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제단 대신 요태조묘, 한반도 상고사 왜곡 심각

입력 2016-09-26 12: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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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어느 나라나 정치·문화적으로 부패하면 그 사회뿌리가 섞고 망가지기 마련이다.
 
일제 식민사관에 세뇌된 현 강단학파들은 역사의 시각을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의 시각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이는 위정자의 결단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
 
지금 중국과 일본고대사는 조작되고 왜곡된 역사와 지도, 지명을 그대로 믿어 우리 고대사를 그대로 자기들 것이라고 하는데 이에 농락당하면서 왜곡된 역사를 답습한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금도 중국은 이를 숨기기 위해 공자의 춘추부터 중국을 내세우는 휘치필법(諱恥筆法)으로 역사를 쓴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의 역사중심인물은 거의가 우리 한민족이다.
 
중국은 고대부터 고조선의 5분의 1의 영토였다. 그것도 산악지대로 평야지대의 비옥한 한민족의 삶에 대한 동경과 아울러 열등의식은 역사왜곡에 그 면모를 볼 수 있다.
 
고구려를 침입했다가 대패한 당나라 태종은 그 아들 고종에게 “고구려와는 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 고종은 백제와 고구려를 침범할 때 성을 함락하면서 먼저 사고(史庫)를 불태워 버리라고 명령했다.
 
실제로 당나라는 백제의 비사성(卑沙城)을 점령하자 바로 실행에 옮겨서 비사성(卑沙城)에 있던 사고(史庫)의 수많은 사서(史書) 역시 수개월간 불태워 잿더미로 만들었다.
 
이어서 고구려를 침범한 당나라는 고구려의 사고(史庫) 역시 백제의 예와 같이 고구려사고(史庫)에 있던 수많은 사서(史書)를 다 수개월간 불태워 없앴다.
 
이 분서(焚書)들은 비단에 쓰여진 것이 많았다. 또, 가죽으로 묶은 죽간(竹簡)이나 목간(木簡)이 대부분이었다(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古記, 符都誌의 실상-. 97면~98면 참조 인용).
 
이후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은 고대부터 자행했다. 그것도 당(唐) 때와 명(明)나라 때가 가장 심하고 청(淸)나라에 와서도 변함없이 우리역사를 왜곡해 왔다.
 
일본 역시 우리나라를 침략하자마자 조선총독부는 수십만 권의 사서를 불태워 없앴다. 이리해 중국과 일본의 고대사는 우리나라고대사를 도용(盜用)한 역사이다. 오늘은 이에 대해 다른 외국은 우리나라 역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중국과 일본의 역시 왜곡 세계학자들도 알고 있다.
 
우리나라 상고사(上古史)는 이미 기술한 바와 같이 세계명문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나라의 역사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있다. 지금도 우리는 수치스럽게도 중국과 일본의 왜곡한 역사를 그대로 받아들여 가르치고 있다.
 
세계가 우리 상고사를 인정하고 러시아와 구미학자들이 중국, 일본의 역사왜곡을 인정하고, 한국의 상고사가 1만년 전, ‘깨달음역사’, ‘인류시원역사(人類始原歷史)’를 인정하고 있다.
 
환국의 53대 3301년, 신시 배달국이 37대 1565년, 단군고조선이 47대 2096년 등 유구한 역사는 물론 필자가 직접 중국에 가서 확인한 요하문명(홍산문화)도 우리 한민족이 일으킨 문명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반도사관의 식민사관의 사람들은 이를 제대로 파악 못하고 중국과 일본의 왜곡시킨 역사만을 알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현재상황은 정상이 아니다.
 
중국과 일본의 몇 번이고 변조한 사료(史料)만을 신봉하는 식민사관자들은 어찌 그리 왜곡된 역사만을 고집하는지 지금 세계를 직시하고 우리 역사가 세계로 인정받고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
 
세계의 저명한 학자와 세계명문대학에서 우리 역사를 인정하고 가르치고 있는데도 우리나라 식민사관의 강단파들이 일제의 조작된 역사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문제이다.
 
다시 재언하지만 중국과 일본의 우리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상투적으로 언제나 우리에게 대하는 역사왜곡에 대한 일본의 원칙을 제대로 바로 알고 말했으면 한다.
 
중국은 우리나라 역사 왜곡의 원칙은 철저하게 위중국휘치(爲中國諱恥)의 수법은 언제나 일관되게 같다. 그것은 중국이 타민족에게 패배한 사실을 삭제하고 도리어 승리로 위조하고 180도 바꿔놓는 것이 원칙이다.
 
그들의 역사기법(歷史技法)은 한마디로 휘치필법(諱恥筆法)이다. 그들의 파렴치하게도 즉, 첫째는 한족(漢族)과 중원(中原)의 수치스러운 역사는 숨긴다(爲漢中國諱恥)는 것이다.
 
