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법체계 적용 ‘무지한특검’ 방치한 입법부

입력 2017-02-18 17:2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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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특검이 무지하다는 글이 SNS 등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특검은 먼저 조작된 테블릿PC에 대한 확인에 앞서 박근혜 대통령과 재벌들 간의 유착관계에 힘을 쏟았다. 공정성(公正性)을 잃었다는 여론이 생기게 된 배경이다.
 
특검은 탄핵소추(彈劾訴追)가 당연한 것처럼 전제(前提)했고 또 확신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재벌의 위법여부에 더 비중을 두고 조사했다. 이는 명치헌법체제(明治憲法體制)의 법사상(法思想)과 낙후된 우리의 형소법(刑訴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필자가 보는 특검은 일제(日帝)시대의 법 논리(法論理)를 펴고 있다. 전전(戰前) 일본의 법 운영하는 셈이다. 원인은 국회와 역대 정부가 폐기하고 정비해야 할 법을 방치했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시대는 변했다. 일본은 전후 4000조항이 넘는 법을 정비했다. 하지만 특검은 구태(舊態)를 벗지 못했다. 지금은 법률만능주의(法律萬能主義)의 법 운영시대가 아니다. 일제(日帝) 하의 법테두리를 못 벗어나고 있다. 참으로 한심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한편 우리 학계(學界)도 이에 대해서 아무런 의의(疑義)제기를 하지 않았다. 여태까지 이런 법으로 국민을 치죄(治罪)하도록 방관한 것은 반성할 점이다. 광복 72년이 됐어도 일제시대 시행돼온 법을 국회가 정비 하지 않은 것도 문제이고 이법의 논리를 펴는 것도 문제다.
 
필자가 대학시절 배운 형소법(刑訴法)과 우리에게 이 법을 전수(傳授)한 일본의 형소법은 그 사상과 지향(志向) 면에서 너무 거리가 있다. 전후(戰後) 일본의 형소법은 180도 달라졌는데 우리는 일제(日帝)시대의 법을 그대로 운영하고 있음은 문제로 한심한 일이다.
 
우리형소법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일제(日帝)시대의 수사방식(搜査方式)으로 그저 조문에 맞추어 꿰매어놓는 치죄방식(治罪方式)은 지양(止揚)돼야 함에도 여전인 것은 수치(羞恥)이고 크게 반성(反省)을 할 점이다.
 
지금의 형소법(刑訴法)이 전전(戰前)의 일본형소법(舊 刑訴法)을 그대로 옮긴 것이기에 이해(理解)가 가나 그대로 가는 것은 문제다. 이제는 달라져야 하는데 우리는 법자체도 옛 그대로이고 법을 운영하는 자도 전전(戰前) 그대로의 자세로 가는 것이 문제다.
 
오늘은 이 법을 전수한 일본과 우리의 법 수준에 관해 잠시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은 일제(日帝)시대의 형소법, 해석도 달라졌다.
 
일본형소법(刑訴法)을 둘러싼 기본적 흐름의 추이(推移)를 보면 먼저 공공의 복지와 기본적인인권을 생각할 수 있다. 형사절차법의 분야에 있어서는 형법에서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라고 말한 것과 같은 해석, 소위 기본적원리는 상당수 사라졌다.
 
단지 형사소송법에 있어서도 해석(解釋)의 태도(態度), 해석(解釋)의 경향(傾向)이라는 것은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 없고 일정의 형사소송법상(刑事訴訟法上)의 주의(主義), 원리(原理)와 같은 것과 관련(關聯)해서 나타난다.
 
제2차 세계대전(世界大戰) 전에는 말할 것도 없이 일본의 명치형사소송법(明治刑事訴訟法)은 치죄법(治罪法)으로 법률에 저촉되면 징죄(懲罪)한다는 ‘법률만능주의(法律萬能主義)’로 어느 것도 직권주의 적(職權主義的)인 형사소송법(刑事訴訟法)으로 일치하고 있었다.
 
형사소송법(刑事訴訟法)에서는 명치헌법하의 치안체제(治安體制)속에서 형사절차(刑事節次)라는 것은 오로지 질서유지(秩序維持)라는 역할을 기대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학설(學說) 또는 판례(判例)가 어떻게 해석태도(解釋態度)를 유지해 왔는가에 문제가 됐다. 당시 상황을 보면 1930년부터 일본의 대정(大正)초기에 있어서는 해석의 경향(傾向)은 매우 엄격한 문리해석(文理解釋)적인 태도가 일반적이었다.
 
이것은 어느 의미에서 법실증주의(法實證主義)적인 태도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법의 결함(缺陷)은 결함(缺陷)으로서 솔직히 받아들일 수 없는 입법론(立法論)의 문제로서 의론(議論)해서 가야 할 입법(立法)을 향해서 매우 강렬한 지향(志向)이 뒷받침된 시대였다.
 
