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정하고 왜곡…사대주의·식민사학 정신 차려라

입력 2017-01-21 16:3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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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최태영 선생의 뒤를 이어 필자는 16년 동안 역사연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느낀 것은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과 조작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진서를 다 없앴다.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도 잘못된 역사다. 예컨대 이성계 태조가 1392년 세운 조선조(朝鮮朝)도 한반도가 아닌 중국 현 중국 섬서성 함양성에서 건국됐다.
 
이는 한국에서 금서(禁書)로 돼 있는 조선지리지 ‘신증 동국여지승람’에 기록 돼 있다. 금서로 지정한 이들은 당연히 식민사관자들이었다.
 
고조선의 영역(領域)도 다 잘못돼있다. 지금까지 단군조선은 만주의 아사달에서 건국됐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단군은 중국대륙 한복판인 서안(西安) 서남쪽 우수하에서 건국 했다(유우찬 고조선위치연구 5~6면 참조).
 
중국은 지명과 유물까지도 조작했다. 중국내륙에서 동으로 이동 시켰는데 탁록현은 원래위치는 감숙성(甘肅省)이고 하북성 탁록은 이동 조작한 것이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 나와 있는 지명은 거의 바뀐 상태다. 중국문헌인용 시는 유의해서 해야 할 정도다.
 
일본이 훼손하고 회를 덧칠한 글자를 새겨놓은 고구려 ‘광개토태왕비(廣開土太王碑)’도 원래는 산서성 회인현에 있었다. 왜곡을 위해 일제(日帝)가 만주로 옮겼다.
 
중앙아시아에 있던 우리지명들과 산성들이 왜곡을 위해 이동됐다. 일본은 우리 상고사를 도둑질했고 광개토태왕비 등을 조작해 역사를 황폐화시켰다. 그럼에도 우린 아직도 당하기만 하고 있다.
 
고구려 비사성, 개모성, 건안성은 중국 감숙성(甘肅省)에 있었다. 또 고구려 때 경주(慶州)는 감숙성 경향현이다. 때문에 지금의 지명과 산성을 그대로 알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때문에 중국에서 금서(禁書)로 돼 있는 ‘중국고금지명대사전’을 참고해야 한다.
 
오늘은 사대주의자와 식민사관자들이 민족정신을 썩게 하고 민족정기(民族正氣)를 죽이는 일들을 자행함을 살피고 아울러 우리나라의 위상을 되새겨보고자 한다.
 
사대주의자와 식민사학은 한국역사의 암적 존재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일제식민사학은 한국이 일제의 식민지라는 전제하에 역사해석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일본이 한국을 지배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는 우리가 역사주체가 아닌 객체로 전락함을 의미한다. 문제는 지금의 교육현장서도 계속된다는 점이다.
 
식민사학(植民史學)은 사대주의자들이 중국을 상국(上國)이라 하고 먼저 중국을 존중하고 다음에 조선을 위해야 한다는 것과 같이 우리가 역사의 주체가 아니라 중국과 일본을 주체로 엮은 역사를 그대로해석하고 이들의 논리를 따르는 사학(史學)이다.
 
사대주의자들이 주체성이 없이 중국을 본체(本體)로 한국을 지체(肢體)로 보는 것과 같이 일본이 왜곡, 조작된 역사를 우리역사인양 그대로 따르는 무리들이 식민사학자들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자들은 다 같이 주체성을 잃은 노예근성의 자들이라 해도 과언(過言)이 아니다.
 
지난날 소위 실학파(實學派)의 요인(要人)으로 존경을 받는 박지원(朴趾源)도 명(明)나라를 상국(上國)이라 하고, 천(天)이라 칭하며 존중했다. 또 “우리나라가 중국을 존중하는 것은 천성적(天性的)이다”고 했다(燕岩集 卷之 十三, 別集, 熱河日記 行在雜錄).
 
