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지금 한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자주독립의 민족사를 찾아내는 방향으로 연구하고, 문화사상을 중심으로 다루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위서(僞書)를 배제하고 진서(眞書)에서 찾고 취재해야 한다. 인류발달사는 보편적 역사(普遍的歷史)다. 거짓된 위서(僞書)로는 바른 한국사를 찾을 수 없다. 보편적인 역사를 고찰하면서 우리 한민족의 특수성을 발견해야 한다. 인류발달사에 편향해 한민족의 특수성을 무시하는 방법으로는 한국사를 발견치 못하고 영원히 역사 미아가 될 뿐이다.
우리역사는 진서(眞書)에서 취재하고 다시 인류발달사를 원칙으로 하면서 한민족의 특수성을 토대로 다루어야 우리역사를 제대로 복원(復元)할 수 있다. 한민족(韓民族)의 특수성은 특수한 경제적 사회적 조건에서 발생한다. 우리가 고대 강대국으로 등장한 이유는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고대한민족은 지구상 다른데 없는 경제적(經濟的) 사회적(社會的) 조건에서 대륙을 정벌하고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첫째 호시(楛矢)와 석족(石鏃), 산삼(山蔘)을 생산할 수 있었던 특수한 경제적 조건 때문이다.
석기시대(石器時代)에 우리는 석기를 파괴하는 호시(楛矢)와 석족(石鏃)을 만든 한민족은 사방의 원시민족을 정복하고 대국으로 등장하게 됐다. 이것은 우리한민족에게 천명(天命)을 받았다는 자존심을 북돋았다.
그 뿐만 아니라 인류사상 최초로 대국(大國)으로 등장해 아세아는 물론 유럽과 유라시아까지 그 세력이 미쳤고 그 자존심은 우리민족은 천신(天神)의 피를 받았다는 천민사상(天民思想)을 창조해 인류의 대표로 자처(自處)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사회적 특수조건은 931회의 외침을 받고도 이에 저항하며 민족투쟁의 제일 요소가 자주자존의 민족의식이었다. 그리해 전통적 천민사상(天民思想)을 더욱 발전시킨 것이다.
반면 중국인(中國人)들은 우리와 겨눌 수도 없는 미개한 수준(水準)으로 그들은 2000년 동안 우리가 만든 호시(楛矢)와 석족(石鏃)을 수입하면서 이를 보물(寶物)이라 칭했다.
또한 한국의 산삼(山蔘)은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신비성(神秘性)이 있고 당시 한국에서만 생산됨으로 고대 중국인과 일본인들은 진물(珍物)이라 말하면서 앞을 다투어 수입해 갔다.
이러한 우리의 특수한 경제적, 사회적, 조건은 중국문헌(中國文獻)에까지 한민족(韓民族)이 최초에 천자(天子),황제(皇帝)의 문물제도(文物制度)를 창안했다고 말하기에 이른다.
이 제도는 단군 이후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가 천자(天子) 황제(皇帝)를 칭했다. 이들 사실은 분명히 천민사상(天民思想)을 입증한다. 중국과 일본은 우리의 천자(天子) 황제(皇帝)의 문물제도(文物制度)와 천민사상(天民思想)을 자기들이라 하나 이는 우리의 것일 뿐이다.
오늘은 고대한국의 강역(江域)과 우리가 세계를 지배한 선진민족이요 세계최초 대제국을 건설한 시원국(始源國)이었으며 중국과 유라시아까지 지배한 역사를 재조명하고 져 한다.
한국사 위조방치는 민족정체성 상실초래
고대조선은 상고시대부터 일반화된 연방제(聯邦制)로 공동체생활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학자에 따라 고조선이 서기전 2333년에 건국해 2천년 이상 존속했다고 하고 있다. 대다수 학자들은 고조선은 47대 2096년 이라는 것이 다수설이 되고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서기전 2333년~서기전 425년으로 1908년으로 돼 있어 학자들의 일치된 연대차이가 있다. 그리고 고조선이 한나라의 침략으로 패망했다는 것은 허구이다.
