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삼국사기(三國史記)는 허구의 조작된 역사도 아닌 매국사(賣國史)이기에 700년 동안 그 누 구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이것이 20세기에 와서 일제(日帝)가 조선을 침략하고 조선총독부가 ‘조선사편수회’를 만들면서 허구의 위서(僞書)가 세상에 제 세상을 만난 듯 나오게 된다.
위서(僞書)에는 고조선의 단군(檀君)에 대한 기록도 없다. 오로지 자기영달을 위해 중국에 잘 보이려고 쓴 책이 삼국사기(三國史記)이다. 그러기에 반도식민사관자 중에는 단군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겠다는 미친 소리를 하는 자가 나오게 된 것이다.
단군조선을 연구해온 최태영 선생을 비롯해 학자들은 김부식이 단군조선의 역사책을 잔뜩 갖고 있고도 의도적으로 단군에 대해 쓰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단군(檀君)이란 글자는 찾아 봐도 나오지 않아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책을 가장 반긴 것은 바로 일본과 중국이었다. 그래서 조선총독부는 ‘조선사편수회’를 만들고 단군조선을 다룰 때 고조선을 절반 이하로 잘라서 그것도 신화(神話)라고 하며 만든 교과서로 한국사를 잘못 가르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결과 지금 우리나라에는 진짜 역사는 없고 일본 조선총독부하에 만든 ‘조선사편수회’가 꾸민 왜곡된 한국 역사를 우리나라 역사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것도 환국과 배달국에 관한 것은 아예 빼고 가르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제나라역사를 잘 모른다.
일본은 전후(戰後),1964년 일본 삼성당(三省堂)출판사 ‘각국별 세계사의 정리(各國別, 世界史の整理)’에는 우리나라 역사를 아예 기자조선부터 시작됐다고 소개하고 있다.
우리는 일제(日帝) 강점(强占) 이래 교묘한 역사왜곡의 결과를 따르는 자들이 바로 지금 우리나라에서 반도식민사관(半島植民史觀)을 신봉하는 많은 강단의 사람들은 이를 답습하고 변함없는 왜곡된 한국사로 열등의식과 패배의식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반도식사관의 사람들이 고대단군조선과 기자조선 위만조선에 대한 그들의 알고 있는 역사가 얼마나 잘못인가. 등에 대해 그 상황을 살펴보고 져 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는 중국에 충성 맹세하는 김부식 추잡서(醜雜書)다. 이미 기술한바와 같이 반도식민사관의 사람들은 이 삼국사기(三國史記)를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이용하나 이 책은 조선사(朝鮮史)를 중국과 일본에 이용하게 하는 매국서(賣國書)일 뿐이다. 엄연한 우리상고사와 고대사를 뭉개는 추잡한 매국서인 것이다.
이 책에는 환국(桓國)과 배달국(倍達國), 단군의 고조선(古朝鮮)을 지웠다. 이런 책이기에 700년간 우리는 이 책을 보지도, 읽지도 않았다. 20세기에 와서 일제가 이 위서(僞書)를 금과옥조(金科玉條)로 활용해 우리 역사를 망가트리는데 이용했다.
그뿐만 아니라 김부식은 우리 상고사와 고대단군조선을 지워서 중국에 요공(要功)을 해서 살려고 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고구려계통역사(高句麗系統歷史)를 비밀(秘密)에 묻히고 우리의 진짜역사는 모두 박제(剝製)돼 산속으로 들어갔다.
또한 김부식(金富軾)은 고대 단군(檀君)과 예맥(銳麥=濊貊), 부여(夫餘), 고구려(高句麗)로 이어지는 역사를 찾는 파벌을 제거해야만 살 수 있었기 때문에 고토(故土)를 찾으려는 묘청(妙淸)도 김부식에 의해 제거되는 비운을 맞았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이러한 상황은 발해(渤海)가 살아지면서 발해(渤海)에 있었던 고구려사서(高句麗史書)마저 다 중국이 걷어갔기 때문에 고구려계통(高句麗系統)역사를 전하는 사서(史書)로는 예맥(銳麥=濊貊)이 1천 년 간 중국을 정벌, 지배하다가 가평, 춘천으로 밀려오면서 보관해 전한 사서(史書)를 토대로 쓴 1795년의 규원사화(閨怨史話)가 있을 정도이다.
이와 같이 중국(中國)과 일본(日本)이 우리 사료(史料)를 없앴기에 그나마 참고로 인용들 하고 있는데 사대주의자(事大主義者) 김부식(金富軾)의 삼국사기(三國史記)는 위서(僞書)로 우리나라 역사서로 인용은 무리이며 개인의 영달을 위해 쓴 책일 뿐이다.
