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중국의 사가 위안텅 페이(袁虅飛)는 “중국역사는 5%도 안 된다”고도 했다. 이 양심적인 고백으로 그는 ‘동북공정’에 반하는 자로 찍히어 지금 중국감옥에서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 일본역사 또한 고대사부터 역사를 고무줄 같이 1000년이나 늘리고 있지도 않은 역사를 조작해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먼저 중국의 대표적 사서(史書)로는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서(史書)부터 나관중(羅貫中)이 쓴 ‘삼국지(三國志)’를 비롯해서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 등은 중국역사가 될 수 없다. 허구(虛構)이자 위서(僞書)기 때문이다.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서(史書)에 대해 일본의 아고 기요히코(吾鄕淸彦)는 “사서(史書)는 고조선의 역사를 어렵고 힘들게 바꿔서 꾸민 것”이라 혹평 할 정도였다. 또 그 내용은 우리고대사를 제외시킨 채 허구일색으로 채웠다.
삼국지(三國志)는 후한말기(後漢末期)에 갈라져 있는 위(魏), 오(吳), 촉(蜀) 삼국시대(三國時代)를 기술한다. 마치 이를 중국의 정사(正史)인냥 표현하지만 있지도 않은 사실들을 꾸민 위서일 뿐이다.
또, 후한서(後漢書)는 중국 후한시대(後漢時代)의 역사서로 1세기경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책이라 알려져 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마천이 쓴 사서(史書)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다.
중국의 역사서들이 거짓임을 의미한다. 그들은 거짓역사를 메우기 위해 우리역사를 도둑질하며 자기들 역사라고 하고 있다. 오늘은 허구 위서(僞書)인 중국과 일본의 역사서를 통해 우리 고대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 ‘고사기’는 히에다노가 말 받아서 쓴 것
일본의 일본최고(最古)의 역사서로 ‘고사기(古事記)’가 지목된다. 이는 제가(諸家)에 전해지는 것을 바로 한다며 황통(皇統)을 명백하게 한다는 정치적 의도에 의해서 작성됐다.
편저자(編著者)는 히에다노 아래(稗田阿禮)가 구술(口述)하고 안만려(安萬侶)가 기록한 것이다. 고사기(古事記)가 나온 배경을 보면 시작은 서기681년 텐무덴노(天武天皇·673~686)가 집권 후인 텐무(天武)10년에 제가(諸家)에 전해지는 역사가 진실과 다른데서 고사기(古事記)를 만들었다.
수재(秀才)로 소문난 히에다노 아래(稗田阿禮)에 명해 이를 전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30년 후 고사기(古事記)가 완성됐다. 내용은 유민(流民)의 역사를 편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업은 겐메이덴노(元明天皇·707~715)가 계속해서 히에다노 아래(稗田阿禮)가 말하는 역사를 일본발음으로는 오오노야스마로(太安萬侶)라는 백제 황산벌판에서 계백장군의 밑에 부사령관의 유복자 안만려安萬侶)가 기록하게 명해 나왔다.
일본서기(日本書紀)는 일본최고(最古)의 칙찬(勅撰)에 의한 역사서(歷史書)라 하지만 허구(虛構)조작이 많은 사서로 기재(記載)되고 있다. 시기(時期)는 720년 (양로(養老4년?)이라고 한다.
일본서기(日本書紀)는 칙찬(勅撰)의 역사서이나 이설(異說)이 많이 등장하고, 고사기(古事記)는 비교적 이설(異說)이 적은편이다. 더욱이 기기(紀記)의 기술(記述)에는 다소 작위적(作爲的)인 부분이 많기 때문에 유적(遺跡)이나 유물(遺物),고고학적(考古學的)검증이 불가결이 되고 있다.
또 일본서기(日本書紀)에서는 지토우덴노(持統天皇687~697)대 끝인 697년까지로 하고 있는데 반해 고사기(古事記)는 스이코덴노(推古天皇593~628)까지밖에 없는 사서(史書)라고 한다. 이 같이 일본의 역사는 제멋대로이고 중국역시 한사군설치 지역도 제멋대로 하고 있음을 본다.
