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벌과 지배…‘한민족史’ 반도 아닌 대륙의 역사

입력 2017-05-28 15: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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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우리나라 고대사는 ‘유기(留記)’를 비롯해 ‘구삼국사(舊三國史)’, 고기(古記)‘, ‘조대기(朝代記)’, ‘진역유기(震域遺記)’ 등 일찍이 구비돼 있던 사서(史書)들이 모두 망실(亡失)된 상태다.
 
대부분 중국인의 고사에서 찾아내야 할 참으로 기구한 실정이다. 처해있는 역사연구가 힘들다. 중국과 일본의 사서(史書)에 사용된 용어 중에는 오해하기 쉬운 것이 많고 국명(國名)과 지도(地圖) 지명(地名)이 거의 다 조작돼있어서 중국 일본의 사서는 고증을 통해 인용해야 한다.
 
고대중국의 문화나 제도는 어느 것 하나 우리의 선진문화가 중국에 영향을 아니 끼친 것이 없을 만큼 중국의 하(夏)·은(殷)시대와 주(周) 이전은 우리한족(韓族)의 문화권이 선재(先在)했다. 우리 한족(韓族)문화가 한족(漢族)의 문화보다 우월성을 가지고 중국에 진출했다.
 
공맹(孔孟)이 말하는 인의(仁義)사상의 원천이 요순이고 그들은 동이사람이고 한국은 공자의 이상인 군자의 나라로 공자도 사상적으로나 지연적으로 동방한족(東邦韓族)과 깊은 관련이 있다. 당시 중국은 우리를 군자의 나라라고 산해경(山海經)에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일본역시 우리가 일본에 가서 국가를 세워주고 문화를 전수(傳授) 했으나 가야의 식민지인 임나(任那)가 마치 한국에 세워진 양 역사를 뒤집고 말을 하나 이를 믿는 학자는 없다. 오늘은 고조선의 ‘홍익인간이념’에서 보는 한국민족사상의 내용 등에 대해 살펴보고 져 한다.
 
고조선건국이념 ‘홍익인간’ 인간사상에서 나왔다
 
고조선의 건국이념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이다. 오늘날에도 인류의 최대이념이 되는 것으로 세계평화의 이념이기도 하다. 이 이념이 나온 배경을 보면 사람에 따라 달리 말 할 수도 있겠으나 고대에서부터 우리민족의 사상인 ‘인간사상(人間思想)’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고대는 제정일치(祭政一致)의 체제로 당시 우리는 소두교(蘇塗敎)의 경천숭조(敬天崇祖-하느님을 공경하며 조상을 높이 받듦)하는 보본사상(報本思想)이 내재하고 있다. 즉 충효사상(忠孝思想)은 단군이 나라를 개국하기 이전의 신시시대(神市時代)로부터 이어받은 두드러진 것이다.
 
고조선 개조(開祖)의 단군은 ‘인간사상’에서 ‘홍익인간’의 사상을 이어 받고 그 위에 단군1대의 조종(祖宗-제왕의 조상)이 된 국선(國仙)의 집단적 수련, 실천의 사신전의(捨身全義-몸을 버려 의(義)를 온전히 해 국민을 위하는 기풍(氣風)이 국풍(國風)으로 건국이념을 구현하려 했다.
 
즉 고조선의 현묘지도(玄妙之道-이치가 깊고 오묘한 도리)를 기반으로 하는 고구려의 조의국선(皁衣國仙)의 국풍이 부여의 구서(九誓)와 효(孝)·충(忠)·신(信)·용(勇)·인(仁) 등 삼한의 5계와 신라의 화랑도의 세속오계(世俗五戒)로 이어져 단군건국이념이 구현돼 내려 왔다.
 
부여(夫餘)의 구서(九誓)의 내용도 대체로 삼한의 5계와 화랑도의 세속오계(世俗五戒)의 내용을 종합한 것이었다. 이 정신무장이 부여가 고대에 그 국가의 강성함을 과시 할 수 있었다.
 
