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당 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은 고구려를 침범했으나 참패했다. 그의 명성(名聲)과 너무 거리가 먼 천추의 한(恨)을 남긴 패배였다.
이것을 숨기기 위해 그 아들 당(唐) 고종(高宗)은 백제 고구려를 침범하며 사고(史庫)의 사서를 3~4개월간을 태워 없앴다. 진시황(秦始皇) 사후(死後) 아방궁(阿房宮)이 3개월간 불탔다는 것을 감안하면 고구려 사고의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우리의 사료(史料)를 없애고 난 후부터 당(唐)과 일본은 이때부터 말도 안되는 엄청난 역사를 왜곡(歪曲)을 시작한다. 특히 일본은 1657년 일본사 편집에 착수하면서 우리고대사를 자기들의 고대사인양 엮어놓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나라 강단파의 사람들은 중국과 일본의 조작(造作), 왜곡(歪曲)한 역사만을 우리역사로 고집하는 것은 차마볼 수가 없다. 더구나 ‘동북아역사재단’마저 중국과일본의 왜곡한 역사를 대변하는 자들로 채워 있는 것은 이해난이다.
‘역사를 잃어버리면 다 잃어버린다’는 말조차 무색할 정도로 강단파 사람들은 우리역사를 다 불태우고 제멋대로 왜곡한 중국과 일본의 위서(僞書)의 기록을 내세워 앵무새가 무색할 정도로 그들 역사를 우리역사인양 호도하는 것은 참아볼 수가 없다.
그들은 어느 나라사람인데 그렇게 “무지하면 용감하다”는 말과 같이 그들의 연구부족과 중국, 일본의 역사왜곡의 배경과 진실도 제대로 모른다는 것은 이해(理解)하기가 곤란하며 그 자세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참으로 못 말리는 사람들이다.
한편 그들이 맹종(盲從)하며 말하는 역사는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또다시 반복해야 하니 필자역시 마음이 편치 않다. 오늘은 진실의 역사를 접어두고 허구(虛構)의 역사를 우리 역사라 하는 그들에게 우리 고대 역사의 발자취를 답사한 소감과 사대주의 식민사관자들에게 그들이 말하는 역사가 왜곡되고 잘못되고 있는 역사임을 말하려 한다.
고조선 유적답사 통해 실재한 자랑스러운 역사 확인
지난 8월 ‘32차고조선유적 답사팀’ 26명이 1일부터 7일까지의 일정을 진행하는 동안 중국의 대련(大連)-영구(營口)-조양(朝陽)-우하량(牛河梁)-능원(凌源)-적봉(赤峰)-파림좌기(巴林左旗)-파림우기(播林右旗)-옹우특기(翁牛特旗)일대를 답사하며 박물관과 역사유적 유물들을 두루 돌아보는 답사에서 우리상고, 고대사의 흔적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특히, 고구려 천리장성(千里長城)의 시작되는 비사성(卑沙城)에서와 고대 많은 전투가 있었던 의무려산(醫巫閭山)과 고조선의 역사가 살아있는 조양시(朝陽市)일대와 조양박물관(朝陽博物館), 적봉박물관(赤峰博物館), 우하량(牛河梁)의 역사유적(歷史遺跡)은 우리상고시대부터 고대시대의 역사를 고찰하는 필자에게 큰 도움이 됐다.
또한, 적봉시(赤峰市)일대의 답사와 요하문명(요(遼河文明)의 발상지인 홍산공원(紅山公園)일대와 단군제단(檀君祭壇)에서의 충격은 재단 안에 색 여진 글자를 다 밀어버린 중국의 문명을 외면하는 야만성(野蠻性)에 분노와 울분도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또한 고려박물관을 방문 시 유물의 출토한 곳을 밝히지 않은 것은 필자가 일본의 박물관에서 우리문화재를 도굴해서 밝히지 않은 것과 흡사해 쓸쓸 함을 감출 길 없었다. 네이몽골을 둘러보며 우리선조들의 얼이 서린 발자취의 향취를 만끽할 수 있었다.
이 답사를 통해 우리 상고사와 고대사의 복원은 우리 배달의 자손들이 바로 해야 함을 절실히 느끼고 돌아왔다. 이러한 실재한 역사를 도대체 같은 배달의 자손이라면서 중국, 일본의 왜곡 역사를 호도하는 사람들의 심사를 필자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들도 이런 실재 건재했던 우리역사를 바로 보고 알았으면 하는 마음은 간절했다.
