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란 이유로…영토·애국심 외면한 한심 국회

입력 2017-03-25 16: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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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일본 해군교육국장 다카기 쇼키치(高木ソキチ)는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패할 것이라 예견했다. 그리고 그는 일본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했다. 그는 전쟁 후 열강의 분할통치를 예견했고 이것이 한반도에서 이뤄지게 물밑작업을 시작했다.
 
그 결과가 38선이다. 통일된 독립을 허가하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였다. 고도의 전략이었던 셈이다. 그의 의도대로 우리나라는 분열에 분열을 거듭했다. 알려지기로는 38선은 미국과 소련이 그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이러했다.
 
1945년 3월 13일 다카기 쇼키치(高木ソキチ)가 주장한 내용이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나라와 대만의 지배권을 놓치기 싫어했던 의지가 반영됐다. 천황제를 존속시키고 산업·경찰력을 유지하려는 방안을 강구하다 마련됐다. 승패가 판가름 난 전쟁에서 일본이 항복을 최대한 늦춘 것 역시 소련군의 한반도 진주를 기다리기 위해서였다.
 
당시 100만명의 일본군이 만주에 주둔했다. 거주한 일본인도 150만명에 달했다. 일제는 이들에 소개령을 내리지 않았다. 소련군 유도책이었다. 결국 18만명의 일본인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당시의 참상을 목격하고 체험한 고시로 유키고(小代有希子)가 훗날 이 같은 일본의 의도를 밝혀냈다.
 
38선은 맥아더 장군이 남양군도(南洋群島)에 옥쇄하는 일본군을 보며 일본 본토를 점령하려면 미군 200만명이 희생될 것이라 예상돼 소련군을 유인한 것이 원인이 됐다고 알려졌지만 실상은 태평양전쟁사령부 일본대본영(大本營)이었다. 고 있었다.
 
당시 조선총독부총독이었던 아배 노부유키(安倍信行)는 미군사령관 하지중장에 “한국인은 당신들을 싫어한다”며 거짓말했다. 또, 패전 후 25일간 조선은행권을 45배나 발행해 우리의 경제파탄을 유도하는 등 가진 모략과 악행을 다하고 물러갔다.
 
그런데 우리는 조국이 광복 후 좌우로 갈라서서 서로 싸움만 하고 있었다. 지금도 탈 이데올로기 시대임에도 시대에 뒤진 이념싸움과 당쟁을 하고 있음은 한말(韓末)과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오늘은 왜 우리가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단 한 차례도 우위를 뺏긴 적 없는 일본에 나라를 뺏기고 식민지로 추락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차이점에서 본 우리자화상
 
일본은 1968년 명치유신 후 원료공급과 시장개척 그리고 무사계급의 불만 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해외로 눈을 돌렸다. 1872년 오키나와를 침략했으며 이듬해 대만을 점령하고 강화도 앞바다에서 운양호사건을 일으켰다. 1876년 조선과 병자수호조약(丙子修護條約)을 체결함으로써 숙원이었던 조선에 진출하게 됐다.
 
당시 우리나라는 주자학(朱子學)적 세계관에 기초를 둔 중화(中華)사상과 지배계층의 변신이 없었다. 더구나 병인양요(丙寅洋擾)(1866년), 신미양요(辛未洋擾)(1872년)를 거치면서도 성리학(性理學)에만 몰두하고 외세에 대한 준비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이는 식민지로 전락하는데 원인이 됐다. 오래전부터 일본은 한국을 침략하는 계획이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눈앞의 이익과 자당만의 권력에만 몰두했다. 마치 오늘날 우리 국회의 모습과 유사하다. 대외정책 등은 덮어두고 정권을 잡는 것에만 몰두하는 모습과 흡사하다. 마치 우물 안 개구리 같다.
 
일본이 1853년 개화해 서구 문명을 받아들일 당시 우리는 당파싸움과 쇄국에 목맸다. 실제 운양호사건으로 일본과 대치했을 당시 우리대표는 국제법조차 몰라 불평등조약을 체결하는 수모를 겪었고 망국의 길로 접어들게 됐다.
 
오늘날 우리 국회도 이 같은 모습이라 심히 우려된다. 청일간(淸日間) 체결된 간도조약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인 무지의 국회다. 조약은 당사자 간 유효하게 돼 있다. 제 3국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우리 국경이 압록·두만강으로 획정된 해당 조약은 무효인 셈이다.
 