고구려의 조의국선(皁衣國仙)은 단군에서 고구려를 거쳐 고려에 이르는 훈련단체의 정신 및 다물(多勿), 회복(恢復)의 이념과 신라의 세속오계(世俗五戒)로 이어져 이는 우리민족의 정신이었다.
 
지금 우리민족은 일제의 식민사관으로 우리고유의 생명력을 잃은 꼴이 되고 있는데. 이 생명력을 회복하는 길은 의식사상적(意識思想的)운동이 요구되고 있다. 지금까지 조선조의 퇴계사상(退溪思想), 실학사상(實學思想), 외래사상(外來思想)에서 우리의 사상을 잃고 살았다.
 
한국역사에 있어서 유교가 대중화한 것이 400년을 넘지 못하고 불교가 초창기상류사회에 보급된 것이 1000여 년이 된다. 그런데 2500년 전에 저술한 논어(論語)와 2300년 전에 저술된 이아(爾雅)와 회남자(淮南子)에 한국은 인간을 사랑하는 군자국(君子國)이라 찬양했다.
 
이 기록은 한국에 독창적인 철학사상이 있다고 긍정 할 수 있다. 사실로 한국에는 철학사상이 있었다. 신라의 최치원(崔致遠)은 ‘한국에 고유한 신선교(神仙(敎)가 있는데 유(儒), 불(佛), 선(仙) 삼교(三敎)를 포함했다’고 했다.
 
또한 송(宋)나라 서긍(徐兢)은 ‘한국에 중국문화와 관계없는 독창적인 선교(仙敎)가 있다’하고 다시 이규보(李奎報)가 ‘한국에 신선사상(神仙思想)으로서 창설한 종교가 있었다’고 했다.
 
‘홍익인간’ 사상은 ‘인간사상’의 출발점이다
 
인류사회의 모든 사상 중 인간사상이 주체이고 최고이다. 오늘의 세계는 인간사상이 모든 사상을 지도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인간사상의 조국이고 한국의 인간사상은 외국의 인간사상보다 우월하다.
 
이 사상에 대해 말한바있는데 지금 가치관이 변질돼 다시 거론하게 된다.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상을 발견한 우리 한민족(韓民族)은 외래사상(外來思想)에 의존 할 수 없이 인간사상(人間思想), 천민사상(天民思想), 중물사상(重物思想)에 의해 창조됐다.
 
4300년 전 단군시대에 홍익인간의 인간사상을 제창해 이 시대에 군자적(君子的) 문화를 건설했다. 예컨대 예맥(銳麥)이 천 년간 중국 정벌한 배경을 보면 이 인간사상에 힘입은바 크다.
 
예맥은 세제(稅制)도 20분의 1을 취하는 인정(仁政)으로 국민이 단결되고 단결에서 강대한 힘으로 중국의 한족(漢族)을 정벌하고 지배한 것이다. 김부식은 강성한 고구려도 인화단결로서 한족(漢族)을 정벌했다고 했다. 이같이 인간사상은 위대한 힘을 발하고 있음을 본다.
 
한서지리지(漢書地理志 第八, 下)에 ‘동방에 있는 한민족은 유인(柔仁)해 북방 남방 서방민족과 다르다’고 했다. 북방 남방 서방민족은 사람을 사랑치 아니하는데 오직 동방에 있는 한족(韓族)만이 사람을 사랑한다고 했다.
 
당태종(唐太宗)은 고구려가 인화단결로서 수(隋)를 격파했다고 하고, 가언충(賈言忠)은 ‘고구려가 인화단결로서 당을 격파했다’고 했다. 소정방(蘇定方)은 ‘신라는 상하가 사랑해 전 국민이 부자형제(父子兄弟)같이 단결됨으로 침략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고려가 인화단결로서 거란 몽골 여진 등의 침략을 격파한 것이다. 한국역사를 창조한 대사건은 ‘인간주의’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이같이 승리의 원인이 ‘인화단결(人和團結)’이라는 정신력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인간주의’가 한민족의 역사를 창조한 것이다.
 
