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버시 의식 박약한 한국, 선진국 못 된다

입력 2016-07-30 13: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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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며칠 전 삼성 이건희 회장에 대한 사생활을 문제 삼은 TV와 신문 및 라디오 보도와 SNS에서 나돌고 있는 내용을 봤다. 그러나 그 내용이 과연 법적인 문제로서 가치가 있느냐에 대해서 생각하며 필자는 이 글을 썼다.
 
선진국에서는 사진을 증거능력으로 보지 않고 참고 하는데 그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는 사진을 증거물로 제시하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직도 19세기적 행태로 연예계나 저명인사가 대상이 되는 보도를 보며 ‘이런 정도 (증거를) 가지고 보도를 하느냐’는 생각을 하게한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사회일반에 ‘세상이 이런 요지경이냐’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풍기는 뉘앙스(nuance)는 그리 명쾌하지 않기에 붓을 들었다.
 
보도를 하는 매체들이나 사진을 찍은 자의 의중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의문이 가는 대목이 하나 둘이 아니다. 불순한 동기가 없다하더라도 이를 퍼뜨리는 것은 그리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기사보다 미담을 더 게재하는 우리 언론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가 앞서기 때문이다.
 
이웃나라 일본은 ‘배꼽 밑의 일에 대해서는 거론을 안 한다’는 속어가 있다. 2000년 전 예수도 그 당시 간음한 여인을 두고 군중이 율법에 따라 돌로 쳐서 죽이라는 데 대하여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고 했다.
 
영상에 나타난 것을 법적으로 다루려는 것도 외국에서는 볼 수 없는 상황인데 석연치 않은 사생활 문제를 걸고넘어지는 사항이 프라이버시(Privacy)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선진국이면 이 정도의 내용의 것을 문제 삼겠느냐’고 반문하고 싶다. ‘프라이버시(Privacy) 와의 관련에서 침해여부를 어느 수준에서 논할 수 있느냐’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사료 된다. 프라이버시(Privacy)는 지켜져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우리나라는 제2차 대전 후 19세기적 사고로 프라이버시문제도 그대로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우리나라의 법적 정서에서 끝일 문제가 아닌 듯하다. 이보다도 더한 경우도 허다한데 식물인간이나 진배없는 이 회장의 사생활 문제를 보도하는 것도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사진을 찍은 자나 보도한 자가 돌을 들어 이건희 회장에게 던질 수 있을 만큼 깨끗하고 자기들이 더 낫다고 말 할 수 있을 만큼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자인지 묻고 있는 시민들도 많이 볼 수 있다.
 
오늘날 개인의 사생활의 일을 누군가 도리에 어긋나게 공표하는 것은 개인의 인격존중에 있어서 불가결(不可缺)한 일에 속한다. 사생활은 인격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한편 정보화 사회가 발달함에 따라 ‘알 권리’를 충족하기 위해 대중에게 보도되는 매스미디어(mass media)는 자주적인 편집권, 취재의 자유 등이 확보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때문에 개인의 생활을 대규모로 폭로·공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게 문제다.
 
이로 인해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명예, 프라이버시(Privacy)의 권리와의 충돌을 낳고 있으며 중대한 인격문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생각해 볼 문제이다.
 
프라이버시(Privacy)의 권리의 근거
 
프라이버시의 권리는 미국에서 19세기 말에 제창돼 승인됐다. 그 내용은 ‘사생활을 도리에 어긋나게 공개되지 않은 법적보장’으로서 정의(定義)했다.
 
