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절도범 중국·일본, 우리史 제 멋대로 편입

입력 2016-12-10 11: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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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앞서 필자는 김부식(金富軾)의 삼국사기(三國史記)가 중국의 고대부터 역사를 왜곡한 사실을 덮어둔 채 저자가 이를 모르지 않았으나 그 시대정황과 또 중국고사(中國古史)를 참고자료를 기본으로 한 사서(史書)이기 때문에 사서로서의 가치가 없음을 언급한 바 있다.
 
사실 삼국사기(三國史記)는 문제가 많은 책이다. 김부식(金富軾)의 기술한 것을 일제(日帝)가 다시 손을 봐서 일본의 식민사관(植民史觀)에 맞추어 다시 나왔기 때문에 단군(檀君)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이러한 삼국사기(三國史記)를 우리는 많이 인용하는데 이런 사실을 알고 인용도 해야 한다. 중국은 사기(史記)와 삼국지(三國志), 한서(漢書)등을 내세워 중국이 마치 우리보다 우월한 것 같이 조작하고 있으나 그들의 고대역사는 대다수가 허구의 역사다.
 
고대사의 역사가 내세울 것이 없는 중국과 일본은 우리 고대사를 제 멋대로 다루고 있다. 중국은 자기들이 정사(正史)라는 사기(史記)에도 단군(檀君)의 흔적을 지웠고 일본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단군의 기록이 전무하게 왜곡한데다가 이를 기회로 단군을 전설화했다.
 
우리는 단군이전에 이미 1만 년 전에 12의 연방국인 환국(桓國)을 세워 3301년간 역사와 신시시대(神市時代)에 배달국(倍達國)을 세워 1565년 간 다스리고 고조선은 중국의 요순(堯舜)시대와 은주시대(殷周時代)에 중국본토의 일부지역과 만주와 한반도의 전역에서 활약했다.
 
환국(桓國)시대는 아시아 유라시아와 유럽까지 광활한 지역을 다스린 것이 미·영·러·중앙아시아 학자들에 의해 입증되고 있다. 이러한 우리역역을 강단파 사람들은 환국(桓國)의 영역(領域)이 너무 넓기 때문에 믿지 못하고 있는데 필자도 놀라울 정도다. 이것이 사실이다.
 
오늘은 고조선과 중국, 일본과의 관계를 좀 더 살펴보고자 하는 데 특히 고조선과 고대 중국의 은주시대(殷周時代)의 대륙에서의 고조선과 중국의 정립(鼎立)을 살펴보고자 한다.
 
상고사 없는 중국, 일본, 우리역사 훔치고 왜곡
 
고대조선 초기 우리나라는 중국의 요순시대(堯舜)시대와 은주시대(殷周時代)에는 조선과 중국은 서로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주(周)나라 때부터는 조선의 주력이 된 한족(韓族)과 주(周)가 주력이 된 한족(漢族)간에 여러 수백 년 동안 충돌을 계속했다.
 
우리 한족인 은(殷)이 주(周)에게 망한 것은 우리한족(韓族)인 동이(東夷)가 중국에 말려 들어간 시초가 된 셈이다. 주(周)가 패권을 잡으면서 중국천하를 통일했던 나라 은(殷)의 역사를 한족(漢族)위주로 뒤집어야 되는데 중국인들이 거짓말을 안 할 수 없게 됐다.
 
이 때 공자가 그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즉, 주(周)나라 말기에 공자(孔子)가 쓴 [춘추(春秋)]는 은(殷)나라와 동이족을 밀어내고 중국 전통의 동이(東夷)가 아닌 한족(漢族)위주의 나라임을 알리려고 날조 한 것이다.
 
고조선의 한민족(韓民族)이 다른 민족과는 달리 고시(고矢) 석족(石鏃)등 무기와 강(江)의 범람에 대한 치수(治水)등에 선진민족임이 명백한데 공자는 주(周)나라가 가장 중요한 주력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 통일이 안 되고 자기의 도(道)가 중국에 행해지지 않으니까 공자(孔子)도 구이(九夷:조선)로 갈까보다“고 했다. 제자들이 “고루(固陋)하면 어쩌겠느냐?”고 하니까 “조선은 군자불사지국”이라고 받아, 조선을 고루한 곳이라고 하는 말에 반대했다.
 
