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태평양전쟁에 패한 후에도 왜곡은 지속됐다. 1975년 삼성당(三省堂)이 발간한 ‘각국별 세계사의 정리’라는 책에 조선사는 기자조선부터 시작됐다고 기술했다.
이 기류는 변하지 않았다. 반성 또한 없다. 여전히 우리 심기를 건드린다. 삼성당이 발간한 책 내용에 조선사는 6페이지 분량이다. ‘서기전 3세기경 조선에 이주한 중국인이 기자조선을 세웠다’로 시작한다.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다.
또한 2세기경 조선에 이주한 중국인 망명자가 기자조선을 넘어뜨려 현재의 평양부근에 위씨조선(衛氏朝鮮)을 건국했다는 어처구니없는 거짓 역사책을 내놓았다.
그리고 한무제(漢武帝)가 서기전 2세기경 평양을 공격해서 위씨조선을 멸망시키고 낙랑 진번 현토 임둔의 4군을 설치했다 했으며 낙랑군이 4군 설치 이후 313년경 고구려에 정복될 때 까지 중국의 조선지배의 중심이 돼 주변 제국에 한문화(漢文化)를 이식했다는 것이다.
또 낙랑군의 남반(南半)은 210년경부터 대방군(帶方郡)이 됐다고 하고 고구려는 2세기경 북방으로부터 압록강중류의 산간지대에 이주해서 수렵(狩獵)민족으로서 1세기경 까지 강대해져서 중국의 북변(北邊)을 어지럽게 해서 제왕조(諸王朝)와 항쟁을 계속했다고 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만주와 한반도 북단이 중국의 지배하에 있었는데 고구려가 후한(後漢)의 멸망 후 만주에 세력을 넓혀 313년 이후 낙랑군을 위시해 중국의 지배하에 있었던 조선의 제지역(諸地域))을 병합했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삼한(三韓)은 14세기경 한반도 남단에 진한(辰韓), 변한(弁韓), 마한(馬韓)의 3국이 분포해서 중국 군현(郡縣)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고 조작하고 있다는 식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처음 접하는 이라면 그럴듯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이는 조선을 약소국으로 보이게 하려는 일본의 술수다. 남의 지배만을 받고 형편없는 족속으로 열등의식과 패배의식을 심기 위함으로 제작된 책이다.
오늘날 세계는 세계최초의 대제국을 건설한 역사를 인정한다. 부정하는 이는 오로지 중국·일본 학자들이다. 오늘은 이에 대해 우리가 중국을 지배하고 일본을 지배한 사실을 다시 밝히고자 한다.
고조선은 광대한 지역을 가진 제국이었다
이미 밝힌바 대로 환국과 환웅의 신시라는 지역 국가시대의 긴 세월을 지내고서 고조선이라는 큰 나라를 세운 인민의 추대를 받아 큰 나라를 세운 단군이 임금에 올라 조선이라는 강대한 광역국가를 창건함으로서 제정(帝政)단군 왕조의 군주정이 시작됐다.
고조선은 곧 단군조선 즉 고대 한국민족에 의해 설립되고 역대47대 단군이 통치한 단군조선은 중국에서 밀려와서 고조선 변방의 한 구석에 있었던 망명(亡命)집단으로 고조선의 작은 지방의 제후, 한낮 지방관에 불과한 기자(箕子)나 위만(衛滿)과는 그 국가의 성격과 강역의 범위, 그 존속한 시대의 장단과 그 맥이 아주 다른 것이다.
고조선은 기자나 위만보다도 오래전에 성립됐고 기자나 위만이 명망한 후에도 의연히 존속 돼온 강대한 국가였다. 적은 집단에 불과 했던 기자나 위만이 고조선을 계승해 집단의 맥이 된 것처럼 잘못 전해진 것이다.
이것은 사대주의와 일본제국주의 황통주의주의 역사관에 의해 왜곡 조작 된 것을 그대로 답습한 잘 못 된 것이다. 고조선의 중심부는 한 반도가 아닌 발해(渤海)의 북쪽에 있었다.
그 영역은 중국 북경근처에 있는 난하(灤河)로부터 한반도 대부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문헌은 중국의 문헌에도 볼 수 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의 조선열전에도 확인 할 수 있다. 위만이 한반도가 아닌 대륙에 있었음을 증명할 수 있다.
‘전한(前漢)의 무제(武帝)가 위만조선의 우거를 치기 위해 육해군을 보냈는데 육군은 요동을 가서 치고 해군은 제(齊)를 출발해 발해를 향해 위만조선에 도착한 것으로 기록 돼 있다.’
여기서 요동은 발해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식민사관 황통사관 자들만이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기자조선이나 위만조선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것은 허위이다.
