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당한 한민족 본원(本源)…중국은 왜곡했다

입력 2017-06-11 22: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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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우리 역사를 다루는데 우리민족의 본원(本源)을 밝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조상이 누구며 어떤 영토를 거느렸는지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까지 왔는가를 밝히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최인 선생은 그의 저서 ‘한국학강의(韓國學講義 36面).’에서 숙신씨(肅愼氏)가 한민족(韓民族)의 본원(本源)이라 했다. 그러기에 한국사에서 숙신씨(肅愼氏)를 간과(看過)해서는 위대한 자아(自我)를 발견치 못한 그릇된 사고(思考)라 한다.
 
중국의 고서(古書)중 ‘삼국지(三國志)’와 ‘후한서(後漢書)’가 가장 중요하다고 중국인들은 말하는데 이 왜곡된 삼국지(三國志)에 조차 [동이유숙신(東夷有肅愼)]이라 기록 했다. 즉 숙신(肅愼)을 동이족이라 기록했다.
 
또 후한서(後漢書) 동이전(東夷傳)에도 [肅愼來獻石砮楛矢]라 했다. 즉 숙신씨(肅愼氏)를 동이전(東夷傳)에 기록했고, 또 진서(晋書)에도 숙신씨를 동이전(東夷傳)에 기입했다. (晋書(卷九十七, 列傳, 六十七, 四夷). 이상의 기록을 보면 숙신씨(肅愼氏)는 분명한 동이족이다.
 
고대부족시대에는 동이족도 여러 부족으로 분파 분립한 것을 알 수 있다. 진서각주(晋書각注)에 동이족도 백여 국으로 분립했다고 기록했다. 그리고 중국 고사(古史)에 읍루(挹婁), 물길(勿吉), 말갈(靺鞨), 여진(女眞), 실위(室韋)도 동이족이라 기록 했다. 이는 동이족이 여러 부족으로 분파 분립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동이족 중 4300여 년 전에 중국문헌에 나타난 것은 숙신씨(肅愼氏)뿐이다. 숙신씨는 동이족의 시조로 보고 있다. 발해국지장편에 [근세인류학자가 동북민족은 다 숙신(肅愼)에서 나왔다]고 했다. (渤海國志長編 卷十六, 旅俗考, 第三 崔仁 (韓國學講義 35~40面 參照).
 
이는 동이족의 시조가 숙신씨(肅愼氏)를 가리킨 것이다. 그리고 숙신씨(肅愼氏)에서 분파(分派)된 동이족 중 숙신씨(肅愼氏)의 정통(正統)을 계승한 자가 바로 한민족(韓民族)이라는 것이다.
 
평생을 역사연구와 역사의 쟁점을 연구해온 유우찬선생도 최근의 저서 유우찬[한국사의 쟁점]에서 ‘숙신족(肅愼族)이 환웅과 단군의 중심민족’이고 언어와 문명이 이 숙신족에 의해서 세계5대문명도 우리민족에 의해서 전개된 것을 말하고 있다. 유우찬[한국사의 쟁점] 18~9面 參照).
 
오늘은 우리한민족이 중원에서 발원(發源)하고 중국대륙에서 활약한 것을 살펴보고자 한다.
 
중국은 대륙 지배한 한민족영역(領域)을 한반도로 조작했다.
 
우리는 한민족(韓民族)의역사와 그 활동영역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우리역사기록들이 중국과 일본에 의해서 다 망실(亡失)됨으로 중국 일본의 왜곡 조작된 역사를 우리역사로 알고들 있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은 고대부터 우리역사를 왜곡해 자기들 역사로 둔갑시키나 언어도단의 해적행위를 하며 우리역사를 제멋대로 조작 왜곡해서 우리나라의 영역(領域)도 한반도안으로 축소했다. 이것은 이나 하는 야만행위이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역사는 대륙에서 펼쳐졌다.
 
환국(桓國)과 신시배달국(倍達國)과 고조선(古朝鮮) 예맥(銳麥=濊貊), 부여·고구려·백제·신라·가야·발해가 대륙에서 시작하고 있으며 예맥은 천 년간이나 중국을 정벌, 정복하고 지배했다.
 
그러나 중국은 이런 역사의 그 사실을 언급조차 안하고 의도적으로 지우며 부여·고구려·백제·신라·가야·발해·고려 등이 한반도에서 나라를 경영한 것같이 역사를 왜곡하나 전혀 아니다.
 
