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현지답사…백제 비사성은 중국에 있었다

입력 2016-08-14 23:4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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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필자는 ‘새 정음(正音) 인류문자’를 완성하신 김세환 선생의 권유로 제32차 ‘고조선유적답사’에 참여했다. 총 26명의 답사대 일원으로 지난 1일부터 7일까지 6박 7일 간 중국 내 유적을 답사했다.
 
인천공항을 출발해 대련(大連)에 도착했다. 이곳을 시작으로 영구(營口), 조양(朝陽), 우하량(牛河梁), 능원(陵園, 적봉赤峰), 파림좌기, 옹우특기(翁牛特旗)등 유적답사했다.
 
비사성 요상경, 요중경, 적봉(赤峰)의 홍산문화(紅山文化), 우아량의 유적, 조양의 모용씨거리, 의무려산, 사해촌, 여순감옥 등의 유적을 보며 우리민족의 기상과 유구한 역사의 현장을 직접 보며 우리역사의 뒤엎어진 현실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답사회의 구성은 최성미 임실문화원 원장을 단장으로 안동립 답사회 회장(동아지도 사장)과, 김남석 총무(주식회사 대원사 사장)를 답사회의 친절한 안내를 받았다.
 
같이 참여한 분은 김세환 선생을 비롯해서 역사연구가인 서승(전 전주문화원장)과 이일걸(간도학회회장)교수를 비롯한 간도지리학회 교수님 윤승용, 박종규, 민경식, 박영규, 정병욱 교수와 백종인(전북대 교수), ‘우리상고사’등 많은 저서를 낸 충북옥천 가산사의 주지이신 정풍열 스님, 남원호(전 서울시인쇄조합장), 이선노(비지아이 대표), 강상윤(시인·교사), 전주역사동우회 이규소, 박찬희 이미선, 백은희, 황현규, 조철희, 정수미, 김태윤 등이었다.
 
이번 답사의 특징은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고조선(단군조선)의 광역을 어떻게 했는지를 살펴보고 역사를 왜곡하는 중국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데서 그 진위를 바로 보고 우리역사를 바로 잡는데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할 것을 알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봐야 할 박물관과 역사유적들을 공사 중이거나 아직도 문을 열지 않은 곳이 있어서 다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보고 느낀 것을 중심으로 고조선의 중심 활동 지역이 요동을 중심으로 전개된 사실을 다뤄 보고자 한다.
 
고조선 중심은 어디였나…그 실체, 바로 알아야
 
원래 고조선의 중심부는 산동반도와 요동반도 사이의 바다, 발해만(渤海灣)의 북쪽 요동에 있었다. 즉, 고조선은 북경근처의 난하(灤河)로부터 흑룡강(黑龍江), 그리고 한반도 대부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여러 국가를 세우고 존속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중국과 일본이 역사서를 다 불태워 없앴다. 같이 답사에 동참한 정풍열 스님의 말을 빌린다면 당시 죽간(竹簡)인 백제의 역사기록을 수개월간 불태웠고 고구려 기록은 더 오래 4개월간 불태웠다고 정풍열 스님은 말했다.
 
그러나 남아 있는 역사서를 통해 그나마 알 수 있는 것은 고구려와 발해계통의 옛 기록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우리가 알기로는 고조선의 제후국(諸侯國)만도 170여개로 고대에 이 요동을 중심으로 대제국(大帝國)을 이루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부분적으로 다 피력했다. 제왕운기(帝王韻紀)에도 “요동에 별천지가 있으니 중국의 여러 왕조와는 뚜렷하게 구분 되며, 반도가 북의 대륙과 연해있는 중방 천리 땅이 조선(朝鮮)”이라 했다.
 
