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1945년 우리 조국은 광복을 맞이했다. 하지만 우리 역사교육은 일본이 심어놓은 철저한 식민사관 교육으로, 열등의식과 패배의식으로, 온통 부정적인 인식의 세뇌로 말이 아니다.
우리의 찬란한 역사와 문명, 문화는 우리고유의 문화가 아니고 모방문화로 비하시키고 우리의 광활한 영역(領域)도 한반도 안으로 축소시켜 마치 우리가 고대에도 한반도에서 국가가 생성발전 한 것 같이 해버렸다. 뿐만 아니라 우리고대역사도 신화로 해 버렸다.
세계학자들도 우리나라는 상고시대부터 인류최초의 시원국(始源國)임을 말하고 있음에도 서양사를 기준으로 한 시대구분, 예컨대 고대, 중세, 근세, 현대로 역사를 구분했음으로 역사를 설명 할 경우 문화적으로 합당한 해석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고대사이전의 상고사는 마치 역사가 아닌 것처럼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연한 상고사가 있는 우리에게는 이 잘 못된 역사구분도 바로 잡아야 한다. 국민들이 이로 인해 우리 고대사에 대한 인식이 너무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게 된 것은 일본 제국주의가 파 놓은 식민사학이라는 함정이전의 고려 중기부터 일기 시작한 사대주의 영향 하에 한민족의 정체성(正體性)을 잃고 나서부터이다.
이렇게 된 것은 사대주의자들은 마치 우리문명은 시베리아나 중원에서 들어온 변방문명이요, 우리 땅에서 발견되는 역사유적이나 유물은 다 외부의 영향을 받아 발전한 것으로 설명했기 때문에 국민은 그러한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거기다가 일제가 조선총독부하에 ‘조선사편수회’가 마련한 ‘식민사학’의 35권의 ‘한국사’는 우리강역도 압록강과 두만강 안으로 끌어들여 우리역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 놓음으로서 상고사는 아예 없고 고대 단군조선도 절반으로 절단했던 것이다.
이 잘못된 역사의 인식은 민족정기(民族正氣)를 잃게 하고 우리한민족의 정통성(正統성(性) 상실은 물론, 우리의 가치관(價値觀)의 변질(變質)을 낳게 했다.
이 가치관의 변질은 국가의 공동체의식(共同體意識)과 민족의 연대의식(連帶意識)마저 상실(喪失)로 이어졌다. 오늘은 우리 고대사 출발이 역사왜곡(歷史歪曲)에서 출발하고 있는데 관해 살펴보고 져 한다.
조선총독부 편찬 ‘조선사’, 잘못된 역사다.
일본은 명치유신이후 대륙침략을 하기위해 고대에 조선 지배를 증명하는 뒷받침으로 자료가 필요했다. 이에 메이지 왕(明治王)은 1877년 이미 중국에서 발견된 광개토태왕의 비문에 관해 일본 육군성(日本陸軍省)에 명한다.
당시 일본육군성(日本陸軍省) 참모본부는 메이지 왕의 명을 받아 육군포병소위(少尉)였던 사가와 가게노부(酒匂景信)를 1880년 9월3일 청(淸)나라에 첩자로 보내어 3년1개월간 정보수집과 아울러 정략적으로 역사유적(歷史遺跡)의 정보를 수집하게 했다.
이 사가와 가게노부(酒匂景信)는 1880년 광개토태왕 비(廣開土太王 碑)를 발견했다고 한다. 실지로 이보다도 더 앞서 1877년 발견했다고 현지에서 전해지고 있는 태왕비(太王碑)이다.
어떻든 이 발견은 조선침략을 계획하고 있던 일본에 있어서 어두운 밤의 등대(燈臺)와 같은 구실을 하게, 광개토태왕비를 제멋대로 회를 바르고 엄청난 조작을 해서 조선을 지배한양 세상에 내어놓는다. 그 조작내용은 거의가 다 허구임이 밝혀지고 있다.
일본육군성(日本陸軍省)은 메이지왕(明治王)의 명령에 따라 8세기 초에 편집된 허구의 ‘일본서기(日本書紀)’의 4세기 후반 ‘조선출병과 조선남부의 경영 설’을 뒷받침할 자료로 광개토태왕비(廣開土太王碑)를 이용해 있지도 않은 역사조작을 자행한 것이다.
이는 그들이 조선을 무력으로 침략하고 완전(完全)한 식민지(植民地)를 삼기위해 군인들까지 동원, 침략야욕(侵略野慾)을 합리화(合理化)하기 위해 철저히 그 준비를 우리 고대사에서부터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였다’고 왜곡 조작했음이 밝혀졌다.
그들은 이 조작을 위해 동경제국대학에 동양사학과를 설치하고 이 곳에서 모든 침략이론을 조작해 일본이 대륙침략에 대한 이론을 정립해 1910년8월29일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한 후, 조선총독부는 ‘조선사편수회’를 두고 35권의 ‘조선사’를 발간한다.