이 책의 논조(論調)에 따라 기자조선(箕子朝鮮), 위만조선(衛滿朝鮮), 한사군(漢四郡)이 한반도안에 있었다. 망언(妄言)을 낳게 하는 반도식민사관(半島植民史觀)이 일제(日帝)에 의해 우리역사를 뒤엎어놓고 있는데 이 책을 이용하는 것은 오류를 낳을 뿐이다.
한술 더 떠서 반도식민사관자(半島植民史觀者)들은 위의 기자조선(箕子朝鮮), 위만조선(衛滿朝鮮), 한사군(漢四郡), 집단(集團)들이 한반도(韓半島)에 있었다고 강변(强辯)하지만, 말도 안 되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그것은 기자(箕子)는 고조선(古朝鮮) 지역(地域)으로 피난 와서 고조선왕국(古朝鮮王國)의 정치질서(政治秩序) 안에 속(屬)했으며 고조선(古朝鮮)의 200분의1에 불과한 영역(領域)에 있으면서 고조선(古朝鮮)의 작은 제후국(諸侯國)의 위치에 있었을 뿐이다.
기자(箕子)가 5000여명과 같이 피난 와서 살았던 난하(灤河)의 동부 연안은 고조선왕국(古朝鮮王國)의 변경(邊境)이었는데 그 지명(地名)은 역시조선이었다. 이 집단들이 멸망한 뒤에도 고조선(古朝鮮)은 의연히 존속돼온 강대한 제국(帝國)으로 존재했다.
분명히 다시 단언컨대, 기자조선(箕子朝鮮), 위만조선(衛滿朝鮮), 한사군(漢四郡)은 우리나라 역사와 관계가 없고, 이 집단(集團)들은 우리한반도에 있지도 않았고 고조선(古朝鮮)의 작은 제후국(諸侯國)의 위치에 있는데 불과한 것이었다.
있는 역사를 없애고 없었던 역사를 끼어 넣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우리역사는 반도식민사관자(半島植民史觀者)들 때문에 기자조선, 위만조선이 고조선을 계승해 그 집단의 맥(脈)이 된 것처럼 잘못 전해진 것은 이제 바로 잡고 두 번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
이것은 사대주의(事大主義)와 일본제국주의(日本帝國主義), 식민주의(植民主義), 황통주의(皇統主義) 역사관(歷史觀)에 의해 왜곡(歪曲), 조작(造作) 된 것을 그대로 답습(踏襲)하는 것은 잘못된 역적행위에 해당하는 짓인 것이다.
고조선과 제후국 상황 제대로 알고 말을 해야 한다.
오늘날 단군에 대한 비극은 우리 국민들이 단군이 누구인가에 대한 명확한 역사에 대한 설명이 제대로 주어지지 못하고 있다. 일제가 우리 역사를 폄하하기 위해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조작한 일본 황통사의 식민사관을 조선인들에게 그대로 가르친 결과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역사의 뿌리가 잘라나갔기 때문에 국가와 민족역사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 가치관(價値觀)의 변질로 국가공동체의식과, 연대의식(連帶意識)은 찾아 볼 수없는 혼란 그 자체로 지금 우리사회 각 곳에서 벌어지는 혼란은 여기에 기인한다.
그러나 한편 한(韓),중(中),일(日)의 역사연구가들은 역사기록이 다 불태워 없어진 가운데에서도 신황기(神皇紀-天皇家7000년의 역사(歷史) 등 남아있는 문헌에서 충분히 단군역사를 심도(深度) 있게 연구해온 이 학자들에 의해서 정확하게 인식되고 있다.
일제(日帝)시대 황국사관을 주창하던 일본학자들도 신황기(神皇紀)와 환단고기(桓檀古記)등 새 자료연구를 통해 자기들의 선조가 우리 한민족의 후손임을 자인하고 있다.
더구나 러시아, 유럽, 미국의 학자들도 단군뿐만 아니라 환국(桓國)과 배달국(倍達國) 실체를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는 이때 아직도 우리역사 무지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중국과 일본의 학자 중에는 지금도 기자동래설(箕子東來說)이나 기자조선왕조설(箕子朝鮮王朝說)을 굳이 믿으려 하는 자가 있으나 지금은 기자(箕子)는 망명(亡命)이 아니라 피난을 온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유독 우리 식민사관자들은 문제이다.
필자도 분명히 말하지만 단군은 서기전 2333년 요동 땅에 단군조선(檀君朝鮮)을 개국(開國)하고 2096년간 통치(統治)해 왔고, 단군왕검(檀君王儉)이라 칭해왔다. 여기서 왕검(王儉)이란 임금이라는 말을 가리키는 한문(漢文)식 이두(吏讀)이다.