그는 또 “우리나라가 몇 천년동안 중국의 국경지대를 침범한 일이 없고, 수당(隨唐)의 명령을 거역한 자는 고구려요 고려가 아니다”고 하며, “우리나라 삼국시대에 신라가 먼저 중국문화를 수입해 고유한 이속(夷俗)을 개혁했다”고 했다. 이같이 중국을 숭상한 자이다.
 
중국고서(中國古書) ‘왕제(王制)]’에 “동방민족이 인(仁)하다함은 신라가 중국화한 것을 가리킨 것이다”고 언급하는 등 고려와 신라가 지성으로 중국을 존중했다. 박지원은 “꿈속에 중국의 훌륭한 문장을 보아도 손을 씻고 읽었다”고도 했다(燕岩集 卷之 十三, 別集, 熱河日記 忘羊綠).
 
조선조의 서생들은 한국에 고유문화사상이 있는데도 실학사상, 외래사상, 사대사상(事大思想)에 구걸하고 있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화랑도의 기반은 신선사상(神仙思想)이요 화랑도의 본질은 인간사상이라고 기록하고 단군시대에 홍익인간을 제창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화랑도의 화(花)는 단군시대에 싹이 트고 삼국시대에 꽃이 피고 고려시대에 그 꽃이 찬란하고 조선시대에 그 꽃이 시든 것이다. 우리민족에는 인간사상, 천민(天民)사상, 중물사상(重物思想) 3대사상이 한민족(韓民族)의 고유한사상이다. 이 문화사상이 경탄할 역사를 창조한원동력이다.
 
중국 사기(史記), 김부식삼국사기’등 역사왜곡 이제 바로 해야
 
지금 우리역사를 망가트리는 우리들의 사대주의와 반도식민사관자들이 역사를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조선조 사가(史家) 안정복(安鼎福)은 중국의 역사왜곡을 실제로 받아들이며 ‘기자 같은 성인(聖人)이 한국에 온 것은 신이도운 것이다.’고 한국에 오지도 않은 기자(箕子)를 기점으로 내세우고 다음에 단군(檀君)을 기록해 기자를 기점으로 한국사를 엮어놓았다.
 
그는 중국을 천(天)으로 받드는 사대사상은 고조선의 작은 제후(諸侯)로 있었던 기자(箕子)를 내세워 선(先)기자, 후 단군(後檀君)의 자학적(自虐的)역사를 조작했다(東史綱目, 第一, 上).
 
한말(韓末)의 대학자요 의병장(義兵將)이라 칭하는 유인석(柳麟錫)은 더 사대주의적이었다. 그는 ‘중국은 세계의 대종(大宗)이오 천지의 중심이다. 조선은 중국을 천(天)으로 받들어야 한다.’고 했다. 즉, 조선보다 먼저 중국을 존중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靑邱秘史 一卷一面).
 
이 같이 중국을 천(天)으로 받드는 조선시대의 문인(文人), 사가(史家)가 우리 한민족(韓民族)은 본래 중국의 노예이요 또한 노예가 돼야 한다는 식민사관(植民史觀)을 조작해 국민을 가르쳤다. 이 같은 자들로 인해 조선이 이민족(異民族)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황당한 일들은 왜 이러는 것인가. 이는 사대주의, 식민사관이 문제인 것이다. 참으로 한심하고 기가 막히는 일이다. 제자신이 역사를 모른다면 내외문헌을 고증(考證)하면 우리역사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것을 다 알 수 있는데도 그들은 사대주의, 식민사관에 안주(安住)했다.
 
우리역사학자나 외국의 세계석학(碩學)들의 고증한 것은 우리가 도리어 한국을 천(天)으로 받드는 ‘천민사상(天民思想)’이 있고 또한 인간을 존중하는 ‘인간사상(人間思想)’있고 또한 물질을 존중하는 ‘중물사상(重物思想)’이 있었다. 이를 모르는 식민사관자의 무지는 역사를 망친다.
 