이 ‘조선사(朝鮮史)’는 우리상고사는 아예 없고 고대사역시 신화나 전설로 돌려 고조선역사도 절반 이하로 절단하고 진실을 왜곡해 우리민족을 형편없는 민족으로 비하(卑下)하고 열등의식(劣等意識)과 패배의식(敗北意識)을 조장했던 것이다.
그들이 내세우는 이론은 우리나라 민족은 파당을 지어 옛부터 당파싸움만을 좋아하고 잘못된 열등민족으로 좋지 않다고 민족성을 조작하고 조선은 어쩔 수없이 일본에 병합됐다고 그들의 의도대로 역사를 왜곡 조작해 침략을 합리화했다.
그러나 이 35권의 반도식민사관의 ‘조선사(朝鮮史)’는 우리역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거의가 거짓과 허구(虛構)로 구성한 책이기 때문이다. 이 허구의 역사기록은 제 아무리 구성이 그럴 듯 각색(脚色)을 했어도 거짓된 것이기에 역사라 할 수 없다.
그래서 ‘조선사편수회’가 발간한 ‘조선사(朝鮮史)’는 쓰레기로 전락되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진실을 기록해야지, 역사의 진서(眞書)를 다 불태우고 나서 ‘역사는 과학적으로 검증한다.’며 사실을 왜곡해 거짓 근거 없는 내용을 역사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역사가 제대로 복원이 아직 안됐지만 이 35권의 책은 사서(死書)로, 일고의 가치가 없는 책이기에 최태영 선생도 이 조선사편수회가 편찬한35권의 책을 쓰레기 통에 버렸던 것이다.
세계 모든 나라는 선진국이나 후진국에서도 역사는 거짓 조작한 왜곡(歪曲)된 위서(僞書)로 검증(檢證)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 없는 고증(考證)을 통해 진실을 써야 하는 것이다. 문명국(文明國)을 자처하는 일본의 야만적인 역사왜곡은 지탄의 대상이다.
우리 고대사 절단 위해 패수(浿水) 위치 제멋대로 조작
조선사편수회가 편찬한 ‘조선사(朝鮮史)’ 35권이 죽은 사서(死書)라는 것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쓰여 진 것이 없는 우리상고사와 고대사는 당(唐)시대부터 일본과 같이 왜곡하고 출발하고 있음에서 그 왜곡과 조작의 내용을 제대로 알고 말을 해야 한다.
그들이 왜곡한 ‘조선사편수회’가 발간한 35권의 책은 우리나라상고사와 고대사가 엄연히 실재해 세계석학(碩學)들도 이를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신화나 전설로 조작해 왜곡했기 때문에 이러한 허구의 책은 역사서(歷史書)라 할 수 없는 것이다.
반도식민사학자라는 사람들은 중국과 일본이 조작 왜곡한 역사를 역사라 하나 시초부터 조작왜곡한 조선사편수회가 편찬한35권의 ‘조선사(朝鮮史)’는 거짓과 허구(虛構)의 내용으로 진서(眞書)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나라 역사서(歷史書)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번 32회‘고대사답사’에서 우리민족이 대륙에서 일으킨 문명(文明)을 살펴보며 조선사편수회가 편찬한 한국사 35권의 내용은 휴지와 같은 쓰레기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필자가 본 서책(書冊)에서 볼 수 없었던 우리 옛 역사가 생생하게 볼 수 있었던 이번 답사에서 감사한 것은 풍성한 많은 유적과 유물은 거짓이 없이 분명히 우리가 중국에 먼저 선주(先住)해서 중국을 정복하고 지배했음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었다.
반도사관의 식민사학자들은 단군조선도 신화로 둔갑시킨 것도 부족해서 고대 고조선의 우리강역(疆域)이 대륙에 있었던 강역(疆域)도 한반도 내에 고정시키는 무지는 참 아 볼 수 없는 무지 그 자체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고조선과 중국의 국경이 패수(浿水)도 압록강, 청천강, 대동강이라는 무지는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다. 필자가 연구하고 보는 패수(浿水)는 대륙 동쪽 발해(渤海)로 흘러들어가는 강으로 우리와 중국의 국경을 이룬 당시 연(燕)의 동쪽에 있었다.
패수(浿水)는 기자(箕)子)가 이곳을 건너서 고조선으로 망명하고, 위만(衛滿)역시 이 패수를 건너서 망명한 강으로 한반도에 없는 강이다. 반도식민사학자들은 고대우리강역이 대동강안쪽으로 축소하고 있는데 사실을 제대로 보고 말을 해야 한다.
중국 반도식민사관자들 주장그대로 지도(地圖)작성
이번 답사에서 중국의 초등학교학생들에게 나눠주고 있는 중국지도(中國地圖)가 뻔뻔스럽게 대동강까지 내려와 단동(丹東))이 중국에 있지 않고 대동강에 내려와 있었다.
