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그는 우리 한국인에 대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통렬히 반성을 촉구했다. 필자는 그가 했던 말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는 한국국민(韓國國民)과 사가(史家)들에게 한 말은 “지금 시원문명(始原文明)의 뿌리인 한국 옆에는 나쁜 나라들이 많다”며 “남의 역사마저 송두리째 가로채 자기역사라고 하는 나라(중국)가 있고, 제 땅이 아닌데도 제 땅이라고 우기며 잘못된 과거마저 반성 할 줄 모르는 미친 나라(일본)가 있다”고 했다.
그가 우리나라에를 평가한 말들을 한 번 보자.
“더 나쁘고 희한(稀罕)한 나라인 것은 인류(人類)의 문명(文明)을 이룩했음에도 모든 문화(文化)를 서양(西洋)이나 중국(中國)에서 빌어 왔다는 열등감(劣等感)에 빠져있는 나라(한국식민사관자들 지칭)다”며 “역사학(歷史學)과 국문학과(國文學科)를 졸업하지 않은 이들(재야학자들)이 오히려 역사(歷史)를 바로 세우려고 발버둥치는 나라다”
“역사는 역사학과만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라, 외국인들에 의해 제 역사를 알아가는 나라, 광복60년이 지나도록 신채호 선생 같은 수많은 독립운동가 들을 무국적으로 방치한 나라, 독립군대장 홍범도(洪範圖)를 타국 땅 청소부로 일하다 외롭게 죽게 했던 나라”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힘들게 살고 있는데도 챙기지 않았던 나라. 상해임시정부의 환국을 방해하고 망명정부의 임원이 아닌 개인의 신분으로 쓸쓸히 귀국하게 했던 나라”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을 대낮에 암살(暗殺) 할 수 있었던 나라. 그래서 독립(獨立) 애국(愛國)활동을 한 것을 숨겨야하고 일제하(日帝下)의 삶을 공공연히 그리워 할 수 있었고 친일매국노(親日賣國奴)들이 오히려 권력과 부를 차지하고 있었던 나라”
“안중근(安重根) 의사나 김구(金九) 선생을 테러리스트라 하고, 유관순(柳寬順)을 여자깡패라고 스스로 막말을 할 수 있었던 나라. 나라의 근본(根本)이며 생일(生日)인 개천절(開天節)행사에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고 항상 국무총리를 보내 스스로 국격(國格)을 낮추는 나라”
“독립국가(獨立國家)라면서 서양(西洋)의 나이인 서기(西紀)를 아무생각 없이 지금도 쓰고 있는 나라, 왜, 이러한 결과들이 나왔는지 제나라의 정체성(正體性)은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지, 이 나라의 정통성(正統性)은 있는 것인지, 제대로 한 번도 생각지 않은 나라”
“그러면서도 말은 많고, 남만을 탓하는 나라(대한민국)가 있습니다. 그리해 외국(外國)의 학자(學者)들도 조롱하듯 자신(自身)의 있는 역사(歷史)와 문화(文化)마저 없다고 그러는 나라”
그는 줄곧 우리나라를 ‘참으로 이해할 수없는 상황(狀況)’으로 묘사했다.
반도식민사관자에게 묻다…단군은 실재인물인가 아닌가
유엠 푸틴이 한국사에 대한 한탄(恨歎)은 “있는 역사도 없다”는 반도식민사관자(半島植民史觀者)자들에게 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단군(檀君)은 실재인물인가. 아닌가.
그리고 배달국(倍達國)이 있었는가. 없었는가. 또한 중국이 자기 조상이라는 배달국(倍達國)의 14대 환웅(桓雄)인 치우천황(蚩尤天黃)은 실존인물(實存人物)인가. 전설(傳說)속의 인물(人物)인가.
배달국(倍達國)이 있었다면 중국(中國)과 일본(日本)이 우리 사서(史書)를 없앴으니 마음대로 역사를 조작(造作) 왜곡(歪曲)해 엮은 책을 근거로 우리선조들이 남긴 유물(遺物)과 유적(遺跡), 문화(文化)와 거주흔적(居住痕迹)을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인가.