한사군(漢四郡)은 난하(灤河)로부터 요하(遼河)지역에 설치된 것
기자국(箕子國)이 위치했던 난하(灤河)의 동부 연안은 고조선왕국의 변경이었다. 지명은 조선(朝鮮)이었다. 이곳은 후에 위만이 기만책으로 기자조선을 위만조선으로 하고 한무제(漢武帝)가 위만조선을 멸망시켜 그 곳에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했다고 했다.
이 한사군(漢四郡)은 반도식민사관자들이 말하는 한반도가 아니고 지금의 난하(灤河)로부터 요하(遼河)까지 이루는 지역에 설치됐다. 그 지역은 고조선왕국 전체의 한 부분이었다. 당시 기자국(箕子國)이 위치했던 그 곳 넓이는 고조선왕국 전체면적의 200분의 1에 불과했다.
소규모인 기자국(箕子國)이 고조선을 계승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중국과 일본, 반도식민사관자들은 이 기자가 고조선을 계승해서 다스렸다고 말하는 것은 연구부족이거나 조작·왜곡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조선왕국과 기자의 자손이 제후(諸侯)로 봉해 졌던 작은 지역인 조선현(朝鮮縣)의 명칭이 동일했기 때문에 기자가 고조선왕국의 통치자가 됐던 것처럼 오류를 범하기도 했는데 이를 중국과 일본이 왜곡했던 것이다. 기자조선은 고조선의제후국일 분 우리역사가 아니다.
고조선은 말기에 가서 읍제국가(邑制國家)구조가 해이해지면서 열국(列國)들이 도읍을 몇 번 옮겼다. 고조선도 지금의 대능하(大凌河)중류 동부 연안에 위치한 심양(沈陽)의 동남지역으로 옮기게 됐다. 그곳이 고조선의 4번째 도읍지로 전해지는 아사달이다. 동시에 1번째 도읍지였던 평양성(平壤城)이다.
고조선은 광활한 영역(領域)을 통치지역으로 소유하고 제후국들을 다스렸던 나라다. 중국과 일본은 고조선이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에게 위협 당했다고 언급하다 이는 조작이자 명백한 왜곡이다.
중국천하사상(中國天下思想)으로 천하 주관하려 나선다
한(漢)나라가 위만을 멸망시키면서 그들은 지금까지 우리한민족에게 지배받던 데서 벗어나기 위해 노골적으로 ‘중국이 천하를 주관해야 한다’고 상(商), 서주(西周)시대 이래 중국천자가 천하를 주관해야 된다고 믿고 있었던 중국천하사상(中國天下思想)을 말하게 된다.
이러한 한(漢)나라가 주변을 공략하고 이 곳에 한사군(漢四郡)을 설치 한 것은 바로 이러한 제국주의적(帝國主義的)인 중국천하사사상(中國天下思想)이 실천인 것이다. 그러나 한(漢)나라도 당시 중국을 정벌하고 정복해 지배한 예맥조선(銳麥=濊貊朝鮮)은 어찌 하지 못했다.
그러나 중국(中國)은 현실적으로 중국이 통치(統治)아래 들어와 있지 않은 세계도 언젠가는 현실적인통치아래 들어와야 함을 믿고 지금중국의‘동북공정’처럼 터무니없는 논리를 전개했다.
이 같은 논리는 고대부터 있어 왔다. 예컨대 한(漢)나라가 국력이 신장(伸張)되자 서기전109년에 위만조선(衛滿朝鮮)의 공략을 개시해 서기전108년에 위만조선(衛滿朝鮮)을 멸망시켰다.
그리고 그 지역에 낙랑(樂浪), 진번(眞番) 임둔(臨屯)의 삼군(三郡)을 설치 한 다음 여세를 몰아 고조선왕국 서부를 공략해 1년 후인 서기전 107년에 지금의 요하(遼河)까지 차지 한 다음 그 지역에 현토군(玄토郡)을 설치했다고 했다. `
그러나 한(漢)은 한사군을 제대로 장악하지도 못 했음을 알 수 있다. 한사군의 영역을 보면 현토군은 지금의 요하(遼河) 서부연안에 위치해 한사군 가운데 가장 동쪽에 설치됐다.