고조선의 체재는 중앙집권적 왕조체재가 아니라 단군직할의 지역을 제외한 기타지역은 자율성이 보장 된 170여 다수의 제후(諸侯)로 구성된 체재로 유지해왔다. 고조선 후기에 접어들어 각 제후(거수·渠帥)들이 하나둘씩 분리 독립해서 가면서 전체적인 체재가 해체됐다.
고조선은 식민사관자들이 말하는 것과 같이 멸망된 것이 아니다. 해체됐다는 표현이 옳은 것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서기전 2333년~서기전 425년으로 1908년간 존속한 것은 일연(一然)의 주장으로 다수의 제후가 해체 후에도 고조선은 존속했다.
한편 고조선 영역은 대륙의 요하지방과 만주, 한반도로, 서쪽으로는 난하(鸞河)와 갈석산(碣石山)일대이고 북쪽은 아르군강, 동북쪽은 흑룡강(아무르강), 남쪽은 한반도 전역으로 보고 있다.
일제(日帝)식민통치하 조선총독부가 역사왜곡을 위해 만든 ‘조선사편수회’는 우리 상고사는 물론 단군조선도 절단하고 한국사 왜곡의 초점을 특히 고조선사왜곡에 초점을 맞추어 고대조선사를 부정하기 위해서 고조선 강역을 지도에서 없애는 작업이 주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착안(着眼)한 것이 바로 고대한국과 중국의 국경선으로 알려진 패수(浿水)의 위치를 한반도 안에 끌어들이는 방법을 모색해 패수(浿水)가 고유명사(固有名詞)가 아니라 보통명사(普通名詞)라 했다.
그리해 고대 패수(浿水)로 불리던 강들은 대동강, 청천강, 압록강뿐만 아니라 지금 중국의 북쪽에 있는 요하, 사하, 고려하, 난하(鸞河)등이 모두 패수(浿水)로 불렸다는 것이다.
‘조선사편수회’는 발해와 서해로 들어가는 여러 강 가운데 임의로 하나를 찍어 패수(浿水)라고 해도 역사해석상 오류가 없겠다는 판단하에 처음에 요수를 패수(浿水)로 했었다.
그럴 경우 고대조선의 역사성을 부정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 다시 압록강으로 수정했다가 또다시 청천강 또는 대동강(大同江)으로 정정했다. 지금 중국은 초등하교 교과서에 단동(丹東)도 대동강으로 갔다가 놓고 있다. 야만(野蠻)이 따로 없다. 이것은 날강도 같은 야만행위이다.
이렇게 청천강 내지 대동강이 됨으로서 고조선(古朝鮮)은 이름만 있고 영역(領域)이 없는 국가로서 그것은 바로 가공(架空)의 역사요 신화에 불과한 소설 같은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왜곡은 지금도 우리교과서에 그대로 반영돼 오늘날까지도 우리 고대사 강역이 대동강 안쪽으로 축소돼 있으며 우리의 고정관념 속에 잠재돼 우리강역을 잘못 알고 있다.
일본은 우리고대사를 잘라내기 위해 패수(浿水)의 위치를 조작해서. 우리역사와 관계없는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있는 것으로 위치를 조작해 연결시키고 있으나 이는 다 허구의 제멋대로의 조작역사일 뿐이다.
패수(浿水)는 난하(鸞河)로 대동강(大同江)이 아니다.
중국과 일본이 우리의 역사를 없애기 위해 그 지명과 지도도 바꾸고 역사를 조작하고 오고 있음은 역사를 연구하는 자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우리 역사와 관계가 없는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을 한반도에 있는 양 조작하기 위해 패수(浿水)의 위치도 조작했으나 이는 말도 되지 않는 어불성설(語不成說)로 억지다.
