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 점철 촛불난동…국제사회 조롱거리 전락

입력 2016-12-23 22: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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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프랑스 정치철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은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고 말했다.
 
현재 선량한 국민들이 불순분자와 일부 언론들의 선동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마치 광우병난동 때와 비슷해 참으로 안타깝다. 선동자의 의도를 모르는데서 오는 모습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일부 외신들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을 보도하면서는 ‘강아지 게이트(Puppygate)’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를 부각시킨 이유는 정치권이 자신들의 부정을 감추기 위함이라 소개했다. 고영태와 최서원(최순실) 둘 사이의 관계를 부각시켜 난동 주동자와 이에 이용당하는 국민의 수준을 비웃은 셈이다.
 
제2차 세계대전 시 독일과의 전쟁에서 영국을 구한 처칠 수상은 “불행한 과거를 잊는 자는 재차 그것을 오게 한다”는 말을 남겼다. 우리에게 필요한 말이라 생각한다.
 
다수의 국민들은 이 촛불난동이 부산 엘시티 사건을 덮기 위함임을 인지하고 있다. 연루된 정치인들이 이를 덮기 위해 최서원(최순실)건을 터뜨렸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까지 몰고 간 것이 여론이다. 외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 재임시절 광우병 촛불난동 당시에도 외신들은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법과 원칙도 상식도 없는 일이 재현되면서 우리 국민들의 태도에 외신들이 재차 의아해하고 있다. 도대체 왜 탄핵이란 말인가.
 
오늘 필자는 송구스럽지만 눈물을 머금고 고언(苦言)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계와 언론의 선동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클린 핸드의 원리(Clean hand의 原理)로 말하라
 
선진국에서는 ‘내손이 깨끗해야 남의 손이 더럽다고 할 수 있다’는 클린핸드(Clean hand의 원리(原理)가 정착돼 있다.
 
우리는 정치권이나 언론할 것 없이 그 손들이 깨끗지 못한데도 다 미친 양상이다. 말을 제대로 하려면 내 손이 깨끗해야 남의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는 간음한 여인을 돌로 죽이려는 군중들에 “죄 없는 자, 먼저 돌을 던져라”라 말하며 그녀를 지켰다. 지금 사태의 선봉에서 선동하는 자들은 과연 깨끗한지. 지금까지 많은 의혹을 낳고 있는데 이에 대한 청렴함을 말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그 어느 정권보다도 청렴했고 성실했으며 정직하게 사익(私益)을 취하지도 않았고 국익을 위해서 다른 정부가 못한 일을 국가와 국민의 백년대계를 위해 시도하려 애썼다.
 
불순한 자들의 순진한 시민을 선동하고 시민 일부가 이 선동에 도취돼 앞뒤를 분간 못하고 난동에 가담함은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선진국 국민은 이런 것 갖고 이런 선동에 넘어가지도 않으며 이런 일 갖고 우매한 행동도 하지 않는다.
 
외국에서 보는 한국은 암흑 그 자체다. 지금 우리나라사회는 정치도 법치도 공권력도 모두 무너진 상태로 국가의 진로조차 불투명한 상태다. 이렇게 나라망신을 다 시키고 정치부재, 법부재로 혼란을 가져오며 경제파탄, 사회불안에 국민고통은 물론 국가발전을 크게 저해하고 있다.
 
그런데 이 나라 정치권의 일부 정치인과 일부 언론이 사명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 같다. 특히 언론농단은 도를 넘었다. 법과 원칙, 그리고 상식 이하 사태를 앞다퉈 부추기는 일부 미친 자들을 보노라면 ‘정신이 있는 자인지 없는 자인지’ 알 수가 없다. 창피하기까지 하다.
 