천민사상(天民思想)역시 찬란한 역사를 창조하는데 공헌했다. 이 천민사상(天民思想)은 인류를 지도하는 위대한 이념이 됐다. 민족적자존심을 북돋우고 이민족(異民族)을 지도 지배하고 민족적 자주성을 북돋아 이민족(異民族)의 침략을 저항하면서 불멸의 역사를 창조했다.
 
천제(天帝), 황제(皇帝) 명칭제도 우리가 창조했다
 
단군시대에 삼위(三危-(九月山), 태백(太伯) 백두산(白頭山)에서 인간을 홍익한다고 제창한 것은 한국 땅을 중심으로 인류를 해방 한다는 뜻이다. 즉 한민족(韓民族)이 인류평화의 맹주(主)가 된다고 최인선생은 그 저서에서 말하고 있다(崔仁 ‘韓國歷史의 發見’ 121面~166面).
 
우리는 천신(天神)의 피를 받은 신성족(神聖族)이라는 자존심에서 이 같은 이념(理念)을 제창하고 있다. 이는 무력으로 인류를 정복하는 것이 아니고 사상으로 인류를 정복한다는 것이다.
 
인류를 지도하려는‘홍익인간’의 큰 이상(理想)을 제창한 한민족(韓民族)이 유(儒), 불(佛), 선(仙), 삼교(三敎)를 포함한 위대한 종교를 창조한 것은 바로 ‘홍익인간’의 대 이상을 실현하고 져 한 것이다.
 
또한 천제사상(天帝思想)은 세계를 지배하려는 사상이다. 천자(天子), 천왕(天王), 천황(天皇)의 명칭을 처음 사용한 민족은 중국과 일본이 아니다. 천제(天帝), 황제(皇帝)의 명칭을 창조한 나라는 바로 우리나라이다. 우리민족은 고대부터 천왕(天王), 황제(皇帝)의 국가로 등장했다.
 
한편 한국역사상 북부여(北夫餘)는 최초로 세습제(世襲制) 천제(天帝)황제국가를 건설한다. 우리민족은 부여시대로부터 고려시대까지 천왕(天王) 황제(皇帝)국가로 발전했다. 고구려에 와서는 천왕(天王)의 국가로 부르고 있음도 본다. 동명왕(東明王)을 천왕(天王)이라 말하고 있다.
 
19대 광개토태왕(廣開土太王)은 이 천왕사상을 계승하고 황제국가(皇帝國家)라고 하고 있다. 이는 광개토태왕(廣開土太王)의 비문(碑文)에서도 볼 수 있다. 호태왕의 비문(碑文) 첫 머리에 천제(天帝)의 자(子), 황천(皇天)의 자(子)라 명기(銘記)했다.
 
또 호태왕(好太王)의 즉위를 등조(登祚)라 기록했다. 등조(登祚)는 천자(天子)의 즉위(卽位)에 쓰는 문구(文句)다. 또 연호(年號)를 영락(永樂)이라 했다. 중국은 고구려가 지방의 제후(諸侯)국가라 왜곡 하는 것은 지나가는 개가 웃을 어불성설(語不成說)로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신라 시조 혁거세(赫居世)가 백색천마(白色天馬)의 알(卵)에서 출생하니 그 때 사람이 천자(天子)라 쟁하(爭賀) 했다고 했다(三國遺事 卷一, 新羅始祖 赫居世).
 
백색천마(白色天馬)는 유목민족의 생활을 결부한 것이고 신화의 알맹이는 천자(天子)에 있다. 백색천마도 천자(天子)를 표시한 것이다. 천사가 백의를 입고 천마(天馬)는 천자(天子)를 상징(象徵)한다. 신라고분(古墳)에서도 백색천마도(白色天馬圖)가 발견돼 이를 실증(實證)한다.
 
맹자(孟子)에 후국(侯國)을 시찰하는 것을 순수(巡狩)라 칭한다고 했다. 이는 함경도순수비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순수비(巡狩碑)라는 자체가 진흥왕(眞興王)을 천자(天子)로 가리킨 것이다. 순수비(巡狩碑)에 제왕(帝王), 건호(建號), 짐(朕)등 천자의 용어로 기록 돼 있다.
 
