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호도 도용한 중국…부족한 역사 날조로 채우다

입력 2017-06-24 12: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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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상고사 자체가 없고 고대사 또한 보잘 것 없는 중국은 고대부터 역사위조에 혈안이었다.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은 국호(國號)도 우리 것을 도용(盜用)하고 있다. 원래 중국은 김수로왕(金首露王)이 가야(伽倻) 이전에 ‘중국(中國)’이라는 국호를 썼다. 중국이 오늘날의 국호를 갖게 된 것은 손문(孫文)이 중화민국(中華民國)으로 국호를 정하면서 부터다.
 
상고사(上古史)가 없는 중국은 상고시대의 역사를 꾸미며 그 공간을 메우기 위해 구차하지만 우리선조의 역사를 다 가져다가 자기들 역사라고 우겨댄다. 억지로 꾸며진 역사는 기자(箕子)가 주(周)무왕의 임명을 받아 조선왕이 돼 한민족(韓民族)을 지배했다고 했다.
 
그리고 연인(燕人) 위만(衛滿)이 다시 기자조선을 계승해 한민족이 지배자가 되고 한무제(漢武帝)가 또한 위만을 정복하고 한사군을 설치해 완전히 한민족을 지배했다고 위조했다. 이 위조를 중국학자 양계초(梁啓超), 사부아(謝扶雅)등도 중국의 역사위조를 시인한다.
 
중국인은 일방적으로 인류의 종주국이라 자처하며 타민족을 신복(臣僕)으로 간주하는 전통이 있다. 기자는 중국역사인 한서(漢書)에 [箕子 去之朝鮮(師古曰 史記云 武王伐紂 封箕子於朝鮮 與此不同]이라 했다.
 
즉 기자(箕子)는 ‘자신이 주무왕(周武王)의 임명을 받아 한민족을 지배한 일이 없다’고 스스로 밝혔다(漢書 卷之 二十八, 地理志 第八下). 이런 위조를 믿는 것은 역사연구의 부족에서다. 오늘은 중·일의 터무니없는 우리나라 고대역사 왜곡에 대해 그 진실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고대사의 왜곡 기자조선부터 시작
 
은(殷)나라가 단기1211년(서기전 1122)에 주(周)나라에게 망한다. 이 때 은(殷)나라 시조 성탕(成湯)의 16대손인 기자(箕子)가 “왕조 궁터에 잡초가 무성타”고 한탄하며 무리5000여 명을 거느리고 동래(東來)했다고 했다(海東繹史 第二, 箕子朝鮮). 그 이후 조선에서 기자의 소식은 없다.
 
은(殷)나라는 중국의 한파(派)이지만 종족(種族)상으로는 우리와 같은 동이족이 주축(主軸)이 된 나라이다. 그런데 1000년 후, 요동에 기준(基準)이란 후손이 나타나고 기자조선이 있었던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러나 기자는 있어도 기자가 왕이 된 기자조선이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기자가 왕조를 계승 했다면 1000년 동안 어디서 무얼 했는지 그 실체가 있어야 하는데 그 흔적이 없다. 중국이 한국을 지배했다는 중국사가와 한국이 중국에 예속됐다고 위조하는 한국의 사대사가(事大史家)까지도 기자가 한국을 지배한 적이 없고 기자가 한민족을 지배치 못한 것에 대해 필자도 기자는 실체가 없는 허구임을 밝힌바 있다.
 
당시의 사회조직을 고찰해보면 당시는 부족시대로 많은 부족이 병립(竝立)하고 한민족 전체를 대표 한 통일정권이 없었다. 그럼으로 기자가 한민족의 지배자가 됐다면 한부족의 족장이 되는 것이고 한민족전체를 지배 할 수 없다. 당시 예맥은 중국을 정벌 정복하고 지배할 때다.
 
그 당시는 인구가 적고 고조선 영역에는 토지가 많음으로 동일한 부족도 딴 지방에 진출해 부족집단을 창설하고 딴 부족을 형성함으로 많은 부족이 병립한 시대였기에 기자 또한 고조선 변두리에 있었을 뿐이었다. 기자가 고조선을 계승했다는 것은 허구인 것은 이미 다 입증했다.
 
기자가 고조선지역에 들어와 산 것은 사실이나 중국인은 이를 이용해 조선을 중국의 속국인양 해보려고 주무왕(周武王)이 기자를 후일 조선 왕에 봉했다고 역사에 적었지만 기자는 이를 받아들인 적이 없고 왕은커녕 그 관리도 한 적이 없다. 저의나라 임금도 단념하고 온 기자이다.
 
백이(伯夷) 숙제(叔齊)는 고사리나 먹다 굶어죽었는데 기자가 고조선영역에 들어와서 단군을 밀어내고 임금이 될 상황도 아니었다. 최남선(崔南善)은 그의 저서 [고사통(故事通)]에서 ‘이 시기는 태양의 아들, 단군임금을 뜻하는 말인 기아지(해의 아기란 뜻)조선이었다는데 후일 기자조선으로 와전(訛傳) 됐다’고 했다.
 