지난날 광우병 난동으로 나라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더니 이번 최서원 문제로 대통령을 탄핵으로까지 몰았다. 필자는 이미 이런 것은 탄핵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사태를 다 알고서 말을 해도 해야지 떠도는 말만 갖고 행동하면 반드시 후회할 일이 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 이런 것을 선동하는 자들은 더 부패한 인간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내손이 깨끗하지 못하면 남의 손을 더럽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사다’
 
애국심 없는 정치인이 지배하는 나라, 미래는 없다
 
오늘 우리에게는 인재(人才)가 많은 것 같으나 나라를 구할 애국자(愛國者)다운 정치인은 그리 많지 않음을 대통령 탄핵사건을 보며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참(眞) 정치인과 언론의 실종이다.
 
정치도 법도 원칙도 상식도 실종된 이번 사태를 보면 19세기적 정치인들과 일부 언론의 거짓된 편향(偏向)보도는 너무 심하다. 용납하기 힘들 정도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 한심하다.
 
‘홍수는 났으나 마실 물이 없다’는 말과 같이 사태수습에 최선을 다해야 할 사람들의 태도는 이해 할 수가 없었다. 특히 여당의 일부 의원들 까지도 사태의 흐름을 헌법에 의해서 풀려고 하지 않고 선동자들과 똑같이 부화뇌동하며 더 앞장서는 것을 보며 이들의 무엇 때문에 저러는지 생각하게 한다.
 
도대체 왜 자기 당에서 세운 대통령을 결과도 보지 않고 저러는지! 이해 난(難)이었다. 우리나라 대다수 국회의원의 수준이 이렇다면 국회는 있으나 마나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이런 자들이 과연 이 나라 국회의원이라니 너무 실망과 배신감에 분노를 느낄 정도이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너무나 상식 이하의 것이라 외신의 표현을 빌지 않아도 양식 있는 사람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모습들이어서 너무 창피할 정도다. 사태는 사필귀정으로 잘 해결 되겠지만 고사가 떠올랐다.
 
1356년 전 백제가 망할 때도 이 같은 일이 있었다. 660년7월13일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이 백제를 침범 시 의자왕은 공격을 피해 사비성(泗泌城)에서 웅진성(熊津城)으로 피난을 갔다. .
 
이 때 웅진성의 성주 예식진(예식)은 의자왕을 도와 나당연합군을 물리치기 위해 싸워야 하는 데도 그는 싸우지 않았다. 싸우기는커녕 오히려 나라를 배반했다.
 
서기 660년 7월 8일 이미 함락돼 나당이 연합군이 주둔하고 있던 사비성(泗泌城)으로 의자왕을 끌고 가서 소정방(蘇定方)에게 바쳤다. 그리고 그는 당나라의 공신으로 당 고종으로부터 궁정의 경비와 호위를 담당하는 정삼품(正三品)의 좌위위대장군(左威衛大將軍)에 제수됐다.
 
이 배신으로 의자왕은 당군(唐軍)의 포로가 됐고 백제(百濟)는 구심점을 잃고 온조왕(溫祚王)이 건국한 이래 681년을 번영하던 나라는 멸망했다. 지금도 오늘도 이와 비슷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느 국가나 조직의 위기가 오면 이런 자는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용납이 되지 않는다. 훗날 이런 자들은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마련이다. 결국은 자신의 영달과 안일만을 생각하는 소인배로 낙인이 찍힐 뿐이라는 것이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국회가 개선돼야 국가도 선진화 앞당긴다
 
국회가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자신의 이해와 국내 일만 전념하는 것 같아 우리나라 국회에 고언 한마디를 하겠다. 국회의원들은 입법부의 일원으로서 21세기에 걸 맞는 일은 하지 않고 외국에서는 중고학생들까지 아는 조약 내용을 모르고 있다.
 
의원이 연구를 게을리 함으로 우리와 상관없는 조약도 비준하는가 하면, ‘한일협정’처럼 잘못이 있는데도 반세기가 지나도록 국익을 위한 개선책조차 제시 못하고 있다. 우리 국회가 우물 안 개구리로 국제법에 무지함을 알 수 있다. 또한 국제 관계는 거론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오늘 우리 국회를 말한다면 행정부를 나무랄 수도 없는 수준으로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다. 그 원인은 우물 안 개구리가 돼 있는 정치구도(政治構圖)가 문제이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다른 것이 없다. 우리나라 국회의 개선해야할 점은 많은 데 개선은 없다는 점이다.
 