이는 혁거세(赫居世)의 천자사상을 계승 한 것이다. 신라는 일본에 대해도 왕성국(王城國) 즉 천자국(天子國)으로 자처 했다. 신라는 천자사상(天子思想)후대에도 계승된 것이다.
 
가락국(駕洛國), 발해(渤海), 고려(高麗), 황제국가였다
 
삼국유사에 가락국(駕洛國)의 시조 수로왕(首露王)이 황천(皇天)의 명(命)을 받아서 하강(下降)했다고. 했다. (三國遺事 卷二, 駕洛國記). 그래서 수로왕은 자신을 짐(朕), 행(幸), 붕(崩)이라는 문구(文句)를 썼다. 이는 천황(天皇)을 가리킨 것이다.
 
수로왕은 천명(天命)을 받아 본래 가락국의 옛 국호(國號)인 중국(中國)을 평안케 한다고 했다.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라는 뜻이요 이는 천황의 국가로 자처한 것이다. 지금의 중국은 최근에 가락국의 옛 국명인 ‘중국’을 손문(孫文)이 중화민국을 약자로 중국이라 한데부터이다.
 
또한 황천상제(皇天上帝), 황후(皇后)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수로왕(首露王) 자신을 삼황(三皇)이래 탁월한 제왕이라 칭했다. 가락국기(駕洛國記)의 특징은 천자(天字) 황자(皇字)를 사용했다. 천황사상을 표시한 것이다. 일본은 가락국의 천황사상을 수입해 천황이라 칭하고 있다.
 
발해(渤海)도 천손사상과 황제국가임을 알 수 있다. 발해 문왕(文王)이 일본왕에게 보내는 국서(國書)에 천손(天孫)이라 칭했다. 천손은 천왕(天王)을 가리킨 것이다. 발해국지장편(渤海)國志長編)에 발해는 시조 대조영(大祚榮)으로부터 인수(仁수(秀)까지 9대(代)동안 시(諡)를 칭하고 연호(年號)가 있다. 중국의 지방정권 운운(云云)은 말도 아니 되는 망발이다.
 
연호(年號)는 천황 황제 등 독립국가의 제왕(帝王)이 칭하는 것으로 타민족에 예속 되는 후왕(侯王)은 연호를 사용하지 못한다. 발해가 제왕인 것은 요사(遼史)에 대연림(大延淋)이 발해의 독립을 선언하고 연호를 ‘천경(天慶)’이라고 칭했다고 했다(遼史列傳 第十八).
 
또 ‘대금국지(大金國志)’에 발해를 중흥하려는 고영창(高永昌)이 황제를 칭했다고 했다. 이는 전통적 황제사상을 계승한 것이다. 또한 발해의 국명이 진(震)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가? 고려사 백승현 전(白勝賢傳)에 진단(震旦)을 대국(大國)이라 했다.
 
인삼(人蔘)의 별명이 ‘진단(震旦)’이다. 옛날에 인삼(人蔘)의 나라라는 뜻에서 한국을 진단(震旦)이라 칭했다. 진단(震旦)은 진단(檀震)의 변자(變字)로 ‘진(震)’은 진단(檀震)의 약칭으로 ‘진(震)’은 대국(大國)이라는 뜻을 취한 것이다. 발해(渤海)는 해동(海東)의 대국이었다.
 
고려(高麗)도 천황사상으로 황제국가건설
 
고려의 왕건(王建) 태조가 고구려를 중흥할 목적으로 국호를 고려(高麗)라 칭하고 고구려시조 동명왕을 크게 숭배했다. 즉 동명왕(東明王)을 태조(太祖)라 했다. 또 고구려 옛 땅을 동명구양(東明舊壤) 동명고강(東明故疆)라 칭하고 동명왕(東明王)을 제사하는 사당(祠堂)을 세웠다.
 
고려사에 숙종(肅宗)10년 8월에 동명성제사(東明聖帝祠)에 제사(祭祀)했다고 했다. 고려는 천왕(天王)인 동명성제(東明聖帝)를 태조(太祖)라 칭하고 국조(國祖)로 받들며 세계를 지배한다는 황제국가의 사상을 고취했다. 고려도 일찍부터 황제국(皇帝國)임을 널리 알리고 있다.
 