그러면서도 공자는 [춘추(春秋)]를 써서 “동이족은 선주(先住)도 주력도 아니다. 주(周)가 중심세력이다.”며 우리가 동방 군자의 나라임은 인정 하면서도 그 활약했던 바를 감추어 역사를 중국한족(漢族)본위로 추켜세우고 동이(東夷)를 제 낀 것이다.
 
그러나 순(舜)이 우리나라 사람이고 활 만드는 법을 중국이 오래 동안 우리에게 배우려 했던 만큼 우리가 선진기술과 무력에서 앞서 있었음은 물론 우리가 세계중심이었음을 잊지 않고 있어 주나라를 중심으로 한 공자와 충돌한다.
 
중국의 역사를 왜곡개조한 시조(始祖)가 바로 공자의 ‘춘추(春秋)’에서 위중국휘치(爲中國諱恥)의 수법을 창안해 중국이 타민족에게 패배한 사실을 삭제하고 도리어 승리로 위조했다. 그래서 중국의 역사는 바른 내용이 경우가 얼마 안 돼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중국은 세계중심을 한족(漢族)에 있다하고 우리까지 오랑캐라 하면서 “사실은 예맥조선 떼거리가 많아서 걱정이다.”라고 했다. 이것은 예맥이 천년이상 중국을 정벌하고 지배했기 에서다. 이와 같이 공자의 춘추(春秋)가 역사를 중국 본위로 뒤집은 것은 확실하다. 이후 중국사는 공자의 수법을 본받아 위조를 기본으로 중국인 중심의 역사기법은 휘치필법(諱恥筆法)이다.
 
즉 ▲한족과 중원(中原) 나라의 수치스러운 역사는 숨긴다(爲漢中國諱恥) ▲한족과 중원의 나라는 높이고 외국은 깎아내린다(矜炒而陋夷狄) ▲한족에 관한 국내사는 과대하게 하고 남의 역사는 작게 쓴다(祥內略外). 등을 원칙하에 우리역사를 철저하게 깎아내렸던 것이다.
 
불행하게도 사대주의(事大主義)에 빠진 사대부(士大夫)들은 공자의 말을 추종(追從)해 이를 당연시 받아들여 중국이 우리를 멸칭(蔑稱)으로 부르던 오랑캐 이(夷)란 글자는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니다. 과연 우리가 오랑캐인가.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이(夷)란 글자는 활을 쓰며 투구를 쓰는 선진민족(先進民族)을 의미하는 만큼 동이(東夷)라 해도 섭섭할 것이 없다. 우리는 중국대륙과 한반도 일본열도와 유라시아를 지배했던 자부심은 현재까지도 중국인을 ‘되놈’, 오랑캐 ‘호(胡)’라 부르고 호떡, 호콩, 호복이란 말을 써서 차별했다. 되(胡)란 멸칭(蔑稱)이 우리가 말하는 진 짜 오랑캐다.
 
일본에 대해서도 왜국(倭國)이란 명칭이 일반적 이라고 할 만큼 멸시했고 ‘왜구(倭寇)’, ‘왜떡’이라고, 멸칭(蔑稱)으로 그렇게 불렀다. 우리가 말하는 진짜 오랑캐가 중국과 일본이다.
 
우리는 우리 선조가 만든 한자를 배우며 언젠가부터 중국 중심으로 사고(思考)가 종속된 나머지 사대주의(事大主義)가 됐지만, 우리는 중국을 ‘대국’과 ‘되놈’이라 하고, 일본을 ‘왜(倭)’ 또는 ‘왜놈’이라는 여러 가지 멸칭(蔑稱)의 말을 쓰면서 나라를 살려오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말과 글 민족성 지켰다
 
우리 조상들은 조선민족의 공통된 말과 글, 민족성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어려운 환경에서도 조선족의 문화를 살려왔다. 931회의 끊임없는 외적의 침입으로 말미암아 찬란한 사서와 문화재가 불타버리고 중국사가(史家)와 일본사가(史家)들이 한국사(韓國史)를 패배, 수치의 역사로 위조했으나 우리 역사는 엄연히 살아있다.
 
중국은 중국 중심의 역사를 쓰면서 엄연히 있는 역사를 아예 뭉개거나 축소하는데 그치지 않고 한국사를 자기들 것으로 도둑질까지 하는 대담한 행위를 예부터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우리는 대륙을 호령한 대륙역사의 주역들은 거의 우리한민족(韓民族)이지만 중국한족(漢族)은 이마저 자기들 조상으로 바꿨다. 중국의 왕, 정치가, 장군들은 거의가 다 우리한민족임을 숨길 수 없다. 치우천황과 싸운 헌원(軒轅), 고대 요,순 왕과 한신(韓信)등 명장들은 우리민족이다.
 