당신들이 그 우물 안 개구리의 우물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음은 얼마나 비참하고 학자로서는 참을 수 없는 수치인가, 한번 쯤 생각하고 볼 일이 아닌가. 묻고 싶어진다.
참으로 한심한 것은 엄연히 실존한 우리나라의 상고시대의 환국과 배달국의 실재를 세계가 다 인정하는 역사를, 중국과 일본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역사(歷史)를 고치고 조작(造作)해 가르치는 것을 그대로 답습함은 제정신인사 묻고 싶은 것이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실은 중국과 일본이 우리사서(史書)를 없앨 수는 있으나 상고시대(上古時代)부터 고대(古代)시대(時代)를 거쳐 오면서 중원(中原)에 거주(居住)하며 남긴 유적(遺跡)과 유물(遺物), 문화(文化)와 문명(文明)의 자취는 지울 수 없는 것 아닌가.
반도식민사관자(半島植民史觀者)들은 우리고대사도 한반도(韓半島) 내(內)에 한정(限定)해 말하려하는 것은 정신 나간 정신병자나 정신분열 자나 할 수 있는 짓이다.
오늘은 변함없이 우리역사를 반도(半島)안에 가둬두려는 매국노(賣國奴)와 같은 반도식민사관자(半島植民史觀者)들과 그들이 주장하는 고대사(古代史)는 다 잘 못되고 있음을 치우천황(蚩尤天黃)과 위만(衛滿)의 예(例)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중국이 조상으로 모시는 치우천황(蚩尤天黃)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
필자는 이미 수차에 걸 쳐서 치우천황(蚩尤天黃)과 위만(衛滿)에 관해 논했다. 또한 우리조상은 상고시대부터 어디에 거주하며 어떠한 나라를 세우고 어떠한 사상과 철학을 가지고 통치했으며 타민족과의 투쟁과 정벌과 지배를 어떻게 했는지 여러 차례에 걸쳐서 논했다.
치우천황(蚩尤天黃)은 누차 말해온 바와 같이 배달국 14대자오지천황(慈烏支天黃)으로 동이족(東夷族)이면서 화하족(華夏族)의 수장(首長)인 헌(軒轅)과 73회치열한 전투를 하고 전승한 전쟁의 신(神)으로 알고 있는 배달국전쟁영웅인 동시에 황제(黃帝)였다.
중국은 배달국(倍達國)제14대 자오지천황(慈烏支天黃)마저 자기(自己)조상(祖上)이라고 탁록(涿鹿)에 거대한 사당(祠堂)을 지어놓고 화하족(華夏族)의 삼조(三祖)중 하나의 조상으로 모시고 있는 웃지 못 할 일을 예사(例事)로 하고 있는 데 그는 과연 누구인가.
여기서 이에 대해 이해(理解)를 돕기 위해 필자의 대 선배(先輩)선생님이신 김세환(金世煥)선생의 중국답사와 치우천황(蚩尤天黃)에 관해 말씀하신 것을 옮겨 본다.
중국(中國)을 31회나 답사(踏査)한 김세환(金世煥)선생은 지난 23일 점심을 같이하면서도 수십 차례 중국을 답사(踏査)하고 중국역사에 관해 대화하며 치우천황(蚩尤天黃)에 관해도 누구보다도 자세히 말씀하고 계셨다.
그리고 ‘안보교육용으로 요약(要約)한선생의 유인물’에도 치우천황(蚩尤天黃)에 관해 아래와같이 기술(記述)하고 있어서 여기에 옮겨 참고하게 하려 하는 것이다.
