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보다 시급한 일제명치헌법의식 불식

입력 2016-08-06 12:28:52

원문 링크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규제를 풀고 법다운 법을 만들어야 한다.
 
올해는 광복 71주년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지도급 정치인, 언론인, 법조인 등은 물론 재계와 학계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의 근저(根底)에는 일제(日帝)시대의 의식이 불식 되고 있지 않은 듯하다.
 
이는 일제의 명치헌법(明治憲法) 체재 하에서 성장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또한, 우리나라는 법제정에서부터 이 법이 어떤 결과를 가져 올 것인가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다. 명치헌법의식(明治憲法意識)이란 정치권력이 만드는 ‘법률만능(法律萬能)’이며 이에 맞서는 행위는 ’범죄(犯罪)‘라 하는 의식(意識)을 뜻한다.
 
지금 우리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난날 일본의 식민정책으로 쓰던 규제를 일소(一掃)하고 잘못된 규제부터 풀어야 한다. 하지만 국회는 이에 대해 태만한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것은 직무태만이나 다름없는 문제점이다.
 
지금 우리나라 정부가 법에 근거해서 집행되고 있는 규제가 1만5000여건에 달하고, 지방자치단체들이 법에 근거가 없는 규제가 조례(條例)·규칙(規則)이라며 만든 것만도 3만9508건에 이른다는 신문보도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 통계에는 국회, 법원이 하는 규제, 병역법과 군사시설 관련 규제, 세법(稅法)규제는 아예 이 통계에도 없다고 하는데 이는 우리나라가 아직도 ‘법만능(法萬能)의 늪으로 끌고 가며 유아독존(唯我獨尊)의 태도이다. 이는 시급히 시정돼져야 할 점이다.
 
일본은 패전 후 명치헌법(明治憲法)을 ‘일본국헌법(日本國憲法)’으로 탈 바뀜 한 후 ‘국적법(國籍法)’과 ‘외국인등록 법(外國人登錄 法)’정도만 종전대로 하고 모든 규제에서 ‘일본국헌법(日本國憲法)’체제로 바꿔서 우리보다 앞선 국민에 봉사 하고 있다.
 
일본은 아무리 권력이 있고 지위가 높아도 합리적이고 합법적이고 타당성이 없으면 아니 되는 관료체제를 갖췄다. 이를 통해 일본 행정체제는 안정적으로 정착했다. 오늘은 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붓이 가는대로 잡상(雜想)을 적어보고자 한다.
 
김영란법도 부조리 제거의 한 방편일 뿐 만능은 아니다
 
지난달 28일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합헌결정’을 내렸다. 해당 법은 오는 9월 28일부터 시행된다. 하지만 성공 여부는 불투명 할 전망이다. 법제정만으로는 성공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이 법의 제정에 앞서 우리의 정신상황을 볼 필요가 있다. 어디까지 성공할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가차관은 돈 벌고 성공을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은 가치관이 만연했다. 이를 김영란법으로만 개선시킬 수 있을까. 기대난이다.
 
우리 교육은 가치관·인성 부분에 대해서는 부족한 실정이다. 오로지 ‘돈 벌고 출세하라’는 것이 현실이다. 솔선수범해야 할 지도급 인사들이 솔선수범 해야하지만 비리가 일반화 된 이 사회에 온 국민이 가치관회복을 위한 교육도 병행되지 않고서는 실효를 거두기가 어렵다고 본다.
 
지도급들이 더 법망(法網)을 피한다. 병역비리, 금융비리, 법조비리, 대기업비리, 의료계비리 등으로 대표된다. 시민단체와 종교도 말할 것이 없다. 신문보도 등 매체를 통해 나오는 것은 온통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뿐이다.
 
하버드대학 출신으로 ‘푸른눈의 수행자’ 현각스님이 28일 페이스북을 통해 “한국 불교는 기복(祈福)+돈만($)만 밝히는 불교”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현각스님이 한국불교를 떠나겠다고 할 정도로다.
 