한편 이번 답사에서 참으로 아쉬운 것의 또 하나는 강상(岡上)무덤이라고도 하고, 또는 정상(正上)무덤, 혹은 루상(樓上)무덤이라고 말하는 통일되지 않은 명칭으로 불러지는 역사주인공의 무덤을 그 근방 까지 갔으나 찾지 못하고 돌아온 것은 아쉬웠다.
이 무덤을 백제무덤으로 보고 있으나 한편에서는 강상(岡上)은 광개토태왕(廣開土太王)의 부(父)가 되시는 왕의 무덤이라고도 하고 있었다. 광개토태왕의 다른 이름도 북강상(北岡上)이다. 여기서 태왕(太王)이란 임금, 황제보다도 높은 것이 태왕(太王)이다.
중국의 가장 강대한 당(唐)을 제패(制覇)한 고구려를 지방정권(地方政權)이라는 중국의 무분별한 역사왜곡은 인류문화의 역사를 거꾸로 구며 가는 크나큰 범죄행위나 진배없었다. 이러한 역사왜곡은 절대로 성공할 수 도 없거니와 해서도 아니 되는 것이다.
지금 중국에는 백제(百濟)의 왕(王)의 무덤과 고구려(高句麗)의 왕릉(王陵)이 수백 기(數百基)에 달하고 있는 것은 중국이 바로 우리의 고토(故土)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반도강단학파 사람들은 우리나라 삼국(三國)도 반도(半島)내에 있었다고 하나 그들은 신라(新羅)가 한반도가 아닌 지금 중국의 감숙성(甘肅省) 란주 이고, 황궁(皇宮)이 이곳에 있었다는 것을 아직도 묵살하려는 것은 역사의 진실을 숨기는 죄악행위이다.
신라 수도(首都)도 6번이나 옮겨지고 시조(始祖) 박혁거세(朴赫居世)의 무덤도 강소성(江蘇省) 오현 호구산에 있음은 무었을 말하는 것인가. 우리고대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신라(新羅) 삼국(三國)도 바로 중국이 우리의 터전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중국대륙과 세계를 주름잡은 한민족, 온 세계 알고 있다
이번 답사를 하며아쉬웠던 것 중에는 사해박물관(査海博物館)이 수리(修理)중이라 8000년 전 용(龍)이 있다는 그 용(龍)을 못보고 돌아오는 것도 아쉬웠고, 가는 곳 마다 중국이 우리역사를 지우려는 것을 곳곳에서 보며 너무 마음 아프고 안타까웠다.
그러나 이번 답사를 통해 고대 우리한민족(韓民族)은 세계석학들이 말하듯이 세계최초의 제국(帝國)을 세운 민족임을 확인하게 돼 자랑스럽고 자부심을 갖게 했다.
이러한 답사는 참으로 우리 국민이 한 번씩 다 가서 보고 왔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우리민족은 반도식민사관(半島植民史觀)의 학노(學奴)들이 말하는 그런 열등(劣等)민족도 나라도 아닌 위대한 민족이고 자랑스러운 국가인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이러한 위대하고 자랑스러운 나라이기에 여순 감옥에 갔을 때 안중근(安重根)의사와 신채호(申采浩)선생, 이회영(李會榮)선생의 유품을 보며 일제에 의해 강탈당한 조국을 위해 생명까지 다 바친 선열 앞에서 숙연한 마음은 오늘도 생생하게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은 우리조상이 일궈놓은 자랑스러운 국가와 빛나는 역사를 더욱 빛나게 해야 하겠다는 위대한 선열에 대한 다짐이고 역사를 바로보고, 잃어버린 역사를 제대로 바로 세워야 한다는 결의가 더욱 새롭게 느끼게 했고 결의도 새롭게 하고 돌아왔다.
중국과 일본과 사대주의자들에 의해 우리역사를 뒤엎어 놓아서 망가진 우리역사를 바로세우는 것이 이 나라를 위한 것이고 우리역사를 왜곡하는 사대주의자(事大主義者)들에게 우리역사를 제대로 바로알고 나서 말을 했으면 하는 주문(注文)이기도 했다.