둘째는 한족(漢族)과 중원(中原)의 자기나라는 높이고 외국의 역사는 무조건 깎아내린다(矜炒而陋夷狄)는 것이다. 이러한 기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셋째는 한족(漢族)에 관한 국내사(國內史)는 과대하게 평가하고 남의 역사는 작게 쓴다(祥內略外)는 원칙하에 그들은 우리 역사를 철저하게 깎아내렸다.
 
일본 역시, 첫째 우리나라의 유리한 사료(史料)에 대한 부정(否定)과 부인(否認)이고, 둘째는 사료(史料)에 대한 자의적(恣意的)인 해석이며, 셋째는 의도적인 사료(史料)에 대한 은폐다.
 
이러한 수법이 우리 역사에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지금도 이 사실을 외면하려는 것은 손으로 태양을 가리는 것임을 제대로 알고 연구하시기를 바라고 기대해 진다.
 
단군제단이 있는 성지에 웬 요태조묘(遼太祖墓)인가!
 
필자는 고대사 답사 5일째, 파림우기에서 출발해 파림좌기박물관을 찾았다. 하지만 공사 중이라며 몇 년간 공개를 하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발걸음을 옮겨 ‘단군제단’이 있는 산으로 향했다. 하지만 제단 안에 쓰여 있는 글자를 기계로 다 밀어버려 알아볼 수가 없었다. 철저하게 우리 역사를 감추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단군제단에는 단군에 관한 능(陵)이나 기념비가 있어야 하는데 웬 요태조묘(遼太祖墓)가 이장(移葬)돼 있었다. 이해가되지 않았다. 단군릉이 있어야 할 곳에 웬 요태조묘인가! 생각하게 했다.
 
어찌해서 왜, 요태조묘(遼太祖墓)가 이곳에 이장(移葬)됐는지. 아무리 상상력을 동원해서 추리해 봐도 그 의도를 필자로서는 답이 나오지 않았고 이해 할 수 없었다. 그것은 고조선의 우리 역사를 왜곡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결론을 내렸다.
 
중국고전에 나오는 구이(九夷)도 대체로 우리조선족을 의미하는데 중국본토 내까지 선주(先住)한 동이(東夷)들이 중국에 공헌한 바는 매우 컸음을 이를 망각한 소치이다
 
이것은 중국이 은혜를 잊고 우리역사를 왜곡 변조해야만 하는 이유를 필자로서는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곳도 동이족이 정복하고 지배하던 곳이기에 더욱 중국의 양식 있는 역사기록을 제대로 해줄 것을 기대하는 마음이었으나 기대난이다.
 
상고시대부터 12부족들이 같이 어울려 살았던 이곳은 먼 예날 우리와 같은 혈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곳에 살던 조선과 만주, 몽골, 터키 등은 수천 년 전에는 같은 혈족으로 술과 떡을 나눈 곳인데도 지금 이곳에서 필자가 본 상황은 이외의 역사 왜곡 현장같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지나(支那)의 한족(漢族)을 조선족과 동족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또한 몽골족은 우리보다 아주 뒤 늦게 이곳에 침입한 연대의 선후로 보더라도 조선족이 몽골족에 속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속한다. 대륙을 우리역사는 지워지는 역사냐 묻고 싶다.
 
그러나 몽골족도 오랜 옛날에는 같은 조상의 후손일 수도 있다. 이는 몽골반점이 아니더라도 고대사를 연구한 학자들의 연구 결과도 그리들 보고 있다.
 
우리역사비극은 민족상잔(民族相殘)이 빚은 결과일까
 
우리나라 역사기록의 상실은 백제와 고구려가 당나라에 멸망하는 비극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김춘추(金春秋)의 여식(女息)이 백제에 의해서 살해된 것에 원한을 품고 이에 대한 복수심으로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을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하게 했다.
 
이는 천추(千秋)에 한(恨)이 되는 민족반역에 해당하는 죄로 같은 동족으로 용납이 아니 되는 일이다. 아무리 삼국통일을 미화한다고 해도 이는 잘못 된 것이라 본다.
 
우리민족이 어떠한 민족이었던가!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민족으로 ‘타민족을 경탄(敬歎)케 하는 위대한 민족’이 역사를 잃어버림으로 오늘날에는 자민족을 비탄(悲嘆)하게 하는 민족으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빚어낸 것이 민족상잔(民族相殘)에 있었다.
 
여기에 중국과 일본의 수십만 권의 사서(史書)를 분서(焚書)하는 비극은 중국과 일본이 우리역사를 왜곡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이로 인한 우리한민족의 가치관(價値觀)은 변질 될 대로 변질돼 말이 아니다.
 