또한 제(齊)는 지금의 중국산동이고 그 발해가 지금의 발해와 같다. 그렇다면 그때의 요동이 어디이냐 하는 것이 문제인데 그 때의 요동은 한반도가 아님으로 위만조선이 기자조선을 이어온 것으로 발해 북쪽에 위치했기에 고조선도 발해 북쪽에 위치했음이 분명하다.
지금까지 고찰로도 고조선의 요동은 북경가까이 있는 지금의 난하(灤河)동북지역이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중국문헌에도 요동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 돼 있는데 그것은 갈석산의 위치를 보면 이해가 된다.
난하(灤河) 하류지역에서는 고조선과 중국의 경계(境界)는 갈석 산 이었다. 그러므로 난하(灤河)부터 갈석 산까지의 지역은 중국에 속했고 이 지역이 중국의 요동이었다는 것이다.
즉 고대의 요동은 대부분 고조선에 속해 있었고 그 서남부 일부가 중국영토에 속해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고대의 요동이 분명히 밝혀졌다. 여기서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지금 우리나라 교과서에는 이러한 사실이 기술돼 있지 않다.
고조선뿐만 아니라 고구려도 이 요동지역을 차지했는데 현행 국사책에는 요동을 고대가 아닌 중국의 현재 지명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고구려의 전성기 강역을 지금의 요동까지로 기록됐다. 영역이 제대로 나와 있지가 않다. 이는 시정 돼져야 한다.
분명히 고구려가 차지한 고대의 요동은 난하(灤河) 동북지역이었다. 따라서 고구려의 강역은 북경가까이 있는 난하(灤河)유역까지 확대해 인식돼야 하는 것이다.
단재(丹齋)신채호 선생은 <한국사 연구초(草) 전삼한(前三韓) 삼조선(三朝鮮)전말(顚末)에서 “<동국총목(東國總目)의 단군강역(삼조선(三朝鮮)의 영역이 북으로 흑룡강에 이르고 남으로는 조령(鳥嶺)에 이른다고 한 것에 대개 근리(近理)하다고 했다”
고조선영역을 나타내는 문헌들
고조선 영역에 관해서는 이미 기술한 사마천의 사기(史記)의 조선열전 전한서(前漢書) 지리지(地理志)외에도 고조선을 계승한 열국 중에 부여 고구려와 발해와 고조선의 제후국의 하나였던 위만조선의 활약지역을 살펴보는 것도 좋으나 중국의 가장 오랜 지리지(地理志)인 산해경(山海經)에도 고조선에 대해 기록 하고 있다.
고조선이 옛 요동을 포함한 넓은 영토를 차지한 선진 우수 민족이었다고 여러 곳에 거듭 기록 하고 있다. 후한서(後漢書) 23 ‘군국지(君國志)’의 유주조(幽州條)에 “요동군에 안시성이 있다”고 하고 사기를 인용하면서 “험독(험(險)瀆)은 위만의 도읍으로서 요동에 속 했다”고 했다.
이같이 사기(史記)와의 전한서(前漢書), 후한서(後漢書) 및 산해경(山海經)에 고조선이 활약한 지역의 중심은 대륙의 요동이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 후의 문헌에도 밝히고 있다.
삼국지의 위서(魏書), 진서(晋書), 송서(宋書), 남제서(南齊書), 양서(梁書), 주서(周書), 수서(隨書), 남사(南史),북사(北史), 구당서(舊唐書), 통전(通典) 및 통감(通鑑)과 기타 중국의 여러 사료의 조선전(朝鮮傳), 고구려전 백제전, 신리전, 한전(韓傳), 동이전(東夷傳), 이역전(異域傳), 및 변방(邊方) 지리지(地理志),음악지, 예악지, 기타에도 잘 나와 있다.
거기에는 고조선 및 한족(韓族)의 선진성과 국력이 강대함을 말함과 동시에 그 강성한 시절의 강역(疆域)이 광대(廣大)함을 알게 하는 기록이 허다하다. 다 같이 한족(韓族)의 선진성을 가리켜 다른 삼방(三方)과는 다르다고 했다.
우리나라 문헌에도 요동이 고조선의 활약한 중심이었음을 알 수 있는 자료로서 삼국유사를 보면, 제1권 기이(紀異)제1장에서 위만조선에 한(漢)이 위만조선의 우거(右渠)를 치러 온 중국 <전한서(前漢書)> <열전> 조선조를 그대로 인용했다.