그러나 이런 경황 속에서도 상당한 정책적인 혹은, 목적론적해석(目的論的解釋)이라는 것이 없는바 아니나 검찰권(檢察權)의 강화(强化)라는 면에 있어서 보면 특히 이 경향이 컸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의 우리검찰상(檢察象)과 같은 검찰권(檢察權)이었다.
 
이것은 입법(立法)을 매우 강렬한 지향(志向)으로 상당히 정책적(政策的)인 목적론적해석(目的論的解釋)이라는 것이 없었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으로 검찰권한(檢察權限)의 강화(强化)라는 것이 강한 것이 일제(日帝)시대의 법해석(法解釋)이었다.
 
예컨대, 검사청위서(檢事聽取書)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려고 하는 학설(學說)이나 판례(判例)태도는 어느 명문상의 규정이 없는데도 기소편의주의(起訴便宜主義)를 합법적(合法的)인 것으로서 옹호(擁護)하려고 한 학설의 태도에는 이러한 경향이 강하게 보여 졌던 것이다.
 
일본 대정(大正)시대가 되니 이론적인 레벨(level)은 형사소송법(刑事訴訟法)이라는 것은 형법(刑法)과 전혀 다른 독자(獨子)의 존재인양 생각하는 것이 매우 선명히 의식되게끔 됐다. 이것은 소위 공소권 론(公訴權 論)의 전개(展開)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이 당시부터 형사소송법(刑事訴訟法)해석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것이 논란이 됐다. 예를 든다면 1916년 대정(大正5년) 하야세 사부로(林賴三郞)의 저(著)[형사소송법론(刑事訴訟法論)]이 있다.
 
이 저서(著書) 속에서 형사소송법의 해석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를 논하고 있다. 따라서 정책적인 논의가 깊게 관심이 모아져 유추해석(類推解釋)도 형사소송법(刑事訴訟法)에서는 허용(許容)돼야 한다는 것이 매우 선명한 형태로 나왔던 것이다.
 
일본의 전전(戰前) 형사소송법학과 해석이론
 
전전(戰前)에 있어서는 말할 필요도 없이 [치죄법(治罪法)], 명치형사소송법(舊舊 刑訴法)과, 대정(大正)형사소송법(舊 刑訴法)은 그 어느 것도 직권주의(職權主義)적인 형사소송법(刑事訴訟法)이라는 점에서는 일치(一致)하고 있었다. 이런 것은 전후 다 자취를 감추었다.
 
위의 직권주의 형사소송법 하에서 그것도 명치헌법하의 치안체제(治安體制) 속에서 형사절차(刑事節次)라는 것은 불응(不應) 없이 인권보장보다는 오히려 질서유지(秩序維持)의 역할을 기대(期待)하고 있었다. 지금 특검의 태도에서도 볼 수 있는 점들이 바로 이런 점이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는 학설 또는 판례는 어떠한 해석태도를 유지해 왔는가! 라는 점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필자가 대학 시절인 50년대에도 이 명치헌법체제의 형사소송법을 배웠다.
 
당시 배운 형사소송법은 마키노 에이이치(牧野英一)가 1916년 나온 것을 1928년 신정(新訂版)인 것으로 본다. 이 책도 자유법론의 대담한 응용의 형적(形跡)이 없는 매우 신중한 해석론을 말하고 있었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마키노 에이이치(牧野英一)도 매우 목적론적 해석(目的論的解釋)이라는 것이 볼 수 없는 기소편의주의(起訴便宜主義)의 옹호(擁護)에 참가한 것으로 예외(例外)가 아니었다.
 
이런 것이 소화시대(昭和時代)에 들어와서 오노 세이이치로(小野淸一郞), 단광중광(團光重光)등의 저서에 의해서 형법의 조법(助法)적 입장으로 부터 탈각(脫却)이 시작하게 됐다.
 
이 과제(課題)는 소송상태설(訴訟狀態說)의 도입(導入)등을 통해서 형사소송법(刑事訴訟法) 독자의 이론구축이 추구(追究)하게 됐는데 1937년 에 나온 단광중광(團光重光)의 ‘형사소송행위의 무효’(법학협회 잡지 55권 1·2·3호)의 논문 속에 잘 나타나 있다.
 
그것은 ‘이익이 없으면 무효 없다’는 목적론적해석태도(目的論的解釋態度)가 절차유지원칙(節次維持原則)이라는 이론적(理論的)인 깊이를 갖는 원칙으로서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단지 정책론(政策論)이 아니라 매우 치밀한 이론구성 하(理論構成下)에 이러한 원칙을 정립(定立)해 갔다는데 단광중광(團光重光)에 대표되는 전전(戰前) 형사소송법학의 하나의 특색이었다. 지금 특검이 일본이 하던 전시형사입법(戰時刑事立法) 이론을 펴고 있다.
 
