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독존 특검태도, 바탕은 일제 ‘명치법사상’

입력 2017-02-04 18:5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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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올해는 광복 72주년이다. 광복 후 우리나라는 헌법이 제정됐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법 운영은 여전히 일제 명치헌법체제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개탄스러운 일이다.
 
사실 우리 사고방식(思考方式)과 행동양식(行動樣式) 근저(根底) 곳곳에는 명치헌법의식(明治憲法意識)이 불식되지 않았다. 여기서 명치헌법의식이란 정치권력이 만든 ‘법률만능’이며 이에 저촉되면 모두 범죄라는 의식이다.
 
이 의식은 세계(世界)를 상대해서도 사양할 수 없는 유아독존(唯我獨尊)적 태도(態度)다. 이런 것이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바로 지금 특검(特檢) 태도다.
 
특검은 박근혜 대통령과 최서원(최순실) 간의 일련의 대화내용과 대통령의 재단설립을 위한 모금이 나쁜 행위로 보고 있다. 범죄행위라는 믿음으로 법에 어긋나기 때문에 이는 통상(通常)의 법(法)에 저촉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태도는 일제 명치헌법하의 유아독존의 행동양식을 되새기게 하는데 충분하다. 이는 법사상과 법의식 없는 일제(日帝)시대 당시의 법사상의 재현 밖에 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외국 학자들이 우리나라 특검의 법 운영 수준을 보며 주시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배경이다. 특검이 정의를 외치며 현재 진행하는 일이 잘한다고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느나 재외학자들은 냉소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도 선진제외국(先進諸外國)에 있어서 전 후 다년에 걸쳐서 얻은 성과를 무시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검으로서도 할 말은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 법률이 광복이 됐어도 법조인들은 중요한 시기에 평생 법률연구를 해온 데서 얻은 법의식이기 때문이다.
 
특검은 고도의 정치문제로서 그 판단을 회피하고 갈 수도 있으나 이를 구태여 밀고 가는 데는 시민의 일각에서는 불순한 자의 이해관계에서 사주가 있는 것이 아닌가 보는 점도 있다.
 
사법부의 임무는 정치권력으로부터 헌법에서 보장한 국민권리를 지키는데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법은 너무 경직되고 현대 법에로 이행 되지 않은데 문제가 있음도 모두 잘 알고 있다. 우리나라 현행법은 너무 경직돼 있는 것이 문제다.
 
‘사람이 50이 넘으면 경험담을 해도 결례(缺禮)가 아니다’고 했다. 필자역시 나이가 50이 넘은 것이 오래됐기에 외람되나 필자의 경험을 말하게 되는데 양해를 먼저 구한다.
 
우리 법은 법 만능의식은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
 
1970년 일본에 유학해 대학원에 입학했다. 개강 첫 시간에 발표를 하라고 해 자신을 갖고 발표를 했다. 동료 학생들은 잘했다고 했으나 교수는 달랐다. 마쓰오카 사부로(松岡三郞)교수는 “도대체 이군(李君)이 무엇을 말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이다.
 
자신을 갖고 발표한 필자로서는 참으로 큰 충격이었다. 왜 교수는 저 발표에 가혹한 평가를 했는가. 지금 우리 특검이 말하는 법의식을 갖은 채 발표했기 때문이었다. 한 물 간 법 사고라는 것이 교수의 평이었다. 나의발표는 조문에 맞추는 식의 발표 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한국서 하던 식이었다. 법조문에 매달려 법의 의의, 요건, 해석, 적용, 효과, 만을 상정해서한 발표했기 때문이다. 즉 바로 지금 말하고 있는 일제 명치헌법체제의 법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조문에 끼어 맞추는 논리였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 때 발표는 노동법에 관한 것이었다. 수는 필자가 발표한 내용이 명치헌법체제의 법의식으로 조문에 맞추는 해석만 해서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지적이었다. 이는 일제(日帝)시대 명치헌법체제에나 하는 식이라는 것이다. 당시 일본의 법의식은 우리와 달랐다.
 
제목이 정해지면, 먼저 역사적 추구와 그 배경과 시대구분, 법사상적 측면 검토, 실정법의 내용과 실태, 학설과 학설의 동향, 판례와 판례의 동향, 국제노동기구(ILO)의 협약과 권고의 내용 그 내용과 권고의 수준과의 비판, 국제노동법의 동향까지 논하고 있었다.
 
그리고 각국을 비교했다. 선진국(先進國)과 중진국(中進國) 후진국(後進國) 그러고 나서 금후(今後)의 과제(課題) 전망(展望)등을 연구해서 발표 하라는 것이었다. 저의 발표는 지나간 버려야 할 일제명치헌법체제의 법테두리 안에서 발표는 수준이하라는 지적이다.
 