그리고 낙랑군(樂浪郡)은 한사군(漢四郡)가운데 가장 서남부에 위치해 지금의 난하(灤河) 하류 동부 연안에 있었다. 그리고 낙랑군(樂浪郡)에 속해 있던 여러 현(縣) 가운데 수성현(遂城縣)은 지금의 하북성 창려현(昌黎縣)의 갈석(碣石)지역에 있었다.
그리고 조선현(朝鮮縣)은 난하(灤河)중하류 동부 연안에 있었다. 이 조선현(朝鮮縣)이 기자국(箕子國)이 그 말기에 위치했던 곳이며 위만이 기자국의 정권을 탈취해 그의 정권을 출범시킨 곳이다.
반도식민사관자들의 기자조선(箕子朝鮮)과 위만조선(衛滿朝鮮), 한사군(漢四郡)이 한반도(韓半島)에 있었다는 것은 다 허구다. 이것은 일본이 왜곡한 것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조작과 왜곡은 세계가 다 아는 일이다. 이들은 우리 사서(史書)를 다 불태워 없애놓은 것도 모자라 엄연히 있었던 나라도 없는 것인 양 조작하고 그 역사를 숨기고 있다. 한 예를 든다면 바로 예맥의 역사다. 이는 고증(考證)으로 그 역사를 바로 해야 한다.
예맥조선역사 바로 살려 역사조작과 왜곡 바로 해야
예맥조선(銳麥=濊貊朝鮮)은 지금부터 3000여년 전, 기마민족(騎馬民族)으로 고대 중국대륙에 선주(先住)해서 중국을 정벌하고 정복해 그들을 지배한 매우 강대한 예맥(銳麥)이었다.
그런데 우리도 예맥(銳麥)이 중국을 정벌하고 정복해 지배한 사실을 제대로 기록하지 않고 있다. 당시는 구국(舊國)이 없는 시대다. 모든 부족이 아침에 흥했다가 저녁에 망하는 무상(無常)의 생활을 하고 있었을 때다. 특이한 강대 족이 아니고는 오래 역사를 보존 못하는 시대에 예맥(銳麥)은 강대 족으로 유라시아와 중동 인도 로마 까지 진출했다.
중국인들은 왜곡을 위해 예맥에 관 것은 모두 지웠다. 중국문헌에 예맥(銳麥)=濊貊)의 화려한 대륙에서의 활동의 상황을 찾아보기는 매우 어려울 정도다. 예맥이 중국을 정벌하고 지배한 사실을 숨겨 다 없앴기 때문이다.
예맥(銳麥)은 한(漢)나라가 설치한 한사군(漢四郡)중 낙랑군(樂浪郡)을 제외한 진번(眞番), 임둔(臨屯). 현토(玄토) 삼군(三郡)을 예맥수중에 넣었을 정도로 강대한 나라였다. 중국이 지울 수밖에 없는 힘을 가진 곳이다.
예맥(銳麥=濊貊)은 중국역사에서 말소시켜져서 예맥(銳麥)에 관한 기록은 매우 찾아보기 힘들다. 예맥은 산해경대황동경(山海經大荒東經)에 유위국(有爲國)으로 기록됐다. 본래 유위국(有爲國)의 이름은 위국(蔿國)인다. 어조사(語助辭)로서 유(有)자를 가해 유위국(有爲國)이라 했다.
