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오늘날 민주정치에 있어 정당의 역할은 정부와 국민 간 양자를 현실에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정당은 민주정치의 운명에 있어서 중요한 의의(意義)를 갖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정당이 걸어온 길을 보면 개인의 이해와 관계된 것이 주를 이뤘다. 특정인의 주도 하에 창당과 소멸을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국민에 실망을 안겨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이 때문에 국내 정당의 역사는 선진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연륜·수명 모두 짧다. 미국·영국·독일·프랑스에 존립한 정당들의 이론·정의·조직·활동·자금·데모크라시·역할 등 존립가치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급조된 정당은 국가·민족의 장래 대신 개인의 영달을 얻으려는데 치우쳐 있다. 국민의 이목이 찌푸리게 한다.
지난 대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국민의 기대에 못 미친 선거전이었다. 대선후보들 중에서도 19세기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국가관과 사상적 이데올로기에 편중된 후보들이 있었다. 실망을 금치 못했다.
정당은 민주제의 불가결 존재다. 법치를 우선해야 함은 응당 당연하다. 하지만 일부 정당들의 경우 법치를 넘어뜨리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이 나라의 장래가 염려스럽다. 오늘날과 같은 정당정치와 우둔한 국민의식수준으로는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다.
법 준수 우선해야 할 정당
정당은 정치제도의 하나다. 정치적 당파의 존재는 현대 민주정치보다 오래됐다. 현대적 의미의 정당의 기원은 영국 시민세력이 봉건세력에 대항에 조직한 것이었다. 이후 정당은 민주정의 필수 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정당은 내각·대통령·의회 등 공식 정치기관의 배후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물론 법치주의 하에서 본질적 의의를 갖는다. 정당은 해당 국가의 정치진화를 명확히 반영한다. 하지만 우리는 다소 다른 모습이다.
정당을 구성하는 인원들은 공통의 정치적 지반을 갖고 있어야 한다. 대의제를 기본으로 삼는 현대 민주정치에서 정당은 국민과 정부 사이에 자리해 양자를 현실에서 결부시키는 역할을 한다. 정당이 중요한 지위를 점하고 있는 점은 이 때문이다. 정당은 현대정치의 생명선이라 말하기도 한다.
최근 정치학 최대관심사는 정당이다. 우리나라에서 과연 정당다운 정당이 출연하느냐 여부다. 앞서 우리 정당들은 세력다툼과 특정인의 이익 등을 앞세워 국가의 장래를 외면한 면이 없지 않다. 법·원칙을 무시한 채 상식이하의 선동도 일삼았다. 이기적집단인 셈이었다. 정당이 변하지 않는다면, 지금과 같은 수준에 머무른다면 국가발전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정당의 존재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현대 의회중심 민주정치는 정치운영을 선동·폭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을 전제로 한다. 역사·경제·정치 등 천차만별의 사회조건 하에 각종 대립과 의견불일치가 존재한다. 자연히 뜻이 모아져 당파가 형성된다.
그러나 반대로 각인의 이해(利害)와 의견이 완전히 일치하고 있으면 정당의 존재이유를 요구할 수 없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회가 인간의 이해나 의견의 대립에서 있어도 그것을 타협시키기 위해서 서로 양보하며 협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당은 산발적인 국민의견으로부터 하나의 합치된 세론(世論)을 형성해 이것을 강령(綱領)에서 종합해 공적정책에 전환해 그 실현에 관해서 국민에 충분한 보증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여기서 국민의 정치의식 수준이 문제가 된다.
그 경우 다수결의 원리를 기조로 하고 있는 민주주의 제도에서는 설득, 토론의 평화적 방법에 의해서 반대자를 합리적으로 납득시킴에 의해서 그 다수결의 의제가 일치할 수 있는 의견의 실현을 도모한다. 이 때 실제운영자로서 정당이 필요성에 의해서 정당이 나온 것이다.
정당은 봉건시대의 도당(徒黨)이 아니라 국민이 바라는 국민정당이 돼야 하는 것이다. 개인이나 지역의 이익이나 야합을 위한 불법적인 수단에 의한 것은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이같이 국민정당의 발생은 근대정치의 출발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정당제도는 근대적 정치기관의 주 발조(主發條)이다. 근대정치 개시와 함께 의회주의가 제도화했다.