“치우제(蚩尤帝)는 환웅(桓雄)14세(世) 자오지천황(慈烏支天黃)으로 신시통치(神市統治)지역-현(現) 내몽고(內蒙古) 홍산문화권(紅山文化圈) 및 만몽지방(滿蒙地方)-에서 남하해 탁록(涿鹿)지역에서 정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칠로산(七老山)남록(南麓)과 노아호산(魯兒虎山) 남록(南麓)에서 발원(發源)한 난하(欒河)와 그 지류(支流)인 청룡하(靑龍河)유역과 대능하유역(大凌河流域)의 평원(平原)을 통치했다고 볼 수 있다”
“화하족(華夏族)의 영역(領域)으로 분류된 황제(黃帝)가 다스린 지역(地域)은 황하중류의 황토(黃土)지역으로 위하유역(渭河流域)과 감숙성(甘肅省) 일부를 포함하고 협서성(陜西省)과 산서성(山西省)과 하남성(河南省)과 내몽고(內蒙古)일부를 포함한 지역이며 남쪽으로는 진령(秦嶺)산맥으로 양자강유역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묘만족(苗蠻族)의 영역(領域)으로 분류된 염제(炎)帝)가 다스린 지역은 양자강 중류의 양안(兩岸)으로 호북성(湖北省)과 호남성(湖南省)과 陜西省)과 산서성(山西省)과 강서성(江西省)을 포함하며 동(東),남(南), 서(西)쪽은 산맥(山脈)으로 경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었다.
반도식민사관자들은 단군조선(檀君朝鮮)도 절반으로 절단하는 무리로 배달국(倍達國)의 제14대 환웅인 자오지천황(慈烏支天黃)인 일명 치우천황(蚩尤天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면 치우천황(蚩尤天黃)도 알면서 입을 다물고 있다면 우리한민족이 아니다.
반도식민사관 구태(舊態) 언제까지 쓰고 다닐 것인가
우리나라 반도식민사관자들은 마약에 취한 양, 기자(기(箕)子)나 위만(衛滿)이 우리한민족을 정복하고 한민족(韓民族)을 지배(支配)했다고 위조(僞造)하는데 이들은 우리한민족(韓民族)을 지배(支配)한 적이 없다.
언제까지 기자나 위만(衛滿)에 대한 왜곡역사를 말하려는지. 말을 하려면 이들이 역사를 제대로 연구해서 제대로 알고 말을 하라. 이들은 우리역사와 관계없는 무리들이다.
위만(衛滿)이 우리와 관계없음은 중국, 일본의 조작한 역사를 그대로 맹신(盲信)하기 때문인데 제대로 중국사(中國史)를 잘 검토하면 알 수 있는 것을 연구는 뒷전이다.
위만(衛滿)은 한고조(漢高祖)가 나라를 세운 후 한고조(漢高祖)의 동향인(同鄕人)으로 노관(盧綰)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한고조(漢高祖)와 노관(盧綰)이 생일이 같다고 해 노관(盧綰)을 연(燕)나라 왕으로 임명했다. (史記 卷之九十三 列傳第三十三).
이 노관(盧綰)이 한고조(漢高祖)의 은혜를 저버리고 한고조(漢高祖)를 배반하니 한고조(漢高祖)가 노관(盧綰)을 토벌했는데 이때 노관과 위만(衛滿)이 조선(朝鮮)에 망명(亡命)했다고 한서(漢書)에 쓰여 있다. (史記 卷之九十三 列傳第三十三, 同上).
중국사서(史書)의 기록대로 라면, 노관(盧綰)과 위만은 일시적 권모(權謀)로 성공했으나 덕망이 없고 선치(善治)가 없는데다가 한고조(漢高祖)의 신임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노관(盧綰)과 그 부하인 위만(衛滿)이 일개의 사기꾼으로 당시 중국대륙을 정벌하고 지배하던 예맥(銳麥=濊貊)을 등에 업고 반란(反亂)을 일으키다가 흉노(匈奴)에 피난(避難)했다고 한서(漢書)에 쓰여 있다. (漢書 卷之一, 高帝紀 第一上).
그러나 예맥(銳麥=濊貊)도 이들을 신뢰(信賴)할 수 없어 한서(漢書)의 기록은 (高帝 4年 北貉燕人 來致梟騎 助漢)이라 했다. 즉, 예맥(銳麥=濊貊)은 한고조(漢高祖) 4년에 용감한 기병(騎兵)을 보내어 한(漢)을 도와주었다고 했다. (漢書 卷之一, 高帝紀 第一上 同上).