우리는 대륙의 중원(中原)에서 1만년이상 경영해왔다. 우리역사는 ‘조선사편수회’의 왜곡조작된 것만을 기록한 ‘반도식민사관’의 잘못된 역사만 배워서 찬란하고 위대한 역사를 다 잃어버리고 우리역사와 동떨어진 허구역사만 가르치고 있어서 역사무지의 국민으로 만들어 놨다.
 
우리역사는 대륙에서 발원해서 세계로 뻗어갔다. 삼국도 원래중원의 대륙에서 그 터전을 잡고 활약했다. 신라(新羅)의 경우를 봐도 신라는 중국 감숙성 란주에서 건국했고 한반도에 없었다.
 
신라의 시조의 무덤도 지금의 중국 강소성 오현 호구산에 있으며 황궁(皇宮=수도(首都)도 경주가 아니다. 수도도 6번이나 이전했으며 고구려역시 8번이나 이주한 사실은 이를 입증한다.
 
황국사관의 식민사관자들은 한사군도 한반도내로 일본이 조작하고 왜곡한 것을 그대로 말하고 있으나 모두 허구이다. 다 대륙에 있었다. 낙랑(樂浪)은 섬서성 주지현에, 현토(玄免)는 감숙성 장가천에, 진번(眞番)은 섬서성 미현에, 임둔(臨屯)은 감숙성 진안에 있었다. 한반도에 없었다.
 
그리고 조선의 영역이 한반도가 아닌 대륙에서 열국(列國)이 모이고 헤어지며 강성(强盛)하고 쇠퇴해 삼한(三韓)이 이뤄지고 주(州) 현(縣)이 산곡 간(山谷間)에 흩어져 있었고 우리의 유구한 역사가 한반도가 아닌 대륙에서 이뤄졌다. 이는 숨길 수 없는 사실로 진실이다.
 
고조선의 활약한 중심지역이 중국의 가장 오랜 지리지(地理誌)인 산해경(山海經)에도 고조선의 옛 요동(遼東)을 포함한 넓은 영토를 차지한 선진 우수민족이었다고 여러 곳에 거듭 기록돼 있다. 그 위치는 고인돌에 조각된 ‘천문도(天文圖)에 나타난 별의 위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전후 중공(中共)의 주석(主席)을 죽을 때까지 맡고 있던 주은래(主恩來)는 중국인의 존경하는 인물이다. 그는 북한 김일성을 만난 자리에서 영역에 관해 지금의 한반도로 옮기게 된 사유에 대해 ‘미안하다’하며 지난날 ‘장성(長城)이북은 중국 땅이 아니다.(長城非我邦)’고 했다.
 
즉, 만리장성 이북이 우리한민족의 고조선 땅이었음을 시인하고 지금의 한반도에 밀려온데 대해 송구스러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엄청난 역사왜곡을 자행해 왔다. 중국의 나라들은 300년 동안 지탱한 나라도 없는 그들이 후안무치의 일을 한다.
 
중국의 역사서술(歷史敍述)은 모두 잘못돼 있다.
 
우리의 역사는 중국과 일본에 의해서 우리의 역사는 뒤집혀져 있다. 보잘 것 없는 중국은 그들의 역사를 내세우기 위해 첫째, 중국인은 스스로 중화(中華)라 자처하고 그 사방의 다른 민족은 이(夷), 만(蠻), 호(胡), 혹은 융적(戎狄)이라 하며 오랑캐로 비하(卑下) 통칭(通稱)했다.
 
그러나 그들도 양심이 있었는지 동방의 조선족만은 다른 3방의 제족(諸族)과 구별해 높이 평가하고 중시(重視)해 처음에는 인방(人方) 혹은 동인(東人)이라고 하다가 후에 동이(東夷)라 불렀다.
 
이것은 우리가 만든 표현도 아니고 듣기 좋은 말도 아니다. 동이(東夷)는 큰 활을 쓰는 큰 종족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만물이 생성하는 바탕(言仁)임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 즉, (言仁而好生, 萬物저O而出).
 