일반적으로 프라이버시(Privacy)의 권리는 국가와 사인(私人)의 두 가지 측면으로부터 볼 수 있다. 하나는 국가권력은 개인의 사적사항에 속하는 것에 관해서 공개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고, 둘째는 타인은 개인의 사적사항에 속하는 것에 관해서도 공개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어려운 문제를 만들고 있는 것은 후자의 경우이다. 신문·라디오·TV 등에 의한 대중전달수단(mass communication)이 고도로 발달한 현재, 보도 및 취재활동에 의해서 개인의 프라이버시의 권리가 침해될 가능성이 현저하게 증대하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프라이버시의 권리와 표현의 자유나 알 권리와의 관계에서다. 그것은 기본적인권의 사인 간(私人間)적용의 전형적 사례이기도 하다. 각인 상호관계에 있어서는 프라이버시의 권리의 주장은 표현의 자유가 제한이 되므로 표현자유의 보장이 곧 프라이버시의 권리제한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경우도 프라이버시 권리와 표현의 자유, 알 권리와의 조정(調整)을 어떻게 도출 할 것인가가 미묘한 문제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제2차 대전 후의 인권은 국제법상으로도 새로 대두된 한 장(章)으로 다루는 법 개념이 되고 있다.
 
헌법상의 근거에 관해서는 개인의 ‘존엄’ 및 ‘행복추구권’에 구하는 것이 일반적이긴 하지만, 이 견해에 대해서는 행복추구권이 추상적이고 일반적이기 때문에 너무 불명확하다.
 
그리고 프라이버시(Privacy)권리 중 많은 문제가 되는 것은 대사인간(對私人間)이고 대 권력과의 관계에서의 헌법상 권리에 의해서 기초로 자리매김 하는 것이다.
 
프라이버시의 실정법상의 근거내용은 무엇인가?
 
프라이버시(Privacy)의 실정법상의 근거는 헌법 제10조의 개인의 존엄 및 행복추구권에 의할 수 있다. 프라이버시의 침해가 되는 것은 공개된 내용이 사생활상의 사실 또는 사실인양 받아들일 수 있는 경우일 때다. 외국판례도 이에 따르고 있다.
 
즉 일반인이 감수성을 기준으로 해서 당해 사인(私人)이 입장에 선 경우, 공개를 바라지 않은 것이라고 인정되는 것과, 일반인이 아직 알고 있지 않은 것 등이 요하는 것으로서 프라이버시(Privacy)의 권리를 일반적 ‘인격권’으로서 승인하고 있다.
 
또한 프라이버시(Privacy)의 권리는 오늘에는 자기에 관한 정보의 컨트롤(Control)권이라고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정보란 정보일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사생활에 관계되는 정보의 의미로 이해되고 있다.
 
따라서 권리의 내용은 초상권(肖像權)과 본인이 한 말에 대한 권리(비밀녹음의 문제), 비밀영역에 대한 권리(편지·일기·진단서 등), 사적영역의 존중에 대한 권리(사생활을 엿본다든가, 도청한다든가, 더욱이 이를 공표하는 등의 문제) 등이 주요 내용이 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선진국에서도 프라이버시(Privacy)의 침해는 사생활의 공개뿐만 아니라 도청(盜聽) 등의 여러 가지 형태로 많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음도 본다.
 
여기에는 공권력에 의한 ‘개인에 관한 정보의 집적(集積) 자체가 개인의 존엄을 위협하게끔 돼있어서 자기로서 자신에 관한 정보는 자신이 관리할 권리로 봐야 한다’는 적극적인 제언(提言)이 제기되며 유력한 학설이 되고 있기도 하다.
 
즉, 학설의 입장에서 보면 컴퓨터(Computer)의 도입이 일반적경향인 오늘에는 국가의 집적(集積)한 데이터(data)에 대한 모든 사람의 개인데이터에 대한 심사. 정정(訂正), 제거(除去)등 데이터(data)의 부당사용을 감시하는 권리 등이 다뤄지고 있다.
 