이와 같은 삼대사상(三大思想)을 발견한 한민족(韓民族)은 고대문명을 열고 문화로서 중국과 일본은 물론 고조선은 173의 민족을 제후국으로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선진무기를 개발해 무력으로서 중국과 일본은 물론 다른 민족을 고대부터 정벌하고 정복해 그들을 지배했다.
 
그러나 김부식(金富軾)이가 쓴 삼국사기도 일본에 의해 왜곡된 듯 해보인다. 고대제국인 단군조선 내용 중 단군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해석은 두 가지다.
 
김부식(金富軾)이 삼국사기도 중국과 같이 기술했는데 이는 김부식이 중국에 요공(要功)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일본이 원래의 삼국사기를 자기들이 입수하고 가지고가서 그 원문(原文)을 다 제멋대로 뜯어 고쳤다는 것이다.
 
그것은 삼국사기가 700년 동안 세상에 내놓지 못한 것이 한 이유가 아닌지 추정 되고 있다. 즉, 삼국사기가 오랜 기간 세상에 나오지 않다가 일제가 조선을 침탈하면서 삼국사기가 등장하는데 이때는 이미 왜곡돼있어서 단군은 지워져 없었다. 그래서 삼국사기에 단군은 없다.
 
유우찬 선생과 박완서 우리역사연구원장은 이것이야 말로 일제가 삼국사기를 가져다 고친 증거라고 지적한다.
 
중국과 일본이 우리역사왜곡은 지금도 여전하다
 
지금도 위서(僞書)만을 믿는 사대주의자와 반도식민사관자들은 자기나라역사를 멸시하고있다. 일제시대 ‘조선사편수회’ 이마니시 류(今西 龍)가 ‘역사는 과학적으로 검증해야 한다’며 던져준 자료만을 다루는 학문풍토는 달라지고 있지 않다. 이제는 민족사관으로 왜곡된 역사를 바로 정립(鼎立)하고 반도식민사학자들도 달라져야 한다.
 
필자역시 식민사관의 역사를 믿었으나 분명한 사실은 한무제(漢武帝)는 서기전 109년에 평양을 공격해 위씨조선을 멸망시켜 낙랑(樂浪), 진번(眞蕃), 현토(玄兎), 임둔(臨屯)의 4군을 설치했다고 하는데 이미 말한 대로 한사군은 한반도에 없었다.
 
한사군(漢四郡)은 대륙에 있었다. 한(漢)나라는 이 사군(四郡)조차도 완전히 장악하지 못 했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중국대륙을 지배한 예맥(銳麥)=濊貊)에 진번(眞蕃), 현토(玄兎), 임둔(臨屯)은 26년 뒤 뺏긴 것은 한나라가 예맥의 견제 하에 있음을 말한다.
 
사대주의와 일본제국주의 식민주의 황통주의 역사관에 의해 왜곡 조작된 역사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선조에 대한 모욕이요 국가와 민족을 팔아먹는 매국노(賣國奴)와 진배없다. 아니면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지도 않고 모르는 무식자이거나 노예근성의 학노(學奴)일 뿐이다.
 
과거에는 사대주의자들이 중국에 요공(要功)하느라고 우리역사에 없는 기자조선(箕子朝鮮)을 갖다 넣어 역사를 왜곡한 것을 지금도 가르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역사무지이다. 기자조선, 위만조선은 우리역사와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한국사에 편입 될 수 없는 것이다.
 
사대주의와 일본제국주의 식민주의 황통주의자들이 제아무리 우리역사를 은폐하려고 해도 세계학자들의 연구결과도 우리가 상고시대부터 연방제(聯邦制) 국가형태를 취하고 53대 3301년을 대륙에서 아래와 같은 12연방을 거느린 것을 말하고 있다. 중복되나 다시열거하게 한다.
 