중국과 일본의 왜곡된 역사에 취해서 자기나라 역사도 제대로 보지도 알지도 모르면서 학자(學者)연 하는 것은 보기에도 좋지 않고 추하게 여겨진다. 시야(視野)를 넓혀서 보면 자신이 역사상식이 어느 수준, 어느 위치에 와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세계의 석학의 말도 겸손히 귀담아 들어서 왜, 외국의 학자들이 자신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가. 추구(追究)해 보면 바로 알게 될 것이다. ‘중국과 일본은 없는 역사도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있는 역사도 없다고 하고 있는 것’인지. 그 원인과 역사배경을 제대로 연구하고 역사를 논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요하문명(遼河文明, 홍산문화·紅山文化)은 예맥이 일으킨 문명인데 우리한민족의 활동무대가 어디이었나. 제대로 보고 우리역사를 제대로 알고 말을 해야 한다. 근래 반도식민 학노(學奴)들이 단군조선마저 부인하는 것은 그들 정신과 영혼이 죽은 증거이다.
중국은 우리역사를 은폐하기위해 지명도 지도도 지역의 명칭도 연대도 다 바꿔놓았다. 왜 그들은 이런 짓을 자주 바뀌는 것인가. 한번 쯤 살펴보고 가기를 바라진다.
분명히 말하지만 지금 우리나라 학교교재는 다 잘못되고 있다.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은 중국인의 집단이지, 우리역사가 아니다. 고대역사를 제대로 살펴보면 알 수 있는데 외국의 돈을 받고 섞은 식민사관자들이 역사를 훼손하는 것은 오늘의 일만이 아니다. 그런데 단군조선까지 부정하는 식민사대주의가 있음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기자(箕子)는 주무왕(周武王)의 임명받은 사실이 없다
사방민족(四方民族) 중 가장 높은 문화를 가지고 강력한 국력(國力)을 가진 자는 오직 우리한민족뿐이라는 것을 필자는 이미 수차에 걸쳐서 밝혔다. 기자(箕子)가 패수(浿水)를 건너 동래(東來)한 것은 사실이나, 주왕(周王)의 임명을 받은 적은 전무하다.
그런데도 반도식민사관자들은 기자(箕子)가 주무왕(周武王)의 임명을 받았다고 고집하나 이는 허구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런 허구의 망언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 이런 말을 하는 사이비(似而非)인간들을 위해 다시 말하지만 기자(箕子)는 주무왕(周武王)의 임명을 받은 적이 없고 우리를 지배한 적이 없다.
지난 9월 동북아역사재단주최 때 토론자로 나온 자도 한사군도 반도에 있었다고 하는 것을 들으며 이렇게도 연구를 하지 않은 자가 어찌 토론자로 나오느냐 실망 했다. 다시 말하지만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은 한반도 있어 본 적이 없다.
기자(箕子)는 주무왕(周武王)의 임명을 받은 적이 없는 대도 반도식민 학노(學奴)들은 기자가 주무왕(周武王)의 임명을 받아 조선왕이 돼 한민족(韓民族)을 지배했다고 하는데 이런 학자가 아닌 사이비(似而非)학자가 우리나라 역사를 다 망치고 있다.
문서역사(文書歷史)를 고찰(考察)할 때 진위(眞僞)를 구별하고 검토를 제대로 해야 한다. 중국역사인 한서(漢書)에 [箕子 去之朝鮮 師古曰 史記云 武王伐紂) 封箕子於朝鮮 與此不同)]이라 했다. (漢書 卷之二十八, 地理志 第八下).
즉, 기자(箕子)가 스스로 망명한 것이지 주무왕(周武王)의 임명을 받아 한민족(韓民族)을 지배한 일이 없다고 한 것이다. 특히 주무왕(周武王)이 기자(箕子)를 조선 왕으로 임명했다는 주장은 상서(尙書) 홍범 장(洪範 章 주(註)에 [武王 封箕子于朝鮮]이라는 문구(文句)를 근거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이비(似而非)학자라는 자를 위해 다시 그 원문(原文)을 다시 검토해 보면, 봉자(封字)는 분명한 위조(僞造)이다. 그 원문(原文)은 다음과 같다. [箕子 嘗言 商其淪喪 我罔爲臣僕 史記 亦載箕子 陳洪範之後 武王 封箕子于 朝鮮 而不臣也 蓋箕子 不可臣 武王 亦遂其志 而不臣也]라 했다.
즉, 기자가 일찍이 나는 은(殷)이 망한 후에 주무왕(周武王)의 임명을 받는 신복(臣僕)이 되지 아니했다고 말했다. 이는 반도식민사관자들의 주장과 정반대되는 것이다.