위만(衛滿)이 어떠한 인간인가. 그가 조선(朝鮮)에 망명할 때에 우리한민족의 의복을 입고 머리에 상투를 꼭 지었다. 이것은 한민족인 예맥(銳麥=濊貊)을 배경으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한 위만이 한민족(韓民族)의 보호를 받기위해 가장(假裝)한 것이다.
한민족(韓民族)의 보호를 받기 위해 한민족을 가장하고 한민족의 보호에 의해 겨우 생명을 보존한 망명객 위만(衛滿)이 세운 정권(政權)은 겨우 한 지방에서 명맥(命脈)을 유지하는 미약한 존재로 강대한 예맥(銳麥=濊貊)을 정복하고 지배 할 수 없다.
이러한 위만(衛滿)이 한고조(漢高祖)에게 격멸(擊滅)당하고 빈손으로 조선(朝鮮)에 망명해 유명무실(有名無實)한 기자조선을 계승한 위만이 당시 한고조의 국력보다 강대한 예맥을 정복하고 우리민족을 지배했다함은 허구(虛構)의 위조(僞造)인 것이다.
위만조선(衛滿朝鮮)의 허구역사(虛構歷史) 배경(背景)
위만(衛滿)에 관한 역사가 성립할 수없는 것은, 당시 강력한 예맥을 당할 나라가 없었다. 우리역사사료(史料)를 다 없앤 중국(中國)이 제멋대로 중국역사를 엮어놓았으나 역사를 깊이 검토(檢討)해 보면 그 역사조작과 왜곡됨이 상상을 초월함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주의 깊게 살피고 알아야 할 것은 중국은 역사 조작을 위해 철저하게 (銳麥=濊貊)을 지워 갔다. 왜 일가. 그것은 예맥(銳麥=濊貊)이 한고조(漢高祖)를 도와준 강대한 예맥역사를 제대로 말을 하면 중국의 왜곡역사는 문어지기 때문이다.
기자(箕子)나 위만(衛滿)이 우리한민족을 지배한 적이 없고 우리민족의 지배자(支配者)가 되지못하고 한무제(漢武帝)가 우리민족을 정복치 못한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우리민족 중에 천하(天下)를 호령한 강대(强大)한 예맥(銳麥=濊貊)이 엄연(儼然)히 중국대륙에 존재한 사실을 고찰하면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 등 한인(漢人) 집단(集團)이 우리민족의 영토를 엿 볼 생각도 못했던 그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다.
허위조작(虛僞造作)으로 세계적으로 정평(定評)이 나 있는 중국(中國)이지만, 한고조(漢高祖)를 도와준 강대한 예맥(銳麥=濊貊)이 위만(衛滿)을 책동(策動)해 그의 상전(上典)인 한고조(漢高祖)를 배반(背叛)하게 한 강력(强力)한 예맥(銳麥=濊貊)이었다.
뿐만 아니라 위만이 한고조에게 반란(反亂)을 일으켜 쫓겨 온 위만이 예맥을 의존해 생명을 보호를 받게 한 강대한 국가 예맥이었다. 이를 말살하고 한고조에게 쫓기어난 미약한 위만을 기점(起點)으로 우리역사를 엮어놓은 것은 웃기는 구태(舊態)다.
당시 예맥의 보호 하에 겨우 생명을 보존하겠다는 위만을 보호해 준데도 한(漢)나라는 이의(異議)를 제기(提起)하지 못했다. 이러한 배경(背景)을 제대로 살펴보면 중국의 위만(衛滿)에 관한 역사는 다 허구로 역사를 제대로 연구한 자는 다 아는 사실이다.
이와 같이 위만(衛滿)에 관한 역사(歷史)는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허위(虛僞)조작(造作)된 것이다. 이러한 허구(虛構)의 역사(歷史)는 진정한 역사(歷史)라 할 수없는 것이다.
이 허구(虛構)의 역사(歷史)를 역사로 보는 반도식민사관자(半島植民史觀者)들의 행태는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다. 이에 대해서는 당시 예맥(銳麥=濊貊)과 한(漢)나라. 기자조선(箕子朝鮮), 한사군(漢四郡)의 국력(國力)의 차(差)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예맥조선과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의 실력비교
예맥은 위만(衛滿)으로 해금 한(漢)을 공격하게 했고, 위만(衛滿)이 신의(信義)를 져 버리자 한(漢)을 도와 위만(衛滿)을 격멸(擊滅)하게 도와주었을 정도로 강했다. 중국은 이러한 예맥의 사료(史料)를 다 지웠지만 예맥의 강력한 역사는 지울 수 없다.