단군조선 위에 배달왕검(倍達王儉)은 37대 1565년간 통치했고, 그 위에 환국(桓國)이 53대 3301년간 통치했다. 일본은 환국(桓國)시대말기 곰이며 호랑이 등을 귀히 여기는 부족들의 설화(說話)를 단군조선의 건국신화로 조작해 둔갑시킨 것이다.
이 신화는 단군조선 이전 환국(桓國)시대 이후 배달국(倍達國)에도 이런 신화로 이야기는 전해 내려오는 것을 일제가 ‘조선사편수회’를 통해서 퍼트린 것이다. 단군조선은 환국(桓國)과 배달국(倍達國)에 이어서 나온 우리 고대 한민족의 대제국(大帝國)이었다.
한민족(韓民族) 역사 이제는 바로잡고 가야
한민족(韓民族)의 역사는 일찍이 외적(外敵)의 강압(强壓)과 내부의 사대주의자(事大主義者)들과 폭력(暴力)으로 정권(政權)을 쟁취(爭取)한 자들이 자기 비리(非理)를 합리화(合理化)하기 위한 기만책(欺瞞策)으로 인해 위조(僞造)되고 빼앗긴 적이 많았다.
더욱이 근대에 와서 유민이 된 한(恨)을 앙갚음이나 하듯, 제국주의(帝國主義) 일본의 한민족말살정책으로 인한 우리 역사의 조작왜곡의 결과로 유구한 상고사와 고대사의 상반(上半)과 광대한 영역의 대부분이 절단이라는 세상에 유례없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일제(日帝)의 굴레에서 광복(光復) 70년이 지났지만 중국과 일본이 변함없는 역사왜곡(歷史歪曲)은 사대주의(事大主義), 반도식민사관자들에 의해 지금도 자행 되고 있다.
환국(桓國)과 배달국(倍達國), 고조선의 수천 년에 이르는 연대사(年代史)와 한반도 일부로 축소된 한민족(韓民族)의 활동영역(活動領域)을 실제(實際)상태로 회복해야 한다.
오늘날까지도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을 하고 있는 것을 바로 잡고 일제에 의해 우리가 선천적으로 미개하고 열등한 무능한 종족이라고 한, 열등의식과 패배의식을 배제하고 우리가 세계문명과 인류문화에 크게 기여한 민족(民族)임을 바로 잡아야 한다.
현재 우리 교과서는 일제가 왜곡한 역사를 그대로 가르치고 있음은 더 이상 이런 열등의식(劣等意識), 패배의식(敗北意識)의 왜곡(歪曲)한 역사를 가르쳐서는 아니 된다. 우리가 대륙(大陸)에 먼저 선주(先住)하고 그들을 정벌, 지배한 것을 바로 잡고가야 한다.
당시 우리 한민족(韓民族)은 이 드넓은 대륙에 거주하며 선진민족으로서 5대문명의 주역이었던 사실과, 민족특유의 문화를 가졌다는 사실, 우리가 중국과 일본은 물론 세계문명에 크게 기여한 시원국(始原國)이며, 문화민족이었음을 제대로 바로 알려야 한다.
사대주의(事大主義), 반도식민사관자(半島植民史觀者)들은 우리 역사를 제대로 모르기에 우리 역사를 부풀린다고 하는데, 이는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역사를 모르는 소치다.
제대로 우리 한민족(韓民族)역사를 알고 말을 해야 한다. 우리 역사는 어디에 내놓아도 자부심(自負心)을 갖고 말할 수 있는 1만1000년의 유구(悠久)하고 찬란(燦爛)한 역사(歷史)를 갖고 있음을 제대로 알고 말을 해야 한다. 이 역사는 지금도 세계에 빛난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국가형성의 사회사‘.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二十一世紀出版社集團, ’山海經‘. 大連出版社, ‘行走 大黑山’.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유우찬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 사람과 북방주민들’. 홍윤기,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심백강, 이덕일, 박정학외9인 공저 ‘미래로 가는 바른 고대사’.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石井進外, ‘詳說日本史,‘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上井久義, ‘日本古代の親族と祭祀’. Georges Duby : L'HISTOIRE CONTINUE, 松村剛 譯 ‘歷史は續く’. 坂本泰良,‘明治維新から現代へ’.劉泳,海燕,‘赤蜂博物館’. 黃斌, 劉厚生, ‘箕氏朝鮮史話’ ‘各國別 [世界史の整理] 三省堂發行’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 世界史史料集’,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石井進, 笠原一男, 兒玉幸多, 笹山晴生, ‘詳說日本史’. 西東社출出版部編, ‘日本の古墳,古代遺跡’. 黃娬, 劉厚生), ‘箕氏朝鮮史話)’.외 다수의 서책(書冊)을 참조하고, 본문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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