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국부론과 자본론, 수정자본주의가 나온 배경
우리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칼 막스(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말하곤 한다. 그러나 이 자본론이 나온 역사와 그 배경을 국부론 및 수정자본주의와 함께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가 알고 주목할 점은 경제학의 성립과 발전이 18세기 아담 스미스(1776년)의 주저(主著) 국부론(國富論)으로 시작됐다는 점이다. 아담 스미스의 경제학은 경제학을 처음으로 학문으로 체계화 한데서 그 공로가 크다고 하겠다. 이 국부론은 ⑴자유경쟁에 의한 자본주의 경제의 균형을 얻을 수 있다는 것과 ⑵경제순환을 법칙적인 체계로서 보았다는 점 ⑶ 부(富)의 원천을 생산적 노동에 두었다는 것 등이다. 이를 통해 아담 스미스는 고전파 경제학의 시조가 되고 있다.
자본론(資本論)을 쓴 칼 막스는 독일의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이면서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다. 그는 ⑴자본주의 경제의 결점을 지적하고 ⑵자본주의 사회의 붕괴와 사회주의경제의 필연성을 말하며 ⑶그의 주저(主著) 자본론을 통해 노동가치설의 완성과 이윤의 원천은 자본가가 노동자로부터 착취하는 것이라는 전제하에 이 같은 자본주의적 재생산 과정에서 노동자의 비인간화, 빈곤화를 가져온다는 이론 등을 설파했다. 막스는 자본주의 생산에서의 경기변동, 실업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며 유물사관(唯物史觀)이라고 하는 과학적 역사관(歷史觀)을 확립했다. 그는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고 주장하면서 고전학파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취급했다. 막스는 이런 내용을 자본론에서 담았다. 하지만 그 결과는 그의 주장과 일치하지 않았고 실제 많이 달랐다.
근대경제학의 시조라는 케인즈(1883~1946)가 있다. 케인즈는 영국의 경제학자로 수정자본주의 이론을 전개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이론 수립의 기초는 1929년 시작한 세계 대공황에 있다. 심각한 공황의 진전은 경제학에 대해서 실업문제를 요구한 것이었으나 케인즈 이전의 근대 경제학자는 자유경쟁의 부활이 실업문제의 대책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케인즈는 자유방임정책을 취하는 한 자본주의는 반드시 완전고용을 가져올 수 없는 것을 논증하고 완전고용을 가져 올 수 있는 이론을 수립해 자본주의 모순을 설명하려고 했다. 그의 주저(主著)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에서 생산의 수준은 투자와 소비로부터 되는 유효수요의 양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유효수요론(有效需要論)이나 투자의 증가가 소득의 증가를 결정한다는 승수이론(乘數理論)을 이용해 실업구제를 위해 경제에 대한 정부의 인위적 간섭을 주장했다. 이를 통해 유효수요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논리였다. 이것이 수정자본주의(修正資本主義)다. 이러한 케인즈의 이론은 케인즈 혁명이라고 불리게 됐다. 루스벨트 미 대통령의 뉴딜정책(New-Deal) 등에 케인즈 이론이 채용된다.
뉴딜정책(New-Deal)배경과 노동정책
미국은 1929년 월가 주식의 대폭락을 계기로 세계적 대공황을 맞았다. 실업(1300만~1700만)의 대홍수와 이에 따른 사생활이 말이 아니었고, 스트라이크는 끊이지 않았다. 1930년대 초 미국의 불황시대는 그 정점이었다. 1933년 루스벨트가 대통령에 취임해 금본위제 정지(金本位制 停止)하에 적자재정 하에서 정부자금의 살포에 의한 수요창출 정책을 시도했다. 루스벨트는 실업구제자금이나 농산물 가격에 대한 보조금을 지출했으나 물가는 상승하지 않고 그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공공사업을 위한 정부지출을 대량 그리고 계속적으로 투입했다. 그 때문에 재정은 건전주의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적자재정을 채용했다. 이것은 공공사업에 의해 실업을 흡수해서 신고용에 의한 임금으로부터 소비재 생산에의 수요와 공공사업 그 자체에 의해 생산재생산에의 수요를 일으키려고 하는 것이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노동정책도 케인즈의 이론에 따른 뉴딜정책(New-Deal)을 채용했다. 노동시간의 단축, 노동자가 충분히 생활 할 수 있는 최저임금제 등의 정책을 취임 3개월 쯤 의회를 설득해 실시한다. 뉴딜정책은 불황 타개를 위해 구매력 증강에 주력했다. 그 방법은 단체교섭의 촉진에 의해서 직장과 생활 할 수 있는 임금을 획득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개개의 자본가가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것을 금하는 일, 즉 부당노동행위제도의 확립에 의해서 노사 간의 분쟁을 방지하고자 했다. 그 결과 노동자의 구매력을 높임과 동시에 이 같은 은전(恩典)과 바꾸는 노동운동에 일정의 틀을 정해 치안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1935년의 와그너법(Wagner Act)은 이러한 배경과 함께 등장한 것이다. 이로 인해 노동3권의 보장과 노동운동은 활발하게 되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정책에서 대표되는 바와 같이 노동자에 대해서 탄압→해방→적극적 원조와 같이 크게 보호정책을 전개해 갔다.