당시 조선(朝鮮)은 광의적(廣義的)으로는 단군조선(檀君朝鮮)을 일컬으나 협의적(狹義的)으로는 예맥(銳麥=濊貊)조선이다. 제왕운기(帝王韻紀)에 고시라(故尸羅), 고례(高禮), 남북옥저(南北沃沮), 동북부여(東北夫餘), 예맥(銳麥=濊貊)이 단군의 수(壽)라 했다.
당시는 모든 족속의 족장은 다 단군(檀君)이라 칭한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모든 족속(族屬)중 그 주체(主體)는 예맥(銳麥=濊貊)조선이었다. 서전(書傳) 무성편(武成篇)에 화하(華夏) 만맥(蠻貊)이라했다. 즉, 안으로 중국과 밖으로 예맥이라 기록 한 것이다.
이는 예맥(銳麥=濊貊)이 극히 강대해 중국(中國) 이외의 모든 민족을 대표(代表)했다고 표시한 것이다. 무성편(武成篇)은 주무왕(周武王)이 은(殷)을 정벌(征伐)한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반도식민사관자(半島植民史觀者)들은 이러한 역사도 모름으로 단군조선(檀君朝鮮) 다음에 예맥(銳麥=濊貊)보다 기자조선(箕子朝鮮)을 말하고 있으니 역사무지(歷史無知)다.
분명한 사실은 기자조선(箕子朝鮮)은 주무왕(周武王)이 은(殷)을 정복한 후에 동래(東來)했다. 이 당시 예맥조선은 극히 강대(强大)해 위만(衛滿)의 상전인 한고조(漢高祖)도 지원하고 위만을 책동해 한고조(漢高祖)를 배반케 했으나 건재한 예맥이다.
이 뿐만 아니라 예맥은 한무제(漢武帝)가 설치한 한사군을 26년째 되는 해에는 진번(眞番), 임둔(臨屯) 2군(郡)을 탈취(奪取)하고 현토군(玄菟郡)도 대부분 탈취했다.
이와 같이 예맥은 동주시대(東周時代)부터 한무제시대(漢武帝時代)까지 중국 남(南)쪽으로 출정(出征)해 한족(漢族)을 정벌정복(征服)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이는 예맥조선이 한(漢)나라, 기자조선(箕子朝鮮), 위만조선(衛滿朝鮮), 한사군(漢四郡)보다도 강대(强大)했음을 말하는 것이다. 동주시대(東周時代)부터 한무제시대(漢武帝時代)까지 1000여 년 동안 중국을 정벌(征伐)하고 정복(征服)하며 지배했음을 사실로서 중국사에 명기(銘記)되고 있는 것이다.(崔仁 韓國의再發見,第2章第5節, 漢四郡).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국가형성의 사회사‘.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二十一世紀出版社集團, ’山海經‘. 大連出版社, ‘行走 大黑山’.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유우찬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 사람과 북방주민들’. 홍윤기,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심백강, 이덕일, 박정학외9인 공저 ‘미래로 가는 바른 고대사’.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石井進外, ‘詳說日本史,‘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上井久義, ‘日本古代の親族と祭祀’. Georges Duby : L'HISTOIRE CONTINUE, 松村剛 譯 ‘歷史は續く’. 坂本泰良,‘明治維新から現代へ’.劉泳,海燕,‘赤蜂博物館’. 黃斌, 劉厚生, ‘箕氏朝鮮史話’ ‘各國別 [世界史の整理] 三省堂發行’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 世界史史料集’,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石井進, 笠原一男, 兒玉幸多, 笹山晴生, ‘詳說日本史’. 西東社출出版部編, ‘日本の古墳,古代遺跡’. 黃娬, 劉厚生), ‘箕氏朝鮮史話)’.외 다수의 서책(書冊)을 참조하고, 본문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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