지금도 애국심이 없는 의원들이 국력을 키우기 위한 노력은 외국의원과 비교해 보면 너무 차가 난다. 거기에 문약(文弱)한 정치꾼들의 자신의 안일과 자파이득만을 위한 정치도 큰문제다.
 
스스로 기강확립도 없었고 세계의 흐름을 외면한 결과로 1980년 효력 발생한[조약 법에 관한 비엔나조약-Vienna Convention on The of Treaties] 조차도 아는 자가 없어 보인다. 국제적 국가위상이 말이 아니다. 이에 따른 조약들도 정비는 거론조차 하는 것을 볼 수가 없다.
 
국회가 해야 할 일은 제대로 안 하면서 행정부의 발만을 붙잡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에도 민망하다. 또한 국제정치(國際政治)에 관심도 없음은 우리국회의원의 수준을 을 말해주는 것 같다.
 
거기다가 명분만 앞세워 갑론을박만을 하며 나라를 돌보지 못하는 정치꾼들 때문에 대외의 대처를 못하고 있다. 국가의 자주성과 독립권을 확고히 하려는 노력이 그리 돋보이지 않고 외국에 의존해서 독립을 유지하려는 사대주의와 윤리적 개념의 정치로 논쟁만 하는 것은 문제다.
 
예컨대, 세종시 이전문제, 세월호문제도 윤리적 개념의 정치인데 현대정치개념의 정치를 못하고 있다. 지금이 윤리적 개념의 정치를 할 때가 아니다. 세계 어느 나라가 수도를 2개 한 나라 있으며 세월호 사고가 대통령책임인가! 이래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모든 잘못을 대통령에게 돌리는 무지는 그 양식을 의심케 한다. 법과 원칙이나 상식선에서 말을 해야지 모든 것을 행정부 탓만 하는 타성은 살아져야 한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지금 국회의 정치행태는 고대 윤리적 정치개념으로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학적으로 정치를 어떻게 규정하는가는 오래전부터 문제이며 사회의 역사적 상황과 위치에 있어서 각기 특색 있는 정치개념규정이 돼 왔다.
 
그 변천이나 과정은 6개 단계 정치시대로 구분해서 각기 그 특질을 고찰해 말하고 있다. 그것은 윤리적 정치개념시대, 신학적 정치개념시대, 기술적 정치개념시대, 법학적 정치개념시대, 자연과학적 정치개념시대, 사회학적 정치개념시대다.
 
그런데 우리는 21세기 정치를 해도 시원치 않은데 한심하게도 고대의 윤리적 정치개념시대에 머물고 있다. 이로 인해 정치계가 정체돼 정치는 앞으로 전진 못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국회의 일부의원들은 중대한 것을 뇌두고 자신의 과오를 감추기 위해 윤리나 도덕적인 것을 논하며 농단에 앞서고 있다. 이는 한심한 인간들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때가 어떤 시대인가! 지금 고대 윤리적 정치개념의 정치로는 한발자국도 앞서 갈 수 없다.
 
지금 정치로는 구제불능, 선진국 도정(道程) 밟으며 법치로 가야
 
고대 플라톤(Platon)이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윤리적 정치개념의 시대로 돌아가 말할 시대인가. 한심한 정치가 이 나라를 망치고들 있다. 그렇게 선동으로 떠든다고 뜻대로 될 나라인가! 해서는 아니 되는 일들을 예사로 하는 것 국민은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지금은 고대지식의 백배도 더 팽배한 시대다. 작년부터는 78일만에 오늘의 지식은 배가 되는 세상이다. 상상을 초월한 인간지능시대에 국제경쟁 속에서 살아나기 위한 정치를 할 때이지 고대개념의 정치를 할 때가 아니다. 거꾸로 가는 무지한들이 큰소리만 하고들 있다.
 