예맥(銳麥)은 유라시아를 정벌하고 지배할 정도로 극히 강대(强大)했고 중국을 정벌함으로 중국인이 증오심으로 예맥(濊貊 穢貊)이라는 악명(惡名)을 붙이었다. 중국인들이 말하고 있다.(管子全書 卷 十一, 小所稱篇)
또한 관자전사(管子全書)에 ‘예맥(銳麥)은 흉악하다’고 해동역사(海東繹史)에 ‘공씨(孔氏)가 예맥(銳麥)에 맥(貊)이라는 짐승의 이름을 붙인 것은 악(惡)을 말한 것이다’고 했다.(海東繹史 第三, 貊) 이 같이 중국은 예맥을 버거워 했으며 예맥을 당 할 수가 없어 싫어했다.
오늘 우리는 중국이 쓰는 예맥(濊貊)을 그대로 쓰고 있는데 우리가 중국이 쓰는 예맥(濊貊)을 그대로 쓰는 것은 고대 중국을 정벌하고 정복해 그들을 지배한 우리 선조에 대한 무례다.
3000년 전 대륙에 건국한 예맥(銳麥)을 중국은 철저하게 지웠으나 지방지(地方志)에는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미 기술한 바 있는 흑룡강지고(黑龍江志稿)에는 분명히 [(肅愼者 虞夏以來 東方大國也 ....濊貊者 商周之際 舊國也)라 했다.(黑龍江志稿 第一,地理志, 沿革)
숙신씨(肅愼氏)는 4000년 전에 고조선보다 먼저 건국했다고 하는데 이 때 대국(大國)을 건설해 지금 길림성(吉林省) 동쪽 모든 지방을 차지했다고 했다.(晉書각注 卷九十七 東夷 肅愼氏(註).
역사를 연구하는 자는 다 알다시피 이 4000년 전은 동서민족이 몇 백리 소부락생활(小部落生活)을 형성하는 씨족시대(氏族時代)로 대국(大國)이 없던 시대였다. 이 때 세운나라인 것이다.
이 때에 무력(武力)이 만여리(萬餘里)에 떨친 대국이 없었는데 숙신씨(肅愼氏)가 선진무기인 궁시(弓矢) 호시(楛矢)와 석족(石鏃)등으로 대국(大國)을 먼저 건설하고 인류사상 최초에 등장한 강대민족으로 등장했다. 그래서 한민족(韓民族)은 다 숙신족(肅愼族)이라 했다.
또한 강대한 예맥(銳麥)이 유라시아와 중국대륙에 오랜 역사를 3000년 전부터 자랑스럽게 보존했으니 숙신씨(肅愼氏)에 이어 예맥(銳麥)역시 강대 족으로 대국(大國)을 이루어 있었다.
이제는 예맥(濊貊-穢貊)이라는 악명(惡名)을 씻어내고 자랑스러운 예맥(銳麥)역사를 제대로 복원해 중국역사가 잘못 됐음을 말해 줄 수 있는 좋은 역사자료(好歷史資料)로 해야 한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국가형성의 사회사‘.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二十一世紀出版社集團, ’山海經‘. 大連出版社, ‘行走 大黑山’.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역사를 제대로 알고 행하자.’.유우찬 ‘고조선 위치연구’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 사람과 북방주민들’. 홍윤기,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심백강, 이덕일, 박정학외 9인 공저 ‘미래로 가는 바른 고대사’.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徐漢太 編著, ’訓民正音.解書本‘.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石井進外, ‘詳說日本史,‘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ヨセフ アイデルバ_グ 中川一夫 譯, ‘大和=ヤマト)民族は ユダヤ人だった’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大和上井久義, ‘日本古代の親族と祭祀’. Georges Duby : L'HISTOIRE CONTINUE, 松村剛 譯 ‘歷史は續く’. 劉泳,海燕,‘赤蜂博物館’. 黃斌, 劉厚生, ‘箕氏朝鮮史話’ ‘各國別 [世界史の整理] 三省堂發行’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 世界史史料集’,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石井進, 笠原一男, 兒玉幸多, 笹山晴生, ‘詳說日本史’. 西東社출出版部編, ‘日本の古墳, 古代遺跡’. 黃娬, 劉厚生, ‘箕氏朝鮮史話)’.외 다수의 서책(書冊)을 참조하고, 본문 인용도 했음을 밝힙니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