이것은 반도사관의 식민사관자들의 주장을 중국은 얼싸 좋다고 지도에 반영하고 있었다. 이 같은 식민사관의 학노(學奴)들이 주장을 중국이 쌍수를 들고 반기며 지도(地圖)에도 실리고 있는 것은 중국이 여기에 끝이지 않고 북한을 넘보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반도식민사관자들이 하는 짓은 기가차고 한심한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반도사관의 정신 나간 인간들이 중국과 일본이 우리역사 침탈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나 진배없는 매국행위를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 정신을 못 차리는 반도식민사관자들은 중국과 일본의 의도도 모르고 자기들의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는 것은 망국적인 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제가 우리상고사와 고대사를 없애기 위해 환국과 배달국은 물론 단군의 고조선도 절반으로 잘라 없애며 우리강역까지 지도에서 없애는 만행에 앞장선 꼴이 되고 있다.
‘조선사편수회’는 고대 한중국경선(韓中國境線)이 패수(浿水)의 위치를 한반도내에 끌어 들이는 계략(計略)에 반도사관의 식민사관자들이 중국과 일본을 돕고 있는 것이다.
우리역사를 중국과 일본의 왜곡의도대로 돕고 있는 것이 식민사관자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패수(浿水)가 청천강 아니면 대동강으로 보는 자들로서 우리 고대에 단군조선조차 훼손하며 우리역사를 부정하는 무리로 볼 수 있는 자들로 아주잘못 된 것이다.
고대한중 국경선(古代韓中 國境線) 패수(浿水)는 대륙에 있었다.
필자는 근래 ‘고구리사 연구회’에 나가서 고대사를 같이 연구하는 기회를 갖고 있다. 이 연구팀에서도 패수(浿水)의 위치가 어디인지 심도 있게 연구하고 있다.
필자도 패수(浿水)에 관해 단편적으로 기술한 바 있으나 여기서 결론부터 말한다면 패수(浿水)는 대동강 청천강도 아닌 낙랑군 수성현의 진(秦) 장성 동단(東端)에 있다.
고대 중국사 3대 왜곡서의 하나인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司馬遷)마저도 사기(史記)에 “요동의 옛 요새(要塞)를 고쳐 패수까지를 경계로 해 연(燕)에 속(屬)하게 했다. 라고 말하고 있다”(復遼東故塞) 至浿水爲界屬燕 司馬遷 [史記]’ 朝鮮列傳 115).
연(燕)의 동쪽에 있는 강(江)은 지금의 난하(灤河)를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난하(灤河)는 고대 고조선(古朝鮮)과 국경이 되는 패수(浿水)를 지칭(指稱)해서 말하는 것이다.
이 패수(浿水)는 다른 글자로도 여러 가지로 말해지고 있다. 예를 들면, 열수(列水), 라고도 하고 열수(洌水)라고도 하며, 격수(湨水), 제수(濟水)등으로도 불러지고 있다.
또 중국에서 격하(湨河)는 3곳에서 나오는 강이 합친 곳이다. 여기서 패수(浿水)와 격수(湨水), 제수(濟水)는 같은 하수(河水)의 곳을 말하는 것으로 혼동해서는 아니 된다.
한편, ‘고대사답사를 하며 매우 안타까운 것은 우리역사에 편입돼야 할 요(遼), 금(金), 원(元), 청(淸)등의 역사가 우리가 아닌 중국에 편입된 것은 참으로 잘못되고 있음을 실감했다. 참으로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한 무관심이 가져다 준 응보(應報)이다.
한족(漢族)의 역사는 이민족(異民族)의 지배를 1000년(996년)이나 받았고 한족(漢族)만의 실지역사도 1000년밖에 아니 되는데 서기916-1125년 이후 요(遼), 금(金), 원(元), 청(淸)(1636-1912)은 1912년 신해혁명을 통해 중화민국탄생 후 중국은 변화 됐다.
신해혁명이후 요(遼), 금(金), 원(元), 청(淸)등이 역사는 우리역사여야 할 역사가 중국사(中國史)에 편입된 것은 우리의 잘못으로 매우 안타깝고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위의, 요(遼), 금(金), 원(元), 청(淸)의 역사는 엄밀히 따지고 보면 우리와 같은 동이족(東夷族)에 속하는 우리역사이다. 이는 우리가 앞으로 다뤄야 할 역사의 큰 과제이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국가형성의 사회사‘.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古記, 符都誌의 실상-’. 二十一世紀出版社集團, ’山海經‘. 大連出版社, ‘行走 大黑山’.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유우찬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과 북방주민들’. 홍윤기,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石井進外, ‘詳說日本史,‘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上井久義, ‘日本古代の親族と祭祀’. Georges Duby : L'HISTOIRE CONTINUE, 松村剛 譯 ‘歷史は續く’. 坂本泰良,‘明治維新から現代へ’.劉泳,海燕,‘赤蜂博物館’. 黃斌, 劉厚生, ‘箕氏朝鮮史話’ ‘各國別 [世界史の整理] 三省堂發行’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 世界史史料集’,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石井進, 笠原一男, 兒玉幸多, 笹山晴生, ‘詳說日本史’. 西東社출出版部編, ‘日本の古墳,古代遺跡’. 黃娬, 劉厚生), ‘箕氏朝鮮史話)’.외 다수의 서책(書冊)을 참조, 본문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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