즉, 환국(桓國) 12연방(聯邦)은, 이미 아는 바와 같이 (1), 비리국(卑離國), (2), 양운국(養雲國), (3), 구막한국(句莫汗國), (4), 구다천국(句茶川國), (5), 일군국(一群國), (6), 우루국(虞婁國) 또는 필나국(畢那國), (7), 객현한국(客賢汗國), (8), 구모액국(句牟額國), (9), 매구여국(賣勾餘國) 또는 직구다국(稷臼多國), (10), 사납아국(斯納阿國), (11), 선비국(鮮卑國), 또는 탁위국(啄韋國), 혹은통고사국(通古斯國), (12), 수밀이국(須密爾國)이 환국(桓國)의 12연방(聯邦)이다.
 
이 12의 연방국가(聯邦國家)는 사대주의와 일본제국주의 식민주의 황통주의자들이 거론조차 하지 않음은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지 않아서이다. 그들은 상고사 연구는 하지 않고 중국과 일본의 왜곡된 역사만을 알고 말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고 부끄럽고 한심한 일이다.
 
이 환국(桓國)은 상고시대부터 유라시아를 지배했고, 환국다음에 이어지는 신시배달국(神市倍達國)은 대륙의 80%를 지배 했다. 사대주의자와 반도식민주의자는 우리가 상고시대부터 현 중국대륙에 선주(先住)하고 대륙의 주인이었음을 상상도 못하고 있다.
 
우리민족은 중국 일본이 말하는 그런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약한 민족이거나 외적의 침략만을 받는 나약한 나라가 아니었다. 그 반대였다. 오히려 세계를 놀라게 한 지금의 중국대륙에서 유라시아를 정벌 정복하고 지배한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진 위대하고 찬란한 문화를 일궈낸 대제국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보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학자와 서구(西歐)의 학자들이 더 잘 연구를 통해 잘 알려지고 있다. 우리가 세계 최초의 시원국(始源國)이었음을 그들의 연구를 통해 말하고 있다. 이는 숨길 수없는 우리역사인 것이다.
 
우리가 세계중심이고 천(天)의 나라요 천민(天民)임은 우리가 고대부터 전해온 사상에서도 잘 찾아볼 수 있다. 고대 모든 문물은 황제제도를 비롯해서 모두 우리나라에 의해서 전수됐다.
 
역사학, 고고학, 민족학, 민속학, 종교학, 신화학적으로도 환국 때부터 대제국을 세웠던 것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우리나라가 중국과 일본에 의해 역사를 왜곡하고 일제(日帝)는 ‘조선사편수회’를 총독부에 두어 우리상고사와 고대사까지 잘라내며 부정하고 있는 것은 가관이다.
 
고대우리 영역(領域)도 발해와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패수(浿水)의 위치를 조작해 패수(浿水)가 처음에는 요하(遼河)라 하다가 이를 다시 압록강으로, 압록강이 청천강으로, 다시 대동강으로, 변동하며 조선 고대사 강역을 축소해 고조선 상반(上半) 2000년을 잘라내었다.
 
그러고 나서 고조선은 이름은 있고 영역은 축소돼 가공의 역사로 전락시키고 신화로 돌린 다. 패수(浿水)는 이미 말한 대로 북경근방의 난하(灤河)등이 모두 패수(浿水)라고 했다.
 
이러한 중국과 일본의 역사조작을 우리나라 ‘동북아재단’이 2015년 47억을 들여 만든 ‘한국고대사의 한나라영지(領地)’를 통해 우리 역사의 시작은 한사군(평양)부터 시작이라는 반도식민사관자들의 패륜적인 행태는 용납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기관이 중국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우리나라국가기관이라니 참으로 우리역사가 바로 설 수 없는 이유가 이런 자들로 가득 채워졌기에 서다. 이는 국비만 낭비하는 미친 짓이다.
 
한무제(漢武帝) 한반도에 한사군 세운 적 없어…역사기록 중요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 조작은 있지도 않은 서기전 109년 한무제(漢武帝)가 조선반도에 침공해서 정복했는데 한무제漢武帝)의 침공을 받기 까지 조선북반(北半)에는 위씨조선(衛氏朝鮮)이라는 나라가 있었고 그 수도는 평양이라고 그럴 듯하게 조작하고 있다. 이는 날조다.
 