기독교도 다르지 않다. 기독교는 3·1운동 시 독립선언문에 33인중 16명이 대표로 참여할 정도로 애국애족 종교로 존경을 받아왔으나 지금은 변질됐다. 부끄러울 정도다.
 
3·1운동 당시 우리나라 인구는 1700만이었다. 기독교인은 2%에 불과했다. 그러나 조국독립을 위한 애국심은 대단했다. 기독교가 애국을 위해 3·1운동당시 희생된, 죽음과 고초를 당한 자가 25%가 나올 정도로 일반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100만 명이 넘는 교세를 자랑 하지만 국가민족을 위한 모범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일부 교역자 중에는 물질적인 거대교회만을 지향하며 교인 수를 자랑하면서 교회의 거대화(巨大化)와 경제적 이익을 위해 몰두한다. 과도하게 타락한 모습이다.
 
교회 지도자라는 교역자가 목사의 직함만으로는 모자라 사회의 감투에 혈안이 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법과 원칙과 상식을 벗어나는 일은 예사로 하는 교역자를 어렵지 않게 우리주변에 볼 수 있는데 실망이 가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모든 교역자가 다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유독 거대교회의 몇 교회의 교역자는 왜 이리 감투에 열을 올리는지 동정이 갈 정도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할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판국이다. 교인도 이를 환영하고 있는 듯 기독교 사회도 국가공동체의식과 연대의식이 요구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사회풍토에서 김영란 법도 취지는 좋으나 이 사회의 병폐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법사회학적으로 좀 심사숙고를 더 해 그 실효를 거두기 위한 연구가 광범위하게 전재돼야 했다. 이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졸속 측면이 없지않은 것이다.
 
이 사회에 만연된 우리의 정신적 상황이 염려가 되는 까닭은 법제정만으로 가능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치관이 변질된 것을 제대로 확립시키기 위한 교육과 훈련도 수반해야 성공하는데 우리의 정신상황이 그리 낙관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영란법은 형벌법령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면 형벌을 받을 가능성은 있다는 것이 통상의 해석으로 나올 것이다. 이러한 판결은 매우 법 만능(法 萬能)의 사고(思考)로 법사회학적 관점에서 고려해야 할 문제가 있다.
 
누구나가 다 알 수 있는바와 같이 우리나라헌법의 큰 특색의 하나는, 의회의 다수결에 의해서 재정된 법률뿐만 아니라 정부의 행정행위도 헌법에 위반하는 경우에는 이를 무효로 하는 것이다. 이는 헌법이 ‘최고법규성(最高法規性)’을 갖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가 김영란 법이 합헌(合憲)이라는 판결이 나온 이상, 잘 지켜지기를 바라지만 지난날 ‘간통죄’에서 보듯 법을 악용될 수 있는 점은 매우 우려되는 점이 있다.
 
우리나라법조계는 시민법의 원리만을 상정(想定)해서 시민법의 수정원리는 일반화 돼 있지 않아 대학에서나 법정에서도 오로지 조문위주로 법해석에만 의존 하고 있는 실정은 문제이다. 대법원과 헌재에서도 이는 다르지 않은 판례를 볼 수 있다.
 
법에 명시되는 것 외에 전반적으로 역사적으로 사상적으로 문화적으로 법사화학적인 이론도 적용해야 하는데 법조문이 없으면 재판 자체가 되지 않음에서 대륙법계통의 선진국이 조문이 없어도 재판 할 수 있는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선진국은 조문이 없으면 조리를 부상시켜서 재판이 가능한 것을 우리는 옛 방식 그대로다. 20세기 법 수준에서 멈추어 서서 정체돼 있는 상태다.
 
따라서 김영란 법도 앞으로 논란이 많음에서 법률행위의 논리도 국제법률행위와도 연관해 성공을 기대하나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 좋은 결과를 얻도록 잘 되기를 기대 할 뿐이다.
 
한편 우리국회는 이러한 법을 만들 때도 연구를 제대로 하고 법사회학적으로 검토 분석을 잘해서 국가기강(國家紀綱)을 잡는데 있어 규제보다 교육훈련을 통한 방법도 같이 논의해서 빈틈이 없는 법으로 나와야 했다. 앞으로 보완이 되겠지만 문제는 많다.
 