일본 역시 그 역사가 짧고 빈약하기에 일본의 역사서를 보면 그 주인공이 우리 민족이 건너간 유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역사를 기술하는 방법도 ▲승리는 크게 과장(誇張)하고 ▲패배는 고쳐서 개서(改書)하며 ▲망명(亡命)은 아예 서술(敍述)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예컨대, 일본 시조 진무덴노(神武天皇)는 4세기인 서기390년에 태어났고, 그가 천황1대로 서기전660년~585년에 일본을 건국했다고 하나 이는 허구(虛構)일뿐이다. 당시일본에 국가형태의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천년이나 올려서 조작하고 있다. 이는 다 밝혀진 사실이다.
 
일본역사는1600년밖에 안되는데 1천년을 늘려 조작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양심 있는 학자들은 이 사실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미스노 유(水野 祐)교수는 978년이 조작이라고 주장하고 너무 황당한 역사를 그대로 볼 수 없음에서 이를 밝히고 있다.
 
우리민족은 고대부터 바다를 건너가 일본을 정벌하고 지배했는데 이를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사실을 시인하는 일본 사가들은 말한다.1948년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는 가야(伽倻)가 일본에 말을 처음 가져왔기에‘기마민족설’을 주장하고 일본개화에 가야가 크게 기여했다고 했다.
 
또한 임진왜란(朝日戰爭)시 자기조상이라고 모시고간 단군신상(檀君神像:통돌 높이160Cm)는 지금 가고시마(鹿島)에 있는 옥산신궁(玉山神宮)에 고조선개조(開祖):단군 신)을 모시고 있다.
 
미술사학자 코벨 박사와 작가 시뱌료 타로(司馬遼太郞)는 우리의 찬란한 역사와 장점을 잘 알아본다. 이들은 조선사람 들이 사대주의척하면서도 저의나라의 말과 글을 가지고 문화를 지켜온 우리한민족(韓民族)의 자존심과 역량을 높이 평가한사람들이다.
 
우리나라의 글을 한다는 사람들인 멀쩡한 사대부(士大夫)까지도 중국은 천자(天子)이고 우리는 소 중화(小 中華)라하며 자작(自作) 오랑캐라고 사대(事大)하고 살아온 것은 한심한 일이다.
 
중국을 본체이고 우리는 가지(枝)라는 망상은 잘못이다. 중국이 본체가 아니고 우리가 본체(本體)이다. 공맹(孔孟)을 숭상한 사대부는 문제였다. 그러나 공맹(孔孟)이 우리와 무슨 상관인가. 한(韓)의 동이(東夷)가 ‘소 중화(小 中華)’ 되는 것을 영광으로 알았으니 얼마나 미친 짓인가!
 
우리의 가장 오랜 관찬사서(官纂史書)로 남아있는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저자 김부식(金富軾)은 우리의 ‘상고사’와 ‘고대사’를 뻔히 알면서도 중국을 거스르는 일이 두려워 고조선의 개조(開祖) 단군(檀君)을 다루지 못한 책이 됐고 이것을 더 왜곡한 것이 일제(日帝)이었다.
 
그러나 과거(科擧)에는 떨어졌어도 애국자이고 똑똑했던 북애자(北崖子)는 공자(孔子)를 비판하는 글이 그로부터 나오게 됐다. 그의 ‘규원사화(揆園史話)’는 ‘조대기(朝代記)’를 인용한 이명의 저서 ‘진역유기’를 저본으로 한 책이다.
 
규원사화는 일제가 우리나라사서(史書)를 말살하는 정책 속에서도 김수일 선생의 잘 숨겨뒀기에 세상에 빛을 보게 된 책인데 1675년 조선조 숙종 때 쓰여 졌고 최근에야 공개돼 우리의 근원을 제대로 찾은 책으로 이병도 친일사학자도 이를 보고 “단군은 실재했다”고 말했다.
 
이 책은 발해인(渤海人)들이 감추어 전한 고구려(高句麗)이래 선가(仙家)의 잔맥(殘脈)을 이은 것으로 승려학자(僧侶學者)들이 남겨놓은 것보다 훨씬 우수하고 유교(儒敎) 선비(鮮卑)들이 구구하게 떠드는 것보다 사기가 만장(萬丈)하다고 보았다.
 