‘한무제는 한반도에 한사군을 세워 우수한 한의 문물을 파급했다고 하며, 조선 여러 족을 비롯해 미개의 세계에 빛을 주었다’고 조작한다. 그리고 ‘낙랑사군은 동아시아의 변경에 문화의 등대라’고 제멋대로 추켜세우며 미화하나 다 웃기는 거짓역사를 장황하게 나열 하고 있을 뿐이다.(以上은,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57面 以下參照).
 
이미 한사군에 대해 기술 한 바와 같이 일본이나 중국의 역사조작은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말도 아니 되는 거짓역사를 거침없이 대담하게 계속 조작하며 만들어 내고 있다.
 
여기서 역사기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해준다. 삼국정립(三國鼎立)시대에는 고구려가 그 건국초기(서기1세기경)에 벌써 국사(國史) ‘유기(留記)’ 100권을 편찬했고, A.D.600년에 유기(留記)]를 정리해 ‘신집(新集)’ 5권을 만들었다.
 
백제도 A.D. 4세기경에 국사를 편찬했고, 후진국인 신라도 A.D. 545년에 국사를 편찬했다. 그 고기(古記)들이 내용이 고려시대에 저술한 사기들에 인용돼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이같이 고구려 백제는 물론이고 후진국 신라에서 까지 국가사업으로 국사를 편찬한 것은 모두 바른 전통과 자립정신을 분명히 전하고자 함이다. 지금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가 이데올로기적으로 바른 역사를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것은 큰 문제다.
 
우리나라 역사서(歷史書)가 수많은 전란(戰亂)속에 다 없어짐으로 그 기록이 없는데서 중국과 일본은 이를 기화로 더욱 역사조작과 왜곡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역사가 없어질 수 없다. 그것은 1만년이 넘는 긴 역사가 너무 빛났고 그 흔적을 다 없앨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나라 상고사와 고대사를 연구하는 인류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는 우리나라 학자뿐만 아니라 세계 많은 사학자가 우리나라 역사에 흥미를 느끼고 연구하고 있음에서 앞으로 더욱 알차게 그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하물며 중국 일본도 우리‘상고사’와 ‘고대사’를 자기들 역사로 둔갑시키며 우리역사를 도둑질하나 그들이 조작하고 변조해 왜곡하는 역사들은 허구일 뿐이다. 우리역사는 이미 밝힌바 대로 세계5대고대문명과 고분과 유물은 우리역사를 바로 충실히 잘 보여줄 것이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국가형성의 사회사‘.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二十一世紀出版社集團, ’山海經‘. 大連出版社, ‘行走 大黑山’.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역사를 제대로 알고 행하자.’.유우찬 ‘고조선 위치연구’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 사람과 북방주민들’. 홍윤기,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심백강, 이덕일, 박정학외 9인 공저 ‘미래로 가는 바른 고대사’.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徐漢太 編著, ’訓民正音.解書本‘.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石井進外, ‘詳說日本史,‘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ヨセフ アイデルバ_グ 中川一夫 譯, ‘大和=ヤマト)民族は ユダヤ人だった’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大和上井久義, ‘日本古代の親族と祭祀’. Georges Duby : L'HISTOIRE CONTINUE, 松村剛 譯 ‘歷史は續く’. 劉泳,海燕,‘赤蜂博物館’. 黃斌, 劉厚生, ‘箕氏朝鮮史話’ ‘各國別 [世界史の整理] 三省堂發行’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 世界史史料集’,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石井進, 笠原一男, 兒玉幸多, 笹山晴生, ‘詳說日本史’. 西東社출出版部編, ‘日本の古墳, 古代遺跡’. 黃娬, 劉厚生, ‘箕氏朝鮮史話)’.외 다수의 서책(書冊)을 참조하고, 본문 인용도 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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