한문 옥편(玉篇)과 중국 사원(辭源)에도 “이(夷)는 대야(大也), 열야(悅也), 동방야(東方也)”라고 해설 하고 있다. 당시 중국은 당시의 조선을 “군자(君子不死之國), 대국(大國)”이라고 예찬하고 있으며, “한족(韓族)은 유순(柔順), 근후(謹厚)하고 부인이 정신(貞臣)한 나라”라고 했다.
 
둘째, 타국이 중국에 조알, 조공했다는 기록이 많은데 그것은 예방(禮訪), 문화교류, 공적무역, 관광 등의 왕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국은 수천 년간 조선(朝鮮)에 조공을 바쳐왔다.
 
셋째, 중국인이 ‘타국인을 어느 나라의 왕이나 장군으로 봉했다’는 기록도 많은데 그것도 어떤 나라가 이미 건국됐거나 어떤 사람이 왕위를 계승했거나 지위 혹은 권력을 이미 차지해 기정사실이 된 뒤에 통고를 받고는 그것을 일방적으로 자기네가 “봉(封)해 내려주거나 한 것처럼” 정책적으로 표현 한 것이 대부분이다. (최태영 [한국고대사를 생각한다.]41~42面).
 
이와 같이 용어의 형식과 사실상의 의미가 상이(相異)하게 돼있는 것도 중국인들의 상투적이고 과장된 표현에 불과 한 것이다. 고려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도 그 시대의 정황과 또 왜곡된 중국고사(中國古史)를 자료로 한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700년간 빛을 발하지 못했고 지금도 믿을 수 없는 책이라는 것은 허구(虛構)투성 의 책이기 때문이다.
 
한편 중국은 역사를 왜곡조작하기 위해 중국[사기(史記)] 바다 해(海)자에서 ‘북해(北海):발해만)’와 ‘동해(東海)’란 단어 외에 두 개의 단어 이외의 모든 바다 해(海)자는 강(江):河이나 호수(湖水)로 해석한다. 그리해 우리 고대사를 혼동하게 교묘히 조작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권2 본기4의 해(海)의 집해(集解)에 “서광(西廣)이 말하기를 해(海)는 하(河)로도 쓴다. (西廣曰 海一作河)” 즉, 해(海)는 바다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강(江)이나 호수(湖水)를 말한다고 해 역사조작을 위해 바다 해(海) 자(字)로 둔갑 시킨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자세히 말한다면 “동쪽은 창해(東滄海)” “배산(背山向海)”등 해(海)자는 강, 호수, 바다, 대평야(氷海), 청해호(靑海), 발해호(渤海, 昌海), 동정호(南海)로도 쓴다고 했다.
 
때문에 동서남북의 황하(黃河), 북경(北京)지역의 호수(湖水)등 외에 강(江)도 바다 해(海)자로 쓰기에 “북해(北海)” “동해(東海)” 두 바다와 구분해서 강과 호수의 해석을 제대로 해야 정확히 바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상은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66~7面 參照)
 
고조선 활약한 중심은 고요동(高遼東)이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권6 본기13의 해(海)의 정의(定義)에 중국의 바다를 해석해 놓은 것이 있다. “바다란 발해남쪽의 양주, 소주, 대주, 등지의 동쪽 바다를 말 한다.(海謂渤海南至揚蘇臺等州之東海也, O及也)”고 했다.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66面 參照)
 
즉 영주, 소주는 양자강 지역이고 대주는 절강성 중동부 대주만이다. 즉 중국사기의 동해란? 발해만의 산동성 동쪽의 가장 끝을 기준으로 북쪽은 [발해], 남쪽의 동쪽바다전체를 [동해]라고 한다. 한문이 뜻글자라해서 ‘창해’를 반드시 ‘’발해라고 하는 것은 중국의 속임수이다.
 
고대우리나라영역(領域)은 반도식민사관자들이 말하는 한반도가 아니다. 바로 지금의 중국대륙이다. 중국은 우리역사말살을 위해 우리영역을 조작했다. 우리는 이 바다 해(海)자를 잘못해석으로 한국사는 지리멸열(支離滅裂)한 상태로 100%뒤엎어 놓은 것이 지금의 우리영역이다.
 
바다 해(海)자를 강(江)으로 해석하면 우리의 강역(江域)은 바로 대륙에 있었음이 밝혀진다. 환국시대부터 신시배달국, 단군고조선, 예맥,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발해, 고려, 조선에 이르는 우리의 역사무대도 한반도가 아닌 모두 대륙에 있었다.
 