특히 ‘조선사편수회’는 일본의 역사가 상고사도 없고 고대사도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은 열등함을 극복하기 위해 고조선의 왜곡에 주안점을 두고 단군도 신화(神話)로 돌리고 고조선의 역사를 부정하게 그 강역까지도 없애버리려고 가진 방법을 다해 나온 결과였다.
일제(日帝)의‘조선사편수회’가 조작한 그들의 음모를 보면 고대 우리와 중국의 국경선으로 알려져 있는 패수(浿水)의 위치를 한반도 깊숙이 끌어들이는 방법으로 패수(浿水)가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라는 사실로 유도했지만 이는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우리나라 역사학계도 제대로 연구한 학자들은 이 왜곡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반도식민사관자들은 아직도 패수(浿水)를 청천강 또는 대동강으로 보는 자가 있음은 한심한 일이다.
이 식민사관(植民史觀)의 학노(學奴)들은 조선총독부가 만든‘조선사편수회’의 이마니시 류(今西 龍)가 한국고대사를 말살하는데 주도해 1938년 나온‘조선사 35권’의 범주를 못 벗어나고 있다.
이들은 지금도 패수(浿水)가 청천강 또는 대동강으로 보며 고조선의 역사를 부정하는 자들로 고대 우리와 중국의 국경이 모두 대동강유역에서 이뤄지고 요동의 고조선은 신화로 보며 단군조선의 역사를 절반으로 잘려나가는 암살행위를 자행하고 있다. 못 말리는 족속들이다.
패수는 대동강이 아니다. 중국인조차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역사를 제대로 연구한자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세계사학자들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도대체 식민사관자들은 언제까지 일본의 망령과 잔재를 안고 살려고 하는지 그들의 추태를 보며 측은한 생각이 든다.
패수(浿水)가 대동강이 아니라는 것은 중국의 사료들도 제대로 말해주고 있다. 중국 사료가 말해주는 중국의 동북국경은 바로 고조선의 서쪽국경임에도 반도식민사관자들이 이를 모른다는 것은 연구부족이거나 아니면 직무유기라 본다. 상식적으로도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 기 때문이다.
중국인은 왜 요동(遼東)이라 하는가! 패수(浿水)는 과연 어디인가
그렇다면 요동은 우리와 어떠한 관계이며 중국인들은 요동(遼東)을 어떻게 이해하며 왜 요동(遼東)이라 하는지에 대해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중국인들은 가장 먼 동쪽을 지칭(指稱)할 때 요동(遼東)이라고 했다. 이는 현대인들이 쓰는 극동(極東)과 같은 개념이다.
이때의 요동(遼東)은 국경선이 옮겨지면 호칭(呼稱)도 유동적(流動的)으로 옮겨지는 유동적인 요동(遼東)이었다. 원래의 요동은 지금의 북경근방이었다. 우리는 현대감각으로 지명을 하나 같은 지명과 지도도 중국은 여럿 바꿔놓았다. 이런 사실을 알고 말해야 한다.
중국의 역사왜곡 형태를 알면 이에 대해서도 잘 이해 할 수 있다. 우리는 평양하면 지금 북한의 평양만을 생각하고 말하나 중국에는 평양이라는 지명도 여러 곳 있고 태백산이라는 지명도 한두 곳이 아니다. 역사는 진실에 입각해 입체적으로도 사실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요동(遼東)에 대해도 일반적으로 말하는 의미와 행정구역으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음을 보는데 한 지역을 장기간에 걸쳐서 요동(遼東)으로 불릴 경우 고유명사처럼 쓰이기도 했다.
또한 행정구역(行政區域)으로서의 요동(遼東)은 요동지역(현재는 요서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을 말하는 것으로 고정적인 지명을 말하는 것이다. 요동군(遼東郡)이 이에 해당한다.