국회, 국가와 민족 우선하는 ’선공후사‘ 정신 기대
 
말은 바뀌지만 우리국회가 일하는 국회가 되기 위해서는 개인과 지역선거구가 먼저가 아니라 국가와 민족을 우선하는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정신을 보여 줬으면 한다.
 
위안부 할머니문제도 한일협정이 제대로 됐는가도 한번 살펴보기 바라진다. 감정에 앞서 냉정히 검토하면 위안부 할머니가 왜 이렇게 됐는지 위안부 문제도 그 원인을 제대로 살피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한일협정 시 국제법 무지와 개인의 개별청구권을 포기가 원인임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한일협정을 비준한 국회가나서서 잘못된 것도 풀어줘야 한다. 사실 한일협정의 내용을 보면 참으로 엉망이다. 왜 이렇게 했는지 국회는 한번 짚고 가야 한다. 일본의 함정에 다 빠지고 있으면서도 이를 모르는 정치인이라면 더욱 문제라 할 수 있다.
 
한일협정이 잘못된 부분은 UN조약 법 제65조에 의해 다시 재론 할 수 있다. 국회에서 이에 대한 논란이 한 번도 없음은 죽은 국회이다. 할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상식적으로도 청(淸)·일(日)간에 맺은 ‘간도조약’은 우리와 관계없는 조약이다. 조약의 효력은 당사국에 한하는 것인데, 잘못된 문구에 대해, 그 것을 그대로 두고 있다. 문제를 바로 잡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대처해 주기 바라진다.
 
또한 일본이 우리나라침략과정의 5조약은 늑약이다. 이 늑약(勒約)도 제대로 밝혀 일본이 우리나라침략을 한 것을 인정하게 하고 보상 문제도 다시 재론해야 한다.
 
그래야 일본이 고개를 숙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 입법부가 헌법의식(憲法意識)과 능력이 의문시되는 점이 많다는 점이다. 헌법위반의 법을 만들고 국가 위신을 추락시키고 조약비준(條約批准)도 잘못한 것이 수정한바가 없는 것은 문제다.
 
한 실례로 국제법 상식으로도 말이 아니 되는 조약비준은 국가 위상과도 직결 된다. 우리와 상관이 없는 ‘간도조약’까지 협정문에 넣어서 비준하고 있는 것은 무지가 하늘에 닿아 있다. 참으로 낮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일협정의 내용을 다시 보고 국회가 하루속히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 지금 국민은 국회에서 할 일은 제대로 아니하며 집안에서 싸움만하는 것으로 비춰지는 오늘의 국회는 그 위상이 말이 아니다. 국가위상도 같이 떨어지게 하는데 분노하고 있다.
 
위안부할머니들이 고생하는 것도 국회에서 개별보상을 안하기로 한 것을 제대로 알려주고 시간낭비의 소모를 하지 않게 하고 보상이 제대로 되게끔 한일협정을 다시 손을 봐야 하는 것이다.
 
글을 맺으며, 김영란 법에 관해서도 기술적인 법 해석의 문제보다는 현대법(現代法)에 있어서 기본적 권리와 책무에 대한 기본자세의 문제다. 금후 이 법 운영도 그 제약(制約)은 합리성이 인정되는 필요최소한도에 끝여서 형사제제를 과하는데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
 
잘못되면 악용되는 법이 되지 않도록 그 실시에 철저히 임하도록 해야 한다. 필자가 일본에 유학당시 일본국회에서 제정된 법 중에는 헌법위반이 된 법이 하나도 없었음에 놀랐다. 이는 일본이 법적 수준이 우리와 다른 점이란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우리 국회도 헌법위반의 법이나 헌재에 위헌여부를 묻는 법 제정은 제정 않는 국회로 세계에서 자랑스러운 국회가 되기를 기대해 진다. 이는 온 국민의 바람이기도 하다.
이을형 필진페이지 +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0
좋아요
0
감동이에요
0
화나요
0
슬퍼요
0
댓글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