우리가 대륙에 있었다는 것은 현재 만주와 한반도의 지명들이 본토 토박이말로 된 과거지명 연혁(沿革)이 모두 일제 때 우리역사말살을 위해 치밀하게 중국본토의 역사지명을 이동시킨 것뿐이다. 이에 대한 것은 고증으로 밝힐 수 있다.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66面 이하 參照).
 
고조선이 활약한 중심지역이 고요동(高遼東)이었음을 알려면 전후기의 고조선은 물론 고조선을 계승한 열국(列國) 중에 예맥, 부여, 고구려, 발해와 고조선영역의 변경에 위치했던 제후국(諸侯國)을 봐도 확실히 알 수 있다. 위만조선도 고조선의 변방에 작은 후국(侯國)이었다.
 
위만조선은 고조선영역인변방의 한구석에 위치해고조선에 종속돼있는데서인데 고조선의 중심부는 물이 동쪽으로 흐르는 패수(浿水)로 발해의 북쪽에 있었고 그 영역(領域)은 중국 북경근처에 있는 난하(灤河)로 부터 한반도의 대부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고구려와 발해의 옛 문헌들이 역사자료를 부분적이나마 인용해 전해주는 국내외의 기록들이 더러 남아 있어 강성(强盛)했던 고조선의 위치와 영역이 밝혀지고 있다.
 
고조선이 발해 북쪽에 있었음을 알게 하는 기록들이 중국에도 남아 있다. 윤내현 교수는 고조선의 존재했던 당시의 위치와 영역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서도 확인시켜주고 있다.
 
‘사기(史記)’ 조선열전에 전한(前漢)의 무제(武帝)가 위만조선의 우거왕을 치기 위해서 육해군을 보냈는데 육군은 요동을 가서 치고 해군은 제(齊)를 출발해 발해를 향해 위만조선에 기록 한 것으로 돼 있다. 그 때의 요동(遼東)이 한반도가 아니고 어디인가! 는 분명해진다.
 
고조선의 속령(屬領)인 위만조선(衛滿朝鮮)의 영토가 요동(遼東)임을 알 수 있다. 제(齊)는 지금의 산동(山東)이고 발해(渤海)는 지금의 발해와 같다. 그 위치는 북경(北京)가까이에 있는 지금의 난하(灤河) 동북지역이었다는 사실이 분명해 졌다. 역사는 진실을 말해야 한다.
 
중국은 역사왜곡을 위해 지역과 지명을 동북쪽으로 바꾸고 있는데 옛 요동과 지금의 요동을 혼동해서는 아니 된다. 그런데 현행국사책에는 요동을 지금의 요동으로 하고 있는데 고대의 요동은 난하(灤河)동북지역으로 고구려의 강역도 난하(灤河)유역까지 확대해서 말해야 한다.
 
당시의 고요동(高遼東)은 난하(灤河) 하류지역에서는 고조선과 중국의 경계가 갈석산(碣石山) 이었다. 고대의 요동(遼東)은 대부분 고조선에 속해 있었다. 고조선 서남부 일부가 중국영토에 속해 있었다. 이 요동(遼東)이 고대조선이 활약한 지역의 중심임을 알 수 있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再考證 韓國思想의 新發見’.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국가형성의 사회사‘.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과 북방주민들’.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홍윤기,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二十一世紀出版社集團, ‘山海經’. 大連出版社, ‘行走 大黑山’.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石井進外, ‘詳說日本史,‘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上井久義, ‘日本古代の親族と祭祀’. Georges Duby : L'HISTOIRE CONTINUE, 松村剛 譯 ‘歷史は續く’. 坂本泰良,‘明治維新から現代へ’.劉泳,海燕,‘赤蜂博物館’. 黃斌, 劉厚生, ‘箕氏朝鮮史話’ ‘各國別 [世界史の整理] 三省堂發行’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 世界史史料集’,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石井進, 笠原一男, 兒玉幸多, 笹山晴生, ‘詳說日本史’. 稻垣泰彦, 川村二郞, 村井益男, 甘粕 健 共著 ‘日本史’. 西東社出版部編 ‘日本の古墳, 古代遺跡’. 黃娬, 劉厚生, ‘箕氏朝鮮史話’. 외 다수의 서책(書冊)을 참조하고, 본문을 그대로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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