국내학자들의 기자조선에 대한 시각과 역사위조
 
최동 선생은 “태양의 아들 , 속칭 ‘해아기’ 시대란 말이 음변(音變)해 기자(奇字) 자(字)가 됐고 이것이 후일 기자(箕子)와 혼동 된 것”이라 했다. 이병도(李丙燾)박사는 ‘한(韓)조선’으로 불렀고 김정배 선생은 ‘예맥조선’이라 했다.
 
그러나 최태영 선생은 ‘고조선은 단군에서 시작해 단군47대로 끝나는 것이며 그 중간에 ‘개아지’니 ‘기자(奇字)’니 기자조선(箕子朝鮮)이라 하는 게 끼어들 여지가 없다. 고 하셨다. (이상은 최태영, ‘한국고대사를 생각한다’ 48면 참조).
 
단군47대가 물러난 뒤 단군직계손이 아닌 준(準)을 기자손이라 하려고 공연히 기자(箕子)의 손기(箕) 성(姓)을 붙여 혼란을 초래 했다. 기자(箕子)후손이라며 기비, 기부, 기준이라고 하는 것 조차 일정치 않다. 유승국(勝國)선생도 기자조선은 없다고 부인 했다.
 
기자(箕子)가 고조선 어느 지역으로 왔는지도 분명치 않은데 중국의 왜곡된 역사에 한 줄 나왔다고 단기3435년 고려 숙종 때(서기1102) 사대주의자들이 기자묘(箕子墓)를 만들었다. 뭘 갔다 묻고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당시 사대당(事大黨)들은 중국이래야 제일 이니까. 책략을 써서 평양에 무덤 만들고 비석세우고 그가 왕 했다고 시늉한 것이다.
 
이러한 사대주의자(事大主義者)들에 의해 기자가 조선에 왔다는 것을 이용해서 사대하니 중국은 자기네들도 모르는 일이라 좋아서 이를 살피러 와서 기자조선이 있었는지 확인하려 했다.
 
그러나 고려(高麗)는 기자조선에 대한 아무근거도 대지를 못했다. 그래서 중국사신은 헛물만 켜고 돌아갔다는 것이 중국사에 나오는 것이 그 증거다. 기자조선은 허구로 그 실체도 없다.
 
“기자(箕子)가 와서 일깨워줬다면 중국이 좋아하니 그렇게 해서 기자조선이 있었다고 했을 뿐이다. 더 우스운 것은 기자가 중국문화를 전해 우리를 깨워줬다는 것이다. 이는 그 정반대다.
 
중국을 깨우쳐 준 것은 바로 우리다. 그 당시는 중국이 동이(東夷)가 깼던 족속이었다. 요(堯)임금도 동이족이라 하는 설이 있는데 자기 아들을 제쳐놓고 데려온 동이족 순(舜)임금이 중국에 치산치수(治山治水)와 나라 다스리는 것을 다 가르쳤다. 그래서 순을 임금에 앉힌 것이다.
 
고대 중국의 부족의 장은 거의 동이족을 모셔다가 왕으로 삼았다. 배달국시대 14대 자오지천황(慈烏支天皇=(치우천황(蚩尤天皇)과 73회나 싸운 헌원(軒轅)도 동이족이나 화하족(華夏族)의 천황(天黃)으로 모셨다. 지금은 이 들도 다 중국의 삼황오제에 넣어 자기들 역사라 하고 있다.
 
동이족은 석기시대에 철기를 파괴하는 호시(楛矢), 석족(石鏃)을 발견한 한민족(韓民族)은 사방 원시민족을 정복하고 대국으로 등장한 것이었다. 그리고 모든 문물제도도 황제제도를 비롯해서 종교, 주역(周易), 철학과 홍범구주(洪範九疇), 군사학까지도 모두 중국에 전해 주었다.
 
중국은 오래 동안 한국을 배웠다. 이에 대해 중국문헌인 ‘북사(北史)’와 ‘주역(周易)’을 들어서 재확인 할 수 있다. 북사(北史)에 ‘동이(東夷)에게서 수입한 것은 궁시(弓矢)뿐만 아니라 기타 문화(文化)도 수입한다.’고 기록했다.(北史 卷九十四 末尾. 周易 卷之二十四).
 
따라서 기자(箕子)가 와서 깨우쳤다는 것은 조작일 뿐이다. 중국에서 우리나라 역사를 위조한 것은 문서상으로도 확연(確然)하다. “기자가 단군영역에 들어오고 1000년이 지난 뒤 준(準)이란 단군임금에게 기자(箕字)를 달아 붙여 기자손이라”한 데서부터 역사를 뒤집은 것이다.
 