이리해 국민대표의 참집한 의회중심의 정치가 실시하게 되면 붕당 적(朋黨的) 특질을 탈각(脫却)한‘국민정당’이 민주주의와 의회정치(議會政治)와를 결부해서 발달 했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착안해서 영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Harold Laski는 “정치제도는 대의정치의 필수의 기초”라고 논하고 있다.
그러나 다수인구와 광대한영토를 가진 국가에 있어서는 국민이 어떠한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아는 것은 용이하지 않다. 고대 희랍 특히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정치방식과 같이 전 자유인이 집합해서 전쟁이냐! 평화냐! 결정한 것과 같은 정치방법은 현대정치에서는 실제문제로서도 불가능 하다. 이러한 것은 의회에서 충분히 논의해서 결정할 할 문제이다.
이러한 국민의사의 통일은 봉건시대와 같이 무력 또는 폭력에 호소한다든가 독재자나 권력자의 무력이나 폭력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자유스런 토의에 의한 다수결의 지배를 의미하고 있다.
정치는 민주정치원리 제대로 알고 해야
다수결의 지배는 다종다양한 국민의견에 통일성을 줌에 의해 국민의 의견을 취합해 그 의견을 합리적으로 실현하려고 한다. 설령 국민 간에 각종의 의견대립이 있고 동시에 정당이 국민적인 공통의 기초위에 서서 부분적 대립이 있다고 해도 공통의 기초를 상실 하지 않게 처리 할 수 있다.
민주정치의 원리는 일정의 이상(理想), 의견의 실현을 하기 위해서 통상 반대자보다도 수가 많은 일정 수 이상의 다수자가 모여 협동 활동을 같이 할 정치세력 즉 동지를 필요로 한다. 지금 한국에서 수개월간 벌어진 정당의 행태는 정당의 존재이유나 그 가치를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필자도 역사칼럼 대신 ‘시론’을 주로 쓰게 됐다. 상식이하의 정당인들의 행태가 참으로 참담해서다.
정당은 모름지기 공적 정책을 실행하고 모든 문제를 민주적 토의를 해서 공공(公共)정신을 촉진시키는 기관이다. 그리고 정당은 일정의 기관 구성원으로 되며 공동의 강령과 공동의 정책에 의해서 결합하고 선거, 조각에 의해서 직접지배하려는 목적으로 지속적인 조직이다.
때문에 정당은 그 목적을 달성하는 조건은 소위 정당을 도당(徒黨) 사당(私黨) 공당과 구별 한다. 우리나라는 ‘파벌’만 있고 이런 구분이 없는 것 같다. 정치적 세계관이 없는 정당인가 판단된다.
정치적세계관의 높이는 ‘보편성(普遍性)’에 있다. 정당에 정치적세계관이 높이가 없으면 인간적 정실(情實), 혈연, 금전관계가 정당을 지배해 봉건적 붕당 적(朋黨的)성격을 갖게 한다. 우리는 여기에 지역적인 것도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망국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정당은 일시적이 아니고 그 조직을 영속적인 것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사소한 것이나 국민의 심정으로부터 상담상대가 된다든가 중요문제는 지도자로서 대중을 조직한다.
특히 현대정당은 독자적인 조사연구시설을 갖추어 외국 정당처럼 많은 전문 학자를 두어서 교육에도 힘써야 한다. 우리도 국민교육과 당원의 교육도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오늘이다. 그 결과 정당은 국가적 지배를 지향하는 것 외에 부단한 교육사업이 정당 최고의 기능이 되고 있다. 정당의 ‘정치교육’은 현대정당의 중요한 기능이다. 우리는 미흡하다.
우리도 수준 있는 정당을 위해서도 21세기에 걸 맞는 교육과 훈련으로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 걸 맞는 세계적 정당이 되기 위해 정치의식고양도 요구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비단 정당뿐 아니라 국민모두에게도 요구되고 있는 당면과제가 아닌가! 사료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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