고대 요동(遼東)은 지금의 난하(요수)와 갈석산 지역이었으나 중국이 점차 영토를 넓히면서 지금의 요하를 장악하자 요동(遼東)이 동쪽으로 이동해 지금은 요하(遼河)를 기준해 요서(遼西)와 요동(遼東)으로 나눠서 불리게 됐다.
따라서 고대의 요동(遼東)은 난하(鸞河)와 갈석산 일대를 말하나 지금은 요서지역이 됐다. 중국의 고대 사료에서도 패수(浿水)는 난하(鸞河)를 지칭하고 이는 낙랑군 수성현의 진(秦)장성 동단(東端)을 말하고 있다. (이도상 한국고대사 바로 알기’ 64~5면, 윤내현 ‘사료로 보는 우리고대사’ 105~107면·69면 참조 인용),
또한 중국고대사 사료(史料)가 말하는 고대 한국의 강역(疆域)인 패수(浿水)의 위치는 우리고대사를 거꾸로 어렵게 꾸민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史記)에서 조차도 연(燕)의 동쪽 경계(境界)라고 했다.
즉 사기(史記)권(卷)115 조선열전(朝鮮列傳)에는 분명히 (復修遼東故塞 至浿水爲界屬燕) 즉, 요동(遼東-동쪽으로 가장 먼 곳)의 옛 요새(要塞)를 고쳐 패수(浿水)까지를 경계로 해 연(燕)에 속하게 했다는 것이다.(司馬遷 史記115 朝鮮列傳 參照).
여기서 연(燕)의 동쪽에 있는 강은 바로 지금의 난하(鸞河)를 말한다. 난하는 연(燕)의 동쪽으로 중국의 가장 동쪽에 위치한 강이다. 또한 연(燕)도 고조선 서쪽과 국경을 맞서고 있는 나라로 중국 쪽에서 보면 연(燕)은 가장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연(燕)은 중국인의 나라 중 가장 동쪽에 있었던 나라이기 때문에 난하(鸞河)를 넘으면 중국의 한족(漢族)과 다른 고조선의 동이족(東夷族)이었기에 고대한국과 중국의 국경은 바로 난하(鸞河=패수(浿水)였다. 이러한 패수(浿水)라는 것은 정신이상자나 할 소리이다.
이 패수(浿水)를 대동강이라 하며 한반도로 끌어들이는 반도식민학자들의 말은 어불성설(語不成說)로 웃기는 일이다. 이들은 대한민국 국민이라 할 수없는 이물(異物)들인 것 같다.
이러한 자비적(自卑的) 위조로 열등의식과 패배의식을 부식(扶植)시키며 광복 71년 되는 오늘 날까지도 부정적으로 우리역사를 인식시키는 반도식민학자들은 쓰레기와 진배없는 것 같다.
우리 한민족(韓民族)은 세계학자들 까지도 자타(自他)가 인정하는 인류사상 최초에 등장한 고대 대제국(大帝國)을 세웠고 우리민족은 중국에 모든 문물제도를 전수(傳授)한 문화민족으로 당시 중국은 문화사상과 물질문명에 있어서도 한국을 배웠다.
물질문명, 문화사상도 한국을 배운 중국
공자(孔子)는 28세 때 담자(담子)선생을 방견(訪見)해 천자(天子)의 관제(官制)를 배우고 옛날부터 천자(天子)와 관제(官制)를 잃으면 사이(四夷) 즉, 우리에게서 배운다고 했다.
사이(四夷)는 본래 사방민족(四方民族)을 가리키는 것인데 고대 사방민족 중 우리한민족(韓民族)이 대표적이었다. 그리해 한민족(韓民族)을 사이(四夷)라 칭한 예가 많이 있다. 삼국지(三國志)에도 우리를 사이(四夷)라고도 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우리에게서 군사학(軍事學)과 주역철학(周易哲學)과 홍범구주(洪範九疇)도, 물질문명(物質文明)과 문화사상(文化思想)도, 중국은 한국을 배웠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 사실은 중국문헌인 북사(北史)와 주역(周易)을 봐도 재확인 할 수 있다. 즉, 북사(北史)에 동이(東夷)에게서 수입한 것은 궁시(弓矢)뿐 아니라 천자(天子), 천민(天民)사상 기타 문화도 수입했다고 기록 했다.(北史 卷九十四末尾 參照).