북애자(北崖子)는 “공자(孔子)시절에는 주(周)나라가 이미 쇠퇴하고 여러 외족(外族)의 침입이 그치지 아니한데다 이 때 우리 한족(韓族)의 위엄(威嚴)이 중국에 떨 쳤다. 이 때문에 공자(孔子)가 외족(外族)을 물리치고 주(周)나라를 높이기 위해 쓴 책이 [춘추(春秋)]인 것이다”
 
북애자(北崖子)는 또 “공자가 중국에 났기에 주(周)나라를 중심으로 삼았지 조선에 낳았더라면 중국을 오랑캐라 하며 조선을 중심 삼았을 것이다. 우리가 왜 거기를 중화(中華)라 하고 우리를 소중화(小中華)라 하는지 비루(鄙陋) 하다고 했다”
 
그는 실로 주체의식이 강하고 확고한 역사관을 가진 선각자(先覺者)였다. 그의 정열은 읽는 이를 깨우쳐주고 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민족의 주체성이 강하고 정의로운 북애자(北崖子)와 같은 학자가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역사 망각은 민족의 핵(核)을 없애는 것
 
우리나라는 외국의 저명한 학자들도 ‘세계시원국(世界始源國)’이라 하고 ‘세계중심국(世界中心國)’이었다고 하고 있다. 당시에는 환국(桓國)과 같은 대국가(大國家)가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 유독 중국과 일본의 사가(史家)는 자기들이 상고사(上古史)가 전무하고 고대사(古代史)역시 한국(韓國)과 비교 안 되리 만큼 보잘 것 없는데서 그들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한국사(韓國史)를 패배(敗北)와 수치(羞恥)의 역사로 뒤엎어 놓았어야 했다. 따라서 지금 우리한국은 역사가 뒤엎어진 나라가 돼 있다.
 
이것은 중국과 일본사가(史家)가 자기들의 역사를 쓰자면 한국을 지배하고 예속시켰다고 위조 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성에서인데 여기에 한국의 이물(異物)들이 중국과 일본의 사가에 수치의 식민지사(植民地史)를 겻들여 장식하나 이는 연구를 하지 않고 역사무지에서 나온 것이다.
 
중앙아시아나 중동과 유럽은 물론 러시아학자들도 언어학상으로나 지리학적으로, 역사학적으로 연구한 그 결과 우리나라가 환국시대부터 12의 연방국가(聯邦國家)를 이루고 지역을 연방회의에서 순차적으로 정하고 순회적(巡廻的)으로 지역을 돌아가며 거주한 역사를 말하고 있다.
 
역사를 연구하려면 중국과 일본뿐 아니라 중원대륙과 한반도와 일본열도는 물론 아시아 중동을 포함한 유라시아와 유럽과 러시아 남북 아메리카의 민족사까지 보고 세계 속에서 과연 우리조상들이 어떠했는가를 그들의 언어와 풍습 종교 등에서도 그 흔적을 보고 말을 해야 한다.
 
우리는 위대한 고대국가를 다 중국과 일본이 뭉개고 없애며 우리상고사를 왜곡하고 변조 조작해도 진실은 숨길 수 없다. 상고시대부터 광대한 지역을 다 같이 아우르는 광대한 국가를 이뤄 가며 평화롭게 살아간 사실을 연구 결과를 세계학자들이 발표하고 있음을 본다.
 
지금 우리가 중국과 일본이 역사조작을 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이들을 무시하고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는 물론 러시아 중앙아시아국가들의 어원을 비롯한 각국의 언어와 풍습 민족의 유래를 다각도로 연구해 우리의 진실을 밝혀가는 것이 역사를 바로 세우는 지름길인 것 같다.
 
중국고대지리지(地理志)인 [산해경(山海經)]과 [진서(晋書-四夷傳)]에 당시우리영역(領域)은 남북이 5만 리(里)요 동서가 2만 리(里)고 인구는1억8천만인 때도 있었다고 삼성기(三聖記)에 기록돼 있다. 이러한 기록은 상고시대부터 우리나라가 어떠한 나라인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반도식민사학(半島植民史學)을 견지하는 자들은 너무 광활하기에 이를 믿지 못하고 고구려 백제 신라, 마한, 진한, 변한, 등도 한반도에 국한하고 말하고 있는 바보임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는데 우리는 상고시대나 고대에 대륙을 정복하고 지배하고 있었음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우리가 중국대륙을 지배한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은 고대의 천문학(天文學)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5000년 전에 ‘고인돌’이나, 고구려 ‘고분벽화’ 등에서 나타나는 천문을 관측한 별들이 한반도가 아닌 대륙임을 이미 다 입증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대륙을 지배한 민족이다.
 