국회는 한일협정 때 한 일이니 자신들과 상관없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바로잡지 않는 것도 문제다. 우리 국경을 좁힌다는 말도 안 되는 태도다. 국회가 대한민국구회인지 한심하기 까지 하다. 앞으로 통일 후 일제 침략으로 잃은 영토는 다 찾아야 할 것인데 도대체 국회는 무엇을 하는 곳인지 의문이 되는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일본인을 깔보며 우쭐하나 일본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지난날에도 지배 엘리트가 세계변화와 변동시대에 자신의 변신을 제대로 못하고 오로지 권력주변에만 머문 결과 일본의 엘리트에게 패배로 나라가 망한 사실을 잊고 있다. 지금 시대는 19세기가 아니다.
 
지금 일본은 재무장해서 이지스 함(艦)만도 12척이 되고 세계적으로도 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 하며 싸움만하고 무조건 정부의 할 일을 저지 방해만 하는 것 같이 비쳐져 온 것은 크게 반성 할 점이다.
 
바른 가치관이 없는 정치인은 스스로 자퇴해야
 
우리가 일본에 나라를 잃은 것은 우리 모두가 눈앞의 이익과 자기만을 위한 정치를 한 조선 말기의 당파싸움이었다. 지금도 다룬 것이 그리 없는 것 같다. 당시 일본은 국제정세에 잘 대처해 갔다. 그러나 우리는 날로 변하는 국제정세도 외면하고 당시 집권자들은 자기와 자기 당만을 위한 정치에만 골몰 했다.
 
국가 민족의 장래를 위한 공동체 의식이나 연대의식은 찾아 볼 수 없는 오로지 권력주변을 맴돌며 줄서는데 여념 없는 정치상황 이었다. 당시도 지배계급은 부패 할 대로 부패하고 부정과 사리사욕에만 눈이 어두운 상황으로 국가를 위한 정치는 외면했다.
 
당시 주도권을 가진 집권자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한 정치, 외교, 군사, 사회, 문화발전을 위한 내정에 미래전략과 경륜을 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의지도 없었다. 오로지 정권을 장악하기위한 음모와 모략이 난무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하리만큼 말이 아니었다.
 
여기에 학자들도 권력주변에 수백 천명이 넘는 인사들이 대선후보 진영에 줄을 서는 기사를 보며 이것이 한국의 학자의 면모인가? 생각하게 한다. 물론 도움말을 줄 수 있고 참여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바라는 것은 그것이 아닌 것 같이 느껴진다.
 
학자는 연구가 주목적이고 국가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데 주력하면 되지 혹시 감투에 연연해서 참여 했다면 이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번 탄핵사태에 학지의 올바른 논조는 찾아보기 힘든 것은 우리학계가 얼마나 무관심 무능력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했다.
 
지금 우리사회는 가치관이 변질돼 조선조 때와 같이 감투가 출세인양 말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치관이 마치 돈 벌고 출세가 제일인양 돈 벌어 출세하는데 혈안이 됐다.
 
그 결과 국가와 민족의 애국심이나 민족에 대한 공동체 의식이나 연대 의식은 없어 고위층부터 하급에 이르기 까지 이런 가치관에 앞장선 격이다. 예컨대 5.18의 유공자가 아닌 자가 유공자로 둔갑해서 가진 혜택을 받는 기사를 보며 기가 찬다. 참으로 목불인견의 상황이다.
 
나라가 바로서려면 선진국들이 한 것과 같이 국가를 위해 희생된 자를 우대하는 것이 우선순위인데 국가를 위해 희생된 순국선열보다도 내만 배부르면 그만이다 식은 문제이다.
 
법 앞에 평등해야 나라가 바로 선다
 
법 앞에 평등해야 할 이 사회가 불공정한 법들을 국회가 제정해 이 사회를 혼탁하게 하고 있다. 먼저 본을 보여야 할 지도급 인사들이 솔선수범이 돼야 하는데 그 반대이다. 이것은 잘못됐다.
 
이래서는 아니 된다. 마땅히 보상을 받아야 할 사람이 받는 것은 당연하나 이유를 불크며 명단을 밀어 넣는 것은 부정이고 바른 보상이 아니다. 이러한 바르지 못한 것은 바로잡아야 국가가 정상으로 발전 할 수 있다.
 
특정지역이나 특정한 사고로 죽은 자들에게는 보상하면서 6.25 때 어린나이로 조국을 위해 전선으로 나간 소년병, 학도병은 조국을 위해 희생됐음에도 지금 까지 외면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현실을 말해 주는 것 같다. 그 이유를 국회는 답해 주기를 바라진다.
 