프라이버시의 침해에 대해서는 그 구제방법으로서 손해배상과 사전에 억제내지 금지가 인정되나 프라이버시의 문제는 사실이 공표된 후에는 권리의 본질적인 회복이 되지 않기 때문에 사전에 이를 금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 여기에 곁들여 통신의 비밀에 대하여도 잠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프라이버시의 권리와 통신비밀의 보장
 
헌법 18조는 통신 비밀을 보장하고 있다. 통신 비밀이 보장되고 있는 의의(意義)는 개인의 사생활이나 사사(私事)의 자유나 비밀의 확보 등 소위 프라이버시(Privacy)의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상, 양심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헌법이 ‘통신의 비밀’을 ‘표현의 자유’의 개소(個所)에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이 점을 고려하고 인간의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을 보호하려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통신비밀의 보장이란, 공권력에 의해서 통신의 비밀을 묻고 아는 것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공권력에 의해서 발신에 앞서서 통신의 내용이나 발신 후 수신인에게 도달하기 전에 통신의 내용을 조사한다든가 수신 후 그 내용을 조사하는 것과 그 내용을 조사한 후에 발신자 또는 수신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을 금지 한 것이다.
 
통신비밀의 보상대상에는 우편은 물론 전신·전화 등 기타 일체의 표현수단이 포함된다. 특히 개인 간의 대화 등도 그 보장의 취지로부터 생각한다면 비밀은 지켜지지 않으면 안 된다. 공무원은 전신 전화 등 기타 직무상 알게 된 내용에 관해 비밀을 지키지 않으면 아니 된다. 이는 공무원이 아닌 일반 회사원에게도 적용된다.
 
다음으로 통신비밀의 제한문제에는 아래와 같은 경우가 예상 된다.
 
우편물의 압류에 관해서 형사소송법제107조(우편물의 압수)의 경우는 그 요건을 완화하고 있으나 이 제약이 헌법상 허용되는 내재적(內在的) 제약(制約)으로서 필요최소한의 것인가에 관해서는 그 합헌성에 강한 의문이 있다.
 
더욱이 범죄수사를 위해 전화도청이 허용되느냐 않느냐에 관해 문제가 있다. 이 도청에 관해서도 영장이 있으면 허용된다는 외국의 판례가 있다. 그러나 오늘날 헌법 제14조(주거의 자유) 제14조의 (통신의 자유)의 요건에 충족되는 영장이 있으면 허용된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도청의 경우 영장의 대상이 도청의 성질로부터 불명확해서 일반적으로 할 수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따라서 도청의 경우 도청을 영장이 있으면 허용되지만 이와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견해와 대립하고 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국가 공공단체 민간의 데이터뱅크(Data Bank)의 출현에 의해 새로운 국면에 응하는 보장 시스템을 필요로 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한국의 전통적인 문화 속에서 프라이버시의 권리의식은 박약하고 권리 측의 조사에 대해서도 사적인 매체에 의한 엿보기 등에 대해서 저항감각이 결여되어 있는 경우가 많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프라이버시 권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원인이기도 하다.
 
이러한 정치사회의 문화는 일조일석에 바꿔지지 않는다고 해도 프라이버시의 존중은 인권 일반의 기초이기 때문에 국민의 생활심리의 안으로부터의 변혁이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이 볼 때 국민의 알 권리나 프라이버시의 권리에 있어서도 미디어(media)의 보도의 자유에 있어서도 이를 지탱하는 우리나라의 문화적 풍토는 매우 취약(脆弱)한 성질을 갖고 있어 이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6.25전쟁을 겪은 덕에 한국인의 사상, 표현의 자유 등은 현재 세계 250여의 국가 중에서도 매우 잘 지켜지고 있는 부류에 속한다. 그러나 내면에 들어가 보면 정치의 구조와 같이 전근대적인 제관계(諸關係)나 의식간(意識間)에 움직이기 쉬운 활단층(活斷層)을 안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IT강국으로 발전하고 10위권의 생활여건이 좋아졌다고 하나 정보화 사회의 인권문제는 정치문화의 지층(地層)에 직결해서 움직이고 있어 아직도 선진국수준에는 못 미치고 있는 것도 바로 알아야 한다.
 
아직도 우리는 19세기적 법적사고와 가치관 문제를 안고 있다. 21세기 정보화 사회에 돌입한 오늘 프라이버시에 대한 침해 없이 건전한 민주국가로 인권 침해없는 법문화를 지닌 선진사회로 발전되기를 기대하며 붓을 멈춘다.
이을형 필진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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