지금 외국이 특검의 수사나 헌재의 심리에 주시하는 점이 바로 이런 점이라 본다. 바로 일본 명치헌법체제 법테두리에서 수사하며 유아독존적인 법 운영을 의문시하며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특검이나 헌재가 법을 운영방식과 법의식은 19세기적 법 운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 외부에서 보는 관점이다. 여기서 지금 다뤄지고 있는 수사나 방향등이 21세기의 법의 양식과 수준 있는 공정한 일처리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21세기에 와서도 우리는 경직된 법 운영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담당자들은 이렇게 해도 된다고 확신하고 있으나 물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법의식과 법 운영은 시대에 뒤진 것이라 보며 의아하게 생각하게 하고 있다.
 
그것은 일제의 명치헌법의 의식이 불식되고 있지 않은 법의식으로 법 운영은 우리의 법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해 볼 문제이다. 이는 국가의 국격(國格)까지 거론하게끔 하고 있기에서다.
 
국회 제정된 법만 법으로 아는 한국은 문제다
 
우리나라의 기본적 자유에 대한 판결기능은 문제가 너무 많다. 헌법이 법해석학적 방법에 대해 반성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판결이 어떠한 배경으로부터 나와서 어떻게 기능(機能)을 다해야 한다는 법사회학적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일본은 전후 1950년대 온 학계가 법사회학적(法社會學的) 방법(方法)으로 명치헌법체제에서 일본국헌법에로 변화가 180도 달라졌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명치헌법체제 그대로다.
 
여기서 법사회학적이라는 것은 판결의 경우 조문에 맞추는 식의 구성요건을 찾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발생 배경부터 왜 그렇게 됐는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니 됐는지, 이것이 사회에 주는 영향까지 모두 국제적 시각(視覺)도 참고로 해서 다뤄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패전 후의 일본은 명치헌법체제의 법을 4000여개나 폐기 시켰다. 그런데 우리는 그 대로 운영하고 있다. 이는 문제다. 대학들도 전 후 현대법의 변화에 대한 것을 가르치지 않고 일제의 법리에 안주하고 새 시대에 맞는 법을 가르치지 않은 대학이 많은 것도 문제다.
 
이 뿐만 아니다. 법조인들도 이 테두리를 벗어난 법 논리를 펴는 법조인은 매우 드물다는 것도 문제다. 그 한 실예(實例)를 든다면 1995년 3월 23일 헌재(憲裁)의 노조법 제46조에 대한 위헌판결은 전형적인 일제명치헌법체제의 잘못된 판결이었다.
 
이 판결은 시민법의 수정 원리나 세계노동운동의 결과로 얻은 세계의 상식을 외면한 판결이었다. 여기서도 각국의 제도 특히 Wagner법의 원리에 비추어 제정 된 노조법 39조 이하 부당노동해위이론과 특히 그 법칙규정은 잘못 된 것이 아님에도 단체협약은 국회에서 제정된 법이 아니라 해서 위헌 판결을 했다. 이는 명치헌법체제에나 볼 수 있는 무지한 판결이다.
 
이런 판결은 전후 선진국과 중진국에는 없다. 특히 서구선진국과 명치헌법을 제정한 일본도 단체협약을 법에 우선하는 법리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명치헌법체제를 신주같이 모시는 양, 이를 전혀 고려 않은 판결을 보며 당시 필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느 나라나 단체협약이 성립되면 민법389조1항은 대체집행(代替執行)이 가능하나 단체협약은 채무의 성질상 불가능하다. 단체협약에서는 이행강제(履行强制)로 불가변적효력(不可變的效力)으로 대체집행이 불가(不可)하며 일반적구속력이 있음에도 이를 모르고 있었다.
 
또한 단체협약기간이 만료 되면 여후효(余後效))로서 그 내용이 근로계약이 된다는 법리도 모르는 판결을 해 필자가 외국의 학회에 참석하면 한국의 판례에 대해 한국의 노동법판결이 왜 그러냐! 고 했다. 이러한 것도 우리의 법 수준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것은 노동법은 시민법의 수정원리로 나온 이론인데도 당시 이를 모르는 법조인이 많음도 문제로 이따금 판결이 노동법의 원리가 아닌 시민법의 원리로 나온 것을 보며 한탄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한편 우리나라 법률행위도 국내 법률행위만 배우고 국제법률행위는 제대로 배우지 않아서 우리가 체결하지 않은 조약까지 국회에서 아무런 이의제기 없이 비준하는 무지함을 국회가 보여줘서 세계웃음거리가 되고 있음도 지금도 모르고들 있다.
 
필자가 49년 전 일본 유학을 가보니 필자가 배운 법률행위 33개보다 50개나 많은 83개로 늘어났는데 필자가 대학생시절 일본의 아쓰마(我妻 榮)민법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뿐이 아니다. ILO등 국제기구의 협약이나 권고를 전혀 고려 않는 노동판결도 문제다. 이는 지금도 여전함을 볼 수 있다. 이는 대학에서도 가르치지 않으니 알 리가 없는 것 같다.
 
지금 우리나라 대학에서‘국제노동법’을 가르친 대학은 필자가 재직 시에 가르친 것과 부산외대 김교숙(金敎淑)학장밖에 없음을 보고 어찌 이 나라가 노사문제를 제대로 발전시키겠는가! 생각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우리의 법은 국내 울타리를 못 벗어나고 있다.
 