일본이 역사위조 한 것 못지않게 중국도 고대부터 역사를 위조했음에도 역사를 팔아먹는 사대주의자들이 앞장서서 중국에 사대(事大)하는 것을 광영으로 아는 사대주의를 틈타 주(周)나라가 역사를 통일 해야 한다는 전제아래 공자(孔子)를 앞세워 역사를 왜곡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중국학자들은 기자조선 왕조 설을 사실로 굳히려 한다. 그러나 우리 학자들은 그것을 사실이라고 인정 하지 않는다. 최태영 선생은 ‘평양에 기자묘가 있을게 무엇인가. 사대주의 참 더러운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셨다.(최태영,‘한국고대사를 생각한다.46~48면 참조)’
 
지금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도 기자조선이 허구라는 사실을 알고 이런 거짓역사를 혐오하는 학자들도 나오고 있다. 아직도 허구의 역사를 말하는 자는 ‘동북공정’의 중국사가(中國史家)와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의 허위역사를 추종하는 한국의 사대사가(事大史家)뿐이다.
 
이와 같은 허위 선전해 기자가 한민족의 지배자가 됐다고 하나 이는 제대로 역사를 연구한 한·중·일, 학자들은 다 믿지 않는다. 오직 반도사관자만이 허구의 역사를 추종할 뿐이다.
 
일본이 한 때 한국의 역사는 기자부터라고 [각국별 세계사의 정리]에 게제해서 우리역사를 왜곡하려 했으나 지금은 일본도 천황가의 7000년 역사[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등 새 문헌이 나옴으로 다 허구인 것이 들어나서 일본학자들도 이를 믿지 않는다.
 
다시 단언(斷言) 하건데 기자조선(箕子朝鮮)은 실체(實體)가 없는 허구(虛構)의 역사일 뿐이다.
 
지금 시대가 달라졌다. 중국 일본도 진실을 써야
 
이제는 공자 때부터 위중국휘치(爲中國諱恥)의 수법을 창안해서 타민족에게 패배한 사실을 삭제하고 도리어 승리(勝利)로 위조하는 수법은 이제 접을 때이다. 그들의 휘치필법(諱恥筆法)은 한족(漢族)과 중원(中原)의 수치스러운 역사를 숨긴(爲漢中國諱恥)다는 필법은 통하지 않는다.
 
지금은 인공지능시대이다. 한족(漢族)과 중국은 높이고 외국은 깎아내린다(矜炒而陋夷狄)며, 한족(漢族)에 관한 국내사는 과대(誇大)하게 쓰고 남의 역사는 작게 쓴다(祥內略外)는 원칙으로 중국을 지배한 한민족(韓民族)의 역사를 철저하게 깎아내리는 수법도 통하지 않는다.
 
중국은 고대부터 우리역사를 아예 뭉개거나 축소하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역사를 자기들 것으로 도둑질까지 하는 야만행위를 해 왔다. 분명한 사실은 중국이 내세우는 역사의 주역(主役)들은 거의 다 한민족(韓民族)이지 중국한족(漢族)이 아니다. 추적해보면 그 실체를 알 수 있다.
 
중국은 지금도 ‘동북공정’을 통해 그 주역(主役)들을 자기들 조상으로 조작하나 진실은 숨길 수 없다. 어찌 엄연한 우리 한민족을 중국인의 조상이라 하는가! 이는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라는 주역(主役)은 다 우리조상인데 조상까지 바꾸며 역사를 왜곡 조작하는 중국에 동조할 수없는 것이다. 그 삼황오제(三皇五帝)는 다 우리조상이 아닌가!
 
일본 역시 일본의 역사기술원칙(歷史記述原則)을 보면 ‘승리는 과장(誇張)하고’, ‘패배는 고쳐서 개서(改書)하고’ ‘망명(亡命)은 서술(敍述)하지 않는다.’는 수법이 일본역사를 작성하는 기본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이도 접을 때다. 인공지능과 과학 발달로 허구는 숨길 수없는 시대다.
 
이 같은 수법으로 일본역사기술(日本歷史記述)을 해 허장성세(虛張聲勢)를 벌여봤댔자 일본 역사가 달라질 것은 없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주역들은 모두다 우리한민족이 주역이었고, 이는 숨길 수 없는 분명한 사실로 이를 뒤집힐 수 없는 것이다. 역사는 진실만이 역사이기에서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再考證 韓國思想의 新發見’.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국가형성의 사회사‘.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과 북방주민들’. 홍윤기,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二十一世紀出版社集團, ‘山海經’. 大連出版社, ‘行走 大黑山’.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石井進外, ‘詳說日本史,‘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上井久義, ‘日本古代の親族と祭祀’. Georges Duby : L'HISTOIRE CONTINUE, 松村剛 譯 ‘歷史は續く’. 坂本泰良,‘明治維新から現代へ’.劉泳,海燕,‘赤蜂博物館’. ‘各國別 [世界史の整理] 三省堂發行’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 世界史史料集’,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石井進, 笠原一男, 兒玉幸多, 笹山晴生, ‘詳說日本史’. 稻垣泰彦, 川村二郞, 村井益男, 甘粕 健 共著 ‘日本史’. 西東社出版部編 ‘日本の古墳, 古代遺跡’.외 다수의 서책(書冊)을 참조하고, 본문을 그대로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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