반도식민사관자들이 내세우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도 기자(箕子)가 천도(天道)인 홍범(洪範)을 설교한 후에 주무왕(周武王)이 기자를 조선에 봉하고 임명하는 신복으로 대우하지 아니했다고 했다. 임명을 뜻하는 봉자(封字)는 분명한 위조이다.
이런 위조만을 골라서 말하는 반도식민사관자들은 사이비(似而非)학자라고 지탄(指彈)을 받아 마땅하다. 기자(箕子)는 우리 한민족의 전체를 지배한 적이 없다. 해동역사(海東繹史)에 기자(箕子)가 중국인 5천명을 거느리고 동래(東來)했다고 했다.(海東繹史第二, 箕子朝鮮).
기자(箕子)는 중국인 5천명을 데리고 조선에 와서 많은 공한지(空閒地)에 이 집단을 기반으로 기자조선(箕子朝鮮)을 건설하고 그 지배자(支配者)가 된 것뿐이다. 그리고 고조선의 제후국(諸侯國)의 하나일 뿐이다. 기자조선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것도 얼빠진 자의 정신 나간 미친 자의 말임을 제대로 알고 말을 해야 한다.
그 당시는 인구가 적고 토지가 많음으로 동일한 부족(部族)도 한 지방에 진출해 부족집단을 창설하고 딴 부족(部族)을 형성(形成)함으로 많은 부족(部族)이 병립(竝立)한 부족시대(部族時代)였다.
이와 같은 부족시대(部族時代)에 기자조선(箕子朝鮮)을 허위(虛僞)를 조작(造作)하는 중국사가(中國史家)와 일본사가(日本史家), 우리나라의 사대사가(事大史家)가 허위(虛僞) 선전해 기자(箕子)가 한민족(韓民族)의 지배자(支配者)가 됐다고 한 것이다.
이것을 한국(韓國)의 사대사가(事大史家)와 중국사가(中國史家)가 한민족(韓民族)이 고대(古代)로부터 중국에 예속됐다는 역사로 위조한 것을 우리가 그들의 말을 그대로 받아 말하는 것은 조상에 대한 모욕이요 죄악이다.
중국과 일본이 우리 사고(史庫)의 책을 분서(焚書)하고 우리역사를 왜곡한 것을 고증(考證)을 제대로 하고 말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가민족을 팔며 중(中), 일(日)의 주구(走狗)가 된 것을 반도식민사관 자들은 깊이 각성해야 한다.
역사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라 잃은 우리선열들이 심한고초를 겪다 순국한 여순감옥(旅順監獄)에 들려 안중근(安重根)선생과 신채호(申采浩)선생, 이회영(李會榮)선생의 높고 깊은 뜻을 기리며 그 높은 뜻과 애국애족의 충정을 마음에 담았다.
목숨을 다할 때 까지 조국과 민족에 대한 애국애족의 숭고한 정신과 몸소 실천을 보여주며 감옥에서 이슬로 사라진 선생님들의 드높은 애국 애족의 본(本)을 보여준 선생님들의 정신과 실천에 감명을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선생님들의 유물과 유품을 둘러보며 지난날 우리의 조국을 잃은데 대한 반성과 국가민족에 대한 새로운 각오와 결단은‘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사명감을 더욱 새롭게 일깨워 주고 북돋아주는 것이었다. 순국하신 선생님들의 명복을 빌며 귀국했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국가형성의 사회사‘.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二十一世紀出版社集團, ’山海經‘. 大連出版社, ‘行走 大黑山’.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유우찬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 사람과 북방주민들’. 홍윤기,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심백강, 이덕일, 박정학외9인 공저 ‘미래로 가는 바른 고대사’.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石井進外, ‘詳說日本史,‘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上井久義, ‘日本古代の親族と祭祀’. Georges Duby : L'HISTOIRE CONTINUE, 松村剛 譯 ‘歷史は續く’. 坂本泰良,‘明治維新から現代へ’.劉泳,海燕,‘赤蜂博物館’. 黃斌, 劉厚生, ‘箕氏朝鮮史話’ ‘各國別 [世界史の整理] 三省堂發行’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 世界史史料集’,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石井進, 笠原一男, 兒玉幸多, 笹山晴生, ‘詳說日本史’. 西東社출出版部編, ‘日本の古墳,古代遺跡’. 黃娬, 劉厚生), ‘箕氏朝鮮史話)’.외 다수의 서책(書冊)을 참조, 본문인용했음을 밝힙니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