오늘의 망국적인 행태도 우리의 정체성(正體性)의 상실로 자부심도 잃은 채 법도 원칙도 상식도 없는 망나니 같은 작태가 정치권서부터 각 분야각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어느 곳에서도 우리의 가치관은 변질 된 것을 볼 수 있음은 안타깝다. 국가 공동체 의식과 연대의식에 앞서 인연과 자기이익과 자당 우선의 지금 우리나라 정치권도 문제려니와 언론계도 사회의 목탁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학계와 재벌들도 공직자도 우리의 상황이 제대로 되고 있는 것인지 확인하고 갔으면 한다. 아직도 명치헌법체재의 일제의 쳐놓은 범주(範疇)에서 못 벗어나는 일 들을 다반사로 하고 있는 우리사회는 달라져야 하는데 역사에서 살길을 찾아야 한다.
 
어느 나라나 어느 조직도 기강이 문어지면 그 조직은 와해하기 쉬운 법, 우리한국사회가 하루속히 법과원칙, 상식이 제대로 자리 찾고 역사를 바로 세워지기를 바라진다.
 
지금 조선조 말기 같은 현상은 하루속히 배제돼야 한다. 우리가 역사를 도둑맞은 것은 우리가 제대로 역사를 존중하지 못하는데서 기인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역사의 진실을 제대로 아는 것이 국가 장래를 빛낼 수 있다
 
우리는 고대 가야(伽倻)가 가야의 식민지인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를 일본에 세우고 백제 고구려가 또한 미개(未開)한 일본(日本)을 문화(文化)로서 지도하고 무력(武力)으로 일본을 지배(支配)했음은 지울 수 없는 역사의 진실 그 자체다.
 
그러나 일본은 명치유신 후, 근대화를 이룩한 그들은 우리가 사대주의에 빠져서 세계의 흐름을 모르는 기화로 일본은 정부주도로 역사위작(歷史僞作)을 하며 뒤진 역사를 만회하려고 더 큰 위작(僞作)을 계속 추진했고 지금도 역사왜곡은 계속하고 있다.
 
중국 역시 역사위작(歷史僞作)으로 뒤진 역사를 만회하려고 당(唐)나라 때부터 더 큰 위작(僞作)을 시작으로 계속해 역사왜곡을 추진하는 것이‘동북공정(東北工程)’의 본질이다. 그러나 이는 성공할 수 없다. 그 역사는 허구의 잘못된 역사이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가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이 민족상잔에 의해서 역사를 잃어버렸다. 지금도 중국과 일본에 역사가 도둑맞고 없어진 역사를 바로세우기가 우리의 지상과제가 되고 있다. 필자는 2016년‘32차 고조선유적답사’ 하며 우리고대문명의 발자취를 실감했다.
 
이미 다 아는 세계고대문명은 우리 한민족에 의해 요하문명에서 출발해 서기전 3800년경 메소포타미아문명과 서기전 3200년경의 이집트 문명, 서기전 3000년경의 그리스 문명에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주도한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아울러 서기전 2500년경의 인도문명을 촉발(觸發)시킨 문명의 원류임을 확신하게 한다. 그리고 서기전 2000년경의 황하문명 역시도 우리한민족이 일으킨 문명이라는 외국의 학자들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말하게 된다.
 
세계인류학자들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오랜 인종으로 편두직모(偏頭直毛=뒷머리가 납작하고 곧은 머리털)에 상투를 틀고 머리에 새의 깃을 꽂고 다니며 하늘백성임을 드러내고 밝은 땅(밝달, 배달)의 나라에서 일으킨 것임을 확인시켜 준 유익한 답사였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국가형성의 사회사‘.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古記, 符都誌의 실상-’. 二十一世紀出版社集團, ’山海經‘. 大連出版社, ‘行走 大黑山’.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유우찬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과 북방주민들’. 홍윤기,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石井進外, ‘詳說日本史,‘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上井久義, ‘日本古代の親族と祭祀’. Georges Duby : L'HISTOIRE CONTINUE, 松村剛 譯 ‘歷史は續く’. 坂本泰良,‘明治維新から現代へ’.劉泳,海燕,‘赤蜂博物館’. 黃斌, 劉厚生, ‘箕氏朝鮮史話’ ‘各國別 [世界史の整理] 三省堂發行’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 世界史史料集’,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石井進, 笠原一男, 兒玉幸多, 笹山晴生, ‘詳說日本史’. 西東社출出版部編, ‘日本の古墳,古代遺跡’. 黃娬, 劉厚生), ‘箕氏朝鮮史話)’. 외 다수서책을 참조, 본문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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