지를 안했다고 해서 그 임금을 지불 하는 경우를 보았다. 이 사례를 보면서 근로자의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노동자는 이런 권리를 제대로 찾아가고 있는지, 주변을 보면 알 수 있다. 잔업을 해도 잔업수당도 못 받는 노동자가 부지기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상식으로 알아야 할 노동법 지식은 OECD국 중 최하위가 아닌가 생각한다. 시민일반에 권리로서 주장 할 것도 하지 않고, 아니 못하고 있는 것은 우리사회의 노동환경을 잘 말해주고 있다.

노동력의 값은 파는 자와 사는 자가 대등한 가운데 정해야 한다. 파는 쪽에서는 그렇게 싼 값으로는 팔지 않는다는 권리, 스트라이크권이 보장돼야 비로소 대등하게 된다. 그래야만 페어플레이라고 할 수 있다. 사용자 생각대로 임금을 정하는 한, 노동자에게는 페어플레이를 생각 할 수 없는 기업이 우리나라에는 많다. 이런 상황에서 적정임금을 호소하는 수단으로 스트라이크를 하는 경우 노조를 나무 랄 수 없다. 노동법을 뛰어넘는 무리한 파업은 법으로 금지되고 있어 정치논리나 경제논리로의 비약은 삼가야 한다. 지금은 우리 기업들도 이윤추구에만 광분 할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의 질을 좀 더 순수하게 생각하고 말이 안 되는 노동 현실을 GDP 10위안에 드는 국가답게 받아 들여야 한다.
 
지금 한국의 총 생산력이 세계 10위권 안에 오른 이면에는 사회보장의 빈곤, 세계최고의 장시간 노동, 저임금, 공무원의 스트라이크 금지 등 노동기본권에 대한 과잉 제한의 그늘이 있다. 또 공무원의 정치 활동에 대한 제한과 시민권에 대한 각종침해 등도 간과해서는 안 될 사안이다. 총 생산력의 비약적 성장은 세계의 상장(相場)을 뛰어넘는 노동기본권과 시민권의 희생위에서 추진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 정책의 배경을 이루는 제3공화국 이후의 ‘자본의 집중화’, ‘독점화’의 진행은 깊은 불균형을 만들었다. 철강, 자동차 선박, 전자제품 등이 전 세계에서 빅 비즈니스(big business)를 하고 있으나 다른 한편에서는 세계 제일의 과로사, 직업병 등 노동재해에 의한 노동자의 살상, 중소기업의 도산, 과로와 재해에 비참한 공해환자 등을 만들고 있다. 노동자뿐만 아니라 중소기업가, 농민, 일반 시민까지 비인간적인 크고 어두운 희생을 가져 온 부분도 있다.

이제 우리도 대국적인 견지에서 애국적인 결단으로 독일 등 선진국같이 같이 ‘정리해고제’ 조문도 없이해야 하고, 비정규직을 프랑스 같이 15% 이하로 내리도록 하며, 임금도 똑같이 ‘동일노동 동일임금’으로 가야 한다. 기업주는 탈법을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1997년 12월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ILO협약 제100호를 비준하고서도 기업들과 법원까지도 무지한 판결을 내리고 있다. 무지가 가히 하늘에 닿고 있다. 노·사·정도 이처럼 무지하고 법원까지도 조약을 무시한 무지한 판결을 하는 나라는 없다. 조약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는 것은 상식이다. 우리도 국제 룰(rule)을 지키며 근로자의 인간다운 삶을 지향한 정책으로 바뀌어져야 한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 경제대국 10위권에 들었다고 하나 MB정부의 인기가 떨어진 이유가 무엇인가. ‘실업문제’와 ‘비정규직’을 제대로 하겠다 하고 이를 그대로 방치한 놓고 있다. 아직도 ‘과로사’가 세계 제일이다. 우리는 국제적으로 ‘노동야만국’의 오명을 못 벗어나고 있다. 법 수준도 국제수준으로 바로 조정하고, 옛 옷을 벗어던져야 할 때가 됐다. 선진국 형으로 탈 바뀜을 해야 한다.

언제나 ‘특수사정’을 강조하며 ‘장시간 노동’에 ‘저임금’을 앵무새 같이 되뇌는 시대는 지났다. 일제시대 50여 년간 이 논리를 써먹은 것을, 제3공화국이후 우리도 50여 년간 더 써먹었다. 일제 식민지 시대를 합치면 100여 년간 노동자는 이런 논리에 시달렸다. 이제 국가 장래를 위해 더 이상 이런 비인도적이고 인권을 좀먹는 논리는 접어야 한다. 인간의 생명은 천하보다도 더 소중하고 귀하다. 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다운 삶을 갖도록 노사정이 지혜를 모우고 힘을 모아 노동법의 꿈의 실현을 하도록 해야 한다. 노동법의 꿈은 노동자가 인간다운 삶을 하도록 임금과 시간을 적정선에서 다루어 노동자가 가족과 레저도 즐기며 건강하게 오래 장수하며 신 바람나는 노동을 할 수 있는 삶의 실현에 있다. 우리도 이제는 이 꿈을 이루도록 해야 할 때다. 국민은 거의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기 때문이다. ‘삶의 질을 외면하는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한다’는 것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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