또한 주역(周易)에 [帝出乎震)....萬物出乎震 震東方也]라 했다. 즉 중국문화의 중핵(中核)인 황제제도(皇帝制度)가 동방한국(東方韓國)에서 창조됐다고 하며 만(萬)가지 문물제도(文物制度)가 동방한국에서 창조됐다고 한 것이다.(周易 卷之二十四 說卦傳 參照).
또, 포박자(抱朴子)에 중국민족(中國民族)의 시조(始祖)라 칭하는 신화적 제왕(神話的帝王)인 황제(黃帝)가 동(東)으로 청구(靑丘)에 와서 삼황내문(三皇內文)을 얻었다’고 했다.
청구(靑丘)는 한국이요 삼황(三皇)은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을 말한다. 이것은 한국에서 수입한 삼황내문(三皇內文)을 벳킨 것이다.(尙書 今古文注疏 卷二十五 外 參照).
이상과 같이 중국문헌에 문화사상(文化思想) 물질문명(物質文明)에 대해 중국은 한국을 배웠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럼에도 이를 부인하는 자는 정신 이상자가 아닌 이상 이를 부인 할 수 없다. 우리문명과 문화는 모방문화라는 것은 사대주의자의 망언, 망발에 불과 하다.
그런데 조선시대의 사가(史家)라는 안정복(安鼎福)은 [기자(箕子)같은 성인(聖人)이 한국에 온 것은 신(神)이 도운 것이라] 말하고 먼저 기자(箕子)를 내세우고 다음에 단군(檀君)을 기록해 기자(箕子)를 기점으로 한국사(韓國史)를 엮어놓았다.
또한 중국을 천(天)으로 받드는 사대사상은 선 기자(先箕子), 후 단군(後檀君)의 자학적(自虐的)역사를 조작했다. 한말(韓末)의 대학자요 의병장이라 칭하는 유인석(柳麟錫)도 중국은 세계의 대종(大宗)이요 천지의 중심이다. 조선은 중국을 천으로 받들어야 한다.
이런 중국을 본국(本國)으로 알고 섬기고 우리를 가지 국(枝國)이라는 사대주의자들로 인해 우리역사는 뒤엎어질 대로 뒤엎어진데다가 일제(日帝)에 의한 ‘조선사편수회’의 철저한 왜곡으로 우리역사는 엄청난 학살(虐殺)을 당해 말이 아니다.
이제는 하루속히 반도식민사관(半島植民史觀)에서 벗어나 민족사관(民族史觀)에 입각해서 있는 사실을 그대로 우리역사를 바로보고 바로 쓰여 져야 한다. 진실의 역사만이 우리역사이다. 학문에는 왕도가 없다.’고 하지만 연구도 하지 않고 역사를 논하지는 말아야 한다.
연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역사를 논할 수 없다. 반도식민사관자(半島植民史觀者)들은 자비적역사(自卑的歷史)만을 고집하는 것은 문제다. 이런 자들은 역사무지로 학자라고 할 수도 없다. 이들은 국가민족을 팔아먹는 매국노와 진배없는 자라고해도 지나친 말은 아닌듯하다.
맺는 말
덴마크의 사상가 키엘케고르(Kier Kegaard(1813~1855)은 “인간은 역사에서 그 살길을 배운다”고 했으며 미국의 철학자 Santaya na(1863~1952)는 “역사를 잊어버리는 자는 반드시 실패한다”고 전했다.