또한 우리가지배한 중국과 일본에 제왕(帝王)의 연호(年號)의 문구(文句)와 갈토(갈討)라는 문구(文句)가 있는데, 갈토나 연호(年號)는 독립국가의 제왕(帝王)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천자(天子)의 군(軍)에 토자(討字)를 부치고 후왕(侯王)의 군(軍)에 벌자(伐字)를 부치고 토자(討字)를 부치지 못한다. 즉, 천자(天子)는 토이불벌(討而不伐)하고 후왕(侯王)은 벌이불토(伐而不討)라 했다. 천자는 토(討)자를 쓸 수 있으나 후왕(侯王)은 벌자(伐字)를 쓸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고대 황제(皇帝)의 국가로 등장한 것은 오늘날의 고고학(考古學)에 의해서도 확실하게 판명돼 들어나고 있음에도 도리어 거꾸로 중국에 예속된 후왕(侯王)의 국가로 뒤집어 놓았다. “거짓말로 속이는 것은 악당의 본성이다”고 키케로(Cicero)는 말했는데 악당보다 더한 것이다.
 
중국과 일본이 이렇게 거짓역사를 조작하는 것은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모두 잃는다”는 서양속담이 있듯이 그들의 자존심을 드높게 하기 위함이다. 사학자인 김성식(金成植) 선생은 “자존심은 인격의 핵(核)”이라고 했다. 괴테는 “지상의 최고의 행복은 인격이다”고도 했다.
 
중국과 일본이 역사를 조작하고 왜곡하는 것은 개인의 자존심과 같이 역사를 존중하는 것이 국격(國格)을 높이는데 얼마나 중차대한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나 역사를 존중하는 목적이 그 민족의 활로(活路)를 개척하는데 필수이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는 사실만 쓰면 된다.
 
중국과 일본이 우리의 상고사와 고대사를 도둑질 하며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그들의 활로를 역사에서 찾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있지도 않은 역사를 우리역사에서 찾으며 우리의 자주독립의 민족사관(民族史觀)을 패배(敗北) 속의 식민사관(植民史觀)으로 바꿔 놓았던 것이다.
 
거짓역사들은 우리의 역사뿐만 아니라 국가관과 민족관은 물론이고 우리의 정신과 영혼 민족혼을 말살시키고 모든 것을 그르치게 하는 원흉이 되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 사회의 혼란도 가치관의 변질에 있어 눈앞의 일도 제대로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 한국사는 변모(變貌)된 식민사관 역사를 지금도 가르치고 있음은 큰 문제다. 이제 식민사관을 배제하고 자주독립의 민족사관 역사를 바로 세워서 가르쳐야 한다. 이는 급선 과제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국가형성의 사회사‘.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二十一世紀出版社集團, ’山海經‘. 大連出版社, ‘行走 大黑山’.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유우찬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 사람과 북방주민들’. 홍윤기,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심백강, 이덕일, 박정학외9인 공저 ‘미래로 가는 바른 고대사’.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徐漢太 編著, ’訓民正音.解書本‘.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石井進外, ‘詳說日本史,‘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ヨセフ アイデルバ_グ 中川一夫 譯, ‘大和=ヤマト)民族は ユダヤ人だった’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大和上井久義, ‘日本古代の親族と祭祀’. Georges Duby : L'HISTOIRE CONTINUE, 松村剛 譯 ‘歷史は續く’. 坂本泰良,‘明治維新から現代へ’.劉泳,海燕,‘赤蜂博物館’. 黃斌, 劉厚生, ‘箕氏朝鮮史話’ ‘各國別 [世界史の整理] 三省堂發行’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 世界史史料集’,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石井進, 笠原一男, 兒玉幸多, 笹山晴生, ‘詳說日本史’. 西東社출出版部編, ‘日本の古墳, 古代遺跡’. 黃娬, 劉厚生, ‘箕氏朝鮮史話)’.외 다수의 서책(書冊)을 참조하고, 본문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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