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원내대표는 법의 지배원리를 모른다”

입력 2012-07-30 02:2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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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검찰로부터 두 번이나 소환 통보를 받은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이에 불응하면서 지난 24일 국회 법사위원회에서 한 말을 보면 쓴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박 원내대표는 “검찰이 나를 잡으려고 오문철 전 보해 저축은행 대표와 임석 솔로몬 저축은행 회장을 매일 불러 조사 한 뒤 돌려보내고 있다. 대선을 5개월 앞둔 상황에서 야당 원내 대표에 대해 이런 식으로 수사하면 안 된다”는 발언을 했다. 이미 필자는 3년 전 ‘법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쉽다’라는 칼럼을 다른 언론에서 기고한 일이 있어 다시 쓸 필요를 느끼지 않으나 우리나라 법조문화의 발전을 위해서는 지도급에 있는 리더들이 먼저 법적 사고를 갖고 법을 지키는데 솔선수범을 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뼈를 깎는 심정으로 다시 쓰게 된다. 우리나라는 지금 16세기 국가가 아니다. 엄연히 21세기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고자 하는 국가답게 법조문화도 병행해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 어느 한 사람의 편의에 의하지 않음은 모두 아는 상식이기에 더 이상 논할 필요가 없겠으나 다시는 이러한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일부 정치인들에게 법적 사고를 주문하게 된다. 공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법을 무시하는 태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법위에 군림하려는 것은 16세기적 행동이다.
 
정치하려면 법 공부부터 해야
 
미국은 이런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도 법을 공부하고 정치판에 나온다. 실제로 43명 대통령 중 34명이 법대 출신일 정도다. 우리는 법을 공부한 사람이나 안한 사람이나 법에 대한 실수나 오류가 너무 많다. 일찍이 영국은 16~17세기 전제군주의 집행권 강화에 대해 의회와 법원이 보통법(Common Law)을 중시하는데 반항해 ‘명예혁명’을 통해 의회 입법의 최고성의 명문화(明文化)로 법의 지배원칙을 확립했다. 이는 노르만 왕조의 강력한 왕권을 배경으로 해서 국왕의 재판소가 지방적, 사적인 재판권을 구축(驅逐)해 13세기경에 영국의 국가 일반 관행으로서 만들어진 통일적 관습법(Common Law)으로 영국 통상 재판소가 취급해온 일반 국내법 즉, 판례의 중시와 배심제도인 관습법(Common Law)의 특성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것이었다. 1624년 ‘권리청원’을 기초 발의해 제임스 1세의 재판간섭에 대해서 재판권독립과 의회주권을 위해 왕권과 항쟁해 1628년 ‘권리청원’이 발효되고, 1649년 ‘청교도 혁명’과 1979년 ‘인신보호율(律)]이 나왔다. 이어 1688년 ’명예혁명’, 그 이듬 해 ‘권리장전’의 역사를 본다.
 
미국은 철저한 3권 분립주의다. 헌법의 최고법규성의 명문화로 사법권에 위헌입법심사권을 부여해 사법권의 우위를 인정하게 됐다. 독일은 법치국가를 지향, 제정법에 의한 국가권력의 행사(입헌주의)로 법질서의 유지, 법률의 우월적 지위(법률의 지배)로 법률에 의한 행정, 죄형법정주의로 갔다. 한국과 일본은 영·미와 같은 ‘법의 지배원리’를 채용해 ‘헌법에 의한 지배’ 즉, 국가권력도 정립(定立)된 법에 구속된 것이다. 헌법의 최고 법규성, 공무원의 헌법준수의무, 법의 해석은 사법권의 독립과 위헌입법심사권, 법 밑에 평등 등을 내세우게 됐다. 사람의 지배에 대립하는 ‘법의 지배’는 법치주의 원칙을 취해서 국민의 권리나 자유를 보장하려는 것이다. 우리 헌법에 ‘법의 지배’라는 말은 없으나 실질적으로는 ‘법의 지배’가 관류(貫流)하고 있다. 법 밑에 평등이나 합법적 사법절차에 의한 자유의 구속 등을 규정했다. 특히 위헌입법심사권규정과 사법권의 우위에 의해 인권보장을 확립하려 하고 있다. 이를 국회의원이라고 해서 예외를 둘 수 없는 것임에도 검찰의 소환에 불응하는 것은 법의 지배 정신에 합치한다고 볼 수 없다.
 
사법권 개입은 민주정치 지도 원리에 역행
 
또한 법사위원회에서 마치 정치공작인양, 그것도 원내 총무로서 법사위 위원이 돼 이 같은 발언을 한 것은 사법권에 개입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민주정치가 무엇인가. 그 어원을 보면 democracy는 영어 demos(국민)와 그리스어 Kratia(권력, 지배)의 의미다. 일부의 사람이 권력을 독점해서 행하는 독재자 정치, 전제군주정치, 귀족정치와는 구별되는 정치원리, 정치형태를 가리키는 의미다. 미국 제16대 링컨대통령의 1863년 게스티버그에서의 유명한 연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는 이를 정의화(定義化)한 것이다. 오늘날 민주정치는 이처럼 세계를 지배하는 지도원리가 되고 있다. 인류는 민주정치가 ‘국민의 권력’, ‘국민 지배’라고 말 할 때 그 국민을 가리키는 의미와 내용의 확대를 위해서 참다운 ‘국민의 권력’, ‘국민의 지배’를 위해서 매우 긴 역사를 거처 왔다. 또 민주정치(democracy)는 이미 그 원리와 형태를 완성한 것이 아니라 장래에 걸쳐서 실현해야 할 가치를 진정으로 ‘국민의 권력’이라는 수단에 있어서 실현하려고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국민(demos)과 권력 및 지배(Kratia)와의 결합을 촉진하는 일상적 실천노력 속에 가치를 갖는 것인데, 여기에 찬물을 붓는 말이나 행동은 있을 수 없다. 먼저 솔선수범을 충실히 해야 할 사람이 이를 무시하는 태도는 잘못이다. 20세기 민주정치(democracy)는 국가의 지배 권력이 특정의 계급에서가 아니라 사회전체의 구성원에 합법적으로 주어지고 있는 정치형태다. 아울러 국가권력의 행사에서 될 수 있는 한 많은 국민의 의지를 그 과정에 참가시키는 것을 의도한 정치구조다. 이에 반하는 행위는 용납이 되지 않는다. 또한 민주정치(democracy)는 그 원리 형태가 완성품이 아니라 창조해야 할 가치와 수단을 포함한 미완성품이다. 때문에 이를 더 발전시켜야 하는데, 우리 국회와 그 구성원 일부는 정체(停滯)와 퇴보만을 거듭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깨끗하고 납득이 가는 공명정대한 사고방식을 왜 못 갖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참된 애국심과 민족애를 갖고 법을 준수하면서 보편화된 법의 지배원리와 국제상식에 맞는 처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이을형 필진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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