이는 중국의 <사기(史記)>, (조선열전(朝鮮列傳)의 그것과 일치하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고대의 한족(韓族)이 활동영역이 한반도가 아닌 대륙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은 한반도에도 없었다
첫째 우리나라는 기자와 위만은 안중에도 없다. 이미 밝힌바 대로 이들은 우리역사와 관계가 없는 역사로 이들은 우리 고조선의 일시 제후국의 하나였던 것은 인정하나 우리역사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그 규모도 아주 작은 고조선의 200분에1에 속한 것이 기자조선이고 위만은 기자조선을 기만책으로 인수한 것뿐이다. 일본이 고대 한민족을 지배했다는 터무니없는 역사를 위조하지만 이미 밝혀진 사실들이다.
중국과 일본은 자민족을 높이고 타민족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편향된 왜곡역사를 계속 만들어 내나 거의가 허구일 뿐이다. 그들은 이렇게라도 해서 자존적 위조가 국민의 자존심을 북돋고 열등한 역사를 위장하려고 하나 세계석학들은 이를 인정 하지 않는다.
우리한민족은 인류사상 최초로 강대한 국가를 건설하고 신석기시대 이미 우리는 돌과 철을 파괴하는 호시(楛矢)와 석족(石鏃)을 발견하고 4300년 전에 만(萬)여리나 떨어진 중국에 궁시(弓矢)를 수출해 무력이 만(萬)여리에 떨친 국가였다.
기자(箕子)나 위만(衛滿) 따위가 거론하는 그런 나라가 아니었다. 4300여 년 전에 단군고조선을 비롯해 숙신씨(肅愼氏)는 4천여 년 전 대국(大國)이었고 지금의 길림성동쪽 모든 지방을 다 차지했다고 했다.(黑龍江志稿第一, 地理志 沿革)
예맥(銳麥) 역시 3000년 전 중국을 호령한 구국(舊國))했다.(晉書각注 卷九十七 東夷 肅愼氏註).예맥(銳麥)은 당시 대륙을 정벌하고 지배한 것은 중국역사도 다 아는 일이다.
중국역사인 한서(漢書)에 기자가 스스로 망명한 것이고 주무왕(周武王)의 임명을 받아 한민족을 지배했다고 위조 한 것은 중국사가가 위조한 것뿐이다.(漢書 卷之二十八, 地理志 第八下).
그런데 필자도 초교시절 교과서에는 고조선에 대한 것도 미비하고 기자(箕子)의 후손인 기준(箕準)을 내세웠다. 그리고 막연한 고조선을 내세우고 있는 것은 기자조선을 부정하는 것이요 기준(箕準)을 내세운 것은 기자조선을 긍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기자(箕子)자신이 “나는 은(殷)이 망한 후에 주무왕(周武王)임명을 받는 신복이 되지 아니 하겠다고 말했다. 사기(史記)에도 기자(箕子)가 천도(天道)인 홍범(洪範)을 설교한 후에 주무왕(周武王)이 기자를 조선에 봉하고 임명하는 신복으로 대우하지 아니했다고 했다.
그런데 중국(中國)사가(史家)가 주무왕(周武王)이 기자(箕子)를 조선왕으로 임명하고 기자(箕子)가 주무왕(周武王)의 임명을 받아 동래(東來)해 조선을 지배했다고 위조한 것이다. 이같이 허구이고 위조인 역사를 가르친다는 것은 수치이다.
분명한 것은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은 우리역사와 관계가 없음을 수차에 걸쳐서 말했기 때문에 여기서 다시 이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이중적이기 때문에 더 기술하지는 않는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국가형성의 사회사‘.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二十一世紀出版社集團, ’山海經‘. 大連出版社, ‘行走 大黑山’.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역사를 제대로 알고 행하자.’.유우찬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 사람과 북방주민들’. 홍윤기,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심백강, 이덕일, 박정학외9인 공저 ‘미래로 가는 바른 고대사’.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徐漢太 編著, ’訓民正音.解書本‘.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石井進外, ‘詳說日本史,‘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ヨセフ アイデルバ_グ 中川一夫 譯, ‘大和=ヤマト)民族は ユダヤ人だった’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大和上井久義, ‘日本古代の親族と祭祀’. Georges Duby : L'HISTOIRE CONTINUE, 松村剛 譯 ‘歷史は續く’. 劉泳,海燕,‘赤蜂博物館’. 黃斌, 劉厚生, ‘箕氏朝鮮史話’ ‘各國別 [世界史の整理] 三省堂發行’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 世界史史料集’,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石井進, 笠原一男, 兒玉幸多, 笹山晴生, ‘詳說日本史’. 西東社출出版部編, ‘日本の古墳, 古代遺跡’. 黃娬, 劉厚生, ‘箕氏朝鮮史話)’.외 다수의 서책(書冊)을 참조하고, 본문 인용도 했음을 밝힙니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