인간의 행위규범 및 사회규범을 윤리적 규범에 넣어서 파악해 정치를 내부적 정신규범으로서 윤리규범과 구별하지 않은 정치개념으로 우리나라 정치는 고대정치개념 정치는 국가발전을 지연시키고 있다. 대통령 탄핵도 정치와 법무지가 낳은 윤리적 개념의 산물이다.
 
우리나라 정치는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무지한 정치를 하고 있는데다가 우물 속에 개구리인양 쇄국적, 독단적, 독선적, 자세가 문제다. 국제정치에는 관심도 없고 그 무지가 하늘에 닿은 듯하다. 이러한 잘못을 개선하지 않고는 우리가 백년을 가도 선진화는 이룩할 수 없다.
 
우리나라가 세계화(世界化)가 아니 되는 것은 바로 정치 이론적으로도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를 가늠 못하고 있는데서이다. 이는 문제다. 대통령탄핵에 전 정력을 쏟아 넣는 지금 이 나라의 정치가 얼마나 뒤쳐진 것인가를 모르면서 목에 힘을 주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너무 오만하고 안하무인의 정치태도는 바꿔져야하고 선진국의 걸어온 도정(道程)도 제대로 살펴보고 우리가 제대로 거쳐 가야 할 길을 한국적이 아닌 국제적 시각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 정치인같이 우둔(愚鈍)하고 안이한 사고로 정치하는 한, 우리의 미래는 장담 할 수 없다. 정치인이나 우리 모두가 각성하고 새 출발을 해야 한다. 오늘의 촛불시위를 주도하는 정치인은 이 시대가 바라고 요구되는 정치인은 아닌 듯싶다. 이래서는 아니 된다.
 
지금 우리나라가 이런 데모나 하며 나라를 거들 나게 할 때인가! 용납이 되지 않는다. 법이 우선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법으로 처결 할 문제를 법으로 처결하지 않고 민중을 선동하며 혼란으로 가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용납이 아니 된다. 이로 인해 가장 큰 손실은 나라발전의 시간의 손실이다.
 
오늘 생각나는 것은 “자신의 행동에 빗나간 사람일수록 맨 먼저 남을 모략한다”는 몰리에르의 말이 떠오른다. “사실을 모르는 자는 용서하되 법을 모르는 자는 용서하지 않는다”는 법언(法諺)은 사실을 제대로 모르고 시위에 메 달리는 사람들에게 하는 교훈인 듯하다.
 
언론들은 편향보도하며 집회의 참가수를 다수(多數)다 소수(小數)다 하는데 법과 함께하는 자가 다수(多數)이다. “법은 대중의 이익을 위해 인류의 경험위에서 행동하는 인간지혜의 최종 결과다”고 말한 사뮤엘 잭슨(Samuel Johnson)의 말은 지금도 생생히 우리 귀에 메아리치고 있다.
 
오늘의 우리나라 정치혼란은 자신들의 과오(過誤)를 남에게 전가(轉嫁)하는 소인배적인 행태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국민은 알고 있다. 원내에서 법대로 논하고 조정하면 될 일을 왜 이를 마다하고 원외에서 성동하며 혼란인가! 국민의 분노도 큼을 알아야 한다.
 
세계 어느 나라가 이 같은 저수준의 정치극(政治劇)을 하는 나라가 있는가! 더구나 OECD국이나 선진국에서 볼 수 없는 꼴사나운 판을 벌이고 있는가! 묻고 싶어서 붓을 들게 됐다.
 
우리나라는 엄연한 ‘법이 지배하는 법치주의 나라’다. 이 나라를 혼란사태로 몰고 가는 것이 ‘법이 지배하는 법치주의’ 나라에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누군가는 오늘의 한국의 상황을 말을 해야 하겠기에 감히 직설적으로 말하게 됨을 서량(恕諒)해 주시기를 바라며 두서없는 글을 이만 멈춘다.
 
이을형 필진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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