또, “시라(尸羅), 고례, 예(濊)와 맥(貊)은 모두 단군의 자손이다. 열국이 모이고 헤어지며 강성하고 쇠퇴해 삼한이 이루어 졌다. 주(州)와 현(縣)이 산곡 간(山谷 間)에 흩어져 각각 나라라 일컬으며 서로 침략했다. 그 중의 대국은 부여와 비류국이었고 그 다음은 삼국과 남북 옥저와 예맥 이었다”고 한 바 있다.
 
신채호 선생은 ‘고조선 연구 초’에서 “동국총목(東國總目)이 단군 강역(疆域), 즉 삼조선의 영역은 북으로는 흑룡강에 이르고 남으로는 조령에 이른다고 한 것이 대개 근리하다”고 했다. 고조선은 강단학파가 말하는 것처럼 북한 평양대동강 유역이 아니다.
 
평양은 서울을 뜻하는 말로 그 지명은 중국대륙에 여러 군데 있다. 우리가 고대사 연구에서 가장 실패하는 것이 이러한 지명의 혼동을 정확히 가려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명(地名)은 민족을 따라 요동(遼東)에서 한반도로, 일본으로 이동한 것이 많다. 당시의 역사를 제대로 모르면 혼동해 잘못 기재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가 그렇다. 우리역사는 일제가 기획한 내용 그대로로 뒤엎어져 있어 처음 답사한 사비성도 한반도가 아닌 중국에 있는데 잘못 가르치고 있다.
 
백제의 비사성(卑沙城)은 한반도 아닌 ‘중국’에 자리했다
 
이번에 제일먼저 답사한 곳은 비사성(卑沙城)이었다. 이 비사성(卑沙城)은 우리천리장성이 시작 하는 곳으로, 대흑산(大黑山) 또는 대혁산(大赫山)으로, 불리는 표고(標高)663.1m, 면적이 23.79Km2 로 대련(大連)에서 25Km의 위치에 있는 산성이었다.
 
발해를 끼고 있었고 이 산에는 조양사(朝陽寺), 향수관(향水觀), 점장대(点將臺), 관음각(觀音閣)이 있었다. 요남(遼)南)의 경승지(景勝地)로 불러지고 있는 이 산은 대련(大連)이 가까워 대련대학(大連大學), 오봉로(五鳳路), 석고사(石鼓寺)등도 안고 있다.
 
이 비사성(卑沙城)은 당태종이 고구려를 침범했다가 양만춘(楊萬春)장군이 쏜 화살에 한눈을 잃고 사비성 남쪽으로 도망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길목에는 지금 당태종의 궁궐을 짓는다고 건축을 하고 있었다.
 
건축 입구에는 큰 비석도 세워 져 있는데 아직은 한 글자도 새겨 져 있지 않았다. 건축이 완성 되면 아마도 당 태종이 패전이 승전비로 되 바꿔질 것이 아닌 가 추측되는 비석으로 보아지기도 했다.
 
여기에는 당 태종(太宗)을 기리는 사당(祠堂)같은 것도 있어 중국의 역사왜곡의 현장을 답사 첫날부터 느끼게 하는데 역사는 이래서는 아니 된다는 마음이 앞섰다.
 
이번 답사는 고조선을 전 후한 고대사의 현장을 찾아가는 것이었기에 고조선의 활동 무대인 요동과 대 평원이 펼쳐진 내몽골과 동북지역에서 우리선조의 활동무대를 살펴 볼 수 있어 유익했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우리선조의 연고를 삭제하고 지우며 같은 우리의 한민족인 요(遼), 금(金), 청(淸), 원(元)등 우리역사를 중국역사로 둔갑한 현실을 보며 마음 아팠다. 앞으로 우리가 바로 세워야 할 역사의 현장은 완전히 중국으로 띄우고 있었다.
 
참으로 슬픈 현장이었다. 그러나 우리선조가 남긴 역사와 문명, 문화는 오늘도 숨 쉬고 있는 현장을 보며 역사는 거짓으로 꾸며지지 않으며 우리역사는 우리가 다시 바로 세워야 한다는 다짐도 마음 깊이 색이게 했다.
 