막스의 이론은 현실과 다르다
왜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정책을 채용했는가. 막스는 자본주의의 생성, 발전, 절멸(絶滅)의 과정을 역사적으로 파악해서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 이행의 필연성을 논증했다. 그는 이처럼 과학적 사회주의를 엥겔스와 함께 확립했다. 그의 정치적 주장은 공산당 선언에 요약되고 있음에도 왜 사회주의가 빛을 발하지 못하는가. 제2차 세계대전 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경쟁이 치열하게 경쟁했는데 어찌해서 사회주의가 참패했는지 그 원인을 바로 알고 갈 필요가 있다. 칼 막스가 영국에서 자본론을 쓸 때 막스 자신이 배고픔과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자기 고통과 연계해 ‘생산은 노동자가 하는데 그 이윤은 자본가가 가져간다고 봤다. 이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이라고 귀결시켜 자본가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을 갖고 자본론을 집필했던 것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막스는 혁명론을 강조했다.
그러나 잘못이 많았다. 이 혁명에는 선동만 하고 책임은 외면했다. ‘혁명에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오늘날 까지도 사회주의자에게는 성실성이나 진실성이 묻어나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고마움과 감사함을 모른다. 우리가 북한에 100억$의 지원을 했으나 고마움은커녕 연평도 해전, 천안 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으로 인명과 재산을 파괴하는 적반하장으로 돌아온 것이 이를 반증하고도 남는다. 이 같이 자본론에 입각한 사회주의자들의 무책임한 선동은 순진하고 무지한 자나 철모르는 젊은이에게는 매우 매력이 있어 보이고 잘 먹힌다. 그러나 이로 인해 칼 막스의 이론은 인류역사의 씻을 수 없는 죄과를 낳았다. 그의 이론은 잘못이면서 경계의 대상이 됐다. 우리는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돼서는 안 된다.
막스 이데올로기의 무지한 망령을 쫓아가면 그 종착역은 빈곤과 고통스러운 후진성만이 남는다. 제2차 대전이 일어날 당시 사회주의국가는 소련이라는 한 개의 국가였으나 전쟁이 끝난 후 13개국이나 됐다. 이후 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식민지가 독립국으로 변하면서 35개국으로 늘어난다. 그런데 사회주의 국가가 된 나라들은 한결같이 가난과 후진성을 못 면했다.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 중 일부는 이미 선진국이 30~60년대 모두 버린 사회주의의 망령을 지금 21세기에도 쫓아다니고 있다.
지금은 고대지식의 수백 배나 팽배한 지식 정보화 사회다. 3년 후 지금의 지식은 78일 만에 배가 된다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런 시대에서 오는 12월 대선출마를 하는 사람 중에도 이를 구분 못하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참으로 민망하다. 서두에 독사와 장어를 구분 못하는 어린이 같이 아직도 탈 이데올로기의 시대에 이 같은 멍에를 지고 가고 있다는 것이다. 다 같이 못사는 가난과 고통의 파멸뿐인데 언제까지 이런 망령을 쫓아가려는지 안타깝다. 사회주의는 장어 같이 보이나 독이 가득 찬 살모사 독사와 진배없다. 선진국이 다 버린 사회주의에 아직도 미련을 두는 것은 어리석은 바보들이나 할 짓이다.
지금 이 지구상에 250여국 중 사회주의를 그대로 견지하는 나라들은 모두 가난과 배고픔 그리고 어려운 삶의 고통 속에 있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법사회학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러시아나 중국도 경제정책은 통제계획경제에서 서방의 자유 시장경제를 채택했다. 그 결과 경제가 되살아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왜 칼 막스의 이론이 안 먹혔는가. 제대로 연구하고 검토해보면 알 수 있다.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에 올바른 지식과 정보를 제대로 알아야 현대의 지식인이다. 어린이가 독사와 장어를 구분 못하면 성숙한 어른이 아니다.
독사와 장어를 분별할 줄 알아야 21세기의 일등국민이 될 수 있고 우리의 국격(國格)도 높아진다. 이를 분별하지 못하고 허망한 꿈을 갖고 가려는 자는 그 이상한 꿈을 버려야 한다. 칼 막스는 분명히 자본주의 사회의 붕괴와 사회주의경제의 필연성을 말했지만 그 필연은 오지 않았다. 이데올로기의 낡은 허상을 쫓아가는 우를 범하면 그 끝은 절망과 폐허만이 남는다.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받은 우리는 이데올로기의 멍에에서 벗어나야 한다. 새 희망의 새 지평을 열고 펼쳐가야 산다. 필자는 우리나라 정치 현실이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로 너무 어수선하고 어린이가 독사와 장어를 구분 못하는 것 같은 어른들이 많은데서 이글을 쓰게 됐다. 정치인들은 물론 우리 사회 전체가 깊이 숙고하고 결단하는 새 출발이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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