일본은 위와 같은 논거(論據)로 인권억압(人權抑壓)의 옹호, 합법화의 방향에 전면적으로 무너지지 않은 이유의 하나가 거기에 있었다고 보고 있다. 전시형사입법(戰時刑事立法)의 전개 속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다소동요가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이 흐름이 관철돼 있었다.
 
전후(戰後)일본형사소송법학의 해석이론
 
그런데 전후가 되자 전전(戰前)이론과는 달리 형사소송법이 당사자주의화(當事者主義化)했다. 더욱이 헌법(憲法)을 기축(基軸)으로 보는 경우도 형사소송법(刑事訴訟法)만을 기축으로 보는 경우에 매우 달리 보는 경우와는 매우 다른 견해가 나온 것이다.
 
즉, 전후의 일본은 형사소송법학(刑事訴訟法學)과 해석이론 구축(構築)이 달라졌다. 즉, 당사자주의(當事者主義)원리와 직권주의 원리와를 믹스라는 법 현상(現象)이 나왔던 것이다.
 
전후형사소송법학은 위와 같이 법전(法典)의 소송구조를 밟으면서 해석론(解釋論)을 전개해 왔다. 그 경우 형사소송법의 조문수준(條文水準)만 보면 매우 다른 해석론을 전개해왔다.
 
헌법(憲法)에 의거(依據)하면서 실체적 진실주의(眞實主義)라는 것으로부터 탈각(脫却)해서 기본적인권(基本的人權)과 이 과정을 지킨다는 관점을 해석론으로서 나온 점에 전후 해석경향이 하나의 특색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학설은 70년대에 들어와서 학설의 수준은 검찰관 사법극복(司法克服)을 추구(追究)하는 정책논의(政策論議)가 일찍부터 전개됐다. 그만큼 형사소송법의 규정과 그 틈새를 어떻게 매우는 것이 학설의 하나의 과제(課題)가 됐다.
 
예컨대 증거개시(證據開始)의 문제라든가, 신속(迅速)재판의 문제라든가, 또는 공소권(公訴權)의 남용(濫用)의 문제에 대해서 형사소송법에는 이를 충족시킬 규정이 없으나 이러한 문제에 관해서 어떠한 해석을 구성하면서 대응(對應)해 가느냐는 것이 과제가 됐다.
 
여기서 학설은 소송(訴訟)지휘권(指揮權)을 활용한다든가. 소송조건 론(訴訟條件 論)을 발전시키려는 데서 이상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점은 실무(實務)에서는 여러 형태로 강한 저항(抵抗)을 받았다.
 
그러나 또 하나의 상황으로서 학설은 검찰관사법(檢察官司法)의 극복이라는 과제를 향해서 정책논의를 그대로 전개해 갔다. 단지 이 정책론 속에서 역사적인전망이 뒷받침되고 있다.
 
따라서 현재형사소송법의 해석론에 요구되고 있는 점은 헌법(憲法)을 염두(念頭)에 둔 해석론(解釋論)에 의해서 형사소송법과의 틈새를 어떻게 메워 가느냐에 필요한 역사적 전망을 어떻게 해서 방법론적(方法論的)으로 해 가느냐가 하나의 큰 과제(課題)로 부상했다.
 
맺는 말
 
지금 우리나라는 전전(戰前)의 판례가 현재도 살아있는 현상은 문제다. 우리와 법체계를 같이해온 일본은 전전의 판례는 거의 살아지고 찾아보기 힘들다. 더욱이 전혀 없다고 할 수 는 없다고 해도 거의 무시(無視)되고 있는데 반해 우리는 아직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특검(特檢)에서 정의(正義)운운 말하는 것도 전전(戰前)의 논거(論據)에 의한 것으로 일본의 입법 취지와의 관계에서 봐도 문제가 너무 큼을 숨길 수 없다. 예컨대 피고인의 조사는 허용되는가에 관해서 일본의 경우 입법취지로는 수사관에 의한 조사는 허용하고 있지 않다.
 
이 같이 입법자(立法者)의 의사가 분명히 하고 있으나 그 후 학설이나 판례는 반드시 입법자의 의사에 따르지 않은 것도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기본적(基本的)인 인권(人權)의 시점(視點)을 중요시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인권(人權)의 관념(觀念)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우리도 인권의 관념을 재구성하는 작업이 요구 되고 있는 오늘이다. 우리도 전후 인권의 국제적 보호가 이뤄지고 있는바와 같이 국제적 시각에서 헌법의 관념에서 형소법(刑訴法) 운영도 달라져야한다.
 
또한 지금 특검이 특정인을 위한 특별검사법은 일제하 법률만능주의에 따르는 것으로 헌법13조 형벌소취에도 위배되는 것으로 특정인을 겨냥한 법은 만들 수 없는데도 전예가 없는 법을 국회가제정해 이법에 의한 특검조사는 의미가 없다고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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