고조선 활동의 중심지, 오늘날 ‘요동(遼東)땅’…사마천 ‘사기’, ‘삼국사기’ 등에도 나와
 
요동이 고조선의 활동 중심지였음은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史記)’의 조선 열전(朝鮮列傳)과 ‘전한서(前漢書)’ 지리지(地理誌), ‘삼국유사(三國遺事)’와 ‘삼국사기(三國史記)’등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한편 고조선이 발해만 북쪽에 있었음을 알게 하는 기록은 중국 문헌에도 보인다.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는 위서(僞書)이지만 사기(史記) 조선열전(朝鮮列傳)에 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치기 위해 육해군을 보냈다고 했다.
 
그 기록에는 육군은 요동으로 가서 치고 해군은 제(齊)를 출발해 발해(渤海)를 항해 한 뒤 위만조선에 도착한 것으로 돼 있다. 이로서 원래 고조선의 속령(屬領)이다가 위만조선의 영토가 된 요동이 발해의 북쪽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발해는 지금의 발해이고 제(齊)는 지금의 산동(山東)이다. 그렇다면 이 고대의 요동이 어디인가의 위치는 요동이 한반도가 아님으로 발해 북쪽에 위치했음을 알 수 있다. 위만조선이 발해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부식이 쓴 ‘삼국유사’는 한(漢)이 위만조선을 치러온 ‘전한서(前漢書)’의 조선조기록을 그대로 인용했다. 그 내용은 사기(史記)의 조선열전의 내용과 일치 되는 것이다.
 
또, 이암(李嵒)이 쓴 ‘단군세기(檀君世紀)’에 단군의 태자(太子) 부루가 도산(途山)의 회의에서 중국의 하우(夏虞;우임금)와 만나게 하고 양국의 국경을 감정해 유주와 영주 및 청주를 우리에게 속하게 획정 했다고 했다.
 
그 곳은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일부와 산동성(山東省), 요녕성(遼寧省), 길림성(吉林省), 및 그 동 쪽이다. 이맥(李陌)의 ‘태백일사’에는 “단군임금32년(서기전2301년)에 험독(險凟), 개평(蓋平), 갈산(碣山)등 요중(遼中)의 12성(城)을 쌓았다”는 기사가 있다.
 
북애(北崖)도 규원사화(閨怨史話)에서 요심(遼瀋)과 유연(幽燕)의 땅은 신시시대(神市時代)부터이며 이미 우리 한민족이 농목(農牧)하던 땅이었다. 우리민족이 활약한 지역은 요동을 중심으로 한 압록강 이북의 대륙이었음을 명시하고 있다.
 
우리고대사유적답사팀은 이 요동을 중심으로 일정을 짜고 이 지역을 답사하고 온 것이다. 이 지역은 환국과 신시배달국의 활동무대이기도 하다. 6000년 전 우리고대문명을 꽃피운 광활한 땅으로 5대문명의 첫 단추를 낀 곳이기도 해 매우의미가 깊었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국가형성의 사회사‘.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智勝, ’上古史‘ -桓檀古記古記, 符都誌의 실상-. 二十一世紀出版社集團, ’山海經‘. 大連出版社, ‘行走 大黑山’.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유우찬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과 북방주민들’. 홍윤기,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石井進外, ‘詳說日本史,‘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上井久義, ‘日本古代の親族と祭祀’. Georges Duby : L'HISTOIRE CONTINUE, 松村剛 譯 ‘歷史は續く’. 坂本泰良,‘明治維新から現代へ’.劉泳,海燕,‘赤蜂博物館’. 黃斌, 劉厚生, ‘箕氏朝鮮史話’ ‘各國別 [世界史の整理] 三省堂發行’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 世界史史料集’,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石井進, 笠原一男, 兒玉幸多, 笹山晴生, ‘詳說日本史’. 西東社출出版部編, ‘日本の古墳,古代遺跡’ 외 다수서책을 참조, 본문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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