지금 중국과 일본은 우리역사를 뭉개며 변조조작하고 왜곡하는데 김부식(金富軾)을 시조로 한, 한국사대사가(事大史家)들은 한국중심으로 역사를 다루지 못하고 위조된 중국사와 일본사를 그대로 베끼고 있다. 우리역사는 대륙의 역사지 한반도안의 역사가 아니다. 바로 잡아야 한다.
 
한서지리지와 기타 지도가 맞지 않은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중국은 보잘 것 없는 역사를 한국사를 조작하면서 그 지도와 지명도 몇 번이고 바꾸며 서쪽 산악지대의 자기들 역사를 동으로, 동으로 이동조작 했고 지금도 말도 아니 되는 역사조작을 계속하고 있다.
 
흥망의 역사의 기록은 문화사상 영향 크다
 
오늘의 결론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나 문화사상이 없으면 역사는 지워질 수 있다. 인류사상 가장 강대한 북방유목민족이 문화사상이 없음으로 예맥 같은 강국도 역사에서 지워져 있다.
 
고조선에 이어 예맥은 1000년 간 남방한족(南方漢族)을 정복하고 지배한 예맥이 천제(天帝) 황제국가를 건설하지 못했다. 이것은 유목생황을 한데 기인(基因)한 것이다. 천제(天帝) 황제(皇帝)국가는 영토를 근거로 건설하는 것인데 유목생활은 혈육을 근거로 결속 할 수밖에 없다.
 
유목생활은 혈육을 존중하고 혈연을 근거로 한 ‘부족 제 국가’ ‘부족연합국가’로 발전하고 천제(天帝) 황제(皇帝)국가로 발전치 못했다. 흉노(匈奴) 돌궐이 황제국가라 칭한 것은 명칭 상 황제국가지 본질상 황제국가가 아니다. 이들은 문화사상이 결여가 치명상이기도 하다.
 
맹자(孟子)에 [예맥은 성곽과 궁실이 없다]고 했다. (孟子告子章句下). 이는 황제가 영토를 수호하는 성곽과 황제가 거처하는 궁전이 없음을 가리킨 것이다. 또한 삼국지에 [예맥은 대 군장이 없고 후(候) 읍(邑) 군(君) 삼로제(三老制)가 있다고 했다.(三國志 卷三十 東夷 魏志).
 
이는 황제가 없고 삼부(三部族)의 족장(族長)이 통치하는 것을 가리킨 것이다. 우리나라 일연의 ‘삼국유사’나 김부식의 ‘삼국사’에 예맥(銳麥)에 관해 한 구절도 기록을 남기지 않고 중국 일본의 조작한 것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문제이다. 예맥의 역사는 반드시 복원해야 중국역사가 허구이고 우리역사가 대륙을 정벌하고 정복해 지배한 사실을 바로 할 수 있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국가형성의 사회사‘.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과 북방주민들’. 홍윤기,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二十一世紀出版社集團, ‘山海經’. 大連出版社, ‘行走 大黑山’.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石井進外, ‘詳說日本史,‘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上井久義, ‘日本古代の親族と祭祀’. Georges Duby : L'HISTOIRE CONTINUE, 松村剛 譯 ‘歷史は續く’. 坂本泰良,‘明治維新から現代へ’.劉泳,海燕,‘赤蜂博物館’. 黃斌, 劉厚生, ‘箕氏朝鮮史話’ ‘各國別 [世界史の整理] 三省堂發行’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 世界史史料集’,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石井進, 笠原一男, 兒玉幸多, 笹山晴生, ‘詳說日本史’. 稻垣泰彦, 川村二郞, 村井益男, 甘粕 健 共著 ‘日本史’. 西東社出版部編 ‘日本の古墳, 古代遺跡’. 黃娬, 劉厚生, ‘箕氏朝鮮史話’. 외 다수의 서책(書冊)을 참조하고, 본문을 그대로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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