법적사고 잘못되고 법대육성 않아 국가손실 초래
 
위정자도 법대를 소홀히 여기어 우리기업들이 외국에서 엄청난 손실을 가져오는데도 이공계만 선호한 결과 선진국의 밥이 돼 수조에 이르는 손실을 낳게 하는 것을 모르고 있다.
 
필자가 일본에 체재하며 법대의 실태를 보면 법과대학 학생이 가장 많고 그들이 공무원이던 은행과 회사에 진출해서 계약을 하던 무엇을 해도 어김없이 이행해 국가발전에 크게 기여하는데 법대출신을 기용해서 차질을 없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반대로 우리사회도 법적사고가 부족하다. 이러한 것을 개선하려고 필자는 재직한 대학에서 법과를 서울에서 5번째 법과대학’으로 승격시켰으나 몰지각한 공대출신인 H란 총장은 자기무능은 접어두고 경비를 아낀다며 법과대학을 사회대학의 한과로 옮겼다.
 
이는 국가장래를 생각지 않은 국가발전을 저해하고 있음에도 이런 우매한 짓을 하는 지금의 우리의 현실은 무지 그 자체로 한심한 일인데도 이를 모르고 그대로 가고 있다. 이런 무지함이 지금 한국사회의 한 작태로 비쳐지고 있다.
 
이러한 정신적 사회상황은 우리의 가치관을 변질시키고 국가공동체의식이나 연대의식 결여로 이기주의 한탕주의로 출세만 하면 된다는 사고가 만연 돼서 크나큰 문제를 낳고 있다.
 
또한 우리사회는 자기이익과 자기당의 이익을 위해서는 국가보다 무엇을 해도 된다는 의식이 만연 돼 있다. 이는 나라의 망조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총체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그 수준이 말이 아니고 언론은 부패 할 대로 부패한 면이 있고 학계는 학계대로 수준미달의 학문을 그대로 가르치는 대학이 많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모두가 가치관이 변질될 대로 변질돼 지도자라 자처하는 자들까지 권력주변을 살피며 감투만 바라는 것은 문제이다. 돈만 벌고 출세만 하면 된다는 데서 그 부패농도는 말이 아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한국사태는 다 이런 가치관에서 파생되고 있음을 숨길 수 없다.
 
오늘 누가 누구를 재판하고 판결을 할 것인가는 법사회학적으로도 판단하고 처리 할 문제이다. 특검도 문제려니와 탄핵도 요건이 미흡한 것을 붙들고 있는 것은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 세계법학자들도 기고한 글이 있기에 다시 중복해서 논하고 싶지 않다.
 
필자는 지금의 한국사태를 보면서 ‘내손이 더러우면 남의 손이 더럽다고 할 수 없다’는 선진국에 정착한 Clean Hand의 법리에 대해 12월 22일 스카이데일리에 소개 한바가 있다.
 
필자가 오늘도 이글을 쓰는 것은 국가가 비애국적인 정상배들에 의해 자기범죄행위는 숨기고 탄핵사유가 되지 않은 것을 탄핵하며 혼란을 야기 시키는 국회에 대해 법을 전공한 한사람으로서 한마디 하게 된다.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한다는데 대해서 필자는 탄핵결의 과정부터 잘못되고 있으며 대통령을 탄핵하는 사유가 되지 않은 것을 언론과 좌파의 선동으로 혼란을 야기 시키는 정상배들에 대해 혐오감을 느낀다.
 
그러나 헌재와 특검에서 이 혼란의 책임이 대통령과 그 주변 사람들에게 있다고 다루고 있는데 이에 대한 판단은 법치국가답게 세계가 공감하는 법의 판단이 나와야 함을 주문한다.
 
그런데 특검의 수사과정을 보면서 이는 아직도 일제의 명치헌법의식의 법 운영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그리 유쾌하지 않다. 국가에 도움이 아니 되는 것을 법 만능의 명치헌법체제의 잣대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에서다. 과연 이래도 되는가!고 생각하게 된다.
 
이미 수사가 진행되는 마당에 모든 과정은 세계가 지켜보는데서 21세기 법 수준을 견지한 법 운영을 바라진다. 세계가 우리나라가 법의 지배가 제대로 된 법치국가의 수준을 가늠하는지 지켜보고 있는데 기대에 미칠지는 의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헌재(憲裁)와 특검((特檢)이 일제(日帝)시대의 법 운영으로 조문에만 맞추는 법 만능의 법적용은 나라의리 국격(國格)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가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의 흐름 속에 한국의 법 수준과 한국법조계의 법 수준 상황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여기에 공명심이나 잘못된 법 수준의 법적용으로 국가의 엄청난 손실을 가져 오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는 기우(杞憂)이기를 바라진다.
 
만에 하나 이번의 판단이 세간에 돌고 있는 불순한 이해관계가 작용한 판결이 나온다면 이는 국가의 수치요 나라장래가 우려(憂慮)되는 일이다. 현대법의 법사회학적 문제의식으로 법 원리를 적용해 현명한 판결을 매듭지우기를 바라마지않으며 졸필을 이만 줄인다.
이을형 필진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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