어찌해서 6.25 때 조국을 위해 참전한 소년병과 학도병의 유공자에게는 단 한푼의 보상도 없는가. 왜 이들을 의붓자식 같이 하는가. 그리고 연평해전과 천안함의 애국용사들에게는 는 왜 차등을 두는 가! 이에 대한 답을 국회는 무엇을 하는 가.
 
우리나라의 법제를 차별하며 애국유공자를 외면하는 가치관이 이 지경까지 온 것은 한심한 일이다. 이런 모순된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유럽에서 후발 자본주의 국가가 된 독일이나 동양에서 선진국이 먼저 된 일본은 이런 법을 제대로 해서 세계적 일등국가가 됐다.
 
독일과 일본은 새 시대에 맞는 법제도로 개선했다.
 
독일의 비스마르크는 독일을 통일한 후 1883년에 세계최초의 전형적인 ‘사회보험법’을 제정해 오늘의 독일을 낳게 했다. 그 법은 세계최초의 사회보험이었다. 그 이틈 해‘질병보험법’과 ‘재해보험법’을 제정해서 공정히 다뤄서 통일된 독일을 정상에 올려놓았다.
 
제1차 대전 후 세계는 국가의 발전을 위한 정책과 법제를 만들어 가며 국가가 발전해갔다. 그들은 우리같이 편협하게 공정을 잃은 법은 제정자체를 하지 않았고 국가를 위해 국민이 안심하고 충성하도록 유도했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 가! 거꾸로 가고 있다.
 
일본역시 19세기에 들어와서 유럽과 미국 등의 제국에서 근대국가를 건설이 진행되면서 우리와는 전혀 다른 개혁을 해나갔다. 국가를 위해 희생된 자들에 대한 보훈 보상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5.18과 세월호에 희생된 자에게는 상상을 초월하는 이해 할 수 없는 보상을 하면서 6.25참전 소년병과 학도병에게는 한 푼의 보은 보상도 없는 기이한 현상이 지금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것이 될 말인가!
 
국회는 왜 나라위해 순국한 애국자들에게 보은 보상을 안 하는가! 묻고 싶다. 6.25 당시 나라가 백척간두에 처 했을 때 2만9622명이 소년병들이 참전하고 사망자 2573명(국방부 확인). 부상자 및 현재 생존자 6000여 명에 대한 보상은 한 푼도 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국가를 위해 연락병, 통신원병, 사무원, 행정요원으로 전방에서 후방에서 용감히 국가를 위해 싸웠고 죽어갔다. 이들에 대한 보은 보상은 당연히 해야 함에도 모르쇠다.
 
또한 학도병도 마찬가지이다. 배움에 열중하던 학생들이 국가위기에 나라를 구하려고 펜 대신 총을 들고 일선에 나가 싸운 학도병에게도 한 푼의 보은 보상은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기현상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국회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이해난이다.
 
필자가 들은 ‘6.25참전 소년병 수도권 본부 회장’ 신상은 선생이 전해주는 바에 의하면 당시는 지금과 달리 문맹 율(文盲率)이 높은 때라 소년병들은 총과 붓을 들고 6.25당시 포탄이 빗발치는 속에서도 국가를 위해 생명을 걸고 국가를 수호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학도병(學徒兵)도 5만 명이나 학업을 중단하고 최 일선에서 싸웠다. 저의 친족 중에도 이 때 희생된 자가 위관 급 조카도 있었고 해병대로 입대해 도솔산 전투에 참여해 생존자 7명 가운데 한 사람이 된 이도형 종형도 있다.
 
이도형 형님은 도솔산 전투와 베트남까지 까서 싸워 대령으로 제대, 당시부상한 후유증으로 일찍이 타계하셨는데 지금도 당시 형님이 말해준 전황은 지금도 잊을 수 없이 생생하다.
 
이 소년 소녀병과 학도병(學徒兵)들에게 아무런 보상을 않는 것은 우리나라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의심나게 한다. 이들은 여행을 가다 희생된 세월호학생보다 못하고, 5.18에 참여한 자보다 못한단 말인가! 국회는 이들에게도 답을 내 놓아야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번 대통령탄핵와중에 다시 5.18유공자라하며 지난날 3부 고위직을 맡았던 분들을 5.18유공자라하며 다시 등재한 기사를 보며 국회는 300조원 이상을 이런 데에 책정하며 나라를 위해 희생한 자들에게는 왜 외면하는지! 그 해답을 국회는 답을 내 놓아야 한다.
이을형 필진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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