고대 유태는 위대한 역사를 발견함으로서 갱생(更生)했고 덴마크 갱생운동의 선구자 그룬드 비 목사는 덴마크의 역사를 새로 발견하고 그 역사교육을 토대로 갱생운동(更生運動)을 전개해 성공했다.
역사는 그 국민의 영광(榮光)과 치욕(恥辱)을 기록 했다. 영광은 그 민족의 자존심과 애국심을 북돋고 치욕은 그 국민의 비분심(悲憤心)을 일으킨다. 어느 민족을 물론하고 경로(經路)에는 실패와 성공이 있다.
이와 같은 경로(經路)를 앎으로서 실패(失敗)의 길에서 방황(彷徨)하지 아니하고 성공(成功)의 길을 향하는 진로(進路)를 발견하는 것이요, 성공의 길을 향해 전진(前進)함으로서 활로(活路)를 개척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위대(偉大)한 역사의 자존적역사(自尊的歷史)를 말하지 않을 수 없으며 자비적역사(自卑的歷史)에 안주하는 것은 민족(民族)의 진로(進路)나 활로(活路)를 개척(開拓)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다대수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과 역사의 내용은 자비적역사(自卑的歷史)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자존적역사(自尊的歷史)를 말하지 못할망정 사실의 역사를 부정하며 이를 따르는 것은 역사학살행위(歷史虐殺行爲)이다. 이런 일들은 이제 그만 끝여야 한다.
중국과 일본이 조작 왜곡한 위서(僞書)만 보고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하게 했다든가, 우리역사가 아닌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이 우리역사와 연관시키며 중국과 일본의 왜곡한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국가민족을 잘못 인도해 국가민족을 그르치게 하는 것이다.
어느 나라나 자존적역사(自尊的歷史)가 국민의 자존심(自尊心)을 북돋고 그 자존심에서 용기(勇氣)와 인내력(忍耐力)이 소생돼 위대한 역사 강대(强大)한 국가(國家)를 이룩했다.
그런데 우리는 일제(日帝)가 조작하고 왜곡한 열등의식(劣等意識)과 패배의식(敗北意識)을 조장하는 자비적역사(自卑的歷史)는 지금도 반도사관 그대로 돼있어 역사가 뒤엎어진 그대로다. 이는 하루속히 민족사관에 입각해 바로 세워 져야 한다. 이제는 바꿔져야 한다.
역사를 가르치는 자 역시 거의가 반도식민사관의 교육만을 받은 자들로서, 일본이 조작 왜곡한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큰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하루속히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나 변한 것은 없다. 정부는 역사를 바로세우는 정책을 바로 과감히 펴야 함이 요구되고 있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국가형성의 사회사‘.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二十一世紀出版社集團, ’山海經‘. 大連出版社, ‘行走 大黑山’.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역사를 제대로 알고 행하자.’.유우찬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 사람과 북방주민들’. 홍윤기,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심백강, 이덕일, 박정학외9인 공저 ‘미래로 가는 바른 고대사’.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徐漢太 編著, ’訓民正音.解書本‘.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石井進外, ‘詳說日本史,‘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ヨセフ アイデルバ_グ 中川一夫 譯, ‘大和=ヤマト)民族は ユダヤ人だった’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大和上井久義, ‘日本古代の親族と祭祀’. Georges Duby : L'HISTOIRE CONTINUE, 松村剛 譯 ‘歷史は續く’. 劉泳,海燕,‘赤蜂博物館’. 黃斌, 劉厚生, ‘箕氏朝鮮史話’ ‘各國別 [世界史の整理] 三省堂發行’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 世界史史料集’,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石井進, 笠原一男, 兒玉幸多, 笹山晴生, ‘詳說日本史’. 西東社출出版部編, ‘日本の古墳, 古代遺跡’. 黃娬, 劉厚生, ‘箕氏朝鮮史話)’.외 다수의 서책(書